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순환 / 박정희
물은 무와 유를 잇는다. 없는 듯하던 것이 물기를 머금어 소생하더니 어느새 물기를 빼앗겨 눈앞에서 사라진다. 존재의 다리인 물은 무에서 유, 유에서 무를 시시때때로 조절하며 세상을 주무른다. 물의 권속에 속하는 동안 그 위력은 가히 절대적이다.
지금껏 숲은 물의 지지를 받았다. 요지부동 못 하는 제자리살이의 운명 앞에 생명수는 그 역할을 외면하지 않았다. 부족한 듯해도 이마저 늘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에 닿는 대로 끌어당겨 색을 입히고 덩치를 키웠다. 다행히도 숲은 커지는 몸집으로 이목을 끌고 일가를 이룰 수 있었다.
물의 시계가 변한다. 지금은 물 빠지는 시간이다. 찬연하던 숲 색은 물의 순환 지도에 따라야 할 것이고 몸집 또한 그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 물은 숲이 소생을 준비하게끔 먼저 난 이파리의 물기를 먼저 거둬들인다. 어김없이 시절을 가름하는 물의 줄기에 따라 숲은 변신해 왔을 터이니, 물의 기운을 감지한 생명체들은 물기를 잠시라도 더 품으려 변색하며 어울림을 찾느라 분주하다. 길을 재촉하는 시간에 숲은 다시 묘책을 찾는다.
항역할 수 없는 기류를 읽은 숲 태가 의연해졌다. 물 빠진 색조차 더 변한다는 것을 감지하였고, 올 것은 오고 만다는 이치를 체득했다. 저마다의 색을 더 모으더라도 어차피 무채색으로 귀결되어야 한다. 피할 길이 없으니 성글어진 햇살마저 끌어모으며 물의 명령에 따른다.
눈앞만 보고 가타부타할 일은 아니다. 생명의 여정엔 남부럽지 않은 색을 연출하며 의기양양하던 봄날도 있었다. 물색으로 세상을 채운 기쁨에 놀라지 않았던가.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에너지 넘치는 계절에는 기고만장하였을 것이고 하늘 높은 줄 모르던 시절엔 서슬 시퍼렇던 맛도 누렸지 않나. 마구 달리던 길을 돌아보며 숨 고르던 시간에는 손에 거머쥔 파노라마도 보았을 거다.
숲의 소리가 잦아든다. 북적대던 생명은 일부 운신을 달리했거나 운명의 수순을 따랐다. 땅 위의 제자리 생물이 앞장서서 웅성대던 때를 정돈하며 몸피를 줄였고 미물들은 숨죽이며 땅속으로 기어들었다. 인제 숲의 군속들은 기도 시간처럼 고요해져야 새날을 맞이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알아차렸다. 생명의 힘이 순환하는 물의 기운 앞에 담담해진다. 무명의 시간에 진입한다.
지금 숲은 수행 중이다. 침묵의 시간 동안 본래의 처지를 상기하고 물처럼 무맛, 무취의 경지를 다다라야 한다. 어떤 향도 어떤 맛도 없는 제로 상태의 원점 회귀가 도착점이다. 말끔히 비워야 새로 채울 수 있다는 사실에 한 겹 더 진중해진다.
물은 군말 없이 숲을 여기까지 끌고 왔다. 스스로 터득하기를 기다리며 물들였던 일은 결국 물 빼는 날을 위한 장치였을까. 색을 더하고 길이를 늘이며 몸집을 부풀려 늠름해 보일 수 있었던 것도 물의 조절작용에 불과했고, 그 와중에 모든 것을 털어내야 하는 때가 있다는 것도 넌지시 예고했을지도 모른다. 숲에게 때를 기다린다는 것은 희망을 쥐고 있다는 것이므로 여기저기서 힘이 돋았을 것이다. 뻗어 나가는 일만이 최선이라며 촉수에 수분을 더하던 역할을 마친 숲은 지금이 홀가분하다.
오래전 나 또한 물의 뜻으로 생명을 얻었다. 물은 빈자리에 물씨를 심었고, 물기를 가꾸며 물색을 부여했다. 물의 부양은 이어졌고 물 빼는 시간이 신호가 되어 물주머니 속을 나와 세상 물 구경을 할 수 있었다. 물은 자신이 만든 지도에 따라 자리를 옮기며 형태를 바꾸기도 하였으니 차츰 물의 잣대에 물들며 덩치를 불리고 힘도 얻었다. 물이 차는 동안 물의 이치를 망각한 채, 세상의 물색에 착색되고 염색되는 일에 익숙해지는 것만이 최선이라 믿었나 보다. 지금은 물의 명령에 따라 탈색되고 각색되더라도 여축이 없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한다.
물의 흐름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너그럽게 채워주는 때가 있었으나 애초의 빛곱던 색은 우중충하게 바래었고 이젠 몸집도 줄었다. 물 빠질 시간을 예측하지 못한 것도 아니면서 대책 없이 무방비 상태로 어물쩍거렸다. 물살을 움켜쥐고 바동거린다고 해서 물기를 유보하거나 내 몫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의 위력에 눌린 채, 산길을 내려선다. 겨울 계곡의 비탈진 물길은 마른 지 오래되었고 주변의 잡풀마저 기력을 잃어 황량한 때, 산허리를 따르던 길바닥에 수를 놓은 듯 물기가 배어있다.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스며든 물이 뜻이 있어 길바닥을 적시고 있건만 나는 그 뜻을 알아듣지 못했다.
물의 움직임을 주시한다. 물기를 허락받아 쥐고 있는 동안이 숲의 시간이고 내 시간일 뿐이다. 물의 이치에 따라온 지금, 높이도 넓이도 중요하지 않은 물길이 보인다. 물의 순환을 체득한 숲처럼 묵은 타성을 떨쳐내고 물줄기를 가늠해야 한다. 물의 길을 짐작하고 물의 위력에 순종해야 하는 시간이다.
시작도 끝도 알 수 없다. 숲 생명체에게도 나에게도 시작은 끝이고 끝은 또 다른 시작이다. 숲 밖에서 보는 눈이 생명의 시작을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자리매김했을 뿐이다. 겨울이 앞장서서 물기를 졸이며 부풀었던 기운을 빼냈기에 다시 환희의 시간을 맞이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