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제국(Empire of Liberty)
1부 -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
2부 - 분열된 집안(A House Divided)
3부 - 백인의 의무(The White Man's Burden)

1887년 미국

조선과 타이완엔
미 대통령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총독 정부가 들어서고

서구 계몽주의로부터 영향받은
지식인들이 주축이되어
신분제 철폐와 토지개혁 등이 이루어진다.

또한
민주주의의 기틀이 될
상원 하원 출범을 위한
최초의 국민투표가 이루어진다.

미 본국에서는
희귀한 천연자원이나
값비싼 교역품 하나 없는 두 곳에서
(심지어 당시 타이완은 밀림으로 뒤덮여있었다.)
얻을 수 있는 것은 조선의 인적자원뿐이었다.

이에 미국은 가장먼저
조선군의 근대화와 함께
군제개편 및 확장에 힘을 쏟는다.

한편
프랑스와 독일의 커피수요량이 급증함에 따라
유럽 시장 진출과
낙후한 중앙아메리카 재건을 위해
커피를 중심으로한 기호재 경제를 구축해나간다.

미국에게 있어서 커피는
보스턴 차사건 이후로 단순한 기호재가 아니라
영국의 차 패권에 맞서는 저항의 상징이기도 했다.

미국이 극동에 영토를 획득함에 따라
태평양 함대의 필요성은 더욱 증대되었으나
대서양과 태평양의 양쪽으로 나뉜 채
두 개의 해군을 운용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부담이었고
군사적으로도 유연한 대응을 힘들게 했다.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운하는
이미 수십년, 아니 수백전부터
니카라과와 파나마 지협을 중심으로 의논되어 왔는데
마침 콜롬비아에서 파나마의 독립 움직임이 포착된 것이다.
미국은 즉시 파나마의 독립보장을 요구했으나
콜롬비아 정부에선 거절하였고

이에 1880년
미국은 파나마 수호를 이유로
콜롬비아에 전쟁을 선포한다.

알프레드 마한의 저서
『해양패권이 역사에 미치는 영향』은
로마제국부터 대영제국에 이르기까지
해양패권을 쥔 자가 곧 역사의 헤게모니를 쥔 다는 점을 역설하였고


이는 미국인들에게 해군증강과
파나마 운하건설에 대한 당위성을 부여하였다.

압도적인 미국의 전력에
콜롬비아는 버티지 못하고

결국 파나마의 독립을 승인한다.
그와 동시에 콜롬비아 정부는
미국의 꼭두각시로 전락한다.

예상대로 종전과 함께
파나마는 연방가입안을 제출하고
의회의 비준과 함께
정식으로 미국의 한 주가 된다.

1891년엔
역사적 영토였다는 모로코인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져
서사하라지역에 추가적인 영토를 얻게 된다.

대부분이 황량한 사막이었지만
어쨌거나 미국으로썬
대서양 함대에 대한 투자도 소홀히 할 수 없었다.

1892년엔
본국의 적극적인 지원에 따라
한반도 전역에 철도망이 들어서고
인프라의 근대화가 시작된다.

또한 한문을 가르치는 서당을 철폐하고
영어수업을 중심으로한 공교육제도가 실시된다.

같은 시기 일본에선
이미 상당한 근대화를 이루었는데

1893년
캐롤라인 제도의 영유권을 두고
미국과 일본은 마찰을 빚게된다.
미국은 그동안 일본을 경제주권이 없는
사실상의 식민지로 여겨왔으나
1. 미국에 반기를 드는 것도 모자라
2. 상품소비국에서 생산국, 즉 경쟁자로 성장하였고
3. 러시아와 손을 잡았기에

미국 정부는 큰 충격을 받고
전쟁불사를 위한 반일여론이 들끓게 된다.
그러나 러시아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던 독일이 개입하면서
태평양 제도에서 미국의 종주권을 인정받게된다.

하지만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기엔
러일동맹은 미국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왔고
이 사건을 계기로 신생강국 독일제국과
독미수호조약을 맺게된다.

그러나 이러한 외교성과를 두고
자본가들은 오히려 반발하였다.
남북전쟁에서 큰돈을 만진 그들은
전쟁이 군수산업발전, 나아가 미국 경제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보고 전쟁여론을 조장한 것이다.
정부로썬 당혹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한편 철도산업은 지속적으로 발전해
1894년엔 999번째 엔진을 갖춘 열차가
뉴욕에서 허드슨만까지
무려 시간당 112마일을 주파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신기록은 산업의 경이로운 발전이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뒤엔 노동자의 땀과 피가 서려있었다.

산업 성장에 따라
자유방임주의 체제에 확신을 가지게 된 정부는
노동자와 기업가의 갈등에 방임의 태도로 일관하였고
승자는 늘 기업가였다.

노동자들은 지속적으로 유입되는 이민자들로 인해
만성적인 저임금에 시달려야했고

돈을 불린 기업가들은
철강기업이 철도업도 흡수하고 운송업까지 모조리 흡수하는 식의
수직적 결합과 독점운영(Monopoly)을 통해
초거대 공룡기업(Trusts)들을 탄생시켰다.

또한 이들은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정부에 영향력을 행사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정치가 그 누구도
뇌물수수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다.
이처럼 겉은 화려하지만
속은 썩어빠진 미국의 상황을

이듬해 히트하는 소설 『허클베리 핀』의 저자이자
훗날 미국 현대문학의 아버지가 되는
마크 트웨인은

'도금 시대(Gilded age)'라 칭했다.

" 미국사회는
썩어빠진 어금니를
금으로 덮은 것과 같다 "

한편 미국 서부에선
아파치족의 추장 제로니모가 항복함에 따라
마지막남은 원주민들의 저항도 모두 말소되었다.
미 본토는 이제 온전히 미국인의 것이였다.

타이완섬에선 원주민이 난동을 부리자
조선과 달리 미개인으로 간주하고
암암리에 대규모 학살을 자행한다.

같은 시기 회원국의 평화와 단합을 목표로하는
올림픽 위원회에 가입을 신청한다.
그들이 말하는 평화란, 백인들만의 평화를 뜻했다.

그리고 11월엔 마침내
파나마 운하의 착공에 들어간다.

85년엔 하층민이 아닌
일부 양심있고 지각있는 상류층에서도
반제국주의연맹(Anti-Imperialism League)을 창설하고
평등을 지향하는 미국의 제국주의적 모순과
독점기업의 폐해, 부패한 정치가들에 대해 경고하고 나섰다.

대표적인 인물이 W.J 브라이언으로
그는 결국 선거에서 패배하였으나
정치계에서 반제국주의세력들(이하 AIL)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물론 일부는 일부일뿐
미국의 폭발적인 산업자본성장은
급기야 본토를 뛰쳐나가
중국의 대규모 철도사업에까지 뛰어들게 된다.
이러한 미국의 확장은
다른 열강에 비해
신사적인 것으로 비추어졌는데


해당 시점이
열강들에 의한 아프리카분할이
거의 완료되는 때였기 때문이다.
이제 지구에 남은 비문명국가는 중국뿐이었다.

1896년
미국은 이같은 외교적 평판을 이용하여
중국예외법을 통과시킨다.
'Open door policy'로 불리우는 이 정책은
식민분할에 있어 중국만큼은 예외로 하고
하나의 거대한 국제경제지구로 삼자는 것이었다.

물론 미국의 속셈은
이미 자신이 동아시아 개발의 주도권을 쥔 상태에서
다른 열강의 군사개입을 막아
독점을 공고히 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므로
차라리 Closed door가 더 적합한 표현이었으나

명분이 명분이었던만큼
열강들도 마지못해 동의하게 된다.
또한 타이완섬 할양으로 악화되었던
중국과의 외교관계는
미국을 수호자로 인식하고
매우 호의적으로 돌아서게 된다.
그리고 1898년

쿠바의 독립전쟁으로부터
미국인 보호를 위해 출항한
USS 메인호가
원인불명의 이유로 침몰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첫댓글 잘보고 갑니다!
잘보고 갑니다
오랜만에 수준높은 연재글 잘 보고갑니다!~
좋은 연대기 감사합니다. 이 연대기는 게임의 흐름대로 실제 역사가 진행되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상하는 재미가 있습니다. 메인호사건을 계기로 미-서 전쟁의 발발, 그 이후 카리브해, 태평양에서의 미국의 확장이 기대됩니다. 앞으로도 좋은 연대기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매번 응원 감사합니다! 시험때문에 연대기 게재가 늦어졌는데 이제 끝났으니 마무리를 향해 달려가보죠!
미서전쟁의 시작.
드디어 메인호 사건이 터지는군요 크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