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에 많은 동화사가 있는데 순천에 동화사 ,청주 동화사, 대구 동화사 등 이러한 동화사를 다녀보니
그래도 대구 동화사가 규모면에서 제일이었다.
대구 동화사 선원에는 아미타삼존불을 모시는 극락전이 있고 그 옆에 한칸의 건물에 수마제전이 있다.
수마제전은 극락전의 다른 이름인데 한 공간에극락전이 2개 인것은 이레례적인 일이다.
수마제(須摩提)는 ‘극락’을 뜻한다. 따라서 수마제전이란 아미타불을 모시는 법당인 극락전의 또 다른 이름이다. 금당선원에는 기존 극락전과 함께 대구 동화사 수마제전이 함께 있어, 동화사에는 현재 두 개 극락전이 있다. [위치] 대구 동화사 수마제전은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팔공총림 동화사 대웅전 동편에 있는 금당선원 영역에 있는데, 금당선원과 극락전 북쪽에 있다. [변천] 대구 동화사 수마제전은 조선 후기인 1702년(숙종 28)에 창건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형태] 대구 동화사 수마제전은 정면 1칸, 측면 1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건물의 모서리에 추녀가 없고, 지붕의 두 면이 서로 등을 대고 있는 형상] 건물로, 일반적인 사찰의 산신각 정도의 작은 규모의 건물이다. 겹처마와 함께 내외 2출목[기둥열 밖으로 빠져나온 도리]의 다포식 공포[기둥 상부 이외에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배열한 건축양식]를 구성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부처님을 모신 전각으로서의 격을 갖췄다. 두벌대[2단]의 장대석[길게 다듬어 만든 돌] 기단 위에 주초[땅 위에 놓아 기둥을 받쳐주는 돌]를 놓았다. 가구[기둥, 보, 도리 등 집을 만드는 뼈대의 얽기]는 5량가[도리의 수가 5개로 이루어진 구조]이며, 천장은 우물천장[우물 정자 모양으로 만든 천장]이다. 내부에는 금동아미타불상이 봉안되어 있는데, 대좌[부처나 보살 등이 앉는 자리]는 팔각으로 된 석조대좌[돌로만든 대좌]이다. 건물의 규모는 작은데 비해 아미타불상은 대형에 속해 대조적이다. 아미타불상의 손 모양은 오른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중품하생인(中品下生印)[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오른손을 손바닥이 밖으로 향하게 하여 가슴까지 올리고 왼손은 아래로 내린 형상]의 수인(手印)[불·보살의 깨달음 내용, 서원(誓願) 등을 손의 모양을 통하여 표현한 것]을 하고 있는데, 조선 전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대구 동화사 수마제전은 건립한 지 300년이 넘는 건축물이므로 조선 후기의 사찰 건축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대구 동화사 수마제전과 내부의 불상 모두 1986년 12월 5일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6호 ‘동화사 수마제전’으로 지정되었다가 2021년 7월 22일 보물 제2133호 ‘대구 동화사 수마제’로 승격 지정,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수마제전 내부에는 금동아미타불이 있는데 다른 누군가는 철불로 보는 이도 있다.
수마제전이 조선후기의 건물이기에 금동아미타불은 어디에서 왔는지 알 수 없다.
암자의 불상 으로는 대형에 속해 팔공산 자락의 폐사된 곳의 불상으로도 추정 할 수 있다.
대좌는 팔각형식의 석조이지만 나무로 가려져 있어 확인이 되지 않으며, 허리가 길고 무릎 높이가
낮아 신체 비례는 맞지 않다.
조성시기를 가늠하면 고개를 약간 숙였고 움추린 듯한 모습도 보이고 옷 주름이 평판적이라
조선 초기로 보기도 하지만 대형불상인데 만든시기 언제 인지 정확하지 않아 섣불리 장담은 하지 못한다,
건물은 작고 불상은 크기에 어색하고 손 모먕은 오른손으로 엄지와 검지를 맞댄 중품하생인의 손을 표현 하고 있다
필자의 의견의 고려말 까지 제작시기를 올려 본다.
왜 이런 분석이 여럿이냐 하면 정확한 자료가 없기에 이러한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전체적이 모습이 잘 만든 것은 아니고 비례가 어색하고 전성기의 작품이 아닌 과도기적 작품으로 해석되기 하는 것이다.
밀교문화연구원 전임연구원
옥산 이희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