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방송이사장 김장환 목사가 72년 전 6·25 한국 전쟁이 맺어준 은인을 기억하며 지난 5월 21일에 미국 버지니아주 브리스톨에 위치한 Cumberland Square Park를 찾았다.
바로 6·25 한국전 참전용사였던 칼 파워스 Carl Powers)를 기리는 기념비 제막식 때문이다.
칼 파워스 상사 기념비 제막식
제막식에는 브리스톨 지역의 한국전 참전용사인 Bobby Griffin을 비롯해서 Roy F. Castle, Engene S. Hearl 등 이미 90세가 넘는 고령의 참전용사들이 함께 자리를 빛냈다.
그리고 기념비 제막식에는 버지니아주 상원의원 Israel O’Quinn이 함께 했다.
그는 “한국에서 이 작은 마을 브리스톨까지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미국에서조차 잊혀가는 참전용사를 잊지 않고 기념비까지 세워주심에 깊은 감동받았습니다. 칼 파워스의 위대한 헌신과 사랑이 하우스 보이 김장환을 전 세계 침례교총회 총회장까지 이르게 했습니다.
이는 정말 놀라운 사실입니다. 칼 파워스 상사는 어린 소년 김장환의 열정을 보았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유학을 보내줬습니다.
그분의 희생정신이 전 세계의 위대한 복음전도자 김장환 목사를 낳았습니다. 이 이야기는 버지니아주의 큰 축복입니다. 이 먼 길까지 찾아와준 한국인들에게 큰 감사를 드립니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날 제막식에는 김장환 목사의 가족들과 극동방송 운영위원 임원들, 그리고 극동방송 전 직원들 함께 했다.
김장환 목사는 “우리가 머지않아 천국에 가고 이 땅에서 없어진다고 해도 이 기념비는 주님 오실 때까지 남아 있을 것입니다. 점점 참전용사들이 이 땅에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그분들은 하늘로 가고 언젠가는 잊힐 것입니다. 이 기념비를 통해 우리나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머나먼 나라로 날아와 함께 싸워준 우리의 참전용사들이 계속 기억되기를 위해서 기념비를 제작했습니다”라고 기념비 제작의 뜻을 밝혔다.
이번 칼 파워스 상사의 기념비는 재미교포 사업가 홍희경 장로의 전적인 지원으로 제작되었다.
기념비의 주인공은 지금은 고인이 된 미국의 칼 파워스 상사이다.
칼 파워스 상사는 1950년 6·25 한국전쟁을 돕기 위해 한국에 왔다.
칼 파워스 상사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초 경북 경산의 미군 캠프에서 ‘하우스 보이’로서 미군 부대에서 허드렛일하던 소년 김장환을 만났고, 그의 성실함을 보고 1951년 11월 12일 그를 미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김 목사는 그의 도움으로 공부할 수 있었고, 목사까지 될 수 있었다.
파워스 상사는 미국 애팔래치아 산맥의 한 탄광촌에서 태어난 뒤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가난 때문에 한국전쟁 참전을 지원했다.
하지만 한 명의 하우스 보이를 보며 그의 꿈은 뒷전으로 미뤘다. 대학 입학까지 포기하고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생면부지의 소년 김장환을 명문 사립인 밥 존스 고등학교 및 대학교에 이어 대학원까지 무려 8년 동안 도왔다.
밥 존스 대학교에서 김장환은 하나님을 만났고 목사로 소명을 받았다. 하나님을 몰랐던 칼 파워스는 김장환 목사가 전도하여 신실한 기독교인이 되었다.
1979년 성탄절, 김장환 목사는 파워스 상사와 함께 떠난 이스라엘 성지순례 길에 나선다.
그리고 이곳에서 김 목사는 그에게 침례를 베풀었다. 김 목사의 간증이나 집회, 각종 모임에서는 파워스 상사 얘기는 늘 따라다닌다.
심지어 2000년 김 목사는 제19대 침례교세계연맹 총회장에 취임하면서도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이 파워스 상사였다고 고백할 정도다.
그만큼 김 목사 인생에 있어서 파워스 상사는 헌신과 사랑의 표본으로 자리매김해 있다.
칼 파워스 상사는 2013년 9월 21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85세.
김 목사는 칼 파워스 상사의 별세소식을 듣고 단숨에 현지로 달려와 그의 평생 은인의 장례예배 집례를 맡았다.
김장환 목사는 2010년부터 칼 파워스 상사와 김 목사 자신 이름의 영문 첫 이니셜인 ‘P’와 ‘K’를 딴 PK 장학재단을 설립하여 경제 사정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면서 칼 파워스 상사가 실천해온 헌신과 사랑의 사역들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