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오랜 기간 동안 모진 고통을 겪으면서도 필사적으로 목숨을 부지하려고 애썼다. 감뽀빠는 하는 수 없이 그녀의 배갯머리에 앉아 거룩한 경전들을 낭독하여 주었다. 이때 그에게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었다.
'아내는 지금 가혹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이토록 생명에 애착하고 있다. 필시 무엇인가를 향한 극단적 집착이 있기에 편히 눈을 감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이리하여 감뽀빠는 아내의 마음을 달래려고 말하였다.
"윤회계의 실상(實相)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윤회계를 떠나지 않으려고 무거운 짐을 짊어지는 법이오. 이처럼 사람들은 윤회계에서 방황하며 떠나지 않으려 하니 이 얼마나 불쌍하고 비참한 사람들이오! 이 환몽(幻夢) 세계에서 배우자나 친척들을 애착하는 무지한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는 참으로 연민의 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소. 이렇게 오랫동안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당신은 편히 떠나고 싶어하지 않소. 필시 어떤 물건이나 누군가를 집착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오. 만약에 집이나 토지를 버리고 떠날 수 없어 그러하다면 나는 그것을 모조리 수행자들에게 보시하도록 하겠소. 보석을 두고 떠날 수 없어 그러하다면 모두 성직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겠소. 그 밖에 또한 버리고 떠날 수 없는 것이 무엇이 있겠소? 우리는 전생에 서원한 바 있었기에 이생에 이렇게 만났소. 그러나 당신은 악업으로 인해 지금 이렇게 질병에 걸린 것이오. 나는 치유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도리어 당신에게 고통을 더해 주었을 뿐이오. 당신이 떠나든 않든 간에 이 쓰라린 전염병을 교훈삼아 나는 이미 진리에 온 생애를 바치기로 결심하였소."
아내는 말하였다.
"저는 머지 않아 죽을 거예요. 집이나 토지나 보석이나 그 밖의 어떤 것에도 저는 관심이 없어요. 제가 버릴 수 없는 유일한 건 바로 당신이에요. 당신이 여자들의 유혹에 빠지는 걸 막기 위해 저는 오빠 다르마외에게 사람을 보낼 작정이에요. 게다가 당신도 아시는 바와 같이 이 윤회계의 가족 생활에는 참다운 행복이란 없어요. 사랑하는 남편이여! 장차 몸과 영혼을 진리에 완전히 바치겠다고 약속해주시지 않겠어요? 이것이 저의 마지막 부탁이에요."
감뽀빠는 이에 대답했다.
"당신이 설령 회복된다 하더라도 우리 부부가 영원토록 함께 살 순 없는 법이오. 또한 당신이 회복하지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나는 남은 평생 진리를 수행하며 지낼 것이고 재혼일랑은 하지 않을 작정이오. 당신은 내가 면전에서 이런 서약을 하는 것을 원하고 있소?"
아내는 대답했다.
"당신이 약속을 어기지는 않으시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제가 보는 앞에서 증인을 내세워 서약을 한다면 제 마음은 훨씬 안심이 될 것 같아요. 그렇게 해주시겠어요?"
이리하여 감뽀빠는 숙부인 빼쐬를 증인으로 모셨다. 감뽀빠는 황금 문자로 쓰여진 거룩한 경전을 자신의 머리 위에 올려놓은 뒤 아내가 죽더라도 재혼하지 않고 진리에 헌신하겠다는 맹세를 하였다. 아내는 기쁜 표정을 지으며 다음과 같이 응답했다.
"사랑하는 이여, 이 몸을 벗은 뒤에도 저는 당신께서 진리를 위해 평생을 바치는지 어떤지를 지켜보겠어요!"
그녀는 이렇게 말한 뒤 남편의 손을 잡고 눈동자 가득 눈물을 담고 남편의 얼굴을 응시하며 죽었다.
감뽀빠는 아내가 죽은 뒤 자신의 재산을 세 몫으로 나누었다. 첫째 몫은 아내의 장례식 비용으로 쓰고, 둘째 몫은 자선하는 데 쓰고, 셋째 몫은 진리를 배우고 수행하는 데 필요한 자금으로 쓰기 위한 것이었다. 감뽀빠는 아내의 시신을 화장하고 탑을 세웠다. 그녀의 뼈와 재를 모아 붓다 형상의 차차를 여러 개 만들어 탑 안에 안치하였다. 그후 이 탑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조모최땐(안주인)이라고 불렸으며, 지금도 넬 지방에 남아 있다고 한다.
장례식이 끝나고 집안일을 마무리 하고 나자 감뽀빠의 마음은 깨끗이 정리되었다. 진리 수행에 헌신할 때가 되었음을 깨달은 그는 닌통 골짜기에 들어가 홀로 명상하였다.
한편 감뽀빠의 숙부 빼쐬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불쌍한 조카가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나서 크게 상심하고 있을 테니 찾아가서 위로해 주어야겠군.'
그는 술과 고기를 넉넉히 준비하여 감뽀빠를 만나러 갔다. 그들이 만나서 대화를 나누던 중 감뽀빠는 숙부에게 솔직히 말씀드렸다.
"아내가 떠나간 뒤로 저는 너무나 편안하고 행복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숙부는 격분하기 시작했다. 그는 화가 치밀어 버럭 소리질렀다.
"이놈아! 어디서 죽은 아내처럼 선량한 여인을 구할 수 있겠느냐? 혹시 다르마외가 그 따위 말을 들었다면 분명 너를 가리켜 서약을 깨뜨린 배신자라고 비난할 것이 틀림없다."
그는 신랄하게 질책하며 흙을 한 줌 집어들어 감뽀빠의 얼굴에 냅다 뿌렸다. 그러자 감뽀빠는 잠잠히 대꾸했다.
"친애하는 숙부님, 숙부님을 증인으로 하여 제가 아내 앞에서 행한 맹세를 잊으셨나요? 그때 서약한 대로 저는 지금 진리 수행에 매진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 말을 듣자 빼쐬는 마음을 진정시켰다.
"감뽀빠야, 네 말이 옳구나. 나는 이렇게 나이 먹도록 진리란 걸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돌이켜보면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야. 이제 조카는 진리 수행에 몰두하렴. 토지와 재산은 내가 맡아서 관리해주겠다."
첫댓글 이 윤회계의 가족 생활에는 참다운 행복이란 없다.
진리 수행에 매진하기를.
나무아미타불 _()_
부부가 함께 수행할 수 있는 인연을 만남이 얼마나 큰 복인지요.. 나무아미타불 _()_
나무아미타불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