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째 전쟁을 치르고 있는 러-우크라 정상들의 신년사는 올해(2025년)에도 극명하게 대비됐다. 꼭 1년 전 푸틴 대통령은 전쟁 승리에 대한 자신감을 표명하며 국민들에게 짧고 굵게 새해 인사를 전한 반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길고 지루하게 진정한 애국 시민이 되어줄 것으로 호소했다.
그리고 2025년 새해를 맞아 푸틴 대통령은 '미래'를 이야기하며 모든 것이 잘 될 것이라고 낙관한 반면, 젤레스키 대통령은 여전히 "평화는 선물처럼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전쟁터에서 벗어나지(탈영하지) 말고, 동원을 피해 해외로 도피하지 말 것을 호소했다.
우라.ru 등 러시아 매체와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12월 31일 오후 3시(모스크바 시간, 러시아 극동 캄카트카 기준으로는 밤 12시) 크렘린을 배경으로 한 신년사에서 "러시아는 21세기의 4반세기(4분의 1세기, 25년)에 많은 커다란 역사적 사건을 겪었으나 국민들이 단결한 덕분에 시련을 극복할 수 있었다"며 "국력 신장과 더불어 국가에 대한 믿음도 계속 강해졌다"고 말했다. 나아가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지만 우리는 이미 달성한 모든 것들에 자랑스러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푸틴 대통령의 신년사 장면/사진출처:크렘린.ru
3분 35초 길이의 푸틴 대통령 신년사는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에 참전중인 군인들을 러시아의 진정한 영웅이라고 부르며, "새해를 맞아 가족과 친구들, 러시아 전역의 수백만 명이 여러분들(참전 군인들)과 함께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조국전쟁(제2차 세계대전) 승전 80주년인 2025년을 '조국수호의 해'로 선포했다"며 "나치 독일을 무너뜨린 세대의 자녀, 손주, 증손자들답게 우리는 참전 용사들의 약속과 전통을 충실히 지키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푸틴 대통령의 신년사에 대해 "집권(1999년 12월 31일 옐친 전대통령의 전격 사퇴로 대통령 권한 대행 취임/편집자) 25주년을 맞아 그의 비전이 주목됐지만, 원론적인 이야기 뿐이었다"며 "전시에도 러시아의 정상적인 일상을 강조하며 장기적 갈등(전쟁)에 러시아 사회를 동원하려는 의지를 보여준 이중적 메시지"라고 해석했다.
그는 또 국민의 주요 관심사인 인플레이션 등 경제적 어려움이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에 대해 일체 언급하지 않고, "새해를 맞아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으며, 모든 것이 잘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앞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반면, 젤렌스키 대통령은 새해에는 "평화는 선물처럼 주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우리는 러시아의 침공을 막아내고 전쟁을 끝내기 위해 모든 것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를 위해 국민들에게 (급증하는 탈영병을 감안한 듯) 군 복무의 의무를 다하고 해외로 도피하지 말 것을 촉구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신년사 장면. 뒤로 보이는 '조국' 기념탑은 우크라이나 국기 색깔로 불을 밝혔다/사진출처:우크라 대통령실
미국 성조기 모양으로 장식된 키예프(키이우) '조국' 기념탑/텔레그램 영상 캡처
그는 새해가 시작되기 직전 우크라이나와 미국 국기의 색상으로 불을 밝힌 '조국' 기념탑(Родина-мать монумент)을 배경으로 "새로운 미국 대통령이 평화를 이루고, 푸틴 (대통령)의 침공을 끝낼 의지와 능력이 있다는 점에 의심할 여지가 없다"면서 "우크라이나가 힘이 있어야 전쟁터와 협상 테이블에서 존중받고, 우리의 주장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스트라나.ua는 젤렌스키 신년사에 대해 "미국과의 관계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줬다"며 "(우크라이나) 전쟁은 (러-우크라) 양쪽 모두 진정해야 하는 대결이 아니라, 러시아만 진정시키면 되는 대결"로 규정했다"고 평가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또 "미국의 새 대통령이 문명 국가(우크라이나)에 대한 미친 국가(러시아)의 전면적인 공격을 종식시킬 수 있다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나는 미국과 함께 러시아를 정의로운 세계로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20분여간에 걸친 그의 신년사에는 2024년 8월 러시아 쿠르스크주 수드자에 진입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시 청사에서 러시아 국기를 제거하는 영상이 배경으로 등장했다. 그러나 또다른 영상은 6년 전 한국산 미사일 발사 장면을 우크라이나의 신형 '삽산(Сапсан) 다목적 전술미사일'의 발사 영상이라고 소개하는 바람에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누가 봐도 똑같은 미사일 발사 장면. 위는 삽산 미사일, 아래는 한국산 현무-2A 미사일/사진출처:텔레그램 캡처, 스트라나.ua
신년사를 본 군사 전문가들은 소셜 네트워크(SNS)에 삽산 미사일 발사 영상은 한국군 관계자가 6년 전 유튜브에 올린 '현무-2A와 MGM-140 ATACMS 미사일 발사 영상'이라고 지적했다. 영상은 보면 이해가 간다.
영국 경제 잡지 이코노미스트는 얼마전 우크라이나가 모스크바에 도달할 수 있는 새로운 미사일 등 총 10개 이상의 미사일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고 보도했는데, 그중 신형 '삽산 미사일'을 신년사에서 강조하려다 실수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