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의 삶을 살라(고후 5장14-15)
성경본문: 고린도후서 5:14-15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한 주간 동안 특별기도회, 정사예배, 오늘 새벽 부활절 특별모임 등 모두들 바빴습니다.
하지만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고 감사하는 주일 예배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 모두에게 부활의 생명이 넘치길 바랍니다.
하긴 거듭남, 부활, 이런 말은 본래는 기독교적인 단어인데, 지금은 그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세상에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부활의 삶을 살라고 말해도 사람들은 각자가 좋을 대로 알아듣기가 쉽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바로 전날 밤에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얼마 안 있어 나는 세상을 떠나겠지만 너희는 나를 다시 보게 될 것이다.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날 것이기 때문이다.”(요14:19, 현대어성경)
“얼마 안 있어 나는 세상을 떠나겠지만”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수난도 알고 십자가 죽음도 알고 부활도 다 아니까 우리 듣기엔 아무런 어려움이 없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나 생각해보십시오!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아직 수난 당하지 않았고, 아직 십자가에서 못 박히지 않았고, 죽은 지 사흘 만에 살아날 일은 더더욱 미래의 일이기에 말을 해도 못 알아듣는 게 당연합니다.
사람들은 편견이 아주 강합니다.
그래서 무슨 말을 들어도 자기가 허용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선 이해를 하는데 들은 내용이 자기 생각을 초월하면 이해를 못합니다. 그래서 어렵다,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제자들로서는 지금 살아있는데 “너희도 살아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니까 알아듣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이 말은 부활에 관한 얘기입니다.
<부활절>은 살아나는 것에 관한 소식입니다.
부활로 말미암아 주님은 그 동안 자기가 누구라고 누누이 말해 온 것을 입증하는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이다. 사람들이 나를 모욕하고 침 뱉고 조롱하고 십자가에서 못 박아 죽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장사된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다시 살아나서 내가 하나님의 아들임을 증명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날, 제자들은 무슨 말을 하시는지 알아듣지를 못했던 겁니다.
주님은 다시 살아나셔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입증하셨습니다.
신자든지 불신자든지 간에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을 믿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달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정말 잘 알지 못하는 바는 부활의 두 번째 부분입니다.
그것은 주님의 부활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해서 죽은 것은,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고,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5:14하-15)
좀 더 의미를 살려서 번역하면 이렇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을 자기 죽음에 포함시킨 것은 모든 사람을 그의 생명에 포함시키려 함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면 훨씬 더 나은 삶, 부활의 삶이란 무엇입니까? 세상에는 괜찮은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럴 듯한 삶을 살고 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면 그렇게 자부할 수 있을까요?
좋은 집을 가지고 좋은 차를 몰면서, 좋은 직장을 가지고 건강하게 오순도순 살아가는 식구들이 있으면 그럴듯한 삶을 산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면 괜찮은 삶이요 그럴 듯한 삶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약 그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괜찮은 삶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이 있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우리가 아기일 때는 모유를 먹다가 이유식을 먹습니다.
그러다가 좀 더 자라면 군것질도 배웁니다.
하지만 어른이 되면 더 이상 그런 음식에 집착하지 않습니다.
더 나은 음식을 접하고 나면, 어린 시절 먹던 이유식이나 군것질 하던 과자 부스러기 등을 찾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더 나은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이곳에 초대하신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럴듯한 삶보다 훨씬 더 나은 부활의 생명으로 사는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보기도 그럴 듯하고 느낌도 좋고 가진 것도 좋아 보일 때 우리는 그런 것들을 부러워하곤 합니다.
하지만 직접 그 삶에 들어가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그럴듯하고 괜찮아 보이는 삶의 이면에는 지치고 공허하고 얽매임이 자리합니다.
그런 사람들을 향해서 주님께서 오늘 말씀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더 나은 삶은 무엇일까요?
부활하신 주님께서 주시는 더 나은 삶은 의미로 채워진 삶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큰 비극은 죽음이 아닙니다. 죽지 못해서 사는 삶입니다. 삶의 목적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의미 없이 사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여기 땅위에 있는지를 모르고 사는 것입니다.
불행히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목적을 알지 못하고 살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 땅에서 살게 하시는지 알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그럴듯한 삶은 대안이 아닙니다.
보기 좋고 느낌 좋은 것들을 가졌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여러분을 행복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돈 잘 버는 연예인들이야 말로 가장 행복한 사람들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만큼 이혼율이 높고 행복지수가 낮은 그룹도 없습니다.
많이 소유하는 것이 의미 있는 삶이 아닙니다.
바쁜 일정이 곧 충만한 삶이 될 수 없습니다.
충만한 삶이란 의미로 가득한 삶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의미를 추구합니다.
보다 많이 갖는 것이 우리 삶에 의미를 더하는 것은 아닙니다.
좀 더 갖고 싶은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성취감이 생의 의미를 주는 것이 아닙니다.
언제나 더 성취할 것들은 남아 있습니다.
더러는 취미생활을 통해서, 더러는 스포츠나 여행을 통해서, 또 다른 사람들은 사귐을 통해서, 아니면 성관계를 통해서, 하다못해 음식을 통해서 의미를 추구합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한두 번 계속하면 의미를 상실합니다.
지속적인, 영원한 의미가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어디서 그것을 얻을 수 있을까요?
오직 여러분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부터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골 3:4)라는 구절을 어떤 번역은 이렇게 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의 삶에 의미를 주십니다.”(골3:4a, CEV)
“여러분의 삶에 의미를 주시는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여러분도 영광중에 나타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만들지 아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드셨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만들기를 원치 않았다고 하면 여러분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목적이 있어서 여러분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 비로소 삶은 의미를 찾게 됩니다.
그가 여러분을 세상에 보내신 이유를 깨닫기까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부활의 삶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베드로의 찬양을 들어보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께 모든 찬양을 드립시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거듭나는 특권을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 하나님과 한 가족이 되어 영원한 희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벧전1:3)
우리에게 주어진 놀라운 특권은 부활하신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선물입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는 거듭나는 특권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한 가족이 되어서 영원한 희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삶은 내 것을 조금 더 개선시킨 것이 아닙니다.
신상품이라고 하는 것을 잘 살펴보면 어떤 것은 포장만 달리한 것들도 많이 나오더라고요. 부활의 삶이란 그런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심을 받았기에 우리는 완전히 새로운 삶을 수여받았습니다. 하늘에서 누릴, 미래를 포함하여 앞으로 살아갈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미래는 바로 지금 여기서 펼쳐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는 과거를 돌아보면 어리석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한 기억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모두 지워버리고 다시 시도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을 것입니다.
다시 사신 예수님을 믿으면 이제 모든 것을 새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괜찮은 삶이 아니라 훨씬 더 나은 삶을 향해 출발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보증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완전히 새로운 생명이 주어졌습니다.
선물로 주어진 것이지 우리가 획득한 것이 아닙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만들어졌습니다.
인격적인 교제를 갖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아시고 사랑하시며, 여러분도 하나님 그 분을 알고 사랑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다른 종교는 모르지만 기독교는 정신적 안정을 미끼로 현금을 받는 서비스업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돈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면 교회에는 왜 이렇게 많은 헌금 봉투가 있냐구요?
우리가 얻은 삶에 대해서 그것을 전달하는데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삶 자체라도 드려서 우리는 전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얻어서 누리는 이 삶에 대해서, 내가 누리고 있는 이 영광스러운 즐거움에 대해서,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주는 일에 대해서,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의 모든 것을 아끼지 않습니다.
돈이 우상으로 삼는 사람들은, 돈이 신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 교회 가는 것이 성가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배시간에 헌금 바구니 돌릴 때 그런 글자를 띄웁니다.
“울산 교회 세례교인이 아니면 이 헌금에 동참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는 글귀를 띠우는 것은 그런 오해를 막기 위해서 입니다.
혹 이 자리에 새로 나오신 여러분도 하나님을 만나기 전에는 헌금하는 일 때문에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돈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여러분과 관계를 맺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다만 문제는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우리는 여기 이 땅에서 고만 고만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겁니다.
서로가 물고 뜯고 시비 붙으면 붙을 만한 비천한 삶을 우리는 살고 있는데 비해서 하나님은 거룩하시다는 이것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교제하고 싶어 하시는데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 간격을 메워 주려고 하나님은 그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겁니다.
그리고 우리를 위해서 다시 살아나신 겁니다.
저와 여러분이 범한 모든 잘못에 대해서 값을 치루셨습니다.
그래서 십자가 위에서 소리쳤습니다.
“내가 다 이루었다” 문자 그대로 "내가 다 지불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내가 다 청산했다"고 십자가상에서 외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완벽한 자유를 주시려고 세상에 오셨고, 수난을 당하셨고,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기 자신만 위해서 사는 삶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 자신을 위해서 살도록 여러분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참된 기쁨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참된 행복과 의미와 참된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드리는 영광스러운 삶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고후5:14하-15)
사랑하는 구도자 여러분, 성도 여러분,
이제 여러분 자신을 위해 살기를 중단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삶의 목적을 주시고 우리가 그 목적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사는 것이 황홀한, 새로운 경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이번 <부활절>은 여러분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분을 위하여 새롭게 사는 자리로 나아가는 예배가 되기를 바랍니다.
에스겔서 본문에 보면 “북문에서부터 제사 드리기 위해서 온 사람은 다시 북문으로 나가지 말고 남문으로 가라. 남문으로부터 제사 드리기 위해서 온 사람은 다시 남문으로 돌아가지 말고 북문으로 나가라”
그게 바로 부활의 주님을 예배하는 성도의 삶입니다.
진정한 예배자는 예배드리러 나온 모습으로 돌아가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예배를 헛되게 드리는 겁니다.
예배자는 나올 때의 모습과는 다르게 되어서 돌아가는 겁입니다.
예수께서는 본래 부유하신 자로서 가난하게 되심은 우리를 부요하게 하려하심입니다.
여러분 중에서 아무리 가난해도 자식 낳으면서 마구간에서 태어나게 하는 부모가 있습니까? 예수께서 그처럼 비천한 자리에서 태어나심은 비천한 우리로 하여금 영광의 보좌에 앉히시기 위함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것을 버리고 하늘 영광을 떠나 비천한 세상에 오심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시고 하늘의 보좌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그가 생명을 버리심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가 죽으심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히 살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살기 시작하면 여러분은 참된 기쁨을 발견하실 것입니다.
여러분의 삶의 참된 행복과 의미와 참된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 자신을 위해 살기를 중단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기 시작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삶의 목적을 주시고 우리가 그 목적을 받아들일 때 우리의 삶은 사는 것이 황홀한, 새로운 경지가 열리게 될 것입니다.
이제 다함께 기도한 후에 주님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찬에 참여함으로 항상 기뻐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영광스러운 삶의 자리로 나아가기를 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