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色)은 공(空)과 다르지 않고, 공(空)은 색(色)과 다르지 않고,
색(色)은 즉 공(空)이며, 공(空)은 즉 색(色)이라고 읽습니다만,
이것은 만인에게 알려진 너무나도 유명한 경문입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공(空)』의 이론을 알면,
교의(敎義)의 전부가 해명된 것과 같다고 할 만큼 그 의미는 어렵다고 합니다.
공(空)을
『허무한 것이라든지, 있다고 생각하면 없고. 없다고 생각하면 있다』
라고 해설하고 있는 학자가 있는 것 같으나,
과연 중생은 이런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나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글을 쓴 사람도 알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색심불이(色心不二)』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태대사가 설하셨던 법화경 속에 있는 말입니다만.
법화경 속의 『심(心)』은 허무한 것일까요.
그리고 이 마음의 자세를 『일념삼천』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일념삼천’이란, 우리들의 마음은 무한히 넓고,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를 철학화한 사람들에 의해, 어렵게 설명되고 말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마음을 잃어버린, 두뇌 플레이를 즐긴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마음과 행위를 잃어버린 것은 불교가 아니지요.
하물며, 타력본원의 신앙에 대하여는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이와 같은 불교를 말법이라 하며, 사람의 마음은 고사하고,
지옥계에 떨어진 사람들을 구제하는 것은 불가능하겠지요.
타력본원의 장본인들은, 형식에 구애되고 있습니다만,
배례하는 우상은 꾸밈이 없는 검소한,
집착을 벗어나 있는 모습을 도드라지게 표현한 여래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행이라고 하는 종래의 인습을 답습하여,
자기의 몸과 외견을 꾸미고 있는 것은 어쩐 일인가.
의문을 갖고 있는 一人입니다.
또, 여기가 본산이다. 아니 저 쪽이 본산이다.
나무판 만다라는 진짜다. 아니다 가짜다 라고 싸우고,
막대한 돈을 광신자, 맹신자로부터 모으고,
신의 몸의 일부분인 지구라고 하는 대 신전(=대 자연)에 만족하지 않고,
옳지 못한 돈으로 작은 건물을 산속에 만들거나,
본당을 만들거나 하는 부자연한 교단이나, 승려도 있습니다.
이런 건물을 만들면, 신불이 참으로 기뻐할까요.?
기쁘다고 한다면, 그것은 지구라고 하는 3차원의 세계에 집착을 가지고,
광신자나 맹신자의 마음을 조종하고 있는, 악마나 마왕이나 동물령들의 짓입니다.
신불이 기뻐하는 것은,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들의 올바른 행위입니다.
만약 돈이 있다면, 그것을 대중의 행복이 되도록 방출하고.
구제 사업에 쓰는 것이 진짜의 보시이며, 보살행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보시를 하지 않으면,
광신자나 맹신자에게 벌이 내린다고 협박하는 자도 있지만,
그런 바보같은 일은 절대 없습니다.
태양의 열이나 빛의 에너지가,
가난하다든가, 부자라든가, 지위라든가 명예에 따라, 차별하고 있습니까?
신불은 사람에 따라 한쪽만 편드는 불공평한 짓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만약 그런 일을 한다면, 그것은 마왕이나 동물령들의 짓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팔정도를, 생활의 기둥으로 하고 있는 마음에 구름이 없는 사람들은,
신불의 광명에 의하여 충만되어 있는 것입니다.
벌이란,
자신의 마음과 행위가 중도의 생활로부터 벗어났을 때,
어두운 상념이랑 행위를 낳고,
일념삼천의 마음의 바늘이, 어두운 지옥계로 통해 현상화하는 것입니다.
원인은 어디까지나,
자기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조화한 원한, 질투, 분노, 싸움, 으스댐, 자아아욕, 자기 보존 등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은 지옥계로 통하고,
마음에 평온함이 없이 육체적으로도 부조화하게 되고 말지요.
악(惡)으로 치우친 마음과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에,
벌을 받는 것입니다.
원인과 결과의 법칙,
요컨대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으로,
이것을 생각해보면,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항상 자비깊고, 사랑에 풍부하고, 근면하고, 거짓없고,
감사의 마음을 갖고, 보은의 행위를 실천하고 있는 자들의 마음은,
항상 광명에 감싸여 있습니다.
이와 같은 우리들의 생활 속에,
천상계의 빛의 천사는 그런 사람들의 행복을 위하여, 협력하여 줍니다.
반대로, 마음이 부조화인 사람들에게는
지옥의 마왕이나 동물령들이, 불행하게 만들려고 협력합니다.
어떤 쪽을 선택할 것인가는 당사자가 하기에 달려 있습니다.
미치거나 노이로제에 걸려 있는 사람들이,
이제까지의 인격이 변해 버리는 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거의 지옥령의 짓으로
빙의되어 있는 부조화한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해버리기 때문입니다.
이것에도, 원인과 결과의 법칙이 존재하고 있는 것을 안다면,
자신의 부조화한 마음과 행위를 수정하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 없겠지요.
모두 『마음』의 작용이라는 것입니다.
(주; 유유상종의 법칙. 끼리끼리 모이는 법칙.
내가 화를 한번 내는 버릇이 있으면, 화를 한번 내는 영(靈)이 오고,
화를 안내면, 화를 안내는 영(靈)이 오고,
매일 화를 내면 매일 화를 내는 영(靈)이 오고, 또,
육신의 옷을 벗고, 영(靈)의 세계로 가게 될 때,
일생에 화를 열 번 냈으면,,
화를 열 번 냈던 영(靈)들이 모여 있는 영(靈)의 세계로 가게 되고,
일생동안,,, 화를 9,999번을 내었으면,,,
또한 그러한 세계로 가게 된다.
마음이 열린 정도에 맞는 밝기의 세계로,
내 발로 걸어서 찾아가는 것 이다.
그곳이 밝은 빛의 세계이든 어두운 지옥계이든, 내 발로 스스로,
또한, 나의 수준에 맞지 않는 세계로 가게 되면,
그곳의 거주자들도, 나의 괴로움이나, 마음의 상태에 감응하여,
괴로운, 또는 화내는, 마음 상태가 되어,
서로 힘들고 불편하게 되어서, 배척하게 된다.
(나도 괴롭고, 그들도 괴로우니)
다시 말하면, 천사들의 기쁨과 따스함이 있는 세계에서
나의 불만이 섞이게 되면, 어떻게 살 수 있겠는가.
인연 있는 이여, 생각해보자.
저승의 법칙을,
그대 마음이 천사들의 마음과 어떻게 다른지를, 아니면 같은지를
재산과 외관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참고; 임마누엘 스웨덴 보그의 ' 나는 영계를 보고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