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17일 [동양일보] 신인문학상 시 당선작
파 수 병
- 박 영 석 (문경시 신기동)
누군가 어둠 속에서
'어둠'이라고 중얼거린다
어둠은 숨죽인 철조망 아래에서
성큼 더 깊어지고
철망에 찢긴 바람소리만 귓전에 맹렬히 펄럭인다
'매복은 전술이야'
누군가 어둠 속에서
또 한번 '어둠'이라고 신음한다.
완고한 어둠의 절벽 앞에서
우리의 의식은 시력을 읽고 절망한다
결박당한 시야에는 불안한 밤들이 술렁이고
돌아오지 않는 자의 기다림에 귀 기울인다
군데군데 사람 키만큼 자란 선인장들의
맹렬한 가시에 달빛을 잘라 내린다
'방심은 죽음이야'
눈을 치켜 뜨고 어둠 속을 노린다
박제 당한 짐승의 분노처럼 이글거리는 어둠의 큰 눈을 겨냥한다
어디쯤일까 화약 냄새 저 편
혼미한 의식의 저 내면을 가르며
헬기가 날아오른다
죽음과 긴장한 기침소리
가득 싣고 떠오르던 '시누크'의 엔진소리
프로펠러에 감겨 하늘 가득 날아오르던 모래바람
몽롱한 의식은 바람 속에 잠이 들고
고향을 꿈꾼다.
깨여라! 파수병이여
헛된 골고다의 빈 무덤 지키는 파수병처럼
정글도에 목이 꺾인 열대우림의 나무들
가시를 세운다
불타 오르던 야전병원 그 싱싱한 소독약 냄새를
기억하라, 발가락서부터 죽어가던
우리의 젊음이여
거부당한 욕정은 순한 노예처럼 절망한다
하늘 한 자락 펴고 누우면 돌아갈 고향이
꿈처럼 내려올까
설날 사내아이들 연처럼 떠오를까
방황하는 우리의 젊음이 떠나간다
절망에 익숙한 발바닥 드러내며
입은 옷 채 떠나보내야지
연기 오르던 작전회의실 그 뒤편
광장에 누워 진혼곡에 잠든 젊음이여
스물 여섯 해 기억 속으로 참담하게
여드레 달빛이 스러진다,
죽음을 기억하지 못한다,
비밀을 벗겨내듯 숨어있던 별들이 뜬다
깜깜한 하늘에서 드러나는 별 하나, 별 둘,
'전쟁도 연극이야'
누군가 중얼거리는 허무의 추억 속으로
'알퐁스 도데'의 별이 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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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영석 시인
△ 1948년 경북 봉화 출생
△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중퇴
△ 철도청 사유철도 기관사로 근무 (쌍용양회 문경공장)
△ 주소 경북 문경시 신기동 쌍용아파트 1동 1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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