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딸의 전화를 받았다. 워킹 맘인 딸이 한창 일할 시간이어서 의아했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딸이 어렵게 전한 소식은 큰 충격이었다. 셋째를 잉태했다는 것이다. 딸은 엄마가 크게 놀랄 것이라 짐작해서 망설인 것이다. 그날 회사에서 새로운 일과 승진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잠시 갈등했던 마음을 굳히고 내게 전한 이야기다. 딸이 이사했고 육아도우미에서 벗어난 지 육 개월 만의 일이다.
“셋째가 태어나면 직장을 그만둬야겠네,” 내가 전한 첫 말이었다. 육아의 과정을 잘 알기에 축하한다는 말을 놓쳤다. 다른 이가 셋째를 임신했다면 축하의 인사부터 건넸을 것이다. 한참 뒤에 꿈같은 현실에 직면했다는 걸 깨달았다. 친정엄마인 내가 돕지 못할 상황이란 걸 딸이 더 잘 안다. 허리 수술했고 집도 멀어졌기 때문이다. 왜 나는 딸이 세 아이의 엄마가 된다는 걸 상상조차 하지 못했을까. 힘든 상황을 내심 거부했을 것이다.
둘째를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딸의 건강부터 염려했다. 둘이면 충분하다고 여기며 육아를 도왔다. 주변의 지인들 자녀도 대부분 하나 아니면 둘이다. 딸과 통화할 때만 해도 괜찮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지고 수많은 걱정이 엄습하며 눈물이 흘렀다. 가라앉은 마음을 감당할 수 없어서 성당으로 향했다. 예수님 고상을 바라보며 새 생명이 건강하기를 기도하면서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딸에겐 전할 수 없는 답답한 심정으로.
자식에 대한 사랑은 항상 자신보다 앞선다. 딸은 왜 희생의 역할을 더하려고 할까. 자녀 양육에 젊음을 바칠 딸이 안타까웠다. 가없는 모성을 떠올리면 숭고함에 앞서 마음이 아프다. 동물의 세계에서도 애틋한 모성의 장면을 볼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철부지였던 딸이 자녀의 보호막이 된 걸 보면 대견하면서도 안타깝다. 그러고 보니 전에 친정에 왔을 때 안색이 좋지 않았다. 임신한 사실을 부모에게 선뜻 말하지 못한 마음이 헤아려진다.
몇 년 전에 손주 셋을 얻은 친구에게 그때의 기분을 물었다. “셋째 임신 소식을 들었을 땐 충격이 컸는데, 아기를 보니 그 마음이 사라지고 예쁘기만 하더라.” 막연히 상상할 뿐, 위로가 되진 않았다. 출산의 고통을 또 겪을 딸을 먼저 생각하면서. ‘나라에 애국하는 딸 덕분에 할머니들은 순국하겠다.’는 친구들의 우스갯소리가 떠오른다. 딸은 세 아이의 엄마가 될 자세를 의연히 갖추고 있었다. 딸네 부부는 벌써 '복덩이'란 태명을 지었다고 한다.
행여 딸에게 어두운 마음을 드러낼까 싶어서 며칠간 연락하지 않고 자신을 돌아봤다. 딸을 시집보내고 비슷한 감정으로 힘들어했던 날이 스쳤다. 딸을 언제까지나 내 품에 끌어안고 싶었나 보다. 딸은 부모에게서 독립해 아내와 엄마 역할을 잘해내고 있는데. 엄마가 된 딸을 한 인격체로 존중하며 정신적인 거리를 유지하기로 했다. 우울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밝아졌다.
우리의 육아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자녀 출산은 꿈같은 일이다. 국가의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어서 ‘저출산 대책위원회’란 기관까지 생겼다. 코로나 상황을 겪으며 미래가 불안해졌다. 나라의 장래보다 눈앞의 현실에 이기심이 발동하는 자신을 본다. 다른 사람 일이라면 나도 맘껏 축하했을 것이다. 그에 반해 딸네는 구체적이고 밝은 미래를 설계하며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우연히 방송을 통해 오둥이의 육아 과정을 지켜봤다. 유난히 힘든 와중에도 아이들의 천사 같은 미소에 가족들은 행복해했다. 어느새 돌 지난 아이들이 ‘미소천사’로 전 국민에게 환희를 선사한다. 새삼 생명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마음이 뭉클했다. 생명을 잉태하고 성장을 돕는 일만큼 보람된 일은 없을 것이다. 엄마의 역할보다 더 위대한 일이 어디 있으랴. 아무쪼록 복덩이가 건강하게 태어나 가족과 인류에게 복스러운 존재로 자라주길 바란다.
구정에 딸 내외가 세배를 드릴 겸 친정에 왔다. 예쁜 손녀들과 함께 세배를 올리는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자손에게 세뱃돈을 줄 수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식사 후에 마주앉은 딸은 세 아이의 육아와 일을 병행하겠다고 전했다. 두 아이를 키운 경험으로 잘 해낼 수 있다며무한 긍정의 포부를 밝힌다. 힘들겠지만 딸과 사위는 사랑의 힘으로 잘 해낼 것이다.
엄마보다 훨씬 용기 있고 성숙한 딸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 아직 어린 줄만 알았던 딸이 어느새 현명하고 강한 어른으로 성장한 것이다. 첫째와 둘째가 태어났을 때 신비로운 섭리를 느꼈다. 시간이 지날수록 셋째로 태어날 새 생명이 궁금해진다. 여름에 태어날 아기를 상상하며 건강하길 기도한다. 또 다른 기쁨으로 뭉클한 탄생의 순간을 맞이할 것이다.
아마도 아들을 잉태한 모양이군요. 축하드리고 요즘같은 세상에 대단합니다. 사실 주변에서 늦둥이를 둔 가정이 평균적으로 더 행복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요. 일단 때가 지나면 가질 수 없는 인간대사이니 마음껏 딸을 성원하고 축하해 주시면 좋겠네요. 먼 훗날에 더욱 행복한 보람을 느끼게 될 것 입니다!
첫댓글 무조건 축하드립니다!
요즘 아이를 키우는 일이 무척 어렵다고 하지만, 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요. 아이 셋이라는 말만 들어도 한도 없이 넉넉하고 흐믓해 집니다. 황대감댁 복이 많으십니다. 거듭 축하드립니다!
志松님! 따님의 손주 잉태를 진심으로 축하 드려요.
국가를 위해서나 따님 가정을 위해서도 큰 축복이잖아
요.저도 갓 돌지난 외손녀를 보니 보물.보석이 따로 없
어요.이 녀석 표정하나 손짓하나 걸음걸이하나 예쁘지
않은 데가 없더군요.따님의 용기와 선택이 장하고 아름
답잖아요.생명의 탄생은 말씀대로 숭고하고 신비로운
일이잖아요.옛 어르신들 제 먹을 복 타고난다 하셨잖아
요.너무 염려마세요.다시한번 축하 드려요.
따님은 애국자입니다. 축하하고 격려합니다.
따님은 애국자요 장한 엄마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아마도 아들을 잉태한 모양이군요. 축하드리고 요즘같은 세상에 대단합니다. 사실 주변에서 늦둥이를 둔 가정이 평균적으로 더 행복하게 지내는 것을 보면, 부럽기도 하지요. 일단 때가 지나면 가질 수 없는 인간대사이니 마음껏 딸을 성원하고 축하해 주시면 좋겠네요. 먼 훗날에 더욱 행복한 보람을 느끼게 될 것 입니다!
자식사랑은 내리사랑이지요. 얼마를 낳던지간에 축복할 일입니다. 자연의 섭리라 생각하고 셋째 손주를 맞아들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