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 병수형 상가에 문상 가야지?“
후배가 야밤에 전화다. ”부모님도 아니고 장모시고. 경주까지 너무 멀지 않아?“ ”그래도 우리는 가봐야 할 것 같아, 형. 내가 지금 KTX 두 장 예약할 게 내일 봐요.“ 역시 대기업 임원생활을 한 후배라 나 같은 변방의 건깡깽이와는 생각하는 것이 다르다.
경주 동산병원 장례식장에 들어가니
오로지 가족들만 모여있다. 우리를 보고 반갑게 선배와 형수가 맞는다. 사실 형수는 나와 갑장이지만 공연장에서 인사만 나눈 사이라 거의 모른다. 그녀는 우리에게 자신의 가족사를 가감없이 털어놓는다. 남에게는 털어놓기 힘든. 그만큼 믿고 가깝게 여긴다는 거다.
”제 할아버지는 함흥부립병원장이셨고 아버지는 지금 이 병원의 전신인 경주 기독병원장이셨어요. 그리고 남편은 12년 동안 용인 세브란스 병원장이었어요.“
3분의 병원장과 피로 맺은 인연. 대단한 남자 복을 타고난 여인이다.
”어머니는 95세시고, 별 병환 없이 지내시다 기력이 쇠하자 얼마 전부터 곡기를 끊으셨어요. 그리고 돌아가시기 이틀 전 하나님과 남편 만나러 간다고 기쁘다고 만세 3창을 하시고 조용히 누워계시다 가셨어요. 그리고 바쁜 사람들 폐 끼치게 서울에서 하지 말고 아버지가 근무하시던 여기서 조촐하게 가족들만 모여서 해라.“고 하시면서 ”10만 원이 든 봉투 100개를 내놓으시며 내가 주는 마지막 선물이니 너희들도 하나씩 갖고 그래도 오시는 문상객들에게 드려라“고 하셨다면서 우리에게 봉투 2장을 내민다. 물론 부의금은 받지 않고.
”남들에겐 차마 할 수 없는 얘기지만 저희 아버지는 수족 절단 봉합의 최고 전문 외과의사셨어요. 기독병원이 노회 소속으로 운영이 어려워 가족과 주변에서 그만두고 개업하면 떼돈을 벌테니 개업하라고 해도 작두로 손 짤린 농민들이 그래도 저렴한 가격으로 내게 수술받아 다시 농사지으려면 내가 이 병원을 지켜야 한다고 평생 월급쟁이 의사로 사셨어요. 부모님은 이 근처 허름한 집에서 56년째 사셨어요. 어머니는 지금도 예전 호마이카 장을 쓰고 계세요.“
“남편도 인천과 광주 세브란스가 운영난으로 문 닫고 용인도 힘들어서 팔고 신촌으로 들어오라고 해도 지역 거점 병원이 있어야 후배 인턴과 레지던트들이 트레이닝할 수 있는 현장을 제공할 수 있다고 끝까지 고생을 사서 했죠. 응급실에서 새벽에 위독한 환자가 있다고 전화 오면 항상 뛰쳐나갔어요. 레지던트들에게 맡겨놓을 수 없다고, 제가 보다 못해 그 병원이 당신 아버지가 하시다가 당신에게 물려준 병원이냐? 고 대들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닙니다. 남들처럼 안식년이나 휴가도 없이 이 사람은 정말 일 만하다 여기까지 온 사람이예요. 정년이 다 되어서 신촌에서 센터장 주겠다고 했지만 후배에게 양보한 사람이예요. 요샌 노래에 빠져서 안산 산재 병원에서 차 몰고 파김치가 되어 퇴근하고 돌아오면 밥도 안 먹고 바로 피아노 앞에 앉아서 노래 연습해요. 이 사람 대단한 사람이예요. 존경합니다.”
거의 반세기를 살을 맞대고 살아온 아내로부터 존경받을 수 있는 남편,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대화가 얼추 마무리되자 형수가 갑자기 후배와 나에게 노래를 청한다. 사실 계속 돌아가신 어머님이 좋아하시던 찬송가를 가족들이 계속 부르던 중이었다.
“어머니가 평소에 노래를 좋아하셨어요. 방금 입관하고 왔는데 아직 귀는 들린다잖아요. 두 분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삼총사가 부른 사랑의 테마도 세 분이 불러주세요.” 후배는 The Lord’s Prayer, 나는 ‘내 영혼 바람되어(김효근 곡)’를 부른다. 장례식장에 와서 망자에게 돈 봉투 받고 망자를 위해 노래를 부르는 고유한 경험을 망자가 선물한다. 슬픔에 휩싸인 죽음이 아니라 웃음 머금은 찬송이 넘치는 예식을 부탁했던 망자. 고급스러운 죽음이다. 그분이 어떻게 사셨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고급스럽게 사셨을 것이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후배와 함께 방금 경험한 감동의 여운을 나눈다. 망자께서 돌아가시는 길에 주신 돈으로 황남빵을 꼭 사 먹으라는 고인의 유지는 가게의 빵이 모두 팔려 살 수 없는 바람에 지켜드릴 수 없었다.
선배와 2년여 독창을 함께 하며 지켜보면서 그가 참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선하다는 것은 그저 착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리면 어떤 난관이 있더라도 그것을 관철시키는 자신만의 고유한 삶을 사는 사람 나는 그런 사람이 선한 사람이란 것을 그를 통해 배운다.
그와 그리고 후배와 서로 자극도 받고 격려도 하며 함께 성악의 세계를 맛보며 삶의 저녁 길을 같이 걸어가는 나도 남자 복이 많은 사람이다. (고교 선배가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