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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원(廢苑)
이 문 열
“많이 젖었지?”
방문을 열자 희미한 호롱볼 밑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수(繡)놓고 있던 그 애가 얼굴도 들지 않은 채 담담히 말했다. 나는 가볍게 머리를 쓸어 물기를 턴 후 방 안으로 들어섰다. 진흙이 엉겨 붙은 우화(雨靴)가 높은 댓돌 아래로 굴러떨어지면서 둔탁한 소리를 냈다.
“오늘 밤쯤은 네가 올 줄 알았어. 오후 늦게 비가 쏟아지면서부터.”
그 애는 여전히 고개를 수그린 채 마치 당연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처럼 말했다. 그러나 침침한 불빛 아래서도 그 애의 바늘 든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음을 나는 분명히 알아볼 수 있었다.
“그저께 복순이 편에 네가 왔다는 걸 들었지. 부를 수도 없고…… 그런데 결국 너는 변하지 못했구나.”
방 안이 그지없이 쓸쓸하다. 윗목에 잘 개어진 이불이 한 채, 수예 견본집인 듯한 책자가 댕그라니 놓인 앉은뱅이책상 맞은편 벽에 걸린 들꽃 한 묶음 그리고 그냥 길러 뒤로 묶은 머리칼을 길게 늘어뜨린 그 애가 호롱불에 호젓이 비껴 앉은 모습은.
“몹시 조용하군, 쓸쓸하고…… 그래 이렇게 큰 집을 교천 할머니와 둘이 지키는 거야?”
“행랑채에 을선네 식구하고, 복순이하고, 또 강아지 한 마리가 있지. 왜 뭐가 이상해? 현주 언니가 시집간 것까지는 너도 알고 있잖아?”
“그러나 전과는 하두 엄청나게 달라져서.”
“잠긴 사랑방? 그야 이젠 아무도 오지 않으니까. 그 밖에 또 뭐야?”
“모든 것이, 이를테면 너의 태도 같은 것도.”
“그래……?”
여전히 그 애는 건성으로 길게 대답하며 입으로 수(繡) 테의 실
밥을 뜯었다.
“너두 변하지 않았니? 그전에 네가 언제˙ 오늘처럼 조용히 내 방에 들어온 적이 있어? 마치 나를 놀라게 하는 것이 우리 집에 오는 유일한 목적인 것처럼 언제나 요란스러운 행차였지.”
“그렇군…… 하기야 모두 나이가 나이니까. 그런데 너는 앉으라는 소리도 없구나.”
“별 우스운 소릴…… 언제는 물어보고 앉았니?”
수그린 얼굴로 그 애는 잠시 희미하게 웃는 듯했다. 그리고 마지막 감치기를 서두르더니 수 테와 색실을 책상 위에 얹고 오랫동안 쓰이지 않아 먼지 앉은 램프에 불을 붙였다. 방 안이 얼마간 밝아왔다. 그러자 그 애는 얼굴을 들어 찬찬히 나를 살피기 시작했다. 그런 그 애의 얼굴은 다소 늙고 원기가 없어 보였다.
“생각보다 많이 변했구나. 이제 학교는 마쳤지?”
“겨우 이 봄에 졸업 했지.”
“그동안 무얼 했기에?”
“여러 가지를. 술도 마시고 여자도 사랑하고 一 그리고 군대도 다녀왔지.”
“그래 공부는 무엇을 해?”
“뭐 처음부터 결정된 대로지. 별 가능성 없는 작가 지망생이야.”
“네 데뷔 소식은 들었어. 역시…… 그렇게 되고 말았구나. 작년인가 나는 네가 다시 고시 준비에 열중한다고 들었는데.”
“어쩔 수 없었어. 이제 와서 내 인생을 바꾼다는 건 무리지. 형님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
“섭섭해하실 테지. 집안 어른 분네들도. 그분들이 가진 문인(文人)의 이미지란 기껏 《폐허》 지(誌)의 동인(同人) 정도니까.”
“그것이었을 거야. 불쑥 고향에 돌아오고 싶었던 것은. 무언가 다시는 고향에 돌아올 수 없으리란 예감 같은 거. ― 이 나이로는 어울리지 않는 감상일까?”
나를 쳐다보는 그 애의 얼굴에 일순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연민 같은 것이 서렸다. 바깥에는 다시 소낙비가 쏟아지는 것 같았다. 갑자기 한 줄기 바람이 빗말을 문살에 몰아붙여 그 처량한 음향은 이 음산한 고가(古家)의 정적을 더욱 어둡고 무겁게 만들었다.
“피로하고, 추워 보이네, 술 아직도 많이 해?”
애써 지은 듯한 미소로 그 애가 물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더욱. 그런데 너야 이젠 아니겠지.”
“응, 그때, 예전에 너와 마신 게 마지막이었어.”
그 애가 조용히 일어났다.
“마침 농주 남은 게 좀 있어. 기다려. 내가 가져올게.”
“교천 할머니가 언짢아하시지 않을까?”
“어머닌 괜찮아. 전보다 늙으신 데다 지난 몇 년 내가 근신한 덕택이야.”
그 애는 밖으로 나갔다. 펄럭이는 그 애의 옷자락에서 옅으나, 그리웠던 작약 냄새가 났다.
언제부터인가 이 집은 여원(女苑)이라고 불리었다. 그 애의 아버지가 요절한 후에 남자라고는 하나 있던 오빠마저 인민군 의용군에 끌려가 버리자 집안에는 여자들만 남게 된 데다, 또 집도 궁원(宮苑)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할 만큼 컸다. 그 옛날 문중에서 가장 외롭고 빈한했던 그 애의 증조가 오직 근면과 절약만으로 당대에 만석 거부(巨富)를 이룩한 후 세운 천여 평 뜰의 80칸짜리 입 구(口)자 집이었다.
이 집의 주인들은 여원이라는 그 이름을 싫어하였다. 거기에는 무언가 가계(家系)의 단절을 앞둔 그네들의 남모르는 슬픔과 한을 자극하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들 일문(―門)의 형제들은 짓궂음으로, 혹은 비밀을 주고받는 즐거움으로 그네들이 없는 곳에서는 언제나 그렇게 부르기를 서슴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그런 이 집은 우리 모두에게는 독특한 의미를 지닌 곳이 되었다.
어렸을 적, 이 집은 우리들의 원인 모를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나이가 차 스스로 찾게 될 때는 그대로 사랑과 기쁨의 집이었으며, 다시 이제는 방문을 그친 성년(成年)으로 그 앞을 지날 때면 그것은 영원한 향수와 추억의 집이었다. 무언가 형언할 수 없는 장려와 우아가, 또 무슨 자욱한 안개처럼 서린 우수나 애상 같은 것들과 함께 저항할 수 없는 견인력으로 우리를 이끌었다. 여름이면 홍란, 백작약이 만발한 앞뒤 화원과 부용이 떠 있는 연못, 지금은 베어진 서실(書室) 앞의 아름드리 향나무며 그 앞 푸른 이끼 낀 바위 ― 그곳에 여름 저녁 그 애와 나는 가끔씩 걸터앉았다. ㅡ 같은 것들에 그러한 장려와 우아가 있었으며, 잠시만 침묵해도 이내 회복돼 버리는 무거운 정적과 그을음 낀 회벽, 그리고 기다림으로 20년 내 한 번도 잠긴 적이 없는 대문 같은 것들에 그런 우수와 애상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우리의 영혼에 깊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는 것은 그 모든 것의 주인들, 그래서 우리가 여왕이라고 부르기를 서슴지 않았던 다섯 여인이었다. 우리 일문의 형제들이 또래를 바꾸어 가며 그녀들에게서 발견한 것은 여성적인 것 ― 특히 그 아름다움의 한 전형이었으며, 뒷날 그 최저의 한계로도 자신의 여자를 맞이할 수 없게 될 때 그녀들은 영원히 우리들의 가슴속에 살아 있게 되는 이념미로 승화되었다.
“문 좀 열어 줄래?”
밖에서 그새 비에라도 젖은 듯한 그 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말없이 문을 열자 몇 개의 물방울을 머리칼에 반짝이며 엄청나게 큰 주전자에 김치 접시만 달랑 얹힌 상을 든 그 애가 들어왔다
“갑작스러워서…… 술만이래두 되지?”
그 애는 또 희미하게 웃었다.
“나두 같이 마셔 보고 싶은 생각이 났어. 너와는 이게 정말 마지막일 것 같아서. ― 잔은 어울리지 않게 고급이지?”
조그만 종이 상자에서 두 개의 잘 닦여진 맥주잔을 꺼내면서 그 애가 말했다. 뻑뻑한 농주가 투명한 유리컵에 차는 동안 나는 돌연 그리움 같기도 하고 슬픔 같기도 한 야릇한 감회에 휩싸였다.
“술이 모자랄 것 같은데.”
나는 진심으로 말했다.
“여전히 술 욕심은 대단하네. 걱정 말아요. 아직 반 독은 넘게 있고 양조장도 멀지는 않으니까. 자, 여기다 술이나 한잠 줘.”
유난히 길고 흰 손가락에 감긴 유리잔이 다시 한 번 나를 야릇한 아픔에 젖게 했다.
“뭐야 이런…… 그러나 옛날 규칙은 잊지 마라. 비율은 이 대 일, 취한 숙녀는 질색이다.”
하지만 잔이 찬 후에도 나는 선뜻 잔을 들 수가 없었다. 무언가 꼭 있어야 할 절차가 빠진 것 같았다. 그 애도 자기 잔만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자, 들지.”
이윽고 나는 힘을 모아 말했다.
“건배다. 여원(女苑)을 위해, 내 영원한 향수를 위해.”
그것은 억지로 꾸민 쾌활이어서 스스로 듣기에도 내 목소리는 공허했다. 순간 꾸짖는 듯한 그 애의 눈길에 이어 작은 떨림이 부딪치는 잔을 통해 전해 왔다. 그 애는 소리 없이 천천히 마셨다. 그리고 잔을 내민 그 애의 두 눈에는 엷은 눈물이 괴어 있었다. 나는 황급히 두 번째의 잔을 채우고 단숨에 마셨다.
“처음부터 규칙 부활이구나.”
힘들여 웃으려는 그 애의 얼굴에 반짝 옛 모습이 보이더니 이내 사라졌다.
이 여원의 첫 번째 여왕은 그 애 어머니 자신이었다. 지금은 노쇠와 질병으로 옛날의 모습을 찾을 길 없지만 전하기에 열여섯의 나이로 처음 그녀가 이 집에 들어설 때는 정말 꽃다웠다고 한다. 아마도 이 집을 면면히 흐르는 아름다움의 근원은 바로 그런 그녀에게 있음에 틀림이 없다. 거기다가 그녀는 모든 동양적인 부덕(婦德)과 교양을 지니고 왔다. 그녀의 언행은 당시 모든 문중 새댁네의 모범이 되었으며, 그 음식 범절과 바느질 솜씨는 옛 고향을 통틀어 으뜸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삼종조(三從祖)가 되는 그녀의 남편은 부조(父祖)의 재산으로 소싯적부터 주색에 깊숙이 빠져 버린 사람이었다. 실로 그는 당대에 만석(萬石) 거부를 가장 성공적으로 탕진한 사람이었는데, 그런 그에게 술을 마시는 것과 기녀(妓女)를 후리는 것 말고 남보다 뛰어난 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그것은 결혼과 더불어 더 심해 가 ― 나중에는 숫제 타향에 자리 잡고 탕진만을 일삼았다.
그에게 있어 아내란 일변 두렵고 일변 밉기까지 한, 그러나 자기로서는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세계의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이상스러운 위축감이나 거북스러움은 그를 짜증나게 만들었고, 그녀를 경원하고 기피하게 만들었으며, 이윽고는 혐오하게까지 했던 것 같다. 그는 결혼 후의 생애 거의 전부를 타향에 나가 있으면서도 도합 여섯 번이나 그녀를 임신시켰는데 그것도 그런 심리의 한 변태 ―― 그래도 나는 너의 남편이라는 ― 였을 것이다.
그녀가 그런 남편을 미워했는지 사랑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로 미뤄 보아 그 어느 편도 아니었으리란 짐작이 든다. 그녀에게는 자기만의 은밀한 세계가 있었으니 앞뒤 뜰을 메운 진기한 화초와 수석(氷石), 언제나 그녀 방에 단정히 비치된 문방사우(文房四友) 그리고 몰락해 버린 친정에서 옮겨 온 고서(古書)고리짝 같은 것들이 바로 그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이었다. 그러다가 주색에 아편까지 곁들여 결국 생명까지 탕진한 남편이 마흔도 못 되는 나이로 요절하자, 그 세계는 그대로 이 여원의 전부가 되었다.
그녀가 이 여원의 첫 번째 여왕으로 군림하게 되는 것은 그 뒤의 일이었다. 몇 년인가 꽃향기와 새소리 속에, 당음(唐音)과 문선(文選)의 곰팡이 냄새와 묵향(墨香) 속에 칩거하던 그녀는 시어머니마저 죽고, 그녀 자신이 이 여원의 어른이 되었을 때 ― 라야 겨우 서른여섯 살이었지만 ― 사랑방을 문중의 젊은이들에게 개방하였다. 이미 한 세대 이상 지난 일이고, 젊었던 지난날의 기사(騎士)들도 이제는 거개가 노년의 내리막길을 걷고 있지만, 그때의 여원은 아직도 그들 가슴속에 아름답게 살아 있다.
그들의 회상에 따르면 그때 그 사랑방을 꾸민 것은 옛 풍류와 멋의 잔영 (殘影)이었다. 그들은 처음 아무렇게나 모여들었지만 곧 자정작용(自淨作用)이 일어나 조야한 행실, 천학(淺學), 예(藝) 와 기(技)에 대한 몰이해 ㅡ 이러한 것들은 저절로 그곳에서 추방되었다. 그리고 문중에서 가장 고귀한 정신들만 남아 몰락해 버린 왕조와 사라져 간 우리들의 옛 영광을 읊조리거나 그들 본성과도 흡사한 화선지(畵線紙)에 승화된 정념(情念)을 수놓았다. 지금도 이 집 여기저기에 걸려 있는 수묵화 족자들이나 두툼한 조선식 기보(棋譜) 한 권, 그리고 수정추회(水亭秋懷)라는 시문집은 그런 그들의 정신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것들이다.
그러다가 5년인가 만에 그 사랑방은 폐쇄되었다. 일제 말(日帝末)의 징병을 피해 고향에 숨어들었던 문중의 한 동경 유학생이 갑작스레 남양으로 떠나 버린 직후의 일이었다. 그 애네의 오래된 사진첩에 사각모자를 쓰고 망토를 늘어뜨린 채, 슬플 정도로 크고 선명한 눈을 하고 서 있는 그 젊은이는 자기의 절망적인 연정 ― 육촌 형수를 사랑하게 된 자의 ― 을 1930년대 풍(風)의 길고 현란한 편지 속에 남겨 놓고 학도병에 자원해 버렸다.
원인을 모르는 문중의 경악 속에 그 젊은이가 떠나던 날 아침, 그녀는 홀로 뒤뜰 숲 속에 나가 정붙여 키우던 십자매 한 쌍을 놓아주고 오래오래 그들이 사라져 간 창공을 응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로 사랑방에는 자물쇠가 잠기고 오래잖아 이 집은 문중에서 가장 쓸쓸한 집이 되고 말았다.
남양으로 떠난 그 젊은이는 결국 다시는 고향에 돌아오지 않았다. 격침된 수송선과 운명을 함께했다는 풍문도 있고, 달리는 전쟁이 끝나도 돌아오지 않고 토민(土民) 처녀와 결혼하여 그곳에 정주하였다는 말도 있었다.
“묵도(默禱) 라도 하는 거야?”
갑작스러운 그 애의 물음에 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어느새 잔을 채워 둔 그 애가 조용히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들어야지. 다시 건배다.”
나는 서둘러 잔을 들었다.
“이번에는 너를 낳아 준 여인, 이 여원의 첫 번째 여왕을 위해서.”
다시 항의가 담긴 듯한 그 애의 눈길이 나를 향하다가 문득 그 애 특유의 장난기 어린 목소리가 되어 이 건배를 받았다.
“그래, 어머니를 위해서. 우리들 모두의 미(美)와 사랑의 여왕을 위해.”
다시 문밖에서는 한줄기 장대비가 요란스레 파초 잎을 때리고 지나갔다.
그러나 이 집과 나의 숙명적인 연관이 시작된 것은 두 번째 여왕 때부터였다. 지금은 평범한 개인 병원의 원장 부인인 그 애의 맏언니는 내 어린 날의 기억을 되살려 볼 때 이 여원의 두 번째 여왕으로 조금도 손색이 없는 미인이었다. 그녀의 유난히 흰 살결과 섬세한 윤곽은 남도의 평야 지방에서 난 어머니에게서 온 것이었으며, 그윽한 눈과 이국적(異國的)인 정취마저 풍기는 얼굴 전체의 짙은 음영은 북도의 산악 지방에서 난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었다. 정신적으로는 그녀가 어머니에게서 이어받은 것은 겨우 예술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사랑의 천품 정도였다. 그러나 조심성 없는 웃음과 춤이라도 추는 듯한 경쾌하고 우아한 몸가짐, 아이와 같은 천진, 그리고 남의 불행에 함께 울 수 있는 한없는 동정심 같은 그녀 특유의 장점은 그 어머니의 많은 다른 장점을 대신할 만하였다. 그것들은 모두 그녀의 아버지가 지녔던 호탕함이 극도의 순화(馴化) 끝에 그녀에게 전해진 것들임에 틀림없었다.
따라서 그런 그녀는 그때껏 타성(他姓)이라고는 옛 노비의 후손들이나 소작인들밖에 없는 고향 문중의 젊은이들에게서 일찍부터 사모의 대상이 됐다. 예를 들어 그녀가 가까운 도시에서 여고를 다닐 무렵의 토요일 같은 날은 누가 그녀의 집까지 짐을 날라 주고 거기서 저녁을 먹게 되는가가, 당시 그 도시에 유학 간 모든 문중 젊은이들의 관심사였다. 그리고 운 좋게 선택된 젊은이는 그 무상의 영광에 어깨를 누르는 쌀자루의 무게나 야채 잎이 비어져 나오는 반찬 보따리를 들 때의 젊은이다운 수치심마저 잊게 되었다. 또 방학이 되면 이 집의 사랑방은 그 젊은이들로 떠들썩했다. 바깥어른이 없어 놀기에 부담이 없다는 것도 이유였지만 그보다는 다수한 문중의 처녀들 사이에서도 별처럼 빛나는 그녀의 아름다움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그녀가 여고를 졸업하고 돌아오자 그 사랑방은 정식으로 개방되고 그곳은 새로운 기사들로 가득 찼다.
노(老) 여왕의 은회색 머리칼이 이상한 우수와 적막 속에 늘어 가던 10여 년 만에 다시 찾아온 봄이었다. 노여왕 자신도 그 봄을 기껍게 맞았으며 찾아오는 젊은이들을 모두 지난 전란으로 잃어버린 아들을 대하듯 했다.
그때 그 사랑방을 지배한 것은 50년대 말의 억눌린 정열이었던 것 같다. 어렸을 적 나는 자주 이 집 담 밖에서 어딘가 과장의 혐의가 가는, 낭자한 가락과 왁자한 웃음소리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 애의 보다 구체적인 추억에 의하면, 더 잦았던 것은 그들의 열띤 논쟁이었다. 그들은 거기서 통음(痛飮)에 젖고, 시와 음악을, 예술과 인생을 얘기했다. 그 보든 것들은 족외혼(族外婚) 이라는 윤리의 철칙으로 왜곡된 그들의 본심 ― 그녀의 아름다움을 향한 열렬한 숭배와 사모의 한 변형이기도 했다.˙
두 번째 여왕의 사랑은 비록 내가 초등학교 하급반 때의 일이었지만 비교적 내 기억에 선명하다. 그 상대가 나의 큰형인 데다 나는 그들의 어린 사자(使者)로서 후일 커다란 잿더미를 이루었던 그 많은 편지와 조그만 석고 마리아상을, 예쁘게 수놓은 손수건과 수정 목걸이를, 그리고 그들의 절망적인 사랑을 날랐기 때문이다. 지금은 거의 통속해져 버린 감상이지만, 당시는 천재적인 소질로 일찍부터 지방 문단의 인정을 받고 있던 큰형의 젊은 시인다운 정열이 이미 말한 대로 예술에 대한 따뜻한 이해와 사랑의 천품을 지닌 그녀의 영혼을 사로잡은 것 같다. 그것은 결코 불륜이라고는 부를 수없는 아름답고 애절한 사랑이었다. 그녀에게는 딴 이름이 있었지만 큰형은 그녀를 소운(素雲)이라 불렀다. 나중에 슬프게 끝나 버릴 사랑의 예감이 그로 하여금 그런 이름을 짓게 하였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를 가로막고 있는 윤리의 언덕 위에 높게 떠 있는, 결코 잡을 수도, 도달할 수도 없는 흰 구름. 一 그것이 그녀였다. 그리고 결국 그녀는 형이 아직 육군에 복무하고 있을 때 영영 떠나게 된다.
“오빠, 오늘로 오빠의 운아(雲兒)는 죽었습니다. 남은 것은 끝내 죽일 수 없었던 천한 몸과 오빠와 동성동본(同姓同本)인 현숙이뿐입니다. 그러나 오빠, 운아는 죽었지만 아름다운 추억은 곱게 간직한 채 갔습니다. 오빠의 비탄에 작은 위로로 삼아 주시길. 아아, 그러면 안녕, 그렇게도 자주 불렀던 정다운 이름, 오빠 영원히 안녕.”
이 짧은 편지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이웃의 군(郡) 출신의 젊은 의사에게 출가했다. 형의 오래된 일기장에 그렇게도 많은 만가(輓歌)를 남겨 놓고, 아아, 그때 형은 차라리 그녀가 정말로 죽었기를 얼마나 간절히, 그리고 열렬하게 빌었던가. 장터거리를 휘어잡고 있는 주정뱅이 기자(記者)로 전락한 오늘에까지도.
이 여원(女苑)의 봄도 떠나간 그녀와 함께 끝나고 말았다. 다시 몇 년 후에 세 번째 여왕이 돌아올 때까지 이곳에는 잠시 정적이 머물게 된다.
“이번에는 두 번째 여왕의 차례지? 그래, 그녀의 슬픈 사랑을 위해.”
새로운 잔을 쳐들면서 이번에는 그 애가 앞질러 말했다 너도 알고 있었구나…… 어느새 그 애의 두 볼엔 엷은 홍조가 어리고 있었다.
세 번째 역왕이 돌아왔을 때, 그녀가 꾸민 사랑방의 분위기는 냉철한 이지(理智) 그것이었다. 자매들 중 유일하게 대학에 진학을 한 그 장래의 여류(女流) 사가(史家)는 신병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돌아와서도 학문에 대한 집착을 버리지 못했다. 그녀의 무지에 대한 혐오는 유별났다. 문인적인 비약이나 논리의 불철저도 다 같이 그녀가 혐오하는 바였다.
따라서 그런 그녀의 성격은 어딘지 모르게 쌀쌀하고 거만한 인상을 주는 그녀의 아름다움과 함께 처음 얼마간은 모든 사람의 경원을 샀다 그러나 이윽고 거기에 합당한 기사(騎士) 들이 부족한 대로 그 사랑방을 메워 갔다. 가정환경으로, 또는 그녀와 비슷한 이유로 한두 학기 휴학을 한 문중의 대학생들이나 문과대학을 졸업하고도 적당한 직장을 얻지 못해 때를 기다리는 집안 청년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과 밤늦도록 토론하고, 비판하던 그녀는 2년 만에 신병(身病)이 회복되어 학교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시 여러 해 뒤에 나는 그녀가 어떤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그러했던 세 번째 여왕에 대해 그 사랑을 의심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거기다가 그 무렴 나는 중학교를 다니기 위해 고향을 떠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진작부터 내 여러 재종형 가운데 하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그녀가 휴학을 한 그 이듬해 그가 별다른 이유 없이 휴학을 하고 고향으로 내려왔다는 것과, 그녀가 학교로 돌아갈 무렵 해서 돌연 군에 입대해 버렸다는 애매한 이유 때문이었지만, 내게는 왠지 그것이 거의 확실한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 의심은 적중했다. 그 뒤 언젠가 나는 만취한 그가 이 집 대문에 기대서서 흔들거리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비록 어둠 속이었지만 그의 양 볼에 번들거리며 흐르고 있는 것은 분명 소리 없는 눈물이었다. 거기다가 그는 또 부축하는 나를 개의함이 없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가엾은 것. 학문은 아무것도 줄 수 없는 것을…… 가엾은 것.”
나중에 알았지만 그날은 또래들 중에서 가장 늦게까지 결혼 않고 남아 있던 그가 노모의 성화에 못 이겨 정혼한 날이었다.
네 번째 여왕이 여고를 마치고 돌아와 다시 이 사랑방의 주인이 되었을 때 이 집은 잠시 나와의 인연에서 멀어졌다. 다수한 종반(從班)과 형제자매들 중에서 그녀 또래는 내 누이 하나뿐이었는데 그나마도 일찍 죽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그녀와 그녀 시절의 그 집 사랑방에 대해서는 먼 족인(族人) 들에 의한 전문(轉聞) 뿐이다.
거기에 따르면, 이 여원의 네 번째 여왕인 그 애의 셋째 언니는 평범밖에는 아무런 특징이 없는 여자였다. 그녀는 평범한 용모와 정신으로 돌아와 평범한 기사(騎士) 들 사이에서 몇 년을 군림하다 역시 평범한 교사와 결혼하여 이 여원을 떠났다. 그리고 설령 그 이상의 무엇이 있었다 할지라도 나는 알 길이 없다.!
어느새 상당히 취기가 올라 있었다.
“벌써 술이 다 됐네. 좀 더 가져와야겠어.”
마지막 잔을 부으며 그 애가 말했다. 그 애가 다소 취한 걸음으로 다시 주전자를 채워 들어서는 것을 보고 나는 남았던 잔을 채웠다. 그 에가 이내 잔을 비웠다.
“이번에는 다섯 번째 여왕 차례지? 이 여원의 마지막 영광, 너 나의…….”
그때 갑자기 그 애의 흰 손이 내 입을 막아 말을 중단시켰다.
“아직도 바보 같은 소리를 하려는 게지?”
그 애의 쓸쓸한 웃음이 다시 한 번 항의를 대신했다.
내 손위의 형들이 보여 준 그와 같은 실례(實例)는 어려서부터 나를 끊임없이 기대와 불안으로 설레게 했다. 아마도 조숙 탓이었겠지만, 나는 이미 초등학교 시절부터 큰형과 그 애의 맏언니를 원인 모를, 그러나 깊은 흥미로. 지켜보았다. 그리고 막연한 대로 그 아름다움에 대한 기대보다는 불행했던 종말에 대한 엉뚱한 불안이 처음 상당 기간 나를 사로잠아 그 애를 이유 없이 경원하게 하였다.
그런데도 이상하리만치 그 애는 언제나 내 주위에 있었다. 고향에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그 애는 6년 줄곧 나와 한 반이었으며, 어쩌다 내가 아동극의 주인공이라도 되면 그 애는 반드시 내 대역(對役)이 되어 내 동작을 헷갈리게 하고 대사를 잊어버리게 했다. 그후 문중의 해체가 시작되어 그 반수 이상이 자녀의 교육이나 가계(家計)의 재건을 위해 타향에 나가 살게 되었을 때, 그래서 같은 또래의 문중 형제들이 한자리에는 서넛조차 모이기 힘들게 되었을 때
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면 내가 먼 도시로 공부하러 가도 오래잖아 나는 그곳에서 역시 그 도시 여학교의 교복을 입은 그 애를 만나게 되었고, 전혀 예고 없이 돌아와도 나는 다시 무심한 얼굴로 고향 언덕을 산책하는 그 애를 보게 되고는 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그 운명은 ― 한 재능 있는 시인을 거리의 부랑자로 만들고 또한 날카로운 예지의 철학도를 무기력한 중등 교사로 만들어 버린 그 운명은 내게서도 그 발단을 만들고 말았다. B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어느 여름 토요일, 나는 어쩌다 막차를 타고 귀향하게 되었는데, 그 차가 고향을 20리 앞두고 고장이 남으로써 예상보다 일찍 내게 도달하고 말았다.
걷기에 익숙하거나 갈 길이 바쁜 사람들은 버스 수리가 지연되자 하나씩 둘씩 내려서 걷기 시작하였지만, 무엇 때문인지 잔뜩 지쳐 있던 나는 그대로 차가 수리되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그 애도 버스에 타고 있었다. ……사뭇 모르고 있었지만 이윽고 텅 비게 된 버스 앞자리에 앉은 것은 분명 그 애였다. 여고생의 제복에 싸여 나만큼이나 지친 듯한 표정이었다
처음 그 애를 발견한 순간부터 내 가슴은 세차게 뛰기 시작했다. 지금껏 그 확실한 이유는 모르지만 짐작건대 지는 햇살에 발갛게 물든 그 애의 얼굴이 너무도 아름다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그때껏 내 기억에 남아 있던 그 애의 아름다움 ― 학예회 무대에서 하얀 의상을 입고 조그만 나비처럼 팔랑팔랑 춤을 추던 그 애의 ― 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아름다움이었다.
마침내는 우리들도 차에서 내려 걷지 않을 수 없었다. 차장이 수리가 불가능함을 알리며 하차(下車)를 부탁한 데다 날은 점점 저물어 와 우리들도 다급해졌기 때문이었다. 남은 것은 어둡고 먼 시골길이었다. 도중에는 대낮에도 으스스할 정도로 참나무붙이가 무성한 언덕이 있었고, 흐린 날은 귀화(鬼火)가 번득이고 때로는 은은한 곡성까지도 들린다는 공동묘지도 있었다. 처음에는 서로 어색해서 평범한 얘기들을 그것도 띄엄띄엄 주고받던 우리들도 그런 곳을 지날 때는 어쩔 수 없이 손을 꼭 쥔 채 기대다시피 걷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일단 그런 곳을 지나면 참으로 아름다운 여름밤이었다. 유난히도 별이 총총한 하늘 가운데로 은하수가 곱게 흐르고 있었다. 가까운 숲의 풀벌레 소리와 먼 논의 개구리 울음 또 도로 연변의 호롱불 깜박이는 마을들은 감미롭고 아늑한 정취마저 자아냈다. 그리고 그런 주위의 아름다움은 우리들의 마음을 쉽게 공감으로 일치시켜, 잡은 손도 점점 자연스러워지고 대화도 자연스럽게 풀려 나갔다.
그렇게 걷다가 고향 마을이 10리쯤 남은 곳에 이르렀을 때부터 나는 갑작스러운 조급과 혼란에 빠져들었다. 무엇인가 꼭 해야 할 말을 잊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 얘, 나는 말이다. 너를 오래 전부터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그러나 약간은 조숙해도 나는 역시 열일곱 소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 말은 내 생애에서 처음 하는 말이며 ― 게다가 나는 고향의 풍토에, 그런 말을 그 애에게 해서는 안 된다는 완고한 그 율법에 익숙해 있었다. 곧 그래도 그걸 말하고 싶다는 욕망과 그 욕망을 저지하려는 이성(理性) 간에 맹렬한 난투가 심중에서 벌어졌다. 그리하여 집에 이르는 그 나머지 길은 그런 내면의 갈등으로 취기와도 흡사한 기분에 젖어 나는 걸었다. 몇 번인가 혼신의 힘으로 더듬거려 그 애를 불러 놓고 다시 어색한 침묵에 빠져드는 것이 그때 내가 한 전부였다.
이윽고 우리 마을의 낯익은 불빛이 가깝게 다가왔다. 멀리서 귀밝은 동네 개가 우리를 향해 짖는 소리가 들렸다. 그제야 나는 앞뒤 없이 거의 난폭하게 그 애를 끌어안았다.
“얘얘, 나는 말이다. 너를…… 너를…….”
그러나 끝내 그 말을 다 마치지는 못했다. 그 애는 어쩔 줄 몰라하며 그저 가늘게 떨고 있을 뿐이었다.
잠시 후 나는 인사조차 제대로 나누지 못한 채 달리듯 그 애에게서 도망쳤다.
“네가 무얼 생각하는지 알아맞혀 볼까?”
문득 그 애가 나를 빤히 쳐다보며 물어 왔다. 나는 부끄러운 장난을 하다 들킨 아이처럼 당황하며 대답했다.
“맞춰 보렴.”
“그 여름밤이지?”
그런 그 애의 표정에는 적의 없는 조소와 동정이, 또 어떤 그리움 같은 것과 함께 미묘한 음영을 이루고 있었다.
“정말 얼마나 놀랐던지…… 그러나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내가 미처 깨닫기도 전에 너는 달아나고 없었지.”
나도 겸연쩍게 웃었다.
“그러나 ― .”
그 애는 쓸쓸한 표정으로 잔을 들며 계속했다.
“이제는 슬플 것도 괴로울 것도 없는 우리들의 그 마지막 밤을 위하여.”
이번에는 내가 항의할 차례였다. 하지만 나는 잠자코 잔만을 비웠다. 돌연스러운 취기가 그녀의 상기(想起)로 강렬하게 되살아나는 그 마지막 밤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었다. 아아, 그래도 아직은 두고 오래 사랑하고 싶은 이여…….
그 뒤 우리는 제가끔의 인생을 사느라고 오래도록 서로 만나지 못했다. 비록 그 여름밤의 일은 인상 깊은 것이기는 하였지만, 또한 그만큼 즉흥적이고 돌발스러운 것이기도 하여서 우리에게서 지속적인 열정을 끌어내기에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그때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곧 치열한 입시 준비에 들어갔고 뒤이은 대학 생활의 분망함 속에 몇 년간 거의 그 애를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4년이 지나서야, 그러니까 내 나이 스물하나였을 적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그때 나는 법대생이면서도 머리는 근거 없는 허무주의에 처박고 두 발은 탐미적 생활의 진창을 질퍽거리며 보낸 그 몇 년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왔던 것인데, 홀로 남은 노(老)여왕 때문에 진학을 포기했던 그 애는 그 여원에서 그야말로 ‘따분한 인생 ’을 실습하고 있었다. 사랑방은 전례대로 개방되어 있었지만 이미 기사다운 기사는 남아 있지 않았다. 문중의 해체와 산업사회의 발달은 쓸 만한 젊은이가 고향에서 빈둥대는 것을 더 이상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렇게 만난 우리들은 아무런 앞뒤 연관 없이 마치 오래 전에 묵계된 것을 실천이나 하듯, 이내 서로에게 열중해 버렸다.
역설 같지만 나는 먼저 그 애의 무관심을 ― 내가 그렇게 사뭇 미쳐 왔고 지금도 아직껏 헤어나지 못한 그 언어에 대한 무관심을 ― 기뻐했던 것 같다. 주저 없이 외설스러운 말을 할 수 있고, 잔신경 씀이 없이 술잔을 나눌 수 있는 그 애와의 분위기를 나는 좋아했고, 그리고 무엇이든 허심하게 대하고 정직하게 받아들이는 그 애를 바라보면서 그때껏 내가 얼마나 변덕 많고 비뚤어지고 신경질적인 도회의 숙녀들에게 학대받았는가를 알았다.
둘이 있을 때면 함부로 불어 대던 그 애의 휘파람 소리, 또 백치(白痴) 같은 그 애의 웃음소리를 나는 유쾌하게 들었으며, 그 애의 얼굴을 일견 우울한 것으로 만드는 긴 코와 하이힐만 신으면 나보다 더 커 버릴 키를 매일 놀려 대면서도 그 애와 나다니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그 아늑함과 포근함 ― 고향 뒷산 같은 데서 그 애의 무릎을 베고 누워 떡갈잎 사이로 터진 푸른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면 비로소 나는 ‘아, 고향에 돌아와서 쉬고 있구나.’ 하는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그 애에게는 ― 글쎄 내가 어떠하였는지 모르겠다. 그 무렵 여원에서의 나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은 내가 굉장히 요란스러운 기사(騎士)였을 것이란 추측뿐이다. 나는 실로 훌륭한 어릿광대였으며, 시인이었고, 술꾼이며, 철학자였고 ― 그리고 그 여원이 필요로 하는 모든 등장인물이었다.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지만, 아마도 그것은 노(老) 여왕의 은밀한 관찰로부터 그 애와 나를 은폐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파국은 우리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오고 있었다. 그것은 먼저 내부로부터 온 것이었다. 우연히 두 손을 마주 잡거나 돌연한 기쁨으로 무심중에 얼싸안고 뺨을 부빈 것만으로도 감격으로 몸을 떨던 나는 점차 스스럼없이 그 애 무릎을 베게 되었고, 저녁 으스름 속을 산책할 때는 그 애 허리에 팔을 감기까지 되었다. 그리하여 그 전의 기사(騎士)들이 한결같이 퇴각해 버린 선에까지 이르러서도 나는 물러설 줄 몰랐다 나는 불륜(不倫) 이래도 좋을, 그 애의 몸과 마음 모두를 가지고 싶다는 욕망을, 그것도 맹렬하게 품기에 이르렀다. 금단(禁斷) 앞에서 더욱 치열해지는 인간의 기묘한 정념이었다. 물론 본능적인 죄의식이나 격심한 가책으로부터 오는 괴로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것도 불면(不眠)의 한밤으로 그뿐, 이튿날 아침이면 벌써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 무렵부터 파국의 조짐은 외부로부터도 나타났다. 나는 몇 번인가 내 큰형으로부터 침중한 경고를 받았다.
“그 집에는 무언가 우리를 미혹시키는 것이 있어. 특히 우리 집안의 섬세한 감정을 헝클고 턱없는 격정을 유발시키는 그 무엇이. 하지만 또한 기억해야 해. 그녀들에게는 우리가 도저히 흉내 낼 수없는 어떤 냉철함과 꿋꿋함이 있다는 걸. 우리가 나머지 인생을 상처 입고 피 흘리는 동안에도 그녀들은 무엇 하나 손상당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갈 수 있는 ― 비정(非情)과도 흡사한 그 무엇이…….”
멈추어야 할 곳에서 멈출 줄 모르는 우리를 민망히 여기던 노(老)여왕도 점차 질책의 눈으로 우리를 보게 되었고, 몇 안 남은 문중(門中)도 조심스레 우리에 대한 의심을 주고받았다. 그러다가 우리의 자제를 단념 한 노(老) 여왕의 결단으로 파국은 끝내 결정적인 것이 되었다. 여왕은 나의 출입을 정식으로 거절하는 한편 그 애의 맏언니를 적당한 구실로 불러들여 그 애의 감시 역을 맡게 했다.
잠시 암담한 절망과 불같은 자포자기의 나날이 흘렀다. 그러나 이미 고삐 잃은 나의 격정은 일찍이 그 어떤 기사도 생각지 못한 대담한 계획을 꾸미게 하였다. 우리에게 부당한 압제를 가하고 있는 고향과 혈연으로부터 그 애와 함께 영원히 떠난다는 계획이었다. 그런 내 계획은 우리가 사전에 정해 둔 은밀한 방법으로 그 애에게 전해져 이내 동의로 돌아왔다. 이미 우리들의 사랑은 작은 불륜(不倫)도 아니었다. 우리는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헤어져 슬퍼하며 사느니보다는 차라리 마주 보고 우는 별이고 싶었다.
그 밤 ― 이 우울한 밤의 발단인 그 밤도 비는 이 밤처럼 억수로 퍼부었다. 우리들 두 용감한 패덕자는 그러한 빗속을 뚫고 각자의 집을 빠져나왔나 그러나 미처 고향 동구도 벗어나기 전에 그 애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알지 못할 두려움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무래도 무서운 저주가 우리와 함께 출발하는 것 같애. 길고 검은 그림자를 한…… 어쩌면 죽음과도 흡사한 것이…….”
그리고 갑자기 그 애는 내게 매달렸다.
“그래 우리는 어디로 간다는 거야?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는 거지?”
나는 그런 그 애를 격려하듯이 껴안고 가만히 입 맞추었다. 비에 젖은 차가운 입술이 자꾸만 가련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러자 갑자기 나에게도 우리를 기다리는 전혀 미지의 세계와 그러기에 힘들여 헤쳐 나가야 할 앞날이 생생한 불안으로 덮쳐 왔다. 고향의 분노와 저주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 갈 추문 같은 것들이 몇 날이고 몇 밤이고의 내장한 결심을 여지없이 흔들었다. 나는 잠시 망연히 서 있었다. 무너져 가는 나를 지탱하기라도 하듯 그 애를 껴안은 채 그저 그 순간이 영원이기를 빌고 싶을 뿐이었다.
잠시 후 그 애가 돌연 비길 데 없이 명료한 동작으로 내 품을 벗어났다.
“역시 이대로가 좋아. 아무래도 난 돌아가겠어. 괴롭지만 혼자 가 줘. 나는 네 슬픈 사랑의 연인으로…… 그것으로 만족하겠어. 잘 가 정말로 사랑했던, 사랑했던…….”
울먹이면서도 그 애는 결연히 돌아섰다. 그 결연함이 그대로 어떤 맹렬한 타격이 되어 내 가슴을 치고 지나갔다. 나는 둔중한 고통으로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때 저쪽에서 그 애의 다급한 발소리에 이어 신음 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큰언니.”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도 희끗희끗한 두 그림자가 합쳐지는 것이 뚜렷이 보였다.
이어 구들 자매의 숨죽인 오열이 그대로 내 심장을 찢어 왔다.
“왜 가지 않았니? 바보같이…… 나는 그저 너와 작별하러 나왔을 뿐인데…….”
그러는 두 번째 여왕의 담담한 목소리가 오히려 무슨 준엄한 선고처럼 내 등을 떼밀었다. 나는 달렸다. 이제야말로 그 애로부터, 운명의 오랜 저주로부티 영원히 도망할 때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그것이 그 애와의 마지막이었다. 아아, 이 몽롱한 취기만이 아니더라도 나는 좀 더 아름답고 조리 있게, 또 더러는 애절한 목소리로 우리의 사랑을 추억할 수 있을 것이언만. 그 후의 세월이 얼마나 공허한 것이었고, 얼마나 많은 명정(酩酊)의 밤이 내 아침을 슬프게 하였던가도. 그리고 치금조차도 늦어 돌아가는 도회의 골목길이 얼마나 쓸쓸한가를…….
그 애는 울고 있었다. 나도 소리 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고 서둘러 나머지 술을 비웠다. 그 애가 다시 빈 주전자를 들고 나갔다. 잠시 후 돌아온 그 애의 발걸음은 눈에 띄게 불안정했지만 눈물 자국은 말끔히 가셔 있었다. 나는 주체할 수 없는 격정에서 깨나기 위해 무턱대고 주는 술을 마셨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안정을 회복했을 때 몸은 가늘 수 없이 취해 있었다.
“역시 ― 그러나 잘된 일이었어.”
나는 간신히 힘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비록 나는 이렇게 되고 말았지만, 그래도.”
그때 그 애가 내 말을 가로막았다.
“그만해 둬. 운명이 제 갈길을 간 건데 뮐.”
그리고 상냥스레 나를 부축했다.’
“우울한 대로 아름다운 인생의 삽화(揷話) 였어. 이제 그만 돌아가 봐. 너의 도시로. 그러고 고향이고, 이곳이고, 다시 오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나는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밖은 여전히 세찬 빗줄기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 애의 손에 든 램프에 비친 여원은 온전한 정적 속에 그것 몇 배의 넓이로 확대돼 왔다. 이제 다시는 이곳으로 돌아올 수 없으리란 것이 새로운 숙명처럼 내 머릿속에 자리 잡았던 한 달이 지나면 어느 낯선 그러나 선량하고 근면함에 틀림이 없는 농전(農專) 출신의 남자가 그 애의 남편으로, 언제 돌아올지 모르는 주인을 위해 이 집과 농장을 관리해 나가리란 것도.
대문께에서 나는 불현듯한 애정으로 여원을 다시 한 번 둘러보았다. 그러나 흔들리는 시야에는 만신창이 기사를 전송하는 마지막 여왕의 처연한 자태와 저 사라진 모든 것의 추억처럼 희미한 빛을 내며 그녀의 손에 쥐어져 있는 램프만이 아련하게 클로즈업되어 올 뿐이었다.
(1980년)
2016년 11월 28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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