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1일 연중 제7주간 토요일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13-16 그때에 13 사람들이 어린이들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그들을 쓰다듬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자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다. 14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보시고 언짢아하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어린이들이 나에게 오는 것을 막지 말고 그냥 놓아두어라.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이 어린이들과 같은 사람들의 것이다. 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어린이와 같이 하느님의 나라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코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 16 그러고 나서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 주셨다.
천방지축하고 방약무인한 어린아이 같은
나는 어려서는 옛날 얘기를 아주 잘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서 자주 동네 어른들에게 불려가서 옛날 얘기를 해 드리고 떡이나, 과일이나 감자 같은 간식을 많이 얻어먹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얘기를 많이 듣거나 책을 읽거나 새로운 얘기를 만들어야 했습니다. 지금도 옛날 얘기라면 무조건 좋아합니다. 옛날 얘기는 대부분 황당하고 거짓말이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의인화된 우화도 많은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에 버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도 이야기의 원본을 많이 훼손하고, 출처를 애매모호하게 만들어 놓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날은 얘기를 아주 근사하게 꾸며대어 사람들에게 얘기를 하는데 그 원전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어른이 ‘사실은 그게 아니고 이런 것이란다.’하고 바로 잡아 주셨습니다. 그 때 얼마나 무안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직도 그런 황당한 옛날 얘기의 재미에 빠져 있습니다.
{중국의 명철한 사신이 우리나라에 오는데 아무도 그의 명철함에 대적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음을 각오한 사람에게 그 사신을 응접할 일을 맡기려고 지원자를 찾았답니다. 그 때 가난한 떡보가 죽기 전에 떡이나 실컷 먹어보고 죽으려고 작정하고 자원하여 시루 팥떡을 네모반듯하게 썰어서 아주 맛있고 배불리 먹고 압록강으로 갔답니다. 중국 사신은 먼 뱃전에서 우리나라의 응접사(應接使)의 수준을 보려고 먼저 크게 원을 그렸답니다. 이는 ‘천(天)은 원(圓)야라.’라는 것을 가리키는 것인데 곧 ‘하늘은 둥글다.’라는 의미를 아느냐?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응접사는 이렇게 생각했답니다. ‘어! 저 녀석이 어떻게 내가 떡 먹은 것을 알까? 둥근 떡을 먹었느냐고 묻는구나. 아니다. 나는 네모진 떡을 먹었단다.’하고 네모를 표시했습니다. 그러니까 중국 사신은 ‘어라, 저 사람은 [지(地)는 방(方)야라.]라는 것도 알고 있구나. 정말 대단하다. 그러면 삼강(三綱)을 아느냐? 라는 뜻으로 손가락 세 개를 펴 보이자.’ 그러자 이 떡보 응접사는 ‘나는 다섯 개를 먹었다.’고 손가락 다섯 개를 펴 보였고, 증국 사신은 ‘뭐 오륜(五倫)도 알고 있구나, 그러면 마지막 카드로 복희씨를 알고 있느냐?’는 뜻으로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었습니다. 복희씨는 수염이 아주 길었다고 합니다. 떡보 응접사는 곧 ‘맛이 있었느냐?’고 묻는 줄 알고 그래서 ‘배가 부르다.’라는 뜻으로 배가 부른 손짓을 지었다고 압니다. 중국 사신은 ‘아하! 신농씨도 알고 있구나. 승산이 없으니 돌아가자.’해서 그 싸움을 이겼다고 합니다.} 얘기꾼인 우리 아버지께서 해 주신 65년이 넘은 얘기입니다.
요즘 영토의 문제로 시끄럽습니다. 이어도도 그렇고 독도도 그렇습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외교에 뛰어드는 정부도 그렇고, 무조건 힘으로 누르고 억지를 부리는 힘세고, 부자인 나라들도 그렇습니다.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냥 떡보 응접사처럼 천방지축(天方地軸) 대드는 것도 한 방법인 것 같습니다. 천방지축(天方地軸)은 ‘하늘은 네모지고, 땅은 북처럼 생겼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졌다.’고 생각하던 때에 천방지축은 말도 안 되는 큰일 날 일입니다.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아마 중신들은 불순한 사상을 가졌다고 참수를 상소하였을 것이고, 임금은 사형을 시킬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지동설을 주장하였다고 갈릴레오에게 사형을 언도한 교회도 정말 천방지축이었습니다.
천방지축을 국어사전에서는 1. 못난 사람이 종작없이 덤벙이는 일. 2. 너무 급하여 허둥지둥 함부로 날뜀. 이라고 그 뜻을 새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 앞에서는 천방지축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또한 방약무인(傍若無人 : 곁에 아무도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이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무엇을 그렇게 많이 알고 있는 사람처럼 뽐내고 있지만 사실은 천방지축이고, 방약무인이 우리의 모습이고 나의 모습입니다. 원전을 무시하고 내 멋대로 옛날 얘기를 만들어 하다가 무안을 당하는 그런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신앙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고 신앙에 대하여 아는 체 하고, 성경에 대하여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체 하고, 학문에서도 그렇게 살면서 석학인 것처럼 뽐내며 사는 것이 바로 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은 그런 철부지이며 천방지축인 어린 아이들을 사랑하신다고 합니다. 못나고, 종작없이 덤벙대며 달려드는 그 어린아이와 같지 않으면 하늘나라를 차지할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철딱서니 없어서 하느님의 수염을 뽑으려고 달려들고, 조금 안다고 하느님 앞에서 뽐내면서 어리광을 피우며 떼를 쓰는 그런 아이가 너무 좋다고 끌어안아 주시고, 머리에 손을 얹어 주시는 주님의 그 마음을 어찌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정말 천방지축이 되어야 어린아이가 되는 것인가요? 그렇지는 아닐 것입니다. 내 고집을 세워 도저히 하느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내가 철부지 어린아이는 아닐 것입니다. 이제 겸손한 체 하지 말고, 겸손해지고, 순종한 체 하지 말고 순종하며, 믿는 체 하지 말고 확신을 가지고 믿으며, 사랑하는 체 하지 말고, 진실로 사랑하며 정말 어린 아이처럼 아버지의 품에 안겨 행복에 겨워 입이 째지도록 웃고, 너무 좋아서 눈물을 찔찔 흘리는 반푼이 같은 어린아이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두메 꽃처럼 산골짝에 이름 없이 피었지만 언제나 사랑으로 어루만져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느끼고 외롭지 않고 행복한 매일이기를 기도합니다. 주님 저는 언제 철이 날까요? 이처럼 천방지축이어도 정말 좋으십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