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대자유의 삶-선시
구멍을 내려들면 길길이 날뛴 무애(無碍)
처얼썩 장인(掌印) 찍고 줄 없는 고삐 쥐고
산(山) 만한 무비공우(無鼻孔牛)를 뒷간까지 끌고가
* 소요산 북릉(逍遙山北稜); 경기 동두천. 소요산 삼거리(7-3)에서 덕일봉(535.6m)과 번대산(445m)을 지나 신북온천쪽으로 빠지는 북쪽능선이다.
* 무애; 막히거나 거칠 것이 없음(佛).
* 무비공우; 대자유의 삶. 즉 콧구멍이 없는 소이니, 코뚜레를 꿸 수 없다는 뜻. 소는 가끔 진리 또는 자아를 뜻하기도 한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289면.
12. 도척(盜跖)의 개
도둑 집 삽살개는 나만 보면 왜 짓나
산에 맹세 물에 선서(宣誓) 거짓 한 푼 없는데도
아뿔사 제 주인 아닌 걸 뒤늦게야 알았군
* 개이빨산(견치봉 346.1m); 전북 고창, 선운사 뒷산. 한북정맥에도 같은 이름의 산(1,102m)이 있다.
* 척견폐요(跖犬吠堯); 도척의 개가 요임금을 보고 짖음. 개는 요임금이 도척보다 현명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 주인을 위해서 짖는 것이다. 1) ‘그가 받드는 주인에게 충성을 다함’의 비유. 토사구팽(兎死狗烹)으로 유명한 한신(韓信)의 막료 괴통(蒯通)이 이 비유를 끌어드려 유방으로부터 살아남은 일화가 있다. 2) ‘악인과 한 편이 되어 현인을 시기함’의 비유.
* 盟山草木知(맹산초목지) 誓海魚龍動(서해어룡동); 산에 맹세하니 초목도 알아주고, 바다에 맹서하니 고기와 용도 움직여준다(이순신 장군의 충성심을 읊은 對句).
* 졸저 『산창』 산악시조 제2집 제 63면. ‘국망봉의 진돗개’(포천 견치봉) 시조 참조. 2002. 5. 10 ㈜도서출판 삶과꿈.
* 졸저『한국산악시조대전』부제 산음가 산영 1-21(58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13. 청계에 씻은 눈
싸움닭 아닌데도 날카론 며느리발톱
지네로 보인 나를 미늘로 찍는 묘기
오덕(五德)을 뽐낸 푸른 닭 내 눈동자 빼먹네
* 청계산(淸溪山 849.1m); 경기 포천 가평, 한북정맥. 본명은 귀계산(貴鷄山)으로, 푸른 닭의 기상이다. 능선이 뾰쪽하고 정상은 작은 돌무지(케른)가 있다. 전국적으로 같은 이름이 많은데, 대표적인 게 이 산을 비롯, 서울과 양평의 것이다.
*계오덕(鷄五德); 닭이 지닌 다섯 가지 덕. 머리에 관(冠)을 쓰고(文), 며느리발톱이 날카롭고(武), 정면에서 맞서 싸우며(勇), 먹이를 보면 서로 부르고(仁), 때를 알려준다(信).
*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은 남의 단점을 보지 않는 눈이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403면.
14. 도화(桃花)를 따고
녹운(綠雲) 낀 수렴동천(水簾洞天) 오디 딴 가냘픈 손
부엉이 발톱 아래 머리 밟힌 까치독사
혼절한 뽕처녀 인중(人中)에 반도화(蟠桃花)가 핀다네
* 도화산(桃花山 929m); 강원 삼척 도계. 천상의 복사꽃이 화사하게 핀 오지의 산이다.
* 녹운; 1)여자의 머리숲이 많은 모양. 2) 푸른 구름.
* 반도; 3천년에 한 번씩 열린다는 전설상의 복숭아.
* 인중; 태단, 즉 코밑과 위 입술 사이 오목한 곳. 이것이 긴 여성은 귀상(貴相)으로 여긴다.
* 함신기혈(陷身其穴) 비산비야(非山非野) 제비지하(臍鼻之下); 몸을 빠트리는 구멍은 산이나 들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배꼽과 코밑에 있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139면.
15. 해탈승의 참모습
수과(守瓜)로 전을 부쳐 반야탕(般若蕩) 마신 부처
경 읽던 법당 흰 개 푸짐한 똥 한 자루
중생들 돌이머리질에 거름이 된 열반화(涅槃花)
* 감악산(紺岳山 951m) 연수사(演水寺)에서; 경남 거창. 바람이 좋은 기막힌 페러글라이더 활공장이 정상 근처에 있고, 산은 별 특징이 없다. 조록싸리와 노린재가 대조를 이룬다. 신라 애장왕 3년 감악조사가 창건한 연수사에 호두나무, 불두화, 은행나무가 좋다. 법당에 어슬렁거리는 백구(白狗)가 눈에 띤다.
* 수과; 노린재, 냄새나는 해충.
* 반야탕; 중들의 은어(隱語)로 술을 이름.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54면.
16. 술잔에 노는 뱀
무심코 입댄 술잔 뱀 그림자 비쳐있기
얼결에 잔 깨트려 곁눈질로 살펴보니
그믐달 끼인 문설주에 활 한 자루 걸렸네
* 사량도(蛇梁島) 지이망산(智異望山 경398m); 남 통영시 사량면 사량도 한려해상공원 내. 이 산에서 멀리 명산 지리산이 보인다 하여(거꾸로 지리산 장터목에서도 이 산이 보임) 붙인 이름이다. 바다 위 뜨 있는 아름다운 섬산으로, 마치 술잔 안에 꿈틀대는 한 마리 뱀 같다.
* 사영(蛇影); 뱀의 그림자. 술잔에 비친 활의 그림자를 잘못 보고 뱀이라고 하였다는 고사에서 온 말.
* 졸저 『명승보』 통영8경 중 제7경 ‘사량여봉’ 시조 참조.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241면.
17. 묘화 핀 능선-선시조
달빛을 삼킨 조개 진주를 토해내고
월정(月精) 마셔 새끼 밴 토끼 능선인양 깡충깡충
자궁에 활짝 핀 백련 반야향(般若香)도 짙느니
* 화산(華山 828m); 경북 영천 군위. 개척 산행인데 기대와 달리 별로 내세울게 없다. 한광사에 보물 2점이 있고, 2백년 된 향나무가 그런대로 괜찮다. 계류를 따라 혈암산(穴岩山 559.2m)으로 가는 길이 있고, 정상에서는 군부대로 내려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 반야 본체는 어떤 걸까? 조개가 밝은 달빛을 머금는 것. 반야의 활동은 어떤 것인가? 토끼가 달빛으로 새끼를 배는 것(벽암록 제 90칙 본칙, 한 중의 질문에 대한 지문(智門)의 답).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부제 산음가 산영 1-612(446면). 2018. 6. 25 도서출판 수서원.
18. 저오능(猪悟能)의 무기
흑룡의 은비늘로 꿈틀댄 옻빛 산성
죽순 밭 새털구름 반석(盤石)으로 떠오르자
턱밑의 보주(寶珠)를 따는 저팔계(豬八戒)의 쇠스랑
* 가산(架山 901.6m); 경북 칠곡(漆谷). 총 7.6km에 달하는 국내 유일의 삼중성(三重城-내성 중성 외성)이 있는 견고한 요새로 임진왜란 때 영남의 방어를 담당했다. 대구의 명산 팔공산과 연결되는 검은 주능선이 장쾌한데, 약 160평에 달하는 가산바위의 반면(盤面)에 반암(盤岩) 가암(架岩)이 각각 예서(隸書) 전서(篆書)로 음각되어있다. 칠곡은 칠봉(七峰) 또는 칠곡(七谷)에서 유래됐다.
* 이룡지주(驪龍之珠); 흑룡의 턱밑에 있다는 값진 구슬. 즉 여의주. 목숨을 걸고 구하지 않으면 얻지 못하는 데서, ‘모험하여 큰 이익을 얻음’의 비유. 또는 값진 보옥을 이름.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48면.
19. 초하정사(初夏情事)
잣숲이 거웃 이룬 계곡과 치룬 방사(房事)
사풍세우(斜風細雨) 맞아 최음제(催淫劑) 된 다래꽃향
오디새 우는 사타구니에 뿔도깨비 돋아나
* 깃대봉(909.6m); 경기 가평군 가평읍과 하면의 경계. 깃대봉은 전국적으로 수십 개가 있고, 가평군 안에만도 두 곳 있다. 다른 한 곳은 상면과 외서면 경계, 즉 청평 북쪽을 에워싸고 있다(643m). 산의 뿌리도 전자는 경기 제2고봉 명지산(1,267m)이나, 후자는 축령산(879m)이다. 등로(登路)엔 매화를 닮은 다래꽃이 묘향을 풍겨 성적 자극이 이는데다, 심심찮게 오디를 따먹고 보랏빛 물든 여류(女流)의 입술을 본다. 비스듬히 부는 비바람과, 청류 가에 우거진 잣나무 숲, 머리 위를 스친 후투티(오디새) 의 선율이 빚어낸 정취가 잘 어울린다. 산 정상은 도깨비뿔처럼 우뚝 솟았다.
* 사풍세우; 비껴 부는 바람과 가늘게 내리는 비.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108면.
20. 잣산을 까먹고
눈썹으로 산을 터니 벽옥 빛 해탈송이
횡격막에 박인 정과(正果) 송진 묻은 번뇌 닦아
보리심(菩提心) 금강이빨로 붉은 사리 까먹다
* 종자산(種子山 581m); 강원 홍천. ‘씨앗산’이라 하며, 경기 양평의 소리산(479m)과 병천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암산(岩山)인 경기 포천 관인면의 종자산(643m)과 달리, 육산(肉山)이라 잣나무와 칡이 많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376면.
21. 용추에 비친 산
땅 위로 머리 내민 늠름한 돌송이랴
억만년 절구질에 곱게 패인 복숭아 확
여와(女媧) 씨 푸른 자궁에 하늘공이 박였어
* 대야산(大耶山 930.7m); 경북 문경, 충북 괴산. 백두대간. 상대산 외 다른 이름이 있고, 정상부는 백옥 같은 바위산으로, 용추계곡은 문경8경 중 으뜸이다. 조항산 가는 백두대간 867봉 갈림길 동릉 멀지 않는 곳에 유명한 ‘마귀할미통시바위가’ 있는데, 그기는 둔덕산(969m) 권내라 소개치 않는다.
* 여와; 중국 상고시대 임금의 이름. 복희(伏羲)씨의 누이. 오색의 돌을 반죽해 하늘을 깁고, 큰 거북의 발을 잘라서 사극(四極)을 세웠다고 한다. 신화 상 인간을 창조한 여신이라고 하며, 사람의 머리에 뱀의 몸통을 하고 있다.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129면.
22. 산놀이 화두(話頭)
소를 타고 소를 찾듯 산에 들어 산을 찾네
여태껏 용맹정진 산송장의 허세였기
묘봉정(妙峰頂) 해골바가지에 탁주 부어 마실까
*속리산 묘봉(妙峰 879m); 충북 보은, 경북 상주. 설악산 공룡능선 못치 않는 아기자기한 바위산이다.
*나를 감싸고 있는 모든 허물을 벗고, 나의 본체인 참 나를 찾아다닌다. 눈으로는 절대 볼 수 없는 참다운 나를 찾기 위해.. 해골에 막걸리를 따르든? 산과 대작하든?
* 소를 탔으면 소에서 찾아라!
* 묘봉정은 ‘우주의 실체’를 뜻한다. 해골은 실속 없이 잘난 체 으스대는 자(者)를 뜻함. 해골의 겉모양이 험상궂게 이를 악물고 있는 데서 비유(벽암록 제 23칙 ‘보복과 장경의 산놀이’ 참고).
* 졸저 『한국산악시조대전』 제 29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