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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교회] 성체 성혈 축성 때 하는 절에 대해 알려주세요
감사 기도를 통해 성체와 성혈이 축성되는 지극히 거룩한 때에 성체와 성혈에 경의를 표시합니다. 성체와 성혈에 드리는 절은 무릎절이므로,(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274항) 축성되는 동안 무릎을 꿇습니다.(총지침 43항)
감사 기도에서 성체 성혈이 축성되는 때는 성령 청원부터 성찬 제정문까지 곧 사제가 성작을 들어올릴 때까지입니다. 그러나 여러 양식의 감사 기도마다 축성 말씀 외에는 기도문이 다 달라서, 교우들은 성변화가 언제 이루어지는지 쉽게 알 수 없으므로, “거룩하시도다” 다음에 무릎을 꿇고 마침 영광송 끝에 “아멘” 환호를 외친 후에 일어서는 것이 무난합니다.
부제는 성령 청원에서부터 사제가 성작을 들어올릴 때까지 무릎을 꿇는 것이 보통이지만(총지침 179항) 직무수행을 위해 달리할 수도 있습니다. 사제는 축성의 직무를 수행하기에 무릎을 꿇지 않으며, 교우 중에는 건강이 좋지 않아 장궤할 수 없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직무나 건강의 이유 또는 본당 여건으로 인하여 무릎을 꿇을 수 없는 이들은 이때 서 있으며, 성체와 성혈을 각각 들어올린 후 사제가 ‘무릎 절’을 할 때 ‘깊은 절’을 합니다.(총지침 43항)
한국 교구들에서는 무릎 절 대신 깊은 절을 하므로(총지침 274항) 성체와 성혈을 각각 들어올린 후에는 사제도 깊은 절을 합니다.
[전례력 돋보기] 동물도 축복을 한다고요? - 1월 17일 성 안토니오 아빠스와 동물 축복에 대한 오해
새롭게 시작된 한 해, 새로워진 〈빛〉 잡지와 함께 전례력 돋보기도 새롭게 시작합니다. 1월 17일은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입니다. 성 안토니오 아빠스는 6월 13일에 축일을 지내는 뛰어난 설교가이자 프란치스코 회원이었던 파도바의 안토니오 성인과는 다른 분이며, 모든 수도생활의 선구자셨던 분입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가르침을 좀 더 특별하게, 더욱 철저하게 살려고 하시는 분들이 수도자이고, 그러한 염원을 실천에 옮긴 이들의 역사는 20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51년경 이집트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안토니오는 예수님을 따르려던 부자 청년이 “가진 것을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는 분부에 슬퍼하며 돌아갔다는 복음(마태 19,22 참조) 말씀을 듣고 결심합니다. 그 부자 청년처럼 되지 않겠다고 말이지요.
270년경 부모로부터 받은 유산을 정리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고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가 된 청년 안토니오에게 온갖 유혹과 시련이 찾아왔지만 그의 성덕은 그만큼 단련되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수많은 기적이 퍼져 나갔고, 그의 가르침을 듣거나 그를 따르려는 이들이 급속도로 늘어났습니다. 안토니오는 본격적인 의미에서 수도회는 아닐지라도 은수를 원하는 이들을 받아들였고, 그들의 영적 아버지가 되어 주었습니다. 안토니오를 수도원의 최고 어른인 아빠스로, 또 수도생활의 선구자로 부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 안토니오 아빠스의 상본에는 돼지가 등장합니다. 전설에 의하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한 악마가 성인을 괴롭혔는데, 그중에 한번은 돼지의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합니다. 돼지는 탐욕과 음욕, 더러움 등 인간 영혼 깊숙한 곳의 부정적인 부분을 상징하는 동물로, 성 안토니오 아빠스는 그 악마를 몰아내 돼지를 구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상본에 등장한 돼지는 성인이 악마를 물리친 승리를 상징하며 그 이후 돼지가 성인 곁을 떠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안토니오 성인 곁의 돼지는 ‘악마를 무찌른 승리자 안토니오’에서 ‘돼지를 해방시키고 보호한 안토니오’로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또한 확장되어 성 안토니오 아빠스는 돼지뿐 아니라 모든 동물을 보호하는 동물의 수호자로 여겨지게 되었지요. 이런 이유로 해마다 1월 17일이면 유럽의 여러 지역에서는 반려동물과 가축을 축복하는 전통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역시 자연과 하나되어 하느님을 찬미한 인물로 성인의 축일인 10월 4일에도 동물 축복이 행해지기도 합니다. 어떤 분들은 사람도 아닌 동물을 왜 축복하냐고 의아해할 수도 있지만 동물 축복 예식은 엄연히 축복 예식서(제21장)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가족처럼 소중한 반려동물을 축복해 주고 싶은 분들도 계실 겁니다. 이런 분들을 위해 동물 축복은 사제, 부제뿐 아니라 평신도도 가능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동물을 축복하는 근본 정신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창조물인 동물들이 인간 생활과 깊은 관련을 맺으며, 인간을 위하는 존재라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축복 예식」 721항 참조) 그렇기 때문에 동물 축복은 다른 축복과 마찬가지로 동물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에게 영적 이익이 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동물축복을 통해 동물의 품위가 바뀌는 것으로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축복을 받는다고 동물이 사람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 이전에 사람과 같은 대우를 해 주고 싶어 동물을 축복해 줄 수도 없습니다. 너무나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이지만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사람보다 동물이 더 존중받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람에게 깊이 결합되어 위로와 도움을 주는 존재인 동물에게 하느님의 보호를 빌며 보호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이렇게 동물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으로 균형을 잡는 가운데 올해 성 안토니오 아빠스 축일에는 사랑스러운 동물들에게 하느님의 복을 가득 빌어 주면 어떨까요?
[교회 상식 팩트 체크] (3) 성공회나 정교회에서 성체를 모셔도 될까?
공식적인 성사 교류는 허용되지 않아
성공회와 정교회는 우리 미사처럼, 예배 때마다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모시는 성체성사를 집전합니다. 그렇다면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신자들이 성공회나 정교회에서도 성체를 모실 수 있을까요?
이를테면 성공회 같은 경우에는 어쩐지 성체를 모셔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예배도 미사와 비슷하고 제병도 가톨릭교회처럼 누룩 없는 면병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리적으로 볼 때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빵과 포도주의 축성으로 빵의 온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로, 포도주의 온 실체가 그분의 피의 실체로 변한다”(트리엔트공의회 「성체성사에 관한 교령」)고 가르칩니다.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뀌는 것을 믿고 있는 것이지요. 반면 성공회는 성사적 임재(臨在)를 말합니다. 빵과 포도주가 실제로 바뀐다고 보지는 않지만, 성사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정교회의 경우 가톨릭교회처럼 실체변화를 믿지만, 가톨릭교회와 달리 누룩이 들어간 빵을 성체로 축성합니다. 예수님이 성찬례를 제정한 것이 파스카 축제일에 일어났는지 아닌지에 관한 견해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파스카 축제는 하느님이 이스라엘 민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것을 기념하는 날로, 유다인들은 이날 누룩 없는 빵을 먹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성체성사를 “그리스도를 받아 모시어, 마음을 은총으로 가득 채우고 우리가 미래 영광의 보증을 받는 파스카 잔치”(제2차 바티칸공의회 「전례헌장」 47항)라고 강조합니다. 이집트 탈출 때 어린 양을 바쳤듯이, 인간의 죄를 대신 속죄하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목숨을 바친 예수님을 기억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질문의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가톨릭신자는 성공회와 정교회에서 성체를 모실 수 없습니다. 가톨릭신자들은 가톨릭 성직자에게서만 적법하게 성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교회법 제844조 1항) 다만 성공회와 정교회 신자들과 함께 성체성사를 기억하고 빵을 나누는 일은 가능해 보입니다.
대한성공회의 여러 성당들은 가톨릭신자가 성공회 예배에 참례한 경우 성공회의 성체성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초대하곤 합니다. 대한성공회 교무원 총무국장 나성권(시몬) 신부님은 “공식적인 입장으로 성사 교류는 되지 않지만, 대한성공회는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으신 분들이라면 성공회에서 성체를 모실 수 있도록 환영하는 분위기”라고 전했습니다.
성체를 실제 예수님의 몸으로 믿는 정교회의 경우 예배 중 정교회 신자가 아닌 이는 빵을 나누지는 못합니다. 다만 예배가 끝난 후 성직자가 ‘안디도로’라는 축복 받은 빵을 나눠준다고 하네요. 안디도로는 성체는 아니지만, 축복된 빵으로 경건하게 여깁니다.
한국정교회 박인곤(요한) 사제님은 “안디도로는 성체성혈이라는 큰 선물을 받지 못하는 분들에게 선물 대신 주는 축복된 빵”이라면서 “누구나 안디도로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알기 쉬운 미사 전례] (3) 성당 문을 들어서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은?
존경과 정중함과 기쁨 나타내는 몸가짐 필요
금요일이 되면 할머니는 다리미와 분무기를 준비하시고 주일에 성당에 갈 때 입을 옷을 정성스럽게 다립니다. 그리고 꾸깃꾸깃한 500원짜리 종이돈을 펴고 그 위에 수건을 덮고 분무기로 물을 조금 뿌리고 다렸습니다. 어린 저의 눈에는 꾸깃꾸깃한 종이돈을 펴는 할머니의 모습이 참으로 이상하면서 경이로웠습니다. 할머니는 자신을 주의 깊게 보고 있는 손주를 보시고 “하느님 앞에 가려면 정성껏 준비해야 한다. 몸도 깨끗하게 하고 옷도 단정하게 입고 연보 돈도 미리 잘 준비해야 한단다”라고 말씀하셨지요.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으신 할머니는 하느님 학교의 모범 학생인 것이 분명합니다. 성당에서 신부님이 하신 말씀들을 잘 기억했다가 그대로 실천하는 하느님 학교의 모범 학생!
여러분은 성당 문을 들어서기 전에 어떤 준비를 하시나요? 먼저, 고해성사를 봐야 하는 중죄를 짓지는 않았는지 성찰부터 해야겠지요. 교회는 “중죄(peccatum grave)를 자각하는 이는 먼저 고해성사를 받지 아니하고서는 미사를 거행하지도 주님의 몸을 영하지도 말아야 한다”(교회법 제916조). 여기서 ‘중죄’를 다른 곳에서는 ‘대죄’(peccatum mortale)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트렌토 공의회에서는 “모든 대죄들은 비록 생각의 죄라 하더라도 사람들을 ‘진노의 자식들’(에페 2,3)과 하느님의 원수들이 되게 하기 때문에” 열린 마음으로 겸손하게 고백하여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중죄는 무엇일까요? 저명한 윤리신학자 칼 H. 페쉬케는 「그리스도교 윤리학 제1권 기초도덕신학」에서 “죄스러운 내용이 인간의 실존적 목적과 궁극 목표의 관점에서 볼 때 하느님과 그분의 명예와 존경을 거슬러 심각한 해악을 낳게 할 경우, 국가와 교회와 일반적인 인간 공동체에 심각한 상해를 입힐 경우, 또는 자기 동료들에게 심각하게 현세적이거나 영적인 상해를 입힐 경우에도 중죄가 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중죄 외에도 하느님 앞에 서기에 마음이 불편하다면 고해성사를 보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가 요구하는 준비 중에 영성체를 하기 위해서는 ‘공복재’(ieiunium Eucharisticum)를 하라고 합니다. 3세기부터 영성체 전 금식에 관한 규정이 제정되었고, 1917년 교회법전에 따르면 자정부터 금식하도록 규정했다가 일선 사목자들 요청을 받아들인 비오 12세 교황이 1953년 병자나 저녁 미사 참례자를 위한 예외 규정을 두었고, 순수한 물은 허용했습니다. 1983년 교회법전 제919조는 “영성체 전 적어도 한 시간 동안은 물과 약 외에는 어떤 식음도 삼가야 한다”라고 공복재 시간을 현실적으로 완화했습니다. 영어의 아침 식사인 ‘Breakfast’가 자정부터 금식(fast)하던 공복재를 깨는 행위(breaking)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성사를 받기 위한 적절한 준비로 “신자들은 자신들의 교회가 정한 공복재를 지켜야 한다. 몸가짐(행동, 복장)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손님이 되시는 그 순간에 걸맞은 존경과 정중함과 기쁨을 나타내야 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387항)는 말씀은 하느님 학교의 모범 학생인 할머니를 떠오르게 합니다. 세상의 권력자와 자신이 존경하는 인물을 만나러 갈 때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러 미사에 참례하러 오는 자세와 태도 그리고 마음가짐은 무엇이 다른지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기도하는 교회] 기원미사와 신심미사는 언제 드릴 수 있나요?
전례력은 “전례시기”와 “성인고유”의 두 범주로 구성됩니다. 그러나 교회 일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경우와 여러 필요에 따라, 이 범주를 벗어나, 더 어울리는 전례문으로 미사를 거행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미사에는 예식미사, 기원미사, 신심미사, 위령미사가 있습니다.
이 중에서 예식미사, 기원미사, 신심미사는 “여러 미사”(missae ad diversa)라고 불리는데, “신중하게, 곧 반드시 필요할 때에 드리는 것이 바람직”(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 369항)합니다. 여러 미사는 세 등급으로 나뉘며 그에 따라 드릴 수 있는 날이 달라집니다.
1등급에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1) 단계별 입교, 병자도유, 노자성체, 서품, 혼인 등 모든 예식미사(총지침 372항), (2) 주교회의가 설, 한가위, 6월 25일에 드릴 수 있도록 정한 기원미사(총지침 373항), (3) 중대한 필요가 있거나 사목에 유익한 경우 교구장 주교의 지시나 허락으로 거행하는 기원미사와 신심미사.(총지침 374항) 대축일, 대림 사순 부활시기 주일, 부활팔일축제, 위령의 날, 재의 수요일, 성주간 평일이 아니면 드릴 수 있습니다.
2등급은, 꼭 필요하거나 사목에 유익하고 교우들이 참여하는 경우에 주임신부 또는 집전사제의 판단에 따라 드리는 미사입니다.(총지침 376항) 연중 부활시기 평일, 1월 2일 이후의 성탄시기 평일, 12월 16일까지의 대림시기 평일 그리고 의무기념일에 거행할 수 있습니다.
3등급은, 신자들의 필요와 신심을 위하여 집전사제가 선택하는 기원미사와 신심미사입니다.(총지침 377항) 선택기념일이나 연중시기 평일에 거행할 수 있습니다.
한편, 주님 생애의 신비에 관련된 미사나, 무염시태를 제외한 성모님 생애의 신비에 관련된 미사는 그 거행이 전례력 흐름에 이미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신심미사로 거행할 수 없습니다.(총지침 375항)
[교회 상식 팩트 체크] (2) 세례 때 사용하는 물은 성수가 아니다?
세례수와 성수, 각각의 쓰임새 달라
교회 안에서는 물이 참 많이 쓰입니다. 일단 성당에 들어갈 때 물을 손에 찍어 성호를 긋고, 건물을 비롯해 여러 가지 축복할 때도 물을 뿌리곤 합니다. 무엇보다 신자가 되는 세례성사 때 물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렇듯 교회 안에서 물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는 우리가 세례성사를 통해 물로 죄를 씻고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새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또 우리 일상에서도 더러운 것을 씻어내는 물은 죄를 씻어내는 정화의 의미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득 궁금증이 생깁니다. 우리가 성당에 들어가면서 손끝에 묻히는 물과 세례를 받을 때 사용하는 물은 같은 물일까요, 다른 물일까요? 언뜻 축복 받은 물이면 다 ‘성수’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세례 때의 물은 뭔가 더 특별할 것 같기도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세례성사 때 사용하는 물은 ‘성수’가 아닙니다. 세례성사에서 사용하는 물은 ‘세례수’라고 부릅니다.
교회법은 “세례 수여 때에 사용되는 물은 부득이한 경우 외에는 전례서의 규정대로 축복돼야 한다”(제853조)고 말하는데요. 세례수는 세례성사 혹은 주님 부활 대축일 성야 미사 중에 ‘성령 청원 기도’로 축복합니다. 이를 통해 교회는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령의 능력이 물에 내려 세례 받는 사람들이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게”(요한 3,5) 해 주시기를 하느님께 청합니다.
세례, 즉 성사에서 사용하는 세례수와 달리 성수는 ‘준성사’에 사용됩니다. 준성사란 신자들이 생활하는 다양한 상황에서 사람들에게 유익한 물건 등을 성화하기 위해 제정한 예식입니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1668항) 성수를 축복할 때는 성수를 통해 세례가 우리 안에서 새롭게 되고 우리를 모든 악에서 보호해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 구원의 은총을 받길 바라는 기도를 바칩니다. 성수는 비록 세례성사에 사용되는 물은 아니지만,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죄를 씻고 생명을 얻었으며,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써 함께 부활할 것이라는 세례성사의 의미를 전례 안에서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렇다면 세례 갱신 예식에서는 세례수를 쓰는지, 성수를 쓰는지도 궁금해지는데요. 세례 갱신 예식에서도 세례수가 아닌 ‘성수’를 사용합니다. 성수로 세례를 받은 모든 이들이 세례성사를 기억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요.
성당에 들어가며 성수를 사용할 때마다 바치는 기도에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성수 기도는 “주님, 이 성수로 저의 죄를 씻어 주시고 마귀를 몰아내시며 악의 유혹을 물리쳐 주소서. 아멘”, 혹은 “주님, 이 성수로 세례의 은총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하시어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 아멘”이라고 바칠 수 있는데요. 성수를 찍고 성호를 그을 때마다 성수 기도를 바친다면 성수의 의미를 더 깊이 느낄 수 있겠습니다.
[알기 쉬운 미사 전례] (2) 믿음의 증거인 십자성호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관계 표현하는 행위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서 ‘길들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막여우를 만난 어린 왕자는 함께 놀자고 말합니다. 그러자 여우는 “난 너하고 놀 수 없어. 난 아직 길들여지지 않았거든”이라고 답하지요. 여우는 길들여진다는 것은 ‘관계가 생긴다는 뜻’이라고 가르쳐줍니다. 또한 여우는 길들이는 과정에서 참을성이 필요하고, 하루하루 조금씩 가까워지며, 관계가 생긴 친구를 만나기 전부터 행복한 설렘으로 안달하게 된다고 어린 왕자에게 알려줍니다.
세례를 받은 신앙인은 성부, 성자, 성령과 관계가 생기며 길드는 과정을 걷게 됩니다. 예술이나 스포츠 등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된 유명인을 동경하고 자신의 롤모델로 삼으면서 크는 아이들을 ‘누구 키즈’라고 부릅니다. 신앙은 예수님의 말씀과 행적을 따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예수 키즈’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분이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제물로 바친 십자가를 떠올리며 십자성호를 긋습니다. 자유민주주의 나라인 한국에서는 십자성호가 자신의 신앙을 드러내는 자연스러운 동작이지만, 공산주의 국가이거나 종교적 박해가 심한 지역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행위이기도 합니다.
유아세례에서 부모와 대부모는 세례 받는 아이의 이마에 십자 표시를 해주며,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표식을 해줍니다. 십자 표시는 이렇게 삼위일체 하느님의 사람이라는 뜻도 되고, 십자가를 통한 예수님의 구원에 동참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그리고 악마가 가장 싫어하는 동작이기도 하지요. 구마 예식에서 사용되는 동작과 예식에는 안수, 입김 불기, 성수 뿌림, 그리고 십자 표시가 있으며 구마 예식 지침에서 “구마 사제는 모든 축복과 은총의 샘인 주님의 십자가를 마귀에게 시달리는 신자에게 보여 준다. 그리고 그를 향하여 악마를 물리치는 그리스도의 권능을 가리키는 십자 표시를 한다”(27항)라고 강조합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추기경 시절에 쓰신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에서 십자성호를 정성껏 긋는 것의 중요함을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얼마나 자주 아무 생각 없이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지요? 그 근본적인 의미에서 십자성호는 언제나 세례를 새롭게 하는 것입니다. … 교회는 처음부터 이러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인 자신에게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것, 곧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각 성당 입구에는 성수반이 있어서 신자들이 성수를 찍어 십자 표시를 하면서 “주님, 이 성수로 세례의 은총을 새롭게 하시고 모든 악에서 보호하시어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께 나아가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로 성당에 들어오면서 성수로 십자 표시를 하는 좋은 전통이 사라진 것 같아서 안타깝습니다. 하느님의 사람으로 길들여지는 과정의 첫 단계는 십자성호를 잘하는 것이지요. 그래야 관계가 맺어진 것을 확인한 하느님이 여러분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시지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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