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4. 4. 토요일
임은미(유니스) 선교사 묵상
최고의 날 ~ "나는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이 어떠한가?" 고린도전서 7장
나는 내 묵상을 쓰고 난 다음에 ‘사랑하는 그대여’라고 부르면서 주님으로부터 받은 말씀을 그대로 옮기든지, 때로는 대언기도를 하든지, 아니면 짧은 설교처럼 나누기도 한다. 그렇게 내 묵상은 두 부분으로 나눠진다고 할 수 있다.
어제 “사랑하는 그대여” 부분에
아래와 같은 말이 있었다.
***
사랑하는 그대여
언제까지 위로만 바라고
살고 싶습니까?
이제는 웬만하면 상처가
좀 있으면 어떤지
상처를 부여잡고 살아도 괜찮습니다.
모든 것이 다 완전하게
완벽하게 제자리를
찾아야 하고
이전에 받은 상처가
다 해결되어야 하고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를 받았으면
받은 그대로 감사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감사하라고 했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이제는 정신을 차리고
나에게만 집중하는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나에게
정말 무엇을 원하시는지
이 말세지말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것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기 연민에서 벗어나고
남을 탓하는 것도 내려놓고
정신을 바로 차리고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그대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
이 글을 읽고 한 분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조금 줄여서 나눈다.
이분은 최근에 속사람의 치유 문제로 상담을 해왔던 분이다.
나는 이제는 치유에만 집착하기보다
상처를 안고도 감사하는 것이 더 깊은 답일 수 있다고 말씀드렸던 분이다.
***
선교사님~~
제가 정신을 차렸습니다!
아침에 1년 5개월 만에
췌장암에 걸린 지인에게 카톡이 왔습니다.
“감사하고 잘 살고 있지?”
그분은 불신자였는데
제가 병문안도 가고 기도도 했던 분입니다.
그 메시지를 받는 순간
어제 선교사님의 말씀과 연결되었습니다.
감사하며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예수님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은
모든 것을 주신 것인데
계속해서
“치유해 주세요, 평강 주세요”라고
매달리는 것이
복음적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미 평강과 기쁨을 주셨는데
사단이 그것을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리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그래서 대적기도를 해야겠다는
깨달음도 있었습니다.
어제 선교사님의 카톡을 읽는데
제 마음이 많이 떨렸습니다.
제 안의 어둠이
진리 앞에서 두려워 떠는 것 같았습니다.
요셉이 자신의 상처를
원망이 아니라
영혼 구원의 관점으로 보았던 것처럼
저도 상처를 보는 시선이
바뀌었습니다.
내 삶의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이 되는데
그 선이 영혼 구원이라면
내 상처도
복음의 통로로 쓰임 받을 수 있겠다는
깨달음이 왔습니다.
선교사님이 왜 저를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셨는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가르치고 계시니
저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제가 다시 정신을 차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선교사님 ^^
***
"하나님의 사람"들은
회개도 빠르고
말씀을 깨닫고 나면
삶에 적용하는 속도도 참 빠르다.
이분을 상담해 드리면서
조금 마음이 어려웠는데
이렇게 감사의 고백을 보내 주셔서
나 역시 감사가 된다.
개역한글 고린도전서 7장
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한국말로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이 말씀이 영어로는 “undivided devotion to the Lord”라고 나와 있다.
한국말로 다시 풀어 보면
“나뉘는 마음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라고 할 수 있겠다.
고린도전서 7장 35절 말씀을 묵상하면서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라는 말씀이 마음에 머문다.
바울은 결혼과 독신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 더 낫다거나
결혼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 데 있어서
마음이 얼마나 나뉘어 있는가를 말해 주고 있다.
결혼한 사람은
배우자와 가정을 돌보는 책임이 있고
그만큼 마음이 나뉠 수밖에 없다.
반대로
독신인 사람은
비교적 마음이 덜 나뉘고
하나님께 더 집중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을 얽매이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자유롭게
더 온전히
하나님을 섬기게 하려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전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분요함”이라는 말은
단순히 바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이 여러 곳으로 나뉘어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 같다.
할 일은 많은데
마음이 하나님께 가지 못하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상태
염려와 걱정으로 인해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상태
그것이 바로 분요함이 아닐까 싶다.
그러니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는데
어지러움과 혼동과 분요함을 준다고 한다면
그 관계를 돌아보고
돌아서야 할 관계는 돌아서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삶의 목표는
그저 모든 사람과 무난하게 지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온전히 섬기는 삶이다.
그래서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는 관계에 대해서는
성경이 분명하게 기준을 주고 있다.
믿지 않는 배우자가
교회를 못 가게 하고
말씀을 막고
믿음 때문에 관계를 끊겠다고 한다면
이혼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 선택에 대해서도
성경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한다.
하나님을 섬길 수 있는 최상의 상태를 만드는 것 역시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서 나오는 선택이다.
물론 오늘 묵상에는
여러 가지 다른 생각들이 있을 수 있다.
모든 상황은 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린도전서는
우리의 관계 속에서
어떤 원칙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지를
분명히 보여 준다고 생각한다.
그 원칙을 따르지 않는 선택은
우리의 자유일 수 있지만
그 선택에 대한 책임 역시
우리가 져야 한다.
주님, 오늘도 최고의 날입니다.
나는
나뉘지 않는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있는가
말씀을 통하여 돌아보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선택만 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으로부터 3” 책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출판사에서 연락이 와서 이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항상 그러하셨듯이
이번 책도
우리 주님께서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 되어 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오늘도 우리 주님 저를 보시면서
하루 종일 기쁨을 넘어서 감동을 받으시면 참 좋겠습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
2026. 4. 4.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하는 그대여~
출. 석. 부르고 있습니다.
대답하셨나요?
“사랑하는 나의 아들
사랑하는 나의 딸
너는 나를 섬기기를
원하느냐? 아니면
너는 내가 너를
섬겨주기를 원하느냐?
너는 나의 주인이
되고 싶으냐? 아니면
내가 너의 주인이
되기를 원하느냐?
네가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한다면, 모든 것을 다
컨트롤할 수 있다고 한다면
너는 하나님이 되고 싶으냐?
아니면 나의 피조물로서
내가 나의 아들아, 나의 딸아
이렇게 부를 때 기뻐하는
자리에 서 있고 싶으냐?
나는 너와 동행하기 원하고
너와 동역하기 원하고
너와 사귀기 원하는
여호와 하나님이라.
그러나 너의 마음에 나
외에 너무나 많은 우상이
있다고 한다면...
우상이라고 함은
네가 더 섬기고 싶은 것
네가 섬김으로 말미암아서
거기서 무엇인가 이익을
볼 수 있다는 그런 생각
때문에 여호와 하나님을
제쳐놓고 네가 정말로
너의 육신이 원하는 그대로
육신의 소욕 그대로 따르고
싶은 그 어떤 것, 그것이
우상이라고 한다면 너는
정말로 오늘 너의 마음을
돌아볼 수 있겠니?
네가 나를 섬기기 원하는지
두려움 없이, 혼동 없이,
마음에 나눠짐 없이
네가 나를 섬기기로
작정했으면 참 좋겠구나.”
사랑하는 그대여 사랑합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축복합니다.
오늘도 그대의 최고의 날입니다.
(* '사랑하는 그대여' 말은 '사랑하는 그리스도의 대사여'를 줄여서 말하는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