호사다마일까? 지난 3분기 사상 최대 실적을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삼성전자가 뜻밖의 ‘악재’에 휩싸였다. 이 회사 냉장고와 세탁기의 품질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연이어 불거지고 있는 것. 냉장고·세탁기 같은 생활가전 제품은 휴대폰이나 반도체에 비해 판매규모는 훨씬 작지만, 소비자의 생활과 밀접하고 브랜드 신뢰도에 큰 영향을 주는 제품이어서 전자회사들이 품질 관리에 만전을 기하는 분야다.
삼성전자의 지펠냉장고는 지난 10일 오전 경기도 용인시 동백동의 한 아파트의 9층 가정집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폭발사고를 일으켰다. 용인소방서에 따르면 폭발 당시의 압력으로 냉장실 문짝이 튕겨 나오는 바람에 주방 창문이 깨지고 유리 파편이 아파트 9층 아래로 떨어졌다. 폭발사고 당시 이 아파트 거실에는 어른 없이 중학생 자녀가 혼자 남아 있었지만 냉장고와 떨어진 곳에 있어 별다른 부상을 입지는 않았다.
이 아파트에서 폭발한 냉장고는 2006년형 삼성전자 지펠 양문형 냉장고(용량 680L)다. 삼성전자 측은 폭발사고가 난 냉장고를 수거해 정밀 분석작업을 하고 있다. 냉장고 자체의 결함인지, 누전이나 기타 사용상의 부주의로 인한 것인지 정확한 사고원인을 조사 중이다. 회사 관계자는 “폭발 원인은 사고 당시 냉장고 설치 및 사용환경, 누전 여부, 전기 사용 상태, 집안 환경 등 여러 가지 조건을 복합적으로 고려해 분석해야 한다"면서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기 전에 소비자들 사이에 ‘삼성 냉장고에 문제가 있다더라’는 식으로 막연한 불안감이 퍼질까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폭발사고 냉장고를 생산자인 삼성전자가 수거해간 점에 대해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사고 원인을 축소하거나 은폐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용인소방서 관계자는 “폭발 당시 화재는 없었기 때문에 회사측에서 냉장고를 수거해 갔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측도 “문제를 축소했다가 또 다시 같은 사고가 발생하면 큰일이기 때문에 철저히 원인을 분석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탁기 논란도 삼성전자의 또 다른 골칫거리다. 지난 7일 MBC의 생활환경 감시프로그램 ‘불만제로’는 국내 가전업계가 ‘세탁용량 10kg과 12kg 제품이 무게가 다른데도 불구하고 크기 차이가 별로 없는 세탁조와 모터를 사용한다’는 내용을 방영했다. ‘불만제로’ 측은 "아직도 많은 소비자들은 세탁기 용량이 크면 세탁조나 모터가 클 것이라고 생각하고, 공대 교수들도 세탁용량이 커지기 위해서는 세탁조가 비례적으로 커지는 것이 정상이라고 설명한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이날 방송 비판의 상당 부분이 삼성전자 세탁기에 집중됐다는 것. 이 프로그램은 LG전자와 해외 업체의 사례도 방송했지만 특히 삼성전자 제품에 집중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삼성전자는 이 프로그램이 방송한 내용 자체가 사실과 다르다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불만제로 측의 논리는 16kg 드럼세탁기의 세탁조 크기가 8kg 제품에 비해 두 배로 커져야 한다는 것인데, 세탁 용량을 증대하기 위해 세탁조 크기와 모터 용량을 키우는 것은 일차원적인 기술이라는 것. 삼성전자 관계자는 “삼성전자 뿐 아니라 LG전자, 월풀, 밀레 등 가전업체들 모두 세탁조 크기나 모터 용량을 줄이면서도 세탁력을 유지하거나 강화하기 위해 첨단 세탁 기술을 도입하고, 모터의 구동력을 높이기 위한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삼성전자를 비롯한 주요 드럼세탁기들은 지식경제부의 전기드럼세탁기 용량 관련 규정을 만족한다. 아울러 국가표준규격인 KS 마크(KS C9608)와 산업표준시험원(KTL)의 표준 시험을 통과했다. 공신력을 갖춘 품질기준을 통과한 제품에 대해 불만제로 측이 현실과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 삼성전자 측의 주장이다.
삼성전자 측은 “이 프로그램 제작진의 문의에 대해 사실관계를 설명했지만 응답 내용 가운데 상당 부분이 방송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불만제로 방영 이후에도 제작진에게 ‘사실과 다르다'고 항의하고, 정정이나 사과 방송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삼성전자 내부에서는 소송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 프로그램은 삼성전자가 나쁜 회사인 것처럼 시청자들이 오인할 수 있는 내용을 내보냈다”면서 ”국내 소비자들에게 부정확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도 문제지만 해외에서 이를 무턱대고 인용 보도한다면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에 대해 불만제로 제작진은 "2년 전에도 동일한 문제를 제기했는데 삼성측이 10kg 제품의 세탁조와 모터를 조금 줄여서 차별화를 뒀다"며 "잘못을 인정하고도 12kg 제품의 크기를 늘리지 않고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한 것은 유감"이라고 반박했다. 불만제로 제작진은 "삼성전자 스스로가 대용량 세탁기를 만들때마다 세탁조 크기를 얼마나 키웠는지 광고하고, 팜플렛이나 매장에서도 모터의 차이가 있어서 세탁기 가격에 차이가 있는 것처럼 설명하면서 세탁용량과 모터 및 세탁조 크기가 상관없다는 말은 모순"이라고 주장했다. 불만제로 측은 "잘못 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오히려 삼성"이라며 "방송은 공정함을 유지했고 정정할 내용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반박했다.
삼성전자는 냉장고와 세탁기 등 자체 품질관리를 강화하는 동시에 잘못 된 정보가 시중에 확산되지 않도록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과거 LG전자는 자사의 전기밥솥 제품에 폭발사고가 연이어 발생하고 회사 이미지가 나빠지자 아예 밥솥 사업을 그만두고 철수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