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기관을 지칭하는 '눈'과 그 눈 앞에 놓인 대상을 보는 '눈의 기능[안근]'이 있는데요,
그 둘은 의미상 확연히 다르지요.
그처럼 지칭하는 sati와 sati-indriya[sati 근]도 의미상 확연히 다르지요.
눈이 있어서 눈으로 보는 기능이 작동하는 것처럼
sati가 있어서 sati앞에 놓여 있는 감관 '안이비설신'을 sati-indriya(sati근)가 법으로 기억을 하는 것입니다.
☆이때 주요 경전, "'안이비설신'은 '의'를 의지하고, 그 '의'는 sati를 의지한다." (S48:42 Uṇṇābhabrāhmaṇasutta과 M43교리문답긴 경)
1. sati는 (성문을 지키는 역할) 문지기(doorkeeper)에 말씀합니다.
A7:67 Nagaropamasutta 와
SN35:245 Kiṃsukopamasutta(낑수까 나무 비유 경)에서 말씀하시길, “비구여, 문지기(dovāriko)라고 sati를 두고 한 말이다.(dovāriko’ti kho, bhikkhu, satiyā etaṃ adhivacanaṃ.)”
*여기서 dovāriko는 사전에서 doorkeeper에 말한다.
2. sati-indriya(사띠 기능).
sati 문지기 역할에 능숙한 경우에 다르마 법에 대한 기억(sara)기능이 생겨납니다. 그것을 sati-indriya(사띠 기능)이라고 합니다.
(S48:9, 분석경1)
‘‘ Katamañca, bhikkhave, satindriyaṃ? Idha, bhikkhave, ariyasāvako satimā hoti paramena satinepakkena samannāgato cirakatampi cirabhāsitampi saritā anussaritā – idaṃ vuccati, bhikkhave, satindriyaṃ.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sati의 기능(satindriya)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sati의 문지기를 가진(satimā) 성스러운 제자는, 점차적으로(anu-) 최상의(paramena) sati와 최상의 안목(nepakka)을 겸비하게(saṃ-) 되고, 그래서 오래전에 행해졌던 것도(cirakatampi) 기억하고(saritā) 따라가며 기억하고(anussaritā), 오래전에 말해졌던 것도(cirabhāsitampi) 기억하고 따라가며 기억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sati의 기능으로 불리어진다."
이처럼 문지기 sati를 가진 자(satimā)이기 때문에, 오래전에 행해졌던 것(법)을 기억sara한다는 말이죠.
S48:42 Uṇṇābhabrāhmaṇasutta에서, “5가지 감각기능은 각각 다른 대상과 영역을 가져 서로 다른 대상과 영역을 경험하지 않는다. 이들5가지 감각기능은 마노[意]를 의지한다. 마노意가 그들(안이비설신)의 대상과 영역을 경험한다. 바라문이여, ●마노意는 sati를 의지한다.”
(--> 이 경전속의 의意에 대한 철저한 앎으로서 "안이비설신"을 법으로 인식하는 공부의 유래 즉, "아비달마"가 유래한 것입니다.)
마노意의 대상이 법이 아니든가요? 집법즉멸법에 대한 문지기 역할의 sati에 의해서 염처가 계속 일어납니다!
즉, 우리들의 안이비설신의 감각기관이 짓는 의식 세계 loke의 올바른 작동을 위한 육내외입처에서의 다르마 법의 경험에 대한 경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