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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2015. 2. 5. 10:12
http://blog.daum.net/minkyg/15688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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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은 '한 고을의 정치는 술에서 보고, 한 집안의 일은 양념 맛에서 본다.'고 했으니, 대개 이 두 가지가 좋으면 그 밖의 일은 자연히 알 수 있다."
400년 전에 이수광(1563~1628) 선생이 쓴 '지봉유설'에 나오는 말이다.
오래 된 나라일수록 그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있다. 영국에 위스키가 있고,
프랑스에 와인이 있고, 멕시코에 데킬라가 있고, 러시아에 보드카가 있고,
중국에 마오타이가 있다. 모두 국주라는 영예로운 찬사를 받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는 경제 활동 인구의 10퍼센트가 와인과 직, 간접적으로
연관된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니, 국주라는 이름에 값하고도 남는다.
이들 나라에서 제 나라 술에 들이는 정성은 놀라울 정도다.
1999년에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한국을 방문한 것도 양주협회 사람들의 후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행사를 치르고 나면 신문 한 귀퉁이에
"지난 4월 방한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축하 만찬에서 마셔 위상이 드높아진 고급 위스키 윈저 프리미어는 스코틀랜드 하일랜드 지방의......"라는
식의 기사가 실리게 마련이다.
1997년부터 3년 동안 영국과 미국이 중심이 되어 한국의 주세를 문제삼은
세계무역기구(WTO) 주세 분쟁 때의 일이다. 이 분쟁은 자국의 양조업자들을 옹호하기 위한 무역 강대국들의 한국 침공이었다. 그때 세계 무역기구 재판관 세 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미국을 포함한 유럽 대표 열 명과 한국 대표
열 명이 번갈아가며 토론을 벌였다.
한국 대표는 주장했다. "소주와 위스키는 원료, 제조법, 규격, 도수, 가격,
소비자층 등 모든 것이 다르다. 똑같은 게 하나도 없는데 어떻게 주세율을
맞추자는 거냐. 조세는 주권이다. 제 나라 형편에 맞게 제정하는 것이다.
부당한 내정 간섭을 하지 말라." 그러나 먹혀들지 않았다.
한국 대표로 참여한 안동세무서장 서현수 씨는 그때 일을 이렇게 술회한다. "그들이 얼마나 무섭냐 하면 자기 대사관 직원들을 풀어서
국내 시장 조사를 다 했습니다. 우리가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이 담긴
사진을 제시했습니다. 우리가 위스키는 유흥업소에서 주로 소비하는
고급 술이라고 하면, 저들은 한정식집에서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이 담긴
사진을 제시했습니다.
대사관 직원들이 술을 시켜놓고 찍은 기념 사진이었죠. 희석식 소주와 3년
이상 숙성시키는 위스키와는 제조 방법이 다르다고 하면, 저쪽에서는
참나무통 맑은 소주의 광고가 실린 신문을 제시하더군요. 위스키도
참나무통에 보관하고 소주도 참나무통에 보관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밀어붙였습니다. 재판관들도 서구 사람이라 팔이 안으로
굽더군요."
분쟁을 불사하면서까지 자기 나라 술을 감싸고 내세우는 게 자본주의
세계 경제의 당연한 선택일지 모른다. 그런데 적어도 그들은 제 나라
술을 두고 몸에 좋지 않다느니, 곡물을 축낸다느니 하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무조건 우리 술을 옹호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려는 것은 아니다. 술의 문제점을 지적할 수 있지만, 술 자체를 무시할 필요는 없다. 좀더 바람직한
방향으로 술 문화를 가꾸면서, 우리 술을 부양해야 한다.
세계적인 명주를 가지려면, 우선 우리 스스로 우리 술에 대한 자부심이 필요하다. 세계적인 명주는 한 사람이 만든 술도, 한 회사가 만든 술도 아니기
때문이다.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만들고, 한 나라의 국력이 만들기 때문이다.
2000년 6월 15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으면서,
그 만찬장의 건배주로 쓰였던 문배주가 각광을 받았다. 멀게는 이강주가 1882년(고종 19년) 한미수호통상조약 때에 사용되었다고 전해온다.
2000년 10월에 열린 제3차 아시아, 유럽 정상회의(ASEM) 만찬장에는
인삼주가 건배주로 쓰였다.
2000년 10월 20일 청와대 만찬장으로 잠시 가보자. 김대중 대통령은
인사말을 이렇게 마무리 지었다.
"앞으로도 아셈이 아시아와 유럽 간 협력의 중심체로서 더욱 큰 역할을 해나갈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오늘 여러분께서는 먼 여정의 피로에도 불구하고 장시간 바쁜 일정을 보냈습니다. 여러분 모두 지금 이 시간, 편안한 마음으로 만찬을 즐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곧 이어질 문화 공연을 통해서 5000년 한국 문화의 숨결을
맛보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끝으로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분들의 건강과
행복, 이번 정상회의의 성공, 그리고 아셈의 영원한 발전과 회원국들의
번영을 위해 축배를 제의하고자 합니다. 건배! 감사합니다."
만찬장의 건배주로 선정된 것은 금산 인삼주엿다. 금산 인삼주로서는
행운이었고, 그 동안 전통 술을 재현해온 노력의 결실이기도 했다.
그 기회를 한껏 활용해서 금산인삼주 대표 김창수 씨는 회사를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미국에 가서 인삼주 70만 달러어치 수출 계약을 맺고 오기도 했다.
인삼은 흔히 영물이라고 한다. 사람의 발소리를 듣고 큰다고 할 정도로
사람 손맛을 안다. 지력을 어찌나 빨아들이는지 산비탈에서 한 번 재배하면 지력이 약해져서 다시는 인삼을 재배하기 어렵고, 평지에서는 3년 가량
무논을 만들어 벼농사를 짓고 난 뒤라야 다시 인삼을 재배 할 수
있다고 한다.
예로부터 인삼 하면 개성, 강화, 풍기, 금산이 유명하다. 개성이야 확인해
볼 수 없지만 다른 지역들은 지력을 많이 잃어, 인삼 재배지가 휴전선
쪽으로 북상하고 있다. 하지만 옛 명성은 무시할 수가 없다. 그 중에서
금산 지역은 인삼의 총집결지로 유통의 중심에 있다.
5일마다 큰 장이 서지만, 금산에 가면 언제든지 값싸게 인삼을
구입할 수 있다. 할인점에서 4만~5만원 하는 인삼 한 채(750g)가 금산에
가면 2만원 안팎 한다. 요령이 좋으면 못생겼지만 질 좋은 인삼을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전해오는 얘기에 따르면, 금산에서 인삼을 처음 재배한 것은 1500년 전이라고 한다.
백제 시대에 금산 진악산 기슭의 개안이 마을에 강 처사라는 이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몸져눕자 그는 진악산 정상 부근의 관음굴을 오르내리며 정성껏 기도를 드렸다. 100일째 되는 날이었다. 꿈속에 한 노인이 나타나 빨간 열매가 달린 풀을 가리키며 "이것을 달여드리면 어머니의 병이
곧 나을 것이다."라고 했다.
꿈을 깬 후 강 처사는 온 산을 헤매 다녔다. 그리고 드디어 산벼랑에서 노인이 보여준 풀을 발견했다. 이를 집에 가져가 어머니께 달여드렸더니 벙이 이내 낫게 되었다. 강 처사는 빨간 열매를 집 근처에 심었다. 그곳이 현재의 금산군 남이면 상곡리 개삼터라고 한다.
이 인산 동네에 인삼주가 있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은 집 안에 인삼주 한 병씩은 끼고 있을 것이다. 흔히
소주에 담가놓은 인삼주다. 알코올이 삼투압 작용을 일으켜 인삼 성분을
용해시켜낸 술이다. 우리는 인삼주 하면 이 술을 떠올리지만, 금산 인삼주는 다르다. 인삼을 갈아 넣은 발효주고, 인삼 발효주를 증류한 증류주다.
그래서 술 속에 인삼이 보이지 않는다.
금산 인삼주 제조장은 금산군 금성면 파초리에 있다.
술을 빚는 명인은 김창수 씨다. 그는 금산농고를 나와서 1972년에 금성양조장을 인수하여 막걸리를 빚기 시작했다. 그 당시야 면 단위에서 막걸리말고
달리 빚을 술이 없었다. 그는 막걸리를 빚으면서 인삼 먹걸리를 빚어보기도 했다. 그의 집안에서 인삼주를 빚어왔기 때문이다. 집안 제사나 명절 때
할머니가 인삼주를 담가 재에다가 파묻어두었다. 집안에 전해 내려오는
서책 '주향녹단'과 '잡록'에는 인삼주 제조 방법이 꼼꼼히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인삼막걸리를 빚어 내놓으면 동네 사람들은 특별하게 여기지 않았다. 온통 인삼밭에 둘러싸여 있으니, 술에 인삼이 들어갔다 한들 특별하게
여길 리가 없었다. 어쩌다 외지 사말들이 맛보게 되면 좋다고들 했다.
그는 인삼주를 상품화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키워나갔다.
김창수 씨는 88 올림픽이 열리던 그 무렵부터 인삼주를 문화재로 지정받기
위해서 뛰어다녔다. 그 결과 1994년에 농림부에서 전통식품 명인
제2호로 지정받았고,
1996년에 충청남도에서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제19호로 지정되었다.
면 단위를 대상으로 하는 막걸리 업자에서 전국 시장을 겨냥한
인삼주 명인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인삼약주는 빚는 데 100일 정도 걸리는데, 그는 어디 가서
"제가 담근 인삼주는 백일주입니다."라고 소개하면,
"아하, 저는 5년 된 인삼주가 있습니다."라고 화답하는 사람을 이따금 만난다. 인삼주는 침출주만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답변이다.
그 말에 그는 "5년 된 인삼주를 가지고 계신 선생님께서 명인 지정을 받으셔야 했는데 그랬습니다."하고 우스갯소리를 한다.
인삼약주를 만들려면 우선 누룩에 멥쌀과 물을 넣어 밑술을 만든다.
멥쌀 고두밥을 지어서 식힌 뒤에 누룩과 버무린다.
이때에 고두밥과 누룩이 뭉치지 않도록 잘 비빈다.
사용한는 물은 양조장의 뒷동네인 몰탕골에서 스며든 지하수다.
물탕골 물이 좋아서 생수 공장까지 들어섰는데, 주민들의 반발로 지금은 철수한 상태다.
밑술은 외부 온도가 섭씨 25도일 때에 내부 온도는 32도까지 올라가는데,
되도록 낮은 온도에서 7일쯤 발효시킨다.
밑술이 완성되면, 다시 멥쌀과 고두밥과 누룩과 물을 섞어서 덧술을 만든다. 덧술은 2단계를 거치는데 1단계에서는 전체 분량의 30~40퍼센트 가량
만들어, 효모가 골고루 퍼져 충분히 발효될 수 있게 한다.
10일쯤 지난 뒤에 2단계로 멥쌀 고두밥과 누룩과 물을 다시 넣는다.
이때 잘겐 간 인삼을 넣는데, 간 캔 생삼을 넣어야 향도 강하고 맛도 진하다. 당분이 분해되어 알코올로 변하는 덧술 2단계 과정은 60일이 걸리는데,
이 기간 내내 인삼은 발효라는 화학적인 변화에 동참하게 된다.
이렇게 완성된 술을 여과하면 약주가 된다. 여과를 하기 때문에 술에는
인삼도, 인삼을 간 것도 보이지 않는다. 약주를 걸러내기 전 단계의 진노란 발효주를 증류하면 맑은 소주가 된다. 약주는 국내 시장을 겨냥한
16도짜리와 일본 시장을 겨냥한 12.5도짜리가 나온다. 소주는 43도짜리다.
인삼의 약효로 널리 알려진 성분은 '다마린계 사포닌'이다.
사포닌은 간세포 효소의 유전자 발현을 촉진하는 기능을 한다.
그래서 알코올 해독 능력도 지니고 있다. 곧잘 숙취를 다스리기 위해 인삼을 달여 먹는데, 마시고 나면 머리가 개운해진다.
술에 들어가는 많은 약재가 있지만, 인삼만큼 잘 어울리는 약재도 드물다.
인삼의 쌉싸름한 맛이 술 속에 녹아들어 약주의 단맛을 감싸서 술답게 만들어준다. 인삼 향이 술을 훨씬 깊게 하는데, 문제는 인삼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다.
더구나 인삼은 쉽게 상한다.
생삼을 신문지에 싸서 냉장고에 보관할 때라야 1주일 정도를
두고 먹을 수 있다. 고가품이면서 오래 보관할 수 없으니, 양질의
인삼주를 만들기가 만만치 않다. 그런데 금산 인삼주는 저렴한 가격에
싱싱한 인삼을 공급받을 수 있어서, 인삼주를 표방하는 여타의 술과
비교했을 때에 확실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금산 인삼주의 특징은 인삼의 향과 맛 때문에 따로 감미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또 다른 특징은 살균하는 열처리 과정에서 술의 성분이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약주 회사들은 술을 장기 유통하기 위해서
통상적으로 섭씨 65~70도에서 살균 처리한다. 10여 분간 뜨거운 물에
담그거나 뜨거운 물을 뿌려서 술 속에 살아 있는 미생물의 활동을
정지시키는 작업니다. 민속주 업계에서 통상적으로 쓰는 방법이다.
하지만 살균하지 않은 생주가 훨씬 술맛이 좋고 싱싱하다.
살균은 보관과 유통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일 뿐이다.
그런데 인삼주는 살균 과정에서 특별한 변화를 겪는다.
술맛이 떨어지는 게 아니고, 술맛이 향상된다. 생삼과 홍삼의
차이라고 보면 된다.
막 캐낸 생삼을 증기로 찌면 홍삼이라는 인삼 최고의 가공 식품이 나온다.
그렇듯 생삼을 갈아 넣은 인삼주를 열처리하면 홍삼 성분이 생겨나
술이 더 좋아진다는 것이다
.
인삼약주는 인삼 때문에 담황색을 띤다. 12.5도짜리 약주는 인삼의
쌉싸름한 맛 때문인지, 제 도수보다 더 진하게 느껴진다.
술에서 따뜻한 기운이 돌고 흙내가 풍기는데, 지력을 한껏 빨아들인 인삼에서 우러난 맛이다.
지기르 ㄹ잃고 사는 아파트 생활자들이 마시면 좋을 성싶다.
바로 이 술이 아셈 회의장에서 건배주로 채택된 술이다. 16도 약주는
좀더 독한 대신, 전통적인 인삼주에 훨씬 근접해 있는 술이다.
애주가에게는 아무래도 약주보다는 증류주가 더 관심의 대상일 것이다.
인삼 침출주와 인삼 증류주를 견주어보면 이렇다.
증류주는 무색 투명한데 침출주는 연노란빛이 돈다.
증류주는 43도인데 침출주는 몇 도의 술을 넣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보통 판매하는 과실주용 소주 30도짜리에 인삼을 넣으면
25도 안팎의 술이 된다. 23도짜리 일반 소주에 넣으면
침출주는 20도를 밑돌게 된다.
증류 소주 맛은 아주 날렵하게 화살처럼 목 안 깊숙이 박힌다면,
침출 소주는 둔탁하여 입 안에 털어 넣자마자 확 퍼져버린다.
증류 소주의 향이 콧속을 치고 콧길을 따라 몸 밖으로 빠져나와
은근하게 몸을 감싼다면, 침출 소주는 약재 냄새가 풀풀 날린다.
증류 소주는 술기운이 인삼 기운을 꼬옥 누르고 있어서 인삼이
술 속에 잘 녹아들어 있는 듯하다면, 침출 소주는 인삼을 담가두었다는 것을 뻐기기라도 하듯 인삼의 기운이 술기운보다 더 세게 느껴진다.
총평을 하자면 증류 소주는 프로 선수고 침출 소주는 아마추어 선수다.
김창수 씨가 1994년에 인삼두를 처음 내놓고 시장을 개척할 때다.
그는 인삼주를 들고 술집을 찾아갔다.
술집 주인게 시음을 시키니 술맛이 좋다고 했다.
그래서 "좋으면 팔아주시오." 했더니 술집 주인이 단번에 "못 팝니다."
하더란다. "당신이 좋다고 해놓고 왜 못 팝니까?"
물으니 술집 주인 대답이 이러했다.
"우리 국민들은 양주는 1만원짜리를 10만원에 팔아도 아무 소리 안 합니다. 그러?? 1만원짜리 민속주를 3만원에 팔면 마담 나오라고 소리치고 무슨 술이 이렇게 비싸냐고 따집니다. 우리가 인삼주를 팔아야 할 의무가 있다면 모르지만, 우리도 장사하는 건데 손님이 안 찾는 술을 설득해서 팔아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아무 소리도 없는 양주를 팔지, 맛보고 먹으라면 안삼주를 먹겠지만, 장사하기는 양주가 쉽고 편합니다."
김창수 씨는 음식점에 술을 낼 수 없는 처지에서 술도가를 운영하는
일이 쉽지 않았다.
1~2억원, 3~4억원을 투자해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명절 선물용과 군대 면세점 납품용으로 반짝 나가는 것만 가지고는 술도가를 운영하기가 어려웠다.
평소에 꾸준히 술이 움직여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음식점에 들어가거나
술출이 이뤄져야 했다. 그래서 일본을 겨냥해 12.5도짜리 술을 만들고,
미국 식품의약국의 승인도 받았다.
그러나 자본의 한계에 부딪쳤다. 그저 보존 차원이라면 수요에 맞춰 생산하면 되지만, 하나 둘 일을 벌이다보니 물러설 수 없게 되었다.
술로써 술을 지켜내는 수밖에 없었다.
김창수 씨는 새로운 출자자를 물색했다.
수출도 하고, 일반 음식점에도 유통시키기 위해서는 설비의
자동화와 현대화가 시급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인회사에 선뜻 투자할 사람이 없었다. 회사의 형태를 바꾸지 않는 한 어려웠다.
그래서 주식회사로 전환을 시도했다. 민속주 업체로는
처음 시도하는 일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명인 지정을 해준 농림부에서 제동을 걸었다.
민속주 제조 회사는 주식회사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명인 지정을 받은 사람이 전적으로 권한을 가지고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주식 지부에 따라 언제든지 소유 구조가 바뀔 수 있는 주식회사는 안된다는 거였다.
김창수 씨는 이 문제를 가지고 4개월 동안 농림부와 세무서를 쫓아다녔다.
그는 담당 공무원들을 설득했다. "혼자 힘으로 술도가를 한다는 것은
한계가 분명합니다. 인삼주를 살리려면 출자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놓고
자본을 끌여드여야 할 것이 아닙니까. 그래야 명인도 살고 민속주도 삽니다."
그렇게 설득한 결과 2001년 2월 16일에 주식회사로 전환 할 수 있었다.
다만 민속주 제조 면허증에는 "전통주 처천을 받은 자가 주류를 제조하지
못하는 사유가 발생할 때에는 면허를 취소합니다."라는 조항이 덧붙여졌다.
이제 김창수 씨의 명함은 '금산인삼주 대표'에서
'금산인삼주주식회사 대표이사'로 바뀌었다.
자본금도 36억을 마련하게 되었고, 주주가 100명이 넘는다.
술도가도 건평 600평에 전시장까지 보유한 4층 건물로 새롭게 단장했다.
자동화 설비도 갖춰 1분에 150병, 하루 6시간 작업에 5만 병을
생산할 수 있고, 전국에 대리점도 350개를 확보한 상태라고 했다.
약주 시장에 뛰어들 모든 준비를 갖춘 것이다.
김창수 씨는 새 자본을 유치하는 데 아셈 회의 때에 인삼주가 건배주로
채택된 사실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민속주 업체들이 저마다
자본의 한계와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서
금산 인삼주의 선택은 주목해볼 만하다.
민속주 업계에서는 전례 없는 일을 벌이고 있는 김창수 씨는 자신감에 차서 말한다. "민속주는 현재 선물용으로 80퍼센트가 팔려 나갑니다.
선물용은 내가 먹는 것이 아니고, 남에게 주는 것입니다.
입맛에 맞아서 선호하는 구조가 아니지요.
저는 시중에서 일반 사람들에게 술맛을 평가받고 싶습니다.
음식점이나 슈퍼에서 팔 수 있는 저렴한 술로 승부를 걸고 싶습니다.
수출도 많이 하고요."
모쪼록 우리 나라를 상징하는 고려 인삼으로 빚은 인삼주가
우리 나라를 대표하는 술이 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