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전 11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사태의 해결을 촉구하는 천주교 사제 · 수도자 5,038명의 선언을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렸다.
이 선언은 6월 24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대표 나승구 신부)과 각 교구 정의평화위원회의 제안을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이용훈 주교)가 7월 1일 받아들이면서 전국으로 확대됐다. 7월 말까지 진행된 서명운동에는 전국 4천여 명 사제 가운데 1,178명이, 1만2천여 명 수도자 가운데 4천여 명이 동참했으며, 선언문과 서명자 명단은 오늘 <경향신문>에 이어 28일 <한겨레>에 전면광고로 발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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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오전 11시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 ‘쌍용자동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염원하는 천주교 사제 수도자 5038인 선언’ 기자회견에 참석한 사제와 수도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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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 사제들은 지난 4월 초, 중구청이 대한문 앞 쌍용자동차 분향소를 철거하고 화단을 조성한 당일부터 오늘까지 140여 일간 매일 미사를 봉헌해 왔다. 그동안 각 교구별로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에 관한 시국선언과 미사는 이어졌지만, 쌍용자동차 사태 해결을 촉구하는 서명에 5천 명이 넘는 전국의 사제 · 수도자가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기자회견에는 안충석 신부(서울대교구), 문규현 신부(전주교구) 등 원로사제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 나승구 신부,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총무 장동훈 신부를 비롯해 100여 명의 사제, 수도자, 신자들이 참여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 이용훈 주교는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하지 못했으나, 인사말을 통해 박근혜 정부를 향해 “약속은 목숨이다. 쌍용자동차 국정조사를 하겠다는 약속을 저버리지 말라”고 요청했다.
장동훈 신부가 대독한 인사말에서 이용훈 주교는 전국 사제 · 수도자 선언은 “지치지 않겠다는 항구한 마음의 표현이자 고통 받는 이들을 두고 떠나지 않겠다는 자기 고백”이라 밝혔다. 이 주교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이 겪는 고난은 자신의 권리와 행복을 온전히 누릴 수 없는 이 땅의 수많은 노동자들과 가난한 이들의 고난”이라며 “이 어려움과 희생이 보다 나은 세상, 인간이 인간에게 ‘위로’일 수 있는 세상을 향한 한 걸음임을 느끼고 자랑스럽게 생각해 달라”고 당부했다.
이어서 이 주교는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정치인에게 “국민들 앞에서 했던 약속을 저버리지 말라”며 “‘경제 활성화를 위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같은 관념의 궁전을 내려와 이 땅 평범한 일상의 애환을 바라보라”고 요청했다.
또한 이 주교는 사제, 수도자, 신자들에게 “여러분의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이요 교회의 마음이다. 부디 기도하는 자의 꺼지지 않는 신뢰와 항구함으로 고통 받는 이들의 곁을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장동훈 신부는 “정부는 우리의 움직임을 무게감 있게 받아들이기를 바란다”면서 “우리는 오늘 이 자리에서 쌍용자동차 사태가 해결될 때까지 절대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 김영미 수녀는 “수도자는 진보도 보수도 아닌, 기도하고 수행하는 사람으로서 복음을 첫째 기준으로 삼는다”면서 “약자들의 아픔을 양산하는 거대한 사회 시스템에 침묵하는 것은 사회적 악을 양산하는데 동조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앞으로도 계속 기도하고 연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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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자 ‘경향신문’에 이어 28일자 ‘한겨레’에 전면광고로 실리는 쌍용차 사태 해결 촉구 서명자 명단 일부. 7월 말까지 진행된 쌍용차 사태 해결 촉구 서명운동에는 사제 1,178명, 수도자 가운데 4천여 명이 동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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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자회견 중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박동호 신부가 발언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박동호 신부는 “시장의 광기를 잠재워야 할 정부가 오히려 철저하게 자본에 봉사하며 야만의 길을 걷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장은 효율을 추구하며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잃어버렸습니다. 이를 조절해야 할 국가는 오히려 시장에 봉사하고, 시장권력과 정치권력은 힘을 합해 시민을 고통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시장도 정치도 윤리적이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모두 사람을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앙인들은 하느님을 닮은 사람을 지키고, 세상을 하느님의 아름다운 창조물로 지키기 위해, 신앙을 증거하기 위해 이 문제에 응답해야 합니다. 쌍용자동차는 상징적 사건입니다. 이를 해결하는 것이 사람이 자본보다 우선한다는 기본적 윤리를 회복하는 첫걸음이라 믿습니다. 사제, 수도자, 교우, 시민 여러분, 모두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드는 데 함께해 주십시오.”
김득중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수석부지부장은 “(구속 중인) 김정우 지부장이 이 자리에 있었다면 울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수석부지부장은 “정리해고 이후 정말 힘들었던 것은 지역사회의 냉대였다”며, 천주교 사제와 수도자, 신자들에게 “모두가 외면하고 있을 때 손 내밀어줘 감사하다”고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는 “170일간 평택 송전탑 밑에서도, 대한문 분향소가 철거됐던 지난 4월에도, 무엇하나 할 수 없는 조건 속에서 또다시 손을 내밀었던 신부님, 수녀님들이 있어서 힘을 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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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회 정만영 신부와 성가소비녀회 이정율 수녀가 선언문을 낭독하고 있다. ⓒ문양효숙 기자 |
기자회견은 “하느님께서는 잊지 않으신다”는 루카 복음 12장 6절로 시작하는 선언문 발표로 마무리됐다.
선언문에서 사제와 수도자들은 “시대의 죄악 앞에 사제와 수도자로 부끄럽게 살아간다”며 “이 시대 모든 노동자들의 눈물은 사제와 수도자들에게 하느님의 고통을 배우는 값진 학교”라고 말했다. 이어서 “쌍용자동차 사태의 진상을 밝힐 국정조사에 대한 박근혜 정부의 약속과 민생에 관한 모든 약속들은 어느 샌가 증발해버렸다”며 “말이 아닌 행동으로, 거짓이 아닌 참으로 이 눈물들에 답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끝으로 “인내와 신실을 다하여 노동자들의 곁을 지키며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질 때까지 또렷이 기억하며 정의롭게 다그치겠다”면서 “애환 없는 정치에 눈물을 가르치고 하느님의 신실함에 세상의 거짓 약속들을 부끄럽게 하겠다”고 결의를 밝혔다.
쌍용자동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염원하는 천주교 사제 수도자 5038인 선언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루카 12,6)
1. 숱한 목숨들이 우리 곁을 떠나갔습니다. 아무도 울지 않았습니다. 단지 상복을 벗을 겨를 없던 동료들의 울음만이 그들의 죽음을 위로했을 뿐입니다. 하지만 떠난 목숨들을 위로하던 눈물이 산목숨들을 지켰습니다. 통곡이 또 다른 통곡을 막은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제야 그들의 눈물에서 병든 사회의 불행한 징후와 내일이 사라져버린 어두운 시대의 절망을, 동시에 인간 위로의 희망을 발견했습니다. 사람들이 모였고 서로를 위로했으며 함께 지켜줬습니다. 눈물이 또 다른 값진 눈물들을 불러 모은 것입니다.
2.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손에 들고 산화한지 사십년 입니다. 한 노동자의 죽음이 시대를 각성케 했습니다. 단 한명의 목숨이 말입니다! 우리의 오늘은 어떻습니까? 그야말로 죽음의 ‘대량화’요, 통곡들의 ‘장기화’입니다. 24명의 목숨에도, 2000일을 넘는 통곡에도, 종탑과 철탑위의 가혹한 인내에도, 140일에 이르는 매일의 기도에도 세상은 보란 듯이 평화롭습니다. 거짓 평화 아래 도구화된 인간노동, 계량화된 인간만이 남았을 뿐입니다. 숫자로 환산된 목숨들 위에 인간 품위의 종말과 시대의 죄악만이 선명합니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렇게 황폐해지고 이처럼 큰 수치를 당하게 되었는가? 우리가 그 땅을 저버렸기 때문이지. 그들이 우리 거처를 짓밟았기 때문이지.”(예레미아 9,18)
3. 시대의 죄악 앞에 사제와 수도자로 부끄럽게 살아갑니다. 목 놓아 울지 못했음을 고백합니다. 때문에 쌍용자동차로 상징되는 이 시대 모든 노동자들의 눈물은 사제와 수도자들에게는 하느님의 고통을 배우는 값진 학교입니다. 또한 “눈꺼풀이 눈물에 젖”(예레미아 9,16)을 만큼 세상의 고통을 하느님의 통곡으로 여기고 곡을 했던 저 예언자들의 마음을 깨닫는 자리입니다. 이제 더는 눈물을 참지 않겠습니다.
4. 정부와 여야 그 누구도 도탄에 빠진 백성들의 소리를 귀여겨듣지 않았습니다. 쌍용자동차 사태의 진상을 밝힐 국정조사에 대한 약속과 민생에 관한 모든 약속들은 어느 샌가 증발해버렸습니다. 제 스스로 ‘국민행복시대’가 얼마나 허망한 정치적 수사였고 기만적 임기응변이었는지를 증명한 꼴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금 당장 ‘경제민주화’, ‘국민대통합’ 따위의 관념의 궁전에서 내려와 평범한 일상들의 애환을 진심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거짓이 아닌 참으로 이 눈물들에 답해야합니다. 그래야만 합니다.
5. “잊지 않으신다”는 하느님의 약속은 머리카락 한 올까지 헤아리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애틋한 돌봄인 동시에 거짓을 일삼는 인간을 당신의 신실함으로 부끄럽게 하는 정의로운 ‘기억’입니다. 오늘 선언에 참여한 우리들은 진실의 말로 약속합니다. 이제 더는 잊지 않겠습니다. 아니 더 이상 한 생명도 잃지 않겠습니다! 또한 인내와 신실을 다하여 노동자들의 곁을 지키며 박근혜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질 때까지 또렷이 기억하며 정의롭게 다그치겠습니다.
그리하여 애환 없는 정치에 눈물을 가르치고 하느님의 신실함에 세상의 거짓 약속들을 부끄럽게 하겠습니다. 주님 저희를 굽어 살피소서.
2013년 8월 26일
쌍용자동차 사태의 조속한 해결을 염원하는 천주교 사제 수도자 5038인 선언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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