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영천시 임고면
포은 정몽주 선생의 " 임고서원 "
탐방일:2024년 05월 04일 나홀로 탐방
탐방 코스:주차장-서원입구-송탑비-용연-조옹대-포은유물관-은행나무-선죽교-서원-충효관-기타일원-
주차장 (원점) 탐방 시간 40분 소요 된다.
네비:경북 영천시 임고면 포은로 447 "임고서원"
" 임고서원(臨皐書院) "
임고서원은
경북 영천시 임고면
양향리에 위치하고 우리나라
대표적인 역사 인물인 포은(圃隱)
정몽주 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조선 명종
(明宗) 8년 (1553년)에 부래산(浮來山)에 창건을
시작하여 이듬해 1554년에 준공하였으며 명종으로부터
사서오경과 많은 위전(位田)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이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선조 36년(1603년) 현 위치에 이
건(移建)하여 재사액(再賜額) 받았으며 고종 8년(1871
년)에 서원철폐령으로 훼철 되었으나 고종 16년(18
79년) 존영각(尊影閣)을 건립하여 영정을 봉안
하였으며 (경북 기념물 제62호)로 지정되어
있다.
*** 한옥으로 지은 임고면 파출소 ***
*** 동방이학지조 송탑비 ***
송탑비의
글씨는 퇴계 선생의
유묵 중에서 집자(集字)한
것이라고 한다.
*** 송탑비 후면 ***
*** 임고서원 이정표 ***
*** 용연(龍淵) ***
*** 조옹대(釣翁臺)와 용연(龍淵) ***
포은(圃隱) 선생은
호수의 물고기를 보며 연비어약을
말씀하셨으며 여현 선생은 임고서원 중건
상량문에서 '조옹이라는 대(臺)가 시냇가에 있는
것은 아마도 은거하신 초지(初志)일 것이다' 라고 하
였으나 후세 사람들은 포은 선생께서 낚시를 즐겼다 하여
조옹대라 부르고 또 선생이 낚은 것은 물고기가 아니라 용(龍)
이라고 하여 조룡대라 부르기도 하였으며 이로 인하여 연못은
용연(龍淵)이라 불렀는데 이번에 복원을 하고 울진 금강송 아
래 자라던 토종 잉어를 분양받아 '금강'이라 이름 지은 뜻은
포은 선생의 시 "호중관어" 의 '모든 것이 팔팔한 고기와
같네' 에서 찾으리랴.
*** 포은 단심로 안내도 ***
*** 포은 단심로 산행 안내도 ***
산행 코스:임고파출소-전망대-이정표-과수원앞(갈림길)-이정표(우측)-묘소입구-일성부원군묘-
이정표-삼거리-산불초소-정자-조옹대-임고파출소 9원점회귀) 거리 7.5km
산행 시간 3시간 소요 된다.
*** 영천 9경 ***
제1경:은해사
제2경:임고서원 제3경:보현산 천문대
제4경:치산관광지 제5경:보현산댐 짚와이어
제6경:운주산 승마 자연휴양림 제7경:영천댐
벚꽃 백리길 제8경:영천 한의마을
제9경:별빛미술마을
*** 포은 유물관 ***
*** 포은 유물관 내부 ***
*** 포은 선생과 임고서원에 대한 정보를 정보 검색대를 통해 알아보고 동판으로
제작된 '선축판'과 '포은선생 화상판'의 스크래치 체험을 할 수 있다 ***
" 포은 정몽주 선생 "
포은 정몽주 선생은
본관이 영일(迎日) 자는 달가(達可)
호는 포은(圃隱)이며 영천시 임고면 우향리에서
운관(云瓘)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성리학이 고려와 조선에
뿌리내리는데 큰 역할을 하여 동방이학의 조종으로 존숭받는 학자로
고려 말 국운이 기울어 가는 고려를 버리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려 한
이성계 정도전 등의 개국세력을 상대로 고려왕조를 지키려다
개성의 선죽교에서 이방원 일파에게 피살된 인물로 후세에
충절의 표상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삼은(三隱)의 한 사람
으로 문집 '포은집'이 남아 있으며 충절의 시조 '단심가
(丹心歌)'가 전해지고 있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죽어
백골이 진토 되어 넑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 있으랴
*** '포은' 선생님 흉상 ***
*** 동방이학의 뿌리 ***
*** 임고서원의 연혁 ***
*** 고려의 쇠망과 포은 선생 . 단심가(丹心歌) ***
*** 소장전적(所藏典籍)의 의미 ***
*** 포은관 ***
*** 조옹대로 올라가는 데크계단 ***
*** 조옹대에서 전망대와 일성부원군묘소 가는길 ***
*** (구) 임고서원과 (신) 임고서원 ***
*** 조옹대에서 바라본 '임고면사무소' 전경 ***
*** 조옹대 팔각정 ***
*** 은행나무 ***
임고서원 은행나무는
(경북 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되어
높이 약 20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가
5.95m에 이르는 나이가 약 500년의 은행나무
로서 생육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노거수로 본래
임고서원이 부래산에 있었을 당시 그 곳에 심어져
있었던 것이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임고서원을
이곳에 다시 지으며 옮겨 심은 것이라고
전해오고 있다.
*** 임고서원 조감도 ***
*** '단심가(丹心歌)' '백로가(白鷺歌)' 표지석 ***
어머니가 지은
"백로가 는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白鷺)야 가지 마라. 성난 까마귀 흰빛을
새우나니. 창랑(滄浪)에 좋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정몽주 어머님이 고려를 위해 일편단심 교육을 시컸기에 조선
3대 왕이 된 이방원이 그당시 아버지인 조선 태조 이성계를 위해
하여가(何如歌)인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 만수산 드렁칡이
얽혀진들 어떠하리 우리도 이같이 얽혀 백 년까지 누리리라" 고려인들
조선인들 백년까지 잘 살자고 하였을때 포은 정몽주의 단심가(丹心歌)
인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 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 넑이라도
있고 없고 임 향한 일편단심이야 가실 줄이있으랴" 죽어서도 고려
임금을 섬기는 마음을 바꾸지 않겠다고 하여 이방원이 보낸
조영규 등에 의하여 선죽교에서 피살되었다.
*** 고목나무 ***
*** 선죽교(善竹橋) ***
선죽교는
포은선생이 피살되었던
장소인 개성의 선죽교를 실측하여
그 규모대로 임고서원 앞에 가설하고
한석봉이 쓴 선죽교 돌비석 또한 탁본하
여 세웠으며 선죽교는 원래 선지교라 불렀
는데 선생이 피살되던 날 밤 다리 옆에서
참대나무가 솟아났다하여 선죽교로
개명하여 부르고 있다.
*** 서원에서 바라본 조옹대 전경 ***
*** 영광루 ***
*** 신도비 ***
*** 홍문당 임고서원 강당 ***
*** 유정문 ***
*** 수성제 ***
*** 함육제 ***
*** 심진각 ***
*** 전사청 ***
*** 문충사 (포은 선생님의 위패를 모시는곳) ***
*** 임고서원 충효 문화 수련원 ***
*** 포은 연수관 ***
*** 마을 건물벽에 그려져 있는 '포토존' ***
*** 맹자의 말씀 ***
" 인(仁)은 사람의 편안한 집이요
의(義)는 사람의 바른 길이며 편안한 집을
비우고 살지 않으며 바른 길을 버리고 행하지
않으니 슬프도다 " 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이는 고금을 막론하고 사람들이 큰 근
본인 인의(仁義)를 버리고 작은 이익
(利益)만을 좇는것을 경계하여
이르는 말이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