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문서 외에는 글을 써 본 적이 없는 내가 글을 써보니
자기 경험을 思惟 하고 깨우쳐 가는 정신적인
성장 과정이 있어야 군더더기가 없는 문장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런데 土地의 작가 박경리는 거의 600명에
이르는 가상의 인물, 게다가 등장하는 인물마다 각자의 敍事가 살아있는
인물의 묘사, 조선 후기 동학혁명에서 일제 강점기에 이르는 근대사까지 무수한 역사적 사건의 引用, 하동의 작은 마을 평사리에서 지리산의 거대한 능선을 지나 멀리 만주 용정의 거대한 평원
까지의 지리적 기술 등 아무리 25년의 창작 기간이 있었다고 해도 이게 가능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하니
작가는 토지를 집필하는 동안 수도승과 마찬가지의 삶을 보내야만 했을 것이 분명하다.
밑 줄 그으며 한 번 더 읽어보려고 작은 딸에게 부탁하여 인터넷에서 2008년 8월 20 일 19 쇄 본을 없는 살림에 150,000원 주고 한 질 샀다.
밖을 나서니 강한 햇볕에 이글이글 끓어오르는
아스팔트 열기까지 더해지면서 숨이 턱 막힌다.
국제신문이 연재하는 '밀양 구만산 등산 안내'
기사 한 장 들고 집을 나섰다.
부산역에서 기차를 타고 밀양역에서 택시로 시외버스터미널로
이동하여 석남사행 버스로 송백 정류장에서 내려 음료수 한 캔
마시며 산에 관한 정보를 대충 들었다.
산내 초교를 지나고 제법 큰 마을을 자나니 사과나무가 길 양편
에 붉고 탱탱한 사과를 주렁주렁 달고 줄지어 서있다.
손을 뻗어 따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참으며 걸었다. 나뭇잎이 울창한 정자나무 아래 亭子에 앉아 담배 한 개비 꺼내 물었다.
여기까지 오는 도중 사람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너무 더운 탓에 시원한 그늘막에서 가족들과 오랜만에 밀렸든 이야기를 하는 모양이다.
양 갈림길이다. 오른쪽 경운기가 다닐만한 오르는 경사길로 가기로 작정했다. 오르다 보니 시멘트 포장길은 곧 끝나고
흙길 옆 텃밭에 서너 물 되어 보이는 고추들이
고추밭을 물 드리고 있고 밭두렁에는 누런 호박이 서너 개 보인다.
텃밭이 끝날 즘 또 양 갈림길이다, 한 길은 계곡물을 건너야 하고 다른 길은 그냥 오르는 산길이다. 산길은 너무 더워 숨이 막힐 것 같아 계곡을 건너기로 했다.
계곡은 멋진데 너덜 길이어서 초입부터 걷기가 녹록지 않다.
걷다 보니 계곡은 깊어지고 다리는 무거워 시야가 확보되는 왼쪽 야트막한 능선을 목표로 산길을 찾아 잡목을 헤치고 한참 오르니 오른쪽이 차츰 허전해 살펴보니 깎아지른 듯 가파른 암벽이 솟기 시작한다.
길은 딱 한사람 지나가는 비탈길이라 발을 헛디뎌 미끄러지면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것이라 앞만 보고 조심스럽게 오르니 물 떨어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바라보니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참으로 장관이었다. 구만 폭포구나 했다
물 떨어지는 소리가 옅어지며 산길은 편안하기 시작했다.
오른쪽에 제법 큰 산들이 조망되니 稜線에 올라선 모양이다. 능선 따라 터벅터벅 걷다 보니 이정표에 억산이라 표시된 쪽에서 등산객 한 명이
오고 있다.
그 사람도 반가웠든 모양이다. 둘이 이정표 아래에 퍼질러 앉아
담배 한 개비 물었다.
울산에 사는데 공휴일이면 새벽에 출발해 석남터널 주차장에 주차하고 운문산, 억산, 구만산으로 해서 송백정류장에서 석남사행 버스로 원점 회기한다고 한다.
나도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걱정했는데 석남터널까지 동행하기로 했다. 석남사는 내가 울산에 근무할 때 자주 왔던 곳이다.
첫댓글 친구의 글은 삶의 지혜가 녹아 있는 훌륭한 글이라 꼭 읽고 있소이다.게다가 지금 이 시대의 얘기까지 곁들이니 더 좋아요.영남알프스에 속한 산들 중 九萬山은 잘 가지 않는데,어려운 곳을 갔었네.2012.6.17일자 구만산 사진 올려요.
6월인데도 구만폭포에 물이 별로라 실망했었는데,,,
손영곤! 반갑다 !
항상 조용한 친구 모습이 사진에 또렷이 보이지 않아 섭섭하다
폭포는 산 비탈길에서 두렵게 바라본 폭포와 똑같네
좋은 산행 사진 58산우회에 아낌없이 올려라
기록이 역사가 되고
그 역사가 우리를 자유롭게 한다.
너에게만 이야기해 주고 싶다.
나는 언제부턴가 산보다는 바다로 가기로 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