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이 갔다. 난 가을만 되면 아무리 단풍이 예뻐도 돌아오는 겨울을 두려워하고 그 겨우내 긴 긴시간을 신록을 기다리며 산다.
그만큼 내 생활의 비중은 봄이었다. 나는 가버린 5월을 상심하며 장미꽃 축제 갔다 온 생각을 했다.
장미꽃 축제의 장미꽃은 다른 표현이 없다. 햇살 꽂히는 곳마다 찬란한 빛. 빛. 빛이요 꽃. 꽃. 꽃이요 무궁무진한 색의 세계다.
꽃 한송이 한송이 화려한 빛깔. 오묘한 생김새. 그윽한 향기. 즐기는 사람들의 황홀한 탄식.
쓰나미로 몰려온 해일이 빛의 작용으로 빚어내는 출렁이는 꽃물결. 그 물결 사이 사이에 휩쓸려 사람들이 이리 저리 흐르는 있다.
나는 눈은 부시어 뜰 수가 없고 어질머리로 걸음이 之자로 걷다 좀 떨어진 숲 그늘에 앉아 숨을 고른다. 옆에는 아주 노쇄한 노인이 앉아 혼자 중얼거린다.
참 예뻤지 풋내가 풀풀 나도록 싱싱하고 건강했지 날마다 차에다 가득 가득 싣고 가던 예쁘고도 순한 앳된 청춘들. 그들을 한군데 모아 놓았으면 저런 꽃바다가 됐을꺼야.
난 할머니 무슨 말씀하시냐고 물었지만 할머니는 대답도 안하고 계속 체머리를 흔들면서 혼자말을 계속했다.
참 예뻤지 풋내가 풀풀 나도록 싱싱하고 건강했지 어리고 순박했지.
우리 집 오빠 둘 다 갔지 내 옆 집 아들도 온 동네 어린 청년들 씨가 마를 정도로 다 갔어. 어린 난 무서움에 떨며 보았지. 그리고 그들은 돌아오지 못했어. 그들 덕분에 오늘 내가 살아 있지.
나는 이 이야기를 듣자 아득히 가물가물한 어릴 때의 기억 한 조각으로 슬픔이 엄습해 왔다.
나는 생각했다. 이 나라는 늘 백성과 국토를 지키려는 희생자들의 흘린 피를 먹고 여기까지 왔다고.
그 아름다운 장미꽃들은 나라를 위해 적들과 싸우다 땅에 스며든 피가 수십년 후 줄기 줄기 내뿜어 피워낸 샛빨간 핏빛 열정의 장미꽃이라고. 피어보지도 못한 어린 나이에 간 청춘들의 넋이 얼마나 억울했으면 부모 형제가 얼마나 그리웠으면 이렇게 장미꽃으로 다시 이승을 찾아왔는지.
난 이웃에 할머니 한분이 남편없이 키운 외아들을 전쟁터로 보내고 늙도록 홀로 살면서 아들 대신 장미꽃을 피워 6월이면 그 향기가 온 동네 가득했던 아스라한 기억을 더듬는다.
5월의 초록빛깔을 바탕으로 한 보색 대비로 선명하게 되살아난 장미꽃. 그들의 순수함이 흰 빛 장미꽃으로 그들의 연정이 노란 빛 장미꽃으로 그들의 정열이 핏빛 빨간 장미꽃으로 환생했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이 꽃들을 보니 화사함 뒤에 서글픔이. 찬란함 뒤에 아픔이 서리 서리 한서린 꽃잔치였다는 것을... 6. 1일 보훈의 달 첫날 아침 낭만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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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름다운 장미를 보며
나라를 지키려 목숨 바친
호국선열을 생각하셨군요
그분들의 희생을 마음 깊이
새기며 6월을 맞이합니다
고운글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