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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봉산
기울어진 암벽이 중천에 높이 솟아 側壁欹嵒到半天
날다람쥐 건너려도 의지할 게 전혀 없네 蒼鼯欲度絶攀緣
어느 누가 빨간 연지 듬뿍 묻은 붓으로 誰將颯沓臙脂筆
서시의 눈썹 가에 아름답게 찍어놨나 細點西施翠黛邊
―― 다산 정약용, 『단풍을 읊다. 절구(詠紅葉絶句)』
▶ 산행일시 : 2018년 10월 14일(일), 맑음, 미세먼지
▶ 산행인원 : 7명
▶ 산행거리 : GPS 도상 16.5km
▶ 산행시간 : 8시간 32분
▶ 교 통 편 : 경춘선 전철과 승용차 이용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가급적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6 : 54 - 상봉역
07 : 47 - 가평역
08 : 13 ~ 08 : 18 - 경반계곡 경반2교, 산행준비, 산행시작
08 : 57 - 수정봉(水晶峰), 446.9m)
09 : 34 - 447.6m봉
10 : 07 - 우무동고개
10 : 45 - 암벽
11 : 12 - 773.0m봉
11 : 44 - 882.1m봉
12 : 07 ~ 12 : 40 - 칼봉산(△909.5m)
13 : 05 - 회목고개
13 : 40 - 매봉(933.5m)
14 : 38 - 깃대봉(△909.3m)
15 : 25 - 송이봉(801.7m)
15 : 36 - Y자 능선 분기(750m), 왼쪽으로 감
16 : 07 - 임도, 초소, 경반계곡
16 : 50 - 배골, 산행종료
17 : 04 - 가평, 목욕, 저녁
1. 산행지도
2. 산행 고도표
▶ 수정봉(水晶峰), 446.9m)
경춘선 전철 가평역에 도착하여 1번 출구로 나가자 광주 분당에서 자가용 몰고 달려온 산시
조 님이 반긴다. 그간 산시조 님과 적조한 지 무척 오래되었다. 꼽아보니 9년만이다. 2009년
8월 8일 오지산행 제1회 인제 관대리 야영산행 때 같이 갔었다. 그때가 어제인 듯 생생한 것
은 산시조 님이 새로 장만한 텐트와 침낭을 야영지에 곱게 설치해놓고 산행을 하였는데 주릉
에 오르자마자 GPS 트랙을 오독하여 일행과는 정반대 방향으로 진행하여 결국 돌아오지 못
하고 양구 두무리 이장님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했던 아름다운(?) 추억 때문이다.
산행 들머리에 조금이라도 빨리 가고자 택시를 타려고 승강장으로 달려가는 데 누군가 뒤에
서 운전석 차창을 열고 ‘칼봉산 가요!’하고 외친다. 나가시 택시인 줄 알았다. 우리가 칼봉산
을 가려는지 어떻게 알고 부를까 궁금하여 자세히 보니 상고대 님이다. 예고하지 않은 갑작
스런 출현이라 몰라봤다. 생각 밖으로 판이 커졌다. 번번이 그랬듯이 이번에도 나 혼자 가는
산행이 아닐까 했었다.
차가 두 대이니 산행 들머리와 날머리만 미세 조정하여 원점회귀하기로 한다. 칼봉산 자연휴
양림 가기 전 경반천 경반2교가 요처다. 도로 바로 위에 건물부지가 있어 주차하기 좋다. 오
늘 아침 가평은 한강 물줄기 따라 안개가 자욱하다. 경반2교 건너 수정산 오르는 길도 안개
에 묻혔다. 엷은 지능선을 잡는다. 오래전에 벌목하여 참나무가 묘목을 식재한 것처럼 자란
능선이다.
한 피치 오르니 잘 다듬은 인동 장공의 부인과 합장한 무덤이 나오고 그 위로 되게 가파른 사
면이 이어진다. 상고대 님이 선등. 그 뒤를 쌍장 짚은 산시조 님이 날래게 따른다. 이런 데서
는 낙석이 비석(飛石)일 터, 앞사람과 어긋나게 오른다. 아까는 이슬 젖은 풀숲 헤쳐 손이 시
리게 서늘하더니만 이 오르막에서는 지난여름의 비지땀을 쏟는다.
고도 160m를 냅다 올려치고 잠시 잠잠하다. 안개 속에 보이지 않는 상고대 님 불러 가야 할
방향을 확인한다. 햇빛은 숲속 안개를 뚫으려고 분투한다. 공동묘지가 나온다. 역시 잘 다듬
었다. 한 무덤 위에 철모르는 제비꽃이 피었다. 접사하려니 망자에게 무릎 꿇고 엎드려 절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다시 가파른 오르막이다. 고도 150m를 오른다. 암벽 닮은 슬랩이 나오고
이리저리 그 틈새를 비집는다.
능선에 올라서고 말구리 쪽에서 올라온 잘난 길이 앞서간다. 이윽고 수정봉이다. 정상은 헬
기장이다. ‘수정봉’이라는 아무런 표시물이 없다. 이 산 왼쪽 아래에는 경반계곡이, 오른쪽 아
래에는 용추계곡이 있어 그 수정(水晶) 같은 맑은 계류를 빗대어 산 이름을 지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첫 휴식한다. 목이 컬컬하던 참이라 입산주 탁주가 시원하다. 탁주 마실 사람이 스
틸영 님과 나뿐이어서 한 병을 다 비우지 못한다.
3. 수정봉 오르는 중
4. 공동묘지 한 무덤 위에 핀 제비꽃
5. 산부추
6. 단풍나무
7. 일월비비추
8. 단풍나무, 칼봉산은 단풍나무가 참 많은 산이다
▶ 칼봉산(△909.5m)
수정봉 정상을 두른 키 큰 나무숲 사이 2시 방향에 보이는 칼봉산이 연인산으로 착각할 만큼
멀고도 우람하다. 일단 이정표의 우무동고개까지 가는 길은 부드럽다. 숲속 산책로다. 주변
은 가을을 맞느라 분주하다. 어렴풋이 보이는 경반계곡은 짙은 안개가 드리웠다. 조망이 트
이면 가평 쪽에는 운해가 넘실거릴 장관이겠는데 가도 가도 하늘 가린 숲속이다.
가는 걸음에 산시조 님의 근황을 듣는다. 10년 전부터는 유산가(遊山歌)를 읊지 않고 유보
가(遊步歌)를 읊는다고 한다. 산자락 둘레길을 개척하고 걷는다고 한다. 설악산의 경우 180
km에 달하는 둘레길을 개척하여 6일에 걸쳐 완주했다고 한다. 해외에도 눈을 돌려 일본의
‘시코쿠(四國) 오헨로(お遍路)’ 순례길을 완주하였다고 한다. 이 길은 장장 1,400km에 이
른다.
머지않은 날 미국 서해안의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PCT, Pacific Crest Trail, 대략 4,200k
m)’과 스페인의 1,000km가 넘는 ‘(새로운) 산티아고 순례길’을 갈 계획이라고 한다. 괜히
묻고 그 대답을 들어버렸다. 세상 넓은 줄을 모르고 그저 허구한 날 대한민국 오지만을 파는
내 신세가 가련하기 짝이 없다. 갑자기 발걸음이 무거워진다.
잔봉우리 넘다가 그중 우뚝한 447.6m봉을 넘고 흑림인 잣나무숲 위를 지난다. 제법 긴 산초
나무숲 터널을 지나기도 한다. 사방 울창한 숲속이라 우무동고개로 내려서기가 쉽지 않다.
지난주 방태산 아침가리골 잡목 숲속에 갇히던 그 짝이 난다. 상고대 님의 연호가 등대다. 야
트막한 안부인 우무동고개는 임도가 지나는데 인적이 끊긴 지 오래여서 잡목 숲속일 뿐이다.
칼봉산 품에 든다. 우무동고개에서 칼봉산 가는 길도 인적이 뜸하다. 15년전에 나 혼자 왔을
때보다 잡목이 더 우거졌다. 가파르고 울창한 잣나무숲이어서 풀숲은 드물다. 그런 숲속에도
더덕은 있다. 한때 윤더덕 님이 전국 제일로 치던 가평더덕이다. 암벽과 맞닥뜨린다. 달달 떠
느니 오른쪽 사면을 길게 돌아 오른다. 뒤에 오던 스틸영 님은 모처럼 손맛을 볼 기회다 하고
직등하여 앞질러간다.
바위 슬랩을 자주 만난다. 칼봉산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바윗길이다. 왼쪽 사면은 낭떠러지
다. 잡목 헤치고 낭떠러지에 바짝 다가가 조망을 만들어 카메라 앵글 들이댄다. 안개는 스러
졌다. 지나온 능선과 수리봉, 그 너머 불기산이 한 경치한다. 저 앞 봉우리에서 쉬자 하던 걸
음이 자잘한 암봉들을 넘고 넘어 773.0m봉까지 와버렸다.
이제야 길이 풀린다. 바윗길 슬랩에서 벗어나니 단풍이 보이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단풍은
단풍나무다. 멀리서 보고 가까이서 보고, 내려다보고 올려다보고, 순광으로 보고 역광으로
보고, 발걸음이 더디다. 칼봉산은 단풍나무가 참 많은 산이다. 나는 조경수로 단풍나무를 으
뜸으로 친다. 그 이유인즉 우선 잎 모양부터 예쁘다. 봄에 막 돋아난 새잎은 앙증맞은 아가손
이다.
가을에 창공을 배경한 단풍나무 잎을 올려다보면 무수한 별들이다. 또한 단풍나무는 낙엽조
차 화려하다. 낙화인 듯 밟기를 주저하게 된다. 원로에 쌓인 그 낙엽을 비로 쓸 때도 잘 쓸린
다. 느티나무 낙엽의 경우 땅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으면 비로는 여간해서 쓸리지 않을뿐더러
블러워를 들이대면 한참동안 파르르 떨기만 하는데 얼른 방향을 바꿔서 들이대야 날린다.
칼봉산은 그 전위봉인 882.1m봉이 내내 정상인 것처럼 보이다가 882.1m봉에 오르면 비로
소 한 차례 더 내렸다가 올라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882.1m 정상에서 곧장 직진은 절벽
에 막히고 왼쪽으로 약간 돌아서 내려야 한다. 앞의 단풍이 고와 보여 얼른 다가가고자 잰걸
음 하다가 뒤에 놓친 단풍이 있을까 걸음 멈추고 뒤돌아보곤 한다.
칼봉산 정상. 가평군 표준규격의 정상 표지석 앞에 커다란 오석의 표지석을 세웠다. 삼각점
은 ‘일동 430’이다. 조망은 발돋움하여도 키 큰 나무숲이 둘러 있어 별로 좋지 않다. 서북쪽
나뭇가지 사이로 운악산만 살짝 보인다. 칼봉산 정상 옆 갈참나무 그늘에 들어 점심밥 먹는
다. 식후 신마담의 커피를 마시지 않으니 어째 밥을 먹은 것 같지 않다.
9. 가운데는 불기산, 그 뒤는 호명산 연릉
10. 앞 왼쪽 끝은 수정봉과 우리가 올라온 능선, 오른쪽은 수리봉
11. 불기산, 그 앞 왼쪽은 수리봉
12. 송이봉, 그 오른쪽 뒤는 대금산
13. 명지산
14. 단풍나무
15. 단풍나무
▶ 매봉(933.5m), 깃대봉(△909.3m)
칼봉산 정상을 약간 내려 등로 벗어난 되똑한 바위가 있어 전망대다. 연인산과 명지산이 건
너편이다. 눈앞 매봉은 듬직하다. 가파른 내리막길 뚝뚝 떨어진다. 0.8km 내려 바닥 친 안부
는 임도가 지나는 회목고개다. 치성 드리려 그 앞에 제단 놓은 한편 오색 천 두른 노거수가
회목(檜木)이고 그래서 ‘회목고개’라고 하지 않았을까 한다.
잠시 선 채로 가쁜 숨 돌리고 매봉을 오른다. 이만하면 길은 잘 났다. 혹시 끝물일 노루궁뎅
이 버섯이 있을지 몰라 즐비한 거목인 참나무를 일일이 훑어보며 간다마는 역시 빈눈이다.
산시조 님의 보법(步法)이 생소하다. 매번 휴식하고 나서는 선두로 들입다 치고 나가다가도
얼마 가지 않아 주저앉곤 한다. 힘 좀 쓰려면 다리에 쥐가 난다고 한다. 그 덕분에 내가 산다.
회목고개에서 매봉까지 1.2km. 줄곧 오르막이다. 정상이 가까워서는 상당히 가파르다. 그래
도 단숨에 오른다. 빈눈일망정 풀숲 사면을 누비며 올라 전패고개에서 오는 주릉과 만나고
풀숲 우거진 헬기장 지나 매봉 정상이다. 여기도 나무숲에 가려 아무 조망이 없다. 깃대봉 가
는 길. 능선길이 신작로 수준이려니 했다. 잡목과 풀숲을 헤쳐야 하는 오지로 변했다.
능선마루는 대개 날카로운 암릉이라 왼쪽 사면으로 비켜간다. 복창하여 돌부리와 잡목 그루
터기를 인계하며 발로 더듬어 길을 찾는다. 방화선 길인데 오랫동안 다듬지 않아서 이렇게
사나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풀숲 울퉁불퉁한 돌길을 돌고 돌아 봉봉을 넘고 넘는다.
암릉 끝난 능선마루에는 하늘이 트일까 하고 올라가 보면 곧바로 잡목에 갇히고 만다.
어렵게 깃대봉에 오른다. 삼각점은 2등 삼각점이다. 일동 23, 1983 재설. 여기도 조망은 무
망이다. 산행을 시작할 때부터 미심쩍었던 수리봉을 놓아준다. 송이봉에서 가장 빠른 길로
하산하기로 한다. 그래도 하산시간이 빠듯하다. 확실히 내가 많이 삭았다. 15년에 이 길을 혼
자서 갔었다. 그때는 수리봉을 넘었다. 도상 18.3km. 수리봉 근처에서 길을 헤매고도 8시간
27분 걸렸었다.
16. 단풍나무
17. 운악산
18. 칼봉산 정상에서
19. 매봉
20. 생강나무
21. 칼봉산
22. 매봉, 그 오른쪽 뒤는 명지산
▶ 송이봉(801.7m)
송이봉 가는 길. 잡목과 풀숲을 벗어나 한갓진 가을을 간다. 이따금 불문 님의 심미안은 놀랍
다. 넙데데한 등로 주변의 모색인 고즈넉한 나무숲을 보더니 대뜸 시스루(see through)의 풍
경이라고 한다. 내 다시 보니 과연 그러하다. 나뭇가지 사이 젖히고 칼봉산을 들여다본다. 적
상의 고운 모습이다. 완당 김정희가 본 가을 산도 이러했다.
천 폭의 가을 산은 난마준이 아닌가 秋山千幅亂麻皴
내민 골짝 긴 숲은 점염이 새롭구려 陡壑脩林點染新
이로부터 돌 뿌리는 한 자 길이 전혀 없어 從此石根無尺大
저울 눈금 접고 포개 날카롭게 만들었네 錙銖摺疊作嶙峋
준법(皴法)은 산이나 바위 등의 입체감과 양감을 표현하기 위한 일종의 동양적 음영법(陰影
法)인데 그중 난마준(亂麻皴)은 불규칙하게 침식된 산과 바위를 얽힌 마줄기처럼 그리는 동
양화 기법을 말한다.
완만하고 길게 내리다 오르막에 암벽을 만난다. 왼쪽 사면의 우회로를 마다하고 직등한다.
발버둥하여 암반에 올라서고 눈이 시원하게 조망이 탁 트인다. 불기산과 그 뒤 호명산 연릉
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다시 숲속에 묻힌다. 송이봉. 마지막 휴식이다. 배낭 털어 먹
고 마신다. 이제 300m쯤 진행하면 Y자로 능선이 갈리고 우리는 왼쪽으로 내릴 것이다.
줄달음한다. 경반계곡 길에 이르러도 4km나 더 걸어가야 하니 그쪽으로 가는 차가 있다면
히치하여 우리 차를 몰고 오자고 스틸영 님이 자청한다. 히치는 상고대 님보다 자기가 더 유
리하지 않겠느냐는 지극히 당연한 이유를 든다. 인적 희미한 길을 골로 가려다 가파른 사면
을 길게 트래버스 하여 붙든 능선이 이정표가 안내하는 길이다.
임도와 만나고 산굽이 돌아내려 경반계곡 초소가 지키는 비포장도로다. 경반계곡 계류가 볼
만하고 들을만하다. 곳곳이 포말 이는 와폭이고 경반(鏡盤)의 넓고 깊은 소다. 물길을 징검
다리로 자주 건넌다. 이곳이 아직껏 비포장도로인 사정을 알겠다. 도로를 포장해 놓으면 너
도나도 드나들어 경반이 남아날 것 같지 않다.
스틸영 님은 우리의 기대대로 히치에 성공했다. 비포장도로가 끝나는 배골까지 우리 차를 몰
고 왔다. 산 그늘진 경반계곡의 가을을 빠져나간다.
23. 송이봉 가는 길, 눈으로는 시스루의 풍경이었다
24. 단풍나무
25. 불기산
26. 오른쪽 끝이 대금산
27. 생강나무
28. 경반계곡
29. 경반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