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P 영어 선생님
들 샘 정 해각
내가 서울에서 H중학교를 다닐 때 MP라는 별명을 가진 영어선생님이 계셨습니다. 이 선생님은 8.15해방 때 이북에서 이남으로 38선을 넘어오신 분으로 미국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처럼 얼굴에 구레나룻 수염이 많이 나있었습니다. MP는 영어로 Military Police의 약자로 즉 군 경찰이란 뜻입니다. 영어선생님이 훈육지도교사직을 겸직하고 계셨기에 이 별명이 붙여진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이듭니다. 일제로 부터 해방된 서울 거리에 산뜻한 카키색 군복을 차려입고 MP라고 쓰여 있는 머리에 쓴 파이버와 왼팔에 낀 완장을 들르고 거리를 활보하고 있는 미 육군 헌병의 모습은 참으로 멋지고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영어시간에 MP선생님이 부리부리한 눈에다 큰 목소리로 야 너! 이거 읽어봐 하고 부르면 주눅이 들어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영어문장을 읽고 한글로 번역해 보라고 하여 잘 못하면 요놈 봐라 하며 꿀밤을 먹이고 앞으로 나오게 하여 두 손을 올려서는 체벌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 영어시간에는 앞자리 피해 가장자리나 뒷자리에 앉으려고 야단이 났었습니다.
저 먼 발치에 그 영어선생님이 보이면 야 저기 MP 봐라! MP야 하고 마주칠까봐 몸을 피하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지금도 그렇겠지만 그 시절에는 영어와 수학을 다른 학과목 보다 더 중요시해 영, 수학을 잘 해야만 공부를 잘하는 학생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음악이나 그림 같은 예능계는 딴따라, 화쟁이 등으로 불려 멸시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영, 수학을 잘 못하는 학생은 주눅이 들어 늘 풀이 죽어서 하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MP 영어선생님은 이북에서 월남하여 오신 교장선생님과 같은 이북출신이라 그런지 죽이마져서 심복이라는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틈틈이 교장선생님 집에 들러서 강심제 주사도 놓아드리고 간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습니다. 그 당시 이북에서 월남해 온 사람들을 38따라지라고 부르고 속으로는 따로 대하고 있었지요.
그 당시에 이남 사람들은 이속을 따지는 일에는 능숙하지 못하고 서툴었지만 이북사람들은 생활력이 강하고 장사에 이골이 나서 남대문 시장과 동대문시장에서 장사수완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차차 양 시장에서 상권을 틀어잡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다니던 6년제 사립중학교도 교장선생님이 이북 출신이라 그런지 선생님의 대부분이 이북출신으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아침 라디오에서 황급한 목소리로 긴급 뉴스가 흘러나왔습니다. 새벽녘 38선 전역에서 이북 공산괴뢰군이 탱크를 앞세우고 기습공격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윽고 일요일이라 휴가 나온 국군장병들은 긴급히 원대복귀 하라는 다급한목소리가 계속 흘러나왔습니다. 6.25전쟁이 끝난 후 MP 영어선생님은 공산군에게 체포되어 끌려갔다는 소식을 풍문으로 듣게 되었으며 그 후 지금까지 감감 무소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