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 있는 친구 목사가 보내온 글을 올립니다.
Boxing Day와 Tsunami (퍼옴)
올 성탄절처럼 조용한 가운데 가족과 함께 성탄을 보내기는 예수님을 믿은 이후 처음인 것 같다. 영국은 비교적 조용하게 가족과 함께 하는 성탄절 문화가 전해 내려오는 것 같다. 이 기간에 먼 곳의 가족들을 방문하여 인사를 나누고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성탄절 다음날인 12월 26일은 Boxing Day로 불리운다. 이날의 초기 풍습으로 부자들은 서로에게 나눠주던 선물 중 남은 것을 박스(Box)에 담아 종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상인들은 성탄절까지 판매하던 물건들 중 남은 것을 종업원들에게 나눠주든지 혹은 빈 상자에 약간의 돈을 넣어 나눠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통이 현대에는 대대적인 할인판매 기간으로 정착했다. 이날을 기점으로 대부분의 회사나 상점, 쇼핑몰들이 대대적인 할인판매를 시작한다. 50% 할인은 기본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75%까지 할인하는 경우도 있으니 물가가 비싼 영국에서 이 기간은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도 풍성함을 누릴 수 있는 기간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은 이날을 손꼽아 기다리기도 한다.
그러나 이렇게 풍성함을 누려야 할 이날에 비보가 날아왔다. 사상 최대의 피해를 가지고 온 Tsunamie. 영국 방송사들이 보내오는 참담한 사고 현장은 참아 눈뜨고 보기 힘들 정도로 처참함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이로인해 크게 놀랐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안타까워하고 놀란 것으로 상황은 끝인가? 사람들은 여전히 Boxing Day의 기분을 만끽하기 위해 쇼핑몰로 몰려들고 그들의 소비는 변함이 없어 보인다.
이러한 상황들을 보며 나는 몇가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첫째로 ‘이 상황에 하나님이 개입하셨는가’이다.
(마 10:29-31)"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그렇다. 참새 한 마리가 땅에 떨어지는 것 조차 아버지의 허락 하에 가능한 것이라면 그보다 귀한 수많은 생명이 한 순간에 처참히 세상을 떠난 이 상황도 분명히 하나님의 선하신 간섭 가운데 일어난 것이다.
두 번째로 ‘그렇다면 이번 재해는 그들의 죄의 결과인가?’
이 재해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떠났고 그 재해는 하나님을 주(主)로 섬기지 않는 나라들 가운데서 일어났다. 즉 그만큼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은 피해를 입었음을 의미한다.
이를 보며 기독교인들은 '저들의 죄가 관영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소돔과 고모라의 경우처럼 죄의 결과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쉽게 정죄하고 돌아서기에는 마음 한 구석이 너무 불편하다. 그래서인지 나의 맘속엔 다른 생각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 기독교 지도자들이나 목사님들의 설교 가운데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이라는 선포가 없기를 바란다.
(눅 13:4-5)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 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치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이 말씀이나 욥의 경우를 묵상할 때 다른 사람의 불행이나 사고에 대해 그 문제를 무조건 죄의 결과로 돌리는 것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분명히 나는 구약시대의 선지자가 아니다. 그렇기에 나는 이러한 문제에 접근할 때 더욱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하게 된다. 성도들이 한 가지 염두에 두어야 할 예가 있다. 한국이 경제적 부흥기에 있을 때 많은 목사님들이 중동의 예를 들며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축복을 받아 잘 살게 되었지만 무슬림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아 벌을 받아 가난하게 산다고 으스댔던 경우이다. 이 말에 화가 난 중동국가들은 석유가 개발된 이래 우리에게 큰 소리를 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돈을 축복의 상징으로 생각한 것에 대해 역공을 하듯이 오일파워(Oil Power)와 오일머니(Oil Money)를 통해 이슬람 선교에 힘쓰고 있다. 그러므로 기독인은 하나님을 믿으면 복을 받아 세상에서 삼박자 축복을 누리지만 그렇지 않으면 재앙을 입는다는 단순논리 또는 재해를 입거나 사고를 당한 사람은 그의 죄의 결과라는 식으로 이번 상황을 판단해서는 안 될 것 같다.
세 번째 그렇다면 이번 재해를 통해 하나님이 나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나는 성경을 묵상하며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느끼게 되었다. 하나님은 복음을 듣지 못한 채 죽어간 수많은 사람들을 보는 성도들이 긍휼한 마음을 가지길 원하시는 것 같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고 긍휼히 여김을 받은 자는 또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 것이다. 성도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환란에 긍휼한 마음으로 돕고 은혜를 베푼다면 그것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시는 마음과 은혜를 경험하고 알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또 한가지의 생각은 복음 전파의 긴급성이다.
하나님은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 “봐라, 네가 복음을 전하지 않고 우상과도 같은 네 배만 채우는 그 시간에 너의 관심 밖에 있었던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 네가 나의 생일이라고 들떠서 너희 가족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있을 때 나를 모른 채 살아 간 사람들이 이렇게 많았다. 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던 네가 하는 행동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만이 선민이라는 착각 속에 이방인들을 관심밖에 두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제 너의 관심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세상 모든 나라와 백성들이 나의 사랑 앞에 나오도록 너는 은혜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보라, 한 순간이면 이 모든 세상은 끝날 수 있다. 나 여호와를 모른 채 죽는 것은 단 한 순간에 끝날 수 있다. 그러므로 너는 속히 복음을 전해야 한다. 언제 인생의 끝이 올지 모르는 데 복음전파의 사명을 내일로 미루어서는 안 된다.”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죽은 자들로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는 누가복음 9장 60절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순종할 때라 생각된다.
넷째로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이다.
사도행전에는 이번 재해와 비슷한 경우가 기록되어 있다.
(행 11:27-30) “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가 크게 흉년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
이 말씀을 보면 하나님은 아가보를 통해 흉년에 대한 예언을 하셨고 그것은 이루어졌다. 이를 보며 제자들은 흉년을 당한 사람들이 죄를 많이 범하였기 때문에 환란을 겪는다고 비난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각자의 힘을 다해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기로 작정하였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렇다. 내가 할 일도 이와 같다. 나는 힘을 다해 재해를 당한 사람들이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과 은혜를 표현하는 방법이며 복음전파의 긴급성을 실천하는 길의 하나이다.
Boxing Day는 성탄절을 즐기며 나누던 선물과 상품들을 성탄절 이후에 종이나 종업원 등 낮고 천한 사람들과 나누던 풍습에서 유래되었다. 이 풍습이 이제는 경건하고 영적인 나눔으로 전해지기를 소망한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약 1:27)는 말씀이 있다. 초대교회성도들이 복음과 함께 서로의 재물을 나누었던 것을 기억하고 주님께서 “너희 재물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 그 말씀을 실천해야 한다.
참된 경건을 통해 복음과 재물을 함께 나누는 영적인 나눔이 나에게 있고, 성도들에게 있기를 소망한다.
2005년 1월 5일 영국에서 이름없는 종이
첫댓글 아멘... 네.. 주님의 눈으로 모든 상황을 볼 수 있게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