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27(수)■
(욥기 10장)
1 내 영혼이 살기에 곤비하니 내 불평을 토로하고 내 마음이 괴로운 대로 말하리라
2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3 주께서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을 학대하시며 멸시하시고 악인의 꾀에 빛을 비추시기를 선히 여기시나이까
4 주께도 육신의 눈이 있나이까 주께서 사람처럼 보시나이까
5 주의 날이 어찌 사람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해와 같기로
6 나의 허물을 찾으시며 나의 죄를 들추어내시나이까
7 주께서는 내가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시나이다 주의 손에서 나를 벗어나게 할 자도 없나이다
8 주의 손으로 나를 빚으셨으며 만드셨는데 이제 나를 멸하시나이다
9 기억하옵소서 주께서 내 몸 지으시기를 흙을 뭉치듯 하셨거늘 다시 나를 티끌로 돌려보내려 하시나이까
10 주께서 나를 젖과 같이 쏟으셨으며 엉긴 젖처럼 엉기게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11 피부와 살을 내게 입히시며 뼈와 힘줄로 나를 엮으시고
12 생명과 은혜를 내게 주시고 나를 보살피심으로 내 영을 지키셨나이다
13 그러한데 주께서 이것들을 마음에 품으셨나이다 이 뜻이 주께 있는 줄을 내가 아나이다
14 내가 범죄하면 주께서 나를 죄인으로 인정하시고 내 죄악을 사하지 아니하시나이다
15 내가 악하면 화가 있을 것이오며 내가 의로울지라도 머리를 들지 못하는 것은 내 속에 부끄러움이 가득하고 내 환난을 내 눈이 보기 때문이니이다
16 내가 머리를 높이 들면 주께서 젊은 사자처럼 나를 사냥하시며 내게 주의 놀라움을 다시 나타내시나이다
17 주께서 자주자주 증거하는 자를 바꾸어 나를 치시며 나를 향하여 진노를 더하시니 군대가 번갈아서 치는 것 같으니이다
18 주께서 나를 태에서 나오게 하셨음은 어찌함이니이까 그렇지 아니하셨더라면 내가 기운이 끊어져 아무 눈에도 보이지 아니하였을 것이라
19 있어도 없던 것 같이 되어서 태에서 바로 무덤으로 옮겨졌으리이다
20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
21 내가 돌아오지 못할 땅 곧 어둡고 죽음의 그늘진 땅으로 가기 전에 그리하옵소서
22 땅은 어두워서 흑암 같고 죽음의 그늘이 져서 아무 구별이 없고 광명도 흑암 같으니이다
(묵상/ 욥 10:1-22)
◆ 욥의 기도
(2) 내가 하나님께 아뢰오리니 나를 정죄하지 마시옵고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은 하루하루가 지옥 같지만, 그래도 한 가지만 알면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나님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러시는가?
욥에게 가장 큰 고통은 자녀을 잃은 고통이나 피부병이 아니다.
하나님의 침묵이다. 그게 가장 큰 고통이다.
선지자들과 성도들도 수많은 고통과 고난을 겪었다. 에스겔은 단지 선지자란 이유로 아내를 잃어야 했고, 예레미야는 수 없는 조롱을 견뎌야 했다. 바울은 돌에 맞고 채찍에 맞으며 감옥에 갇히기도 여러 번 했다. 그렇지만 그들은 기꺼이 감당했고, 심지어 환난 속에서 찬양할 수도 있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침묵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가장 어려운 상황에서 단 한마디, 오직 한마디만 해주시면 된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사 41:10)
그런데 욥은 감히 그런 위로를 바라지도 않았다.
그냥 왜 이러시는지 이유만 알려주시면 만족하겠다고 호소한다.
욥은 치열하게 하나님께 묻는다.
"무슨 까닭으로 나와 더불어 변론하시는지 내게 알게 하옵소서"
욥은 벌레처럼 티끌에서 꿈틀대는데, 하나님께서는 침묵하고 계신다.
그래도 욥은 하나님은 과연 계시느냐는 멍청한 회의에 빠지지는 않았다.
적어도 욥은 그런 수준은 아니다.
그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은 너무나 명백하게 살아계신다. 이것이 칭찬받을만한 욥의 믿음이다.
단지 그는 '왜?'라는 질문을 던졌을 뿐이다.
◆ 욥의 소박한 소원
(20) 내 날은 적지 아니하니이까 그런즉 그치시고 나를 버려두사 잠시나마 평안하게 하시되
욥은 하나님께 백번 양보하고 아주 소박한 소원을 호소한다.
본인도 살고 싶은 마음이 없고, 또 얼마 안 있어서 죽을 텐데, 최소한 죽을 때까지만이라도 더는 괴롭히지 마시고 그냥 내버려달라는 것이다.
자기가 무슨 죄를 지어서 이렇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최소한, 이 정도는 들어주셨으면 좋겠다.
솔직히 욥의 기도는 심금을 울린다.
나는 욥과 같은 고난을 겪은 적도 없고, 현재도 그러하지만, 욥의 기도는 너무나 생생해서 그의 처절한 감정이 그대로 이입되는 듯하다.
하나님께서 욥을 꼭 이렇게까지 하셔야 했을까?
물론 마귀가 이 모든 고난의 주범이지만, 이것을 허락하신 분이 하나님 아니신가?
욥 개인에게는 혹독한 환난이지만, 사실 욥은 온 인류에게 큰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 사용된 선지자다. 욥만 모르고 있을 뿐이었다. 성경에서 욥기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고난에 대해 지극히 편협한 사고에 머물렀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먼지 구덩이에서 벌레처럼 꿈틀거리며 고통의 신음을 내쉬는 그가 정말 감사하다.
우리는 고통 속에서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느냐는 유치한 질문은 하지 말자. 구원받은 자라면 적어도 그런 수준은 넘었어야 한다. 적어도 욥처럼 '왜 그러시는지'에 대해 치열하게 물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솔직히 어려운 일을 갑자기 당하면 기도도 안 나온다.
기가 막히는데, 무슨 기도가 나오겠는가? 그냥 망연자실해질 뿐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나는 기도가 아니라, 금식한다. 밥맛도 없는데, 그냥 굶는 것이 최고다. 금식은 묵언의 기도다. 어려운 일을 당했다고 믿음까지 흔들리면 안 된다.
만일 우리가 어려운 일을 당한 상황에서도 선하신 하나님을 믿고 감사할 수 있다면!
오, 그게 바로 신앙이다. 그런 자가 진짜 그리스도인이다.
선한 목자되신 주님,
주님은 선하신 분이라는 사실이 언제나 저를 기쁘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저의 모든 상황을 감사합니다.
심지어 저의 부끄러운 과거조차도 감사합니다.
주님은 그것조차도 성숙과 교훈의 도구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