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스님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모순을 이루고 있는 두 마디 말..
'공즉시색[0=1]은 아비달마의 색실유[법실유] 입장으로 사라자 상좌가 하는 말이고, 또 다른 하나인
'공중무색 [0≠1]'은 대승불교의 관세음보살님이 한 말이라 하여..
한 경 안에서 '공즉색'이라 하고, '공무색'이라 하여 모순처럼 보이지만 실은 견해가 다른 두 사람이 하는 말로 간단히 주어가 다르다는 설명으로 해결한 천하의 아주 멋진 해석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심경>에 대한 처음보는 스님의 해설을 들으며.. '그런가?' 하는 의심을 일으키지만..
둘의 모순을 보고.. 둘이 다를 수 밖에 없는 이유를 찾은 작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은
스님의 복잡한 설명을 듣기만 해도 알 수 있으리라..
칭찬과 고마움을 어찌 한두마디 말로 보여줄 수 있으랴..
<심경>으로 돌아와..
고광스님의 '공즉색과 공무색의 화자가 다르다'는 결론의 핵심인 놀라운 혜안은..
12처와 5온인 색수상행식의 이해를 상좌부인 설일체유부의 실유(實有)와 반야부의 비유(非有, 非無)로 구분하고..
상좌부의 법실유 입장을 상징하는 인물 사리불 장로를 대상으로,
실유를 너머 비유를 깨친 관자자재보살이 설하는 것으로 <반야심경>을 보는 것에서 나온다.
하여 상좌부의 [아공실유]를 이해하고 있는 사리자 상좌의 '공즉시색'이라면..
색은 실유이듯 그때 공 역시 실유가 아닐 수 없다.
실유이지만 지금 여기에서는 볼 수 없고 색만 있다는 공이다.
그러기에 생전에 실유인 일체고를 나에게 오지 않도록 잘 막는 수행을 하면..
죽은 후 다시는 유를 받지 않는다[불수후유]는 수준의 아라한 게송을 하게 된다.
그러나 석가세존이 가르치는 법은 실유가 아니다.
5온인 색수상행식은 무상하고 실유가 아니므로 무아[일체무아]다. 해서 공이다.
그런 것을 상좌부는 물론 일부 대승불교 안에서도 5온을 실유법으로 가르치는 어리석음을 여전히 저지르고 있다.
공은 실유가 아니다.
공은 불생불멸이니 생멸이 없고, 더러울 수도 깨끗할 수도 없으니 불구부정이요, 늘거나 줄 수 없으니 부증불감이다.
공 가운데는 실유인 5온이나, 6근6경으로 이해하는 12처나 18계, 3세양중인과설로 이해하는 12연기나, 생멸4성제는 없다.
고로 공중무색이다. 공무색이듯 실유인 무5온, 무12처, 무18계, 무12연기, 무4제인 것이다.
그리 관했기에.. 모든 불보살님은 무상정득정각을 깨치셨다.
고광 스님의 설명을 보고 있노라면.. 정견의 눈으로
법실유 주장과 실유적인 관점에서 <심경>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세간에 대한 파사현정의 통렬한 비판이 보인다.
이렇듯 <심경>에서 보여주려는 공은 실유가 아닌 무색 무수상행식이요, 무2법6쌍인 무12처임을 확실히 알면..
고광스님의 <반야심경> 해석에서 보듯..
공즉색[0=1]은 법실유로 알고 있는 상좌인 사리붓다 존자가 하는 말로..
공을 실유로 보고 있다는 의미가 되고,
공무색 [0≠1]은 관자재보살님이 하고 있는 말로..
공음 실유인 색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에 이르면 <반야심경> 안에 모순처럼 보이는 공즉색과 공무색이 나란히 나오는지 알겠는데..
그렇다면 <심경>의 핵심으로 알고 쓰고 있는
'색즉시공 공즉시색'은 반야의 핵심이 아닌 상좌부 실유법의 핵심인가?. 하는 의문이다.
고광스님의 뜻을 고스란히 살리면서..
전부터 알고 있듯이 <심경>은 관자재보살님이 사라자를 향한 법문으로 설명할 수 없을까?.
반복하지만.. 핵심은
사리자 상좌는 일체를 실유법으로 보는 상좌부를 상징하는 상대로 나오고..
관자재보살님은 일체는 실유를 넘어선 공으로 관하는 이로 나온다.
고광스님이 색즉시공에서 공을 실유라고 하는 것은 상좌부의 법실유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만일 공을 처음부터 실유가 아닌 비유나 무유로 본다면
그때 색즉시공에서 공이 비유(非有, 非無)이듯 색 역시 실유가 아닌 비유(非有)가 된다.
그런데 과연 색을 공으로 관하여 색이 비유임을 확인할 수 있는지..
색이 비유(非有)임을 이해토록 하기 위해..
색은 마음을 연해 생긴 것으로 고광스님은 '색은 실유가 아닌 가상공간에 생겨 있는 색'이라고 설명한다.
마음 또는 뇌 가상공간 안에 생겨 있는 색이기에 실유가 아닌 공으로 색인 것이다.
수상행식 역시 마찬가지이고..
따라서..
'색불이공 색즉시공'에서 공을 실유로 해석할 이유가 없다고 본다.
그리고 '색즉시공'이 실유가 아닌 비유 또는 무유로 반야부의 핵심이 되려면..
그때 색은 실유가 아닌 '심연생'이 되어야 한다.
심연생이기에 실유가 아닌 5온은 불생불멸, 불구부정, 부증불감이 되는 것이다.
해서 색은 곧 공이 된다.
그런데 상좌부에서는 색실유를 주장하고 있다.
그런 실유인 색이라면..
공 가운데 있을 수 없으니 공중무색으로.. 무5온이고, 무12처요, 무18계, 무12연기요, 무4성제다.
여기서 부정되고 있는 것은 실유로 해석하고 있는 5온, 12처, 18계, 12연기, 4성제가 아닐 수 없다.
어떤 주장이든 깊이 생각하고 근본 이해가 바로 서면..
어떻게 설명하고 주장하더라도 한 방향으로 나아간다.
지금 세상은 미국 한국 할 것 없이 카오스 속에 불안을 가증시키고 있다.
이런 판국에 한가하게 법은 실유가 아닌 비유(非有)라고 하는 사유는 현실에 눈을 감고 있는 한가한 사람들의 소견처럼 보일 수 있으리라.
그런데 난리브루스 삼매에 빠진 정치인들을 보면
일체를 실유로 보고.. 그것을 남에게 빼앗기지 않고 자기 소유로 하려는 탐욕의 포로가 아닌지..
그것도 한 개인이나 소수 사이에서 벌이는 게 아닌 온 국민을 포함한 국가 단위로 탐욕을 부리니 이렇게 소란스러운 게 아닌가..
만일 일체가 실재가 없는 비유(非有)나 공으로..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게 아님을 보아도 또는 볼 수 있어도..
저토록 아귀처럼 물고 뜯는 난리를 칠까.
難難難 如平地上靑天 (난난난 여평지상청천)
易易易 似和衣一覺睡 (이이이 사화의일각수)
行船盡在把梢人 (행선진재파초인)
誰道波濤從地起 (수도파도종지기)
어렵고 어렵고 어려움이여! 마치 평지에서 푸른 하늘에 오름과 같도다.
쉽고 쉽고 쉬움이여! 옷 입은 채 한숨 자고 깨어남과 같도다.
배가 가는 것은 삿대 잡은 이에 있으니
누가 파도가 땅에서 일어난다 말하리오.
/ 야보도천(冶父道川)스님
첫댓글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_()_()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