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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전도 대상자로 삼으시렵니까(갈 2장 7- 9)
성경본문: 갈라디아 2: 7-9
7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
8 베드로에게 역사하사 그를 할례자의 사도로 삼으신 이가 또한 내게 역사하사 나를 이방인의 사도로 삼으셨느니라
9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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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함없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 울산교회는 이번 가을 공동체 전도 축제를 앞두고 구주 대망 2022년 공동체 전도축제 출범식을 가지면서 동시에 지난주일 주보와 함께 드린 전도대상자 작정카드에 다섯 사람의 이름을 적어서 헌금과 함께 드리는 순서를 가지려고 합니다.
몇 년 전부터 전도대상자였지만 아직 우리 교회에 나오지 못했다면 그분은 여러분의 전도대상자가 될 수 있습니다.
축제에 나와서 결신자 카드를 내었지만 아직 계속해서 출석을 하지 않고 있다면 그 사람을 여러분이 돌볼 전도 대상자로 남아있는 셈입니다.
오늘 저는 <누구를 전도대상자로 삼으시렵니까?>란 제목으로 곧 전도대상자를 확정해야 하는 여러분들을 도와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분을 전도대상자로를 삼을 수 있을까요?
이미 기록해 오기로 부탁했지만 아직 확정을 짓지 못했거나 다섯 명을 채우지 못한 분이라면 설교를 들으면서 마음속에 떠오르는 대로 적어도 좋습니다.
여러분이 첫째, 1 올해 1)구역으로 모시고 와서 사랑을 보여주고, 그리고 2) 예배당으로 모시고 와서 복음을 듣도록 할 분을 떠올려보십시오. 사람은 아무도 홀로 섬처럼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난 설이나, 이번 추석에 고향을 찾는 것도 거기에 우리에게 소중한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대개 고향에는 부모님이나 친척(親戚)들이 있습니다.
또 결혼으로 맺어진 인척(姻戚)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 관계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리고 다시 내일부터 나가는 직장에는 직장 동료들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일가친척, 초, 중, 고, 대학 동창생들, 자주 만나는 동네 사람들, 동호회나 계중 사람들 등을 살피면 우리는 엄청 많은 전도대상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평균 한 사람이 살아가며 관계를 맺는 사람의 수는 200명에서 300명이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서 여러분에게 소중하고, 또 울산에 살고 있는 사람을 중심으로 그리고 여러분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을 우선해서 다섯 명을 전도대상자로 정하는 일입니다. 그 다섯 명은 여러분을 통해서 선택받은 사람입니다.
누구를 여러분은 구주 대망 2022년 가을 공동체 전도축제에 초대하면 좋을까요?
먼저 마음속에 한 사람 한 사람을 떠올려 보시고, 주위를 사랑의 눈길로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는 분이 꼭 있을 것입니다.
가족 및 친인척 가운데서 울산에 살고 있는 분을 먼저 살펴보십시오.
조부모, 부모, 남편, 아내, 자녀 형제간이 있지 않습니까?
본가 식구, 처가 식구, 시가식구, 외가 식구, 사돈댁 식구, 고모, 이모댁 식구들, 생각해 보면 엄청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웃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를 들어 살면 주인집이 있을 것이고, 세를 주면 세든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앞집 사람, 옆집 사람, 뒷집 사람, 통반장 댁, 지역 유지 가운데 여러분이 접근하기 좋은 사람들을 골라보십시오.
반상회 회원도 좋고 배달원도 괜찮습니다. 아이들 친구 부모들도 좋습니다.
여러분 동네에 생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세탁소, 부동산, 슈퍼, 관리사무소, 미장원, 이발소, 목욕탕에서 만나는 분들이나 아니면 경로당에도 쉽게 만날 수 있는 분들도 있습니다.
거기는 시간이 여유로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동사무소, 파출소, 병원, 은행, 학교 등에도 사람들은 있습니다.
친구, 동창생, 선후배, 동향사람, 올해 좀 챙기겠다는 소원이 듭니까?
전번에 작정하고 오시지 않은 분들, 구역원 가족들도 있습니다.
함께 식사를 하거나 숙직을 하는 직장동료들도 있습니다.
같은 근무 조에 편성돼 야근을 같이 하기도 하고 출장도 같이 가는 동료들도 있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태어나면서부터 여러분과 관계를 맺도록 하신 모든 분은 여러분의 전도대상자가 될 수 있습니다.
결혼이라는 사건을 통해서도 관계를 맺게 되는 많은 사람들, 직장이라는 장에서 만나게 되는 사람들 모두 다 전도대상자가 될 수 있습니다.
날마다 삶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은 여러분의 전도대상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를 전도대상자로 삼을 것인지 생각을 해보아야 합니다.
그들이 누구인지에 따라서 효과적인 방법을 세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이번 올림픽 경기에서 활을 쏘는 것을 보신 적이 있습니까?
활 쏘는 사람들이 결코 아무데나 화살을 날리지는 않습니다.
과녁을 보고 그 과녁의 중심을 향해서 화살을 날리는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은 전도를 할 때 아무 데나 화살을 쏘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인도하면 그가 바로 목표로 했던 대상인 것처럼 기뻐합니다.
우리의 활동에는 계획이나 전략이 거의 없는 실정입니다.
즉 우리는 어느 특정한 전도대상을 목표로 하지 않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어쩌다 누군가를 만나게 되어서 복음을 전하게 되면 마치 그 사람이 우리가 기도해 왔던 사람인 것처럼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말하자면 활을 쏘아놓고 먼저 어디에 꽂히는지 봐가지고 후에 동그란 과녁을 그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백발백중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무성의한 전도 방법일 것입니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일은 아주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에 중대한 과제를 그렇게 되는대로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전도대상자를 정하는 것임이 성경적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자신의 전도 대상자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도리어 그들은 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은 것이,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은 것을 보았고”라고 말합니다.
그의 전도의 대상은 무할례자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그의 전도의 대상은 비할례자입니다.
이방인이라고 하는 유대인 바깥에 사람들을 그는 과녁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 역시 그의 사역을 보면 전도의 대상자를 정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가나안 여자 한 사람이 귀신들린 딸 때문에 찾아와서 예수님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을 때에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은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마 15:24) 답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신 것이 아니라고 답하고 있는 것 보면 그의 마음속에 이스라엘 집에 잃어버린 양에 대한 관심이 남 달랐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비해서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전도에 대해서 순진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을 전도하려고 합니까?”하면 “누구든 지요”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물론 “아무나 오게”라고 초대하는 것이 복음이며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2 효과적인 전도를 하려면 전도대상이 분명해야 합니다.
여러분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또 우리 교회가 가장 잘 전도할 수 있는 계층은 어떤 계층이었습니까?
물론 우리 교회가 모든 사람을 전도할 수 있지만 어떤 특정한 사람들을 잘 전도할 수는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사람이 많다보니 좀 복잡 다양한 구성원을 가지고 있을지 모르지요.
그러나 우리 구역은 구성원들이 어떤 사람들인가?
그러면 어떤 사람들에게 접근하는 것이 쉬울 것인지 한 번 여러분 생각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전해야 할 것인지를 말해주지만, 우리의 복음을 받는 사람은 더 구체적으로 언제, 어디서, 어떻게 그것을 전해야 할지를 결정하는 요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제가 똑같은 하나님 말씀을 가지고 서지만 누구를 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어떻게 전해야 할지는 방법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도를 위해서 특정한 종류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정하는 것은 성경적입니다.
예수께서 공공연하게 자신은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들”에게 보냄을 받았다고 밝히셨습니다. 그것은 불공평하거나 편견 때문이 아닙니다. 인종적인 편견 때문에 가나안 여인 당신을 도와줄 수 없다는 입장은 아닐 것입니다. 사역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함입니다. 결코 배타적이 되고자 하신 것은 아닙니다.
오늘 본문으로 읽은 갈라디아서는 분명하게 바울은 이방인을 전도의 대상으로 베드로는 유대인을 전도의 대상으로 삼아서 사역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에게 할례자의 사역자로 세우신 그 하나님께서 자기를 무할례자의 전도자로 삼으셨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사복음서가 있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같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지만 독자들이 달랐기에 전달방식이 달라진 것입니다.
전도 대상자를 고려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각각의 전도 대상자들에게 적합한 방법으로 전도하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낚시를 잘하는 분들로부터도 배울 것이 하나 있습니다.
고기가 물든지 말든지 나는 내가 좋아하는 미끼를 쓴다고 결심하는 낚시꾼은 없습니다.
언제든지 고기들이 좋아하는 미끼를 준비한다는 것이 전문 낚시꾼의 입장입니다.
사람 낚는 낚시꾼인 우린 너무 투박스럽게 접근하는 것 같아요.
물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라는 입장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누구를 전도대상자로 정할 것인지, 그리고 그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접근 할 것인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 번째로 3. 여러분의 전도 대상자에 대해서 공부를 좀 해야 합니다.
성경 공부를 할 때는 본문의 배경을 살핍니다.
그래야 본문을 바로 해석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진리를 전달하기 위해서 그들이 속한,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사회에 속해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 전도를 받는 사람들의 배경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가 복음을 전할 사람들을 알아볼 수 있을까요?
먼저 우리는 그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주님은 전 세계를 복음화하려는 계획을 처음부터 가지고 계셨습니다.
온 세상에 미칠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천사들이 그날 밤 전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말씀 하셨을 때는 분명히 땅 끝을 향한 주님의 선교의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 유다, 사마리아, 땅 끝이라고 하는 이 범주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복음은 먼저 예루살렘에 있는 유대인들에게 전해져야 하고 그 후에 온 유대로, 그리고 사마리아로 마침내는 땅 끝까지 퍼져 나갔습니다.
울산은 어디서든 울산교회를 찾아 올 수 있는 거리에 있습니다.
승용차로 15분에서 30분이면 어디서든 우리 교회까지 도착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도착한 다음 주차할 자리를 찾는 데에 동일한 시간이 걸린다는 것입니다.
어떤 주일에는 상당한 차량들이 돌아갔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돌아가면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그들 가운데 아주 마음이 착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것 같아요.
내가 다음주일에는 늦지 말아야지. 빨리 가서 쉽게 주차를 할 수 있는 데를 찾아야지 그런 생각을 했을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요?
‘교회가 주차장 마련 안하면 나는 이 교회 안 와.’ 아마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겠습니까? 집에서 교회까지 오는 시간보다 여기 와서 주차할 장소 찾는다고 이렇게 고생해가지고야 누가 울산교회 다니고 싶은 마음이 들겠습니까?
울산교회처럼 큰 교회는 울산광역시 전역을 전도할 대상지로 삼는 것이 옳습니다.
다른 교회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프로그램으로 인해 우리 교회까지 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예컨대 아기학교나 꿈다학교나 백합부가 있기 때문에 우리 울산교회에 다니는 분들도 있습니다.
또 우리 교회가 하는 사역 때문에 울산교회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웃을 구체적으로 돌아보는 밝은 미래 복지재단 때문에 울산교회 교인이 되기로 할 수도 있습니다.
다음으로 우리는 전도대상을 인구 분포별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울산에 사느냐도 알아야 하지만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살고 있는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각 나이별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광역시에는 혹은 중구에는 혹은 복산동 살고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울산은 다른 도시에 비해서 젊은 도시라고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역에 따라서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있는 지역이 있고 또 연세가 든 분들이 많이 사는 지역도 있을 것입니다.
젊은 사람들과 은퇴한 사람들이 가지는 심리적인 문제는 서로 다릅니다.
청년들은 내세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지만 노인들은 관심이 있습니다.
청년들은 지금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 관심을 갖지만 노인들은 언제 지상 삶이 끝날지 모르기에 영원을 준비하는 일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저는 우리 교회가 울산 사회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집단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우리 공동체 담당교역자나 교구장은 그 지역에 대한 전문가가 되기를 아직도 소원하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공동체를 담당한 교역자들이 그 지역에 대한 최고 전문가들이 되기를 여전히 바라고 있습니다.
구역장들은 자기가 사는 아파트나 통이나 반에 대해서 아파트 소장이나 통장이나 반장보다 더 소상히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야 여러분이 누구에게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지 그것이 결정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전도해서 교회가 부흥되는 곳들을 찾아서 간증을 들어보면 한 지역을 그 교회 구역원들이 다 파악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야 이사 들고 나는 것, 생일까지도 다 챙길 수 있습니다.
그 정도 되어야 여러분이 복음 전할 수 있는 문이 열리는 겁니다.
금요일 날 그냥 구역모임 모여서 우리끼리 예배드리고 헤어지면 그들만의 잔치로써 동네 사람들은 생각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눈을 돌려서 관심을 가져야만 합니다.
지역 사회를 인구 분포별로도 알아야 하지만 그 지역의 문화를 아는 것은 더 중요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무엇을 두려워하고 어떤 일에 관심을 가지며 어떤 상처를 가지고 있는지도 알아보십시오.
그들의 생각을 받아드릴 이유는 없지만 그것을 이해해 주어야 복음을 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더욱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전도에 실패하는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사람을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악보를 잘 보지 못하는 사람이 찬양대에 앉아가지고 좋은 찬양이 나오겠습니까?
전도할 사람에 대해서 모르는 것은 색맹(色盲)이 아니고 인맹(人盲)입니다.
사람을 모르고 전도를 하려고 들어서는 안 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전도 대상자들을 알아갈 수 있죠?
만나서 이야기 해 봐야 됩니다.
만나서 이야기 하는 것만큼 좋은 방법은 세상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대부분 한국말 할 수 있죠? 그렇죠?
여러분은 이웃의 한국 사람하고 이야기하는 것 어렵지는 않지 않습니다.
전도에 실패하는 주요 원인은 우리의 전도를 받는 사람들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부디 처음부터 말하려고 하지 말고, 먼저 그들의 말을 들어주십시오.
만나주시고. 그들을 이해하려고 귀를 먼저 사용을 하십시오.
만나기가 무섭게 입을 사용하지 말고 여러분의 귀를 먼저 사용하십시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약 1:19)고 성경은 명합니다.
부디 먼저 들어주십시오. 그들이 어떤 고민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들어주시면 됩니다.
14년 전 몇 교회가 함께 비용부담을 해서 울산지역을 좀 살펴보았습니다.
불신자들의 교회에 대한 이미지를 물어보았습니다.
당신 교회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하고 물었더니 "그저 그래요" 하는 사람들이, 보통이라고 답한 사람들이 60%였습니다.
그러나 긍정적이거나 매우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진 사람도 30%나 되었어요.
물론 교회, 나는 꿈에도 가기 싫어요. 하는 사람도 13%나 있었지만 말이죠.
우리 울산광역시의 기독교인의 비율은 현재 10% 정도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교회에 다니는 사람보다 훨씬 많은 30%의 사람들이 기독교에 대해서 호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 그 사람들에게 복음 전할 수 있는 문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준비가 된, 토양이 준비된, 마음 밭이 씨를 뿌리면 되도록 되어 있는 곳이 30%입니다.
그러면 60% 되는 사람들한테는 어떻게 하면 좋죠?
어쩌면 듣기 좋으라고 교회에 대한 호감도가 보통이라고 답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난 뭐 관심 없습니다.”라고 답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나 교회 없어도 얼마든지 사는데 지장 없습니다.”라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식으로 접근해야 될 것인지 전략이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현재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은 사람들 중에 과거에 전혀 다녀보지 않은 사람들과 과거에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들을 비교를 해 보니까 4:6으로 가본 사람들이 울산에는 오히려 많았습니다.
교회에 지금 안 다니는 사람들 중에서 교회에 가 본 사람들이 열 명 중에 여섯 명이라는 말입니다.
한 번도 안 가본 사람들은 네 명입니다.
순수한 이방인들은 아직도 네 명이나 있습니다.
그러나 열 명중에 여섯 명은 교회를 한 번씩 가봤어요. 그런데 지금은 안다니고 있습니다. 그럼 어떤 생각이 듭니까?
들어오도록 하는 일도 우리가 잘 해야 되겠지만, 앞문도 활짝 열어야 되지만, 문제는 뒷문을 잘 닫아야 합니다.
뒷문을 잘 닫기만 하면 많은 사람들을 우리가 도와 줄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까 예수 믿다가 다른 종교로 넘어가는 사람들이 많아진다고 신문에서 가끔 통계가 발표되죠? 울산도 그런 지역 중에 하나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는 지역의 영적인 형편을 알아야 합니다.
어느 선교단체처럼 영적지도를 그리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복음을 전할 지역의 영적 상태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불신자라고 해서 다 같은 영적상태에 있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우리 울산 사람들의 45%는 점쟁이 집에 가본 경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심지어는 교회 다니다가도 다니기 그만두고 점쟁이 집에 또 간 사람들도 상당히 나왔습니다.
점친다는 것은 우리사회에 아주 깊이 뿌리박힌 습성인 것 같습니다.
특별히 음력 설 되면 한번 장난삼아라도 한번 해보자 이런 입장인 것 같아요.
그리고 심심찮게 점을 보러가는 사람들도 11%나 울산에 살고 있습니다.
조상 제사에 대해서는 75%나 되는 사람들이, 네 명중 세 명은 조상 제사 ‘반드시 지내야 되든지’, ‘지내야 된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것 지낼 필요가 없다’고 답한 사람들은 울산 시민들의 8%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울산교회는 반드시 울산광역시 백만 시민 모두에게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합니다. 그 복이 올해 도달할 전도 대상자를 오늘 기입해서 제출하십시오. 여러분이 기억하고 기도하며 돌볼 분들, 달리 말하면 울산교회의 예비 신자입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떠오른 사람들 가운데 다섯 명의 전도대상자를 빈칸에 기록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나의 전도대상자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 수고를 합시다. 시간과 진지한 고민을 하면 더 효율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에 대해서 더 잘 알수록 그 사람과 쉽게 대화를 나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심을 가지고 누가 하나님의 복 받을 만한 사람인지 한번 살펴보십시오.
울산에 살고 여러분이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 다섯 명 정하는 것입니다.
또 대상을 정하는 것 그것이 성경적인 방법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이 공사역 대부분을 이스라엘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바울은 이방인에게로, 베드로는 유대인에게로 그 사역의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꼭 오늘부터 전도 대상자에 대해서 공부하십시오.
사는 집 형편은 어떤 지부터 살펴야 되겠지요?
그 집은 어떤 가정인지, 가정마다 다 문화가 다릅니다.
영적인 형편은 어떠한지 관심을 가지고 살펴봐야 합니다.
올해는 반드시 전도대상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 좀 더 세심히 접근해야 합니다.
올 가을에는 목표를 바로 설정하고 정 조준해서 활을 쏘길 바랍니다. 대상에 대한 연구가 없이 전도의 수고가 제대로 결실하기 어렵습니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실천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는 이번 가을이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