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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현기증Vertigo ]
1951년, 히치콕 감독은 영화 <열차 안의 낯선 자들> 개봉에 맞춰 센프란시스코를 방문했습니다. 이때 히치콕 감독은 금문교가 펼쳐진 샌프란시스코의 풍경에 반하여 "미국의 파리", "살인 미스터리가 잘 어울릴 도시"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이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가 <현기증>이었습니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브왈로와 토마 나르스자크가 공동집필한 미스터리 소설 <죽은 자들 사이에서>를 원작으로 하고 있습니다. 히치콕 감독은 원래 여주인공인 매들린 역으로 <수색자>, <사이코>,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에 출연했던 베라 마일즈를 원했으나 그녀가 임신하는 바람에 캐스팅이 무산됐습니다. 라나 터너도 후보 중 하나였으나 출연료를 너무 많이 요구해 취소됐고, 최종적으로 킴 노박이 매들린 역에 캐스팅되었습니다.
* 스카티로 분한 제임스 스튜어트
영화에서 2중 인물을 연기하는 킴 노박은 주디 역을 하고 있을 때는 브래지어를 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킴 노박은 이를 '엄숙한 매들린과 자유분방한 주디의 차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킴 노박은 히치콕 감독에게 이 영화의 여러 허점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곤 했는데, 히치콕 감독은 "너무 신경 쓰지 말자고. 이건 그냥 영화일 뿐이니까."라 답했다고 합니다.
다른 때와 마찬가지로, 히치콕 감독은 기계적으로 배우들의 연기를 요구했다고 합니다. 가령 “이렇게 걸어라.”, “팔을 조금 움직여라.”는 식으로 정확하게 연기할 행동만 요구했다고 합니다. 히치콕 감독과 처음 작업한 킴 노박은 배우의 창의력을 억누르는 듯한 히치콕 감독의 요구에 많이 힘들어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히치콕 감독과의 여러 논의 끝에, 적절한 연기를 이끌어낼 수 있었습니다. 후에 킴 노박은 “히치콕 감독과의 작업은 정말 즐거웠다.”고 밝혔습니다.
* 매들린과 주디, 이중 인간으로 나오는 킴 노박
이 영화에서 제임스 스튜어트 배우와 킴 노박 배우는 연인으로 나오는데, 촬영 당시 각각 49세와 24세로, 무려 25살이나 차이가 났습니다. 영화 속에 나오는 수도원은 실제로 존재하나, 종탑은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건물입니다. 매트 페인팅 기법 등을 통해 종탑이 있는 것처럼 연출한 것입니다. 히치콕 감독은 나선형 계단 장면을 다른 곳에서 찍으려 했으나, 제작자 허버트 콜먼의 딸의 조언을 듣고 수도원으로 바꿨다고 합니다. 영화 완성 전까지 영화 제목은 <죽은 자들 사이에서>였는데, 완성 직전에 짧고 강렬한 제목인 <현기증>으로 바뀌었습니다.
<현기증〉은 자신의 잘못으로 종탑에서 떨어져 죽은 주디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남자 주인공 스카티의 모습을 먼 거리에서 잡으면서 냉정하고 갑작스럽게 끝을 맺습니다. 〈현기증〉은 단지 자신이 만들어낸 이상적인 여성과의 환상적인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비극적인 이야기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달인의 경지에 오른 거장 히치콕의 영화의 본질에 대한 솔직하고 깊이 있는 사유가 담겨 있는 영화이기도 한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현기증〉의 진정한 주제이고, 이 영화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걸작으로 평가받게 되는 이유입니다.
* 금문교 밑의 매들린
[ 영화 줄거리 ]
1950년대, 샌프란시스코. 형사 스카티는 용의자를 추격하는 중에, 지붕에서 떨어져 죽는 동료 경찰관을 보고 트라우마가 생겨서 고소공포증에 걸립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 올라가면 현기증에 걸릴 정도로 중증인지라, 스카티는 형사직을 그만둡니다. 그러던 중 옛 친구 앨스터를 만나는데, 앨스터는 스카티가 전직 형사임을 이유로 자기 아내를 미행해 달라는 부탁을 합니다. 스카티는 차라리 탐정을 쓰라며 거절하지만, 앨스터는 자기 아내가 유령에 홀린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선 미행을 통해 상황을 알아보자고 하며 스카티가 미행을 해주기를 부탁합니다.
* 가짜 매들린
스카티는 앨스터의 아내 매들린을 미행하기 시작합니다. 매들린을 뒤쫓다보니 실제로 매들린이 유령에 홀려 있는 것 같은 여러 상황들을 접합니다. 그 와중에 금문교 밑 바닷가에서 물속에 뛰어드는 매들린을 구출하고, 이를 통해 스카티는 매들린과 사랑의 감정을 갖게 됩니다. 스카티는 매들린의 정신병 가능성까지 열어두며 매들린의 증상을 파헤치려고 하나, 문제는 오히려 복잡해져만 가고, 급기야 매들린과 사랑에 푹 빠지기까지 합니다. 스카티는 어떻게든 매들린을 유령(또는 정신병)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려 최선을 다하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결국 매들린은 교회 종탑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하고 맙니다. 스카티는 자신의 고소공포증 때문에 종탑에 제대로 올라가지도 못하고 사랑하는 매들린이 죽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 겁니다.이때의 충격과 죄책감으로 완전히 폐인이 되어버린 스카티는 한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나옵니다. 퇴원 후에도 매들린과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한 스카티. 그러던 어느 날, 매들린과 외모가 똑같은 주디라는 여자를 만나고, 환상에 사로잡힌 스카티는 다짜고짜 주디와 인연을 맺습니다. 그런대 사실 주디는 죽은 줄 알았던 매들린이었습니다. 애초에 모든 것이 친구 앨스터가 꾸민 음모였습니다.
* 가짜 매들린에 걸려든 스카티
아내와 똑같은 외모의 주디를 꼬셔서 자기 아내를 연기하게 하면서 유령에 홀린 듯 한 행동을 하게 하고, 실제 아내는 미리 죽인 다음 종탑에서 떨어트린 것이었습니다. 물론 주디는 종탑에 올라가는 연기를 한 것입니다. 앨스터는 아내의 죽음을 꾸며내기 위해서, 스카티를 아내 죽음의 목격자로 이용한 것이었습니다.그러나 스카티는 주디가 매들린을 연기했었다는 걸 모르고 계속 만나고, 주디는 이 모든 음모를 알면서도 만남을 가집니다. 여하튼 그 둘은 연인이 됩니다. 그러나 스카티는 죽은 매들린에 집착해 주디를 자기가 사랑했던 매들린과 똑같은 외모가 되도록 어떻게든 노력하여 매들린의 옷과 헤어스타일을 주디에게 강요합니다.
* 매들린을 잊지 못하는 스카티
퍼거슨의 집착을 못 견딘 주디는 어쩔 수없이 퍼거슨의 부탁을 들어줍니다. 한편으로는 주디도 스카티를 사랑해서 그의 요구를 마지못해 들어줍니다. 허나 결국 진실이 밝혀지고, 스카티는 주디를 그 종탑위로 끌고 가 왜 그랬냐며 거칠게 추궁합니다. 주디는 매서운 퍼거슨의 모습에 당황하고 키스로 퍼거슨의 입을 막으려고 하나, 그때 갑자기 나타난 수녀에 놀라 주디는 종탑에서 떨어져 죽습니다.
* 스카티의 강요로 매들린으로 분한 주디
[ 미국 국민배우였던 제임스 스츄어드 ]
얼빠진 모습에 머뭇거리는 말투로 소박하면서도 겸손한 매력을 지닌 배우 제임스 스튜어트는 1940년대 당시 대부분의 주연급 배우들이 지녔던 교양과 젠체하는 영웅주의가 부족했던 배우였지요. 스튜어트는 이웃집 신사 같은 소박함과 편안함을 지닌 배우였고, 그가 지닌 그러한 인간적인 매력은 그가 1930-80년대에 걸쳐 오랜 기간 활동할 수 있게 했으며, 영화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경력을 지닌 배우 중의 한 명이 될 수 있게 했습니다.
제임스(지미) 스튜어트는 1932년에 프린스턴 대학교 건축학과를 졸업했습니다. 프린스턴 대학교 시절, 스튜어트는 일찍이 자신의 연극적 재능을 발견했고 1930년대 말부터 연기를 시작합니다. 작은 역할들을 몇 번 맡다가 프랭크 카프라 감독의 <우리들의 낙원(1938)>에서 괴짜 가족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인물로 첫 주요 배역을 맡게 됩니다. 이듬해 그는 같은 감독인 카프라의 <스미스 씨 워싱턴에 가다>에서 부패한 정치가들의 가면을 벗기는 시골 출신의 순수한 인물로 탁월한 연기를 선보이게 됩니다.
* <스미스씨 워싱턴에 가다>에서
캐리 그랜트와 캐서린 헵번과 함께 출연한 세련된 코미디 <필라델피아 스토리(1940)>에 출연하여 오스카 남우주연상을 받게 됩니다. 당시에는 최연소 수상이었다고 합니다. 수상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면서 참전하게 됩니다. 실전에 지원한 최초의 할리우드 스타였죠. 2차 대전에 참전한 미국이 징병제로 전환하자 스튜어트는 신체검사를 받았는데 체중미달로 불합격을 받자 트레이너를 고용해 몸무게를 늘였다고 합니다. 스파게티와 밀크셰이크를 잔뜩 먹고 다음 신검이 있기 36시간 전부터 화장실을 한 번도 안 갔다고 합니다. 62kg까지 늘렸는데도 미달이었고 결국 군의관에게 사정을 해서 합격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1941년 3월 육군 항공대의 조종 특기 사병으로 군 복무를 시작했는데, 이는 지난 1935년 개인 항공 자격증을 취득한 데 따른 것이었습니다. 이후 그는 비행 훈련을 마치고 1942년 1월 장교로 임관, 전선에 배치되었습니다. 그는 스타 영화배우라 하여 후방에서 사무직으로 근무하거나 위문공연을 하지 않고, 실제로 유럽전선에서 여러 번 폭격작전에 참가하여 공적을 쌓았습니다. 입대 후 4년 만에 대령으로 까지 진급했습니다.
* 예비역 공군준장 제임스 스튜어트
전쟁이 끝나면서 제대 후 배우로 복귀한 뒤에도 아이젠하워와 린든 존슨 대통령 시절, 상원의원과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마 권유를 받았으나 거절하였다고 합니다. 1959년 7월 23일 미 예비공군(AFRC) 준장으로 진급하였습니다. 이는 아직까지 헐리우드 스타들 중 가장 높은 군 계급입니다. 또한 그의 의붓아들은 베트남전에서 전사했습니다.
이는 매파의 상징인 존 웨인이 징집을 피해 전쟁영화 출연으로 때운 것과 좋은 비교가 됩니다. 전쟁이 끝난 후의 첫 영화는 역시 카프라 감독과 함께였습니다. <멋진 인생(1946)>은 좀 더 어두운 분위기를 띤 영화로 은행원 역할의 스튜어트가 소도시 삶의 좌절과 실망들을 겪습니다. 이전에 스크린에서 보이던 그의 캐릭터는 서민적이었고 그의 호리호리한 체격과 느린 말투는 소시민적 도덕적 가치관을 구현했었으나 이제 그의 연기범위는 더욱 확대되어 갑니다.
* <이창>에서 그레이스 켈리와...
<분노의 강(1952>과 <운명의 박차(1953)>, <라라미에서 온 사나이(1955)>를 비롯한 이 시리즈에서 스튜어트의 캐릭터는 충동과 강박관념에 내몰리고 거의 살인적인 난폭함을 터뜨리는 인물로 출연하기도 합니다. 처음으로 출연한 히치콕 영화 <로프(1948)>에서 그는 자신의 제자들이었던 냉담한 두 젊은이가 저지른 살인을 밝혀내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 스튜어트는 캐리 그랜트와 함께 히치콕이 가장 신뢰하는 주연 배우가 됩니다. 그랜트에 비해 덜 로맨틱한 스튜어트는 사근사근한 그랜트보다는 훨씬 내면적 고통에 시달리는 인물을 연기했다는 평이었습니다.
<이창(1954)>에서 그는 다리가 부러져 자리에 묶여 있는 사진가로 출연해 아파트 창문을 통해 살인사건을 관찰하는 한편 그레이스 켈리와의 까다로운 로맨스를 이어가기도 합니다.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1956)>에서는 여배우 도리스 데이와 함께 파렴치한 스파이들에게 아이를 유괴당한 아버지 역을 맡았습니다. 그의 가장 뛰어난 역할 중 하나는 히치콕의 <현기증(1958)>의 경찰관 역할이었습니다. 그는 한 여자(킴 노박)에게 위험하게 집착하게 되는 한편 그의 일을 방해하는 고소공포증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역할을 합니다.
* <현기증>에서
후에 그는 존 포드 감독의 <투 로드 투게더(1961)>에서 말수 적은 독특한 태도를 지닌 부패한 보안관을 연기 했고, 이어서 포드의 <리버티 벨런스를 쏜 사나이(1962)>에서는 서부의 젊은 변호사였다가 총잡이로서의 가짜 명성을 발판으로 상원의원이 된 역을 맡기도 했습니. 스튜어트는 할리우드의 화려함을 싫어했고 스포트라이트 받는 것을 질색으로 여겼다고 합니다. 대다수의 동시대인들과는 달리 사치스러움과 값비싼 자동차 같은 것에도 현혹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일생동안 아내 글로리아에게만 전념했고 1994년 그녀가 3년 먼저 세상을 떠났을 때 참으로 슬퍼했었다고 전해집니다.
* <리버티 발란스를 쏜 사나이>에서 리 마빈(왼편)과 존 웨인(오른편)과 함께
제임스 스튜어트는 우파적 대의들을 지지한 강경한 공화당원이었습니다. 언젠가 가장 친한 친구이자 상당히 진보적인 헨리 폰다와 정치에 관한 문제로 주먹질까지 오고 간 적이 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두 사람은 그 일로 우정이 깨지는 않았지만 다시는 정치에 관해 논쟁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얘기도 전해옵니다. 트루먼 대통령은 스튜어트의 열렬한 팬이었는데. 자신에게 아들이 있었다면 꼭 지미 스튜어트 같기를 바랐을 거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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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옛 시절 즐겁게 보았던 영화 생각도 나고...
8년전 이던가.. San Francisco 관광 했던 추억들...
제임스 스튜어트 배우가 미공군 준장이었다고~?!
또 친구와 정치로 우정이 깨질 번 했다고~!!! 감동적이다~!!!
우리 사이에 정치, 종교, 등등.. 논쟁은 하지 말아야지요~!!!
이제 유장군이 단골 댓글러가 됐네요. 지미 스튜어트가 예비역 공군준장
이었다는 신선한 얘기를 접하고 유장군 생각이...애국을 입에 달고 살던
존 웨인과는 달리 2차대전이 터지자 폭격기 승무원으로 자원해서 유럽전
선에 참전했던 스튜어트의 애국심이 새삼...
스튜어트와 논쟁을 벌였던 헨리 폰다는 할리우드에서 진보적 지식인으
로 널리 알려져 있지요. 딸 제인 폰다가 어렸을 때 흑인을 니거(깜둥이)라고
했다가 아버지 헨리 폰다로부터 눈에 불이 번쩍 나도록 따귀를 얻어 맞았다
는 얘기가 회자되어 왔지요.
무더위에 건승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