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三)
소중분은 오늘 따라 왠지 마음이 불안하여 좀처럼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공가입니다."
문 밖에서 늙수그레한 음성이 들려왔다.
"응? 들어오게."
소중분은 심장이 거칠게 뛰기 시작했다. 꼭 무엇인가 불길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예감이었다.
환영귀검 공가는 차분하게 들어와 다탁(茶卓)에 앉았다.
"추풍은 잡았는가?"
"못 잡았습니다."
"못... 잡아?"
소중분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눈을 꿈벅거렸다.
"우물에서... 이삼재의 시신을 발견했습니다. 독고... 광도 당
했습니다."
"독고광까지...!"
소중분은 허탈하게 중얼거렸다.
"조중이겠지?"
"추풍 반여량에게 당한 듯합니다. 시신에 사검의 흔적이 있습
니다. 언뜻 보면 투월채법의 흔적인데 전혀 다릅니다. 아마도
투월채법을 변형시킨 것 같습니다."
하루 종일 심사가 불편했던 원인은 이것이었다. 추풍이 그렇게
강했단 말인가? 그 동안 정대에서 파악한 바로는 희귀한 능력
을 지녔지만 무공은 그리 강하지 않은 것으로 판명되었는데.
'지렁이인 줄 알았는데 용이었단 말인가. 추풍 반여량...'
소중분은 얄미운 표정으로 찻잔을 홀짝이던 독고광이 눈에 밟
혔다. 명을 제대로 받들지는 않았지만 다른 사람을 제치고 정
대주를 차지할 만큼 약삭빠른 위인이었다. 그는 절대 위험스런
곳에는 가지 않았을 터였다.
'기습이다. 반여량은 감응을 느끼는 자, 그를 죽일 방법은 오
로지 기습뿐이다.'
독고광이 떠날 때, 아내가 해 준 말이다. 그토록 자신만만하게
보낸 수하가 어처구니없게 죽었으니 차갑던 표정은 더욱 차게
변하리라. 더군다나 오늘 밤, 신계각에 변고가 일어난다면...
'어쩔 수 없지. 요연... 당선 말대로 장인이 천륜을 거슬렀다
면 그에 합당한 죄가를 받게 되겠지. 하지만 당신이 나서선 안
돼. 마음속에 야망을 숨겨서는 더더욱 안 돼...'
"시신은 어디 있는가?"
"마차에 실어왔습니다."
환영귀검의 음성은 여전히 가라앉았다.
삼영성의 일개 석공에서 신계각주의 호법으로 신분이 극상승했
지만 공가는 자신의 존재를 앞세우지 않았다. 그저 있는 듯 없
는 듯 한구석에서 맡은 임무를 충실히 해냈다. 그런 성품은 정
대원이 가지는 공통적인 성품이기도 했다.
"변화가 있어서는 안 된다. 시신은 일단 숨겨라. 형제들은?"
"전부 집결해 있습니다."
"오늘 밤이다. 오늘 밤..."
소중분은 씹어뱉듯이 말을 던졌다.
소중분이 찾아낸 사십삼 명.
그들은 모두 특명(特命)을 받고 곽가장에 집결했다. 독고광이
차디찬 시신으로 변해 곽가장으로 돌아온 그날 저녁이었다.
사십삼 명은 일제히 정대를 급습했다. 전서구를 관리하던 자,
문서를 취합하던 자, 보관 임무를 맡은 자... 정대에 잔류해
있던 정대원 십여 명은 일제히 들이닥친 검날을 피할 도리가
없었다.
"각주님, 저희들이 무슨 죄가 있다고?"
"흥! 각주? 정말 내가 각주인가? 그렇군. 내가 각주로군. 입에
기름을 발라놓았는지 각주라는 말이 술술 잘 나오는군."
"월권(越權)이십니다. 아무리 각주님이시라도 정대 내부의 일
은."
"우선 네 놈 혓바닥부터 잘라야겠구나."
"으악!"
당당하게 소중분과 얼굴을 맞대던 무인은 혓바닥이 잘리고 말
았다.
그 다음은 일사천리(一瀉千里)였다. 그 누구도 항명하지 못했
고, 사십삼 명이 시키는 대로 순순히 뇌옥으로 끌려들어갔다.
정대를 장악한 사십삼 명은 일제히 계대(計隊)를 향해 물밀 듯
이 들이쳤다.
계대는 모두 사십 명이다.
하나같이 지략(智略)이 뛰어난 인물들로 곽가장의 모든 계략은
계대에서 풀려 나왔다. 난관이 닥쳤을 때, 활로(活路)를 열어
주는 사람도 그들이었다.
소중분은 계대주 육시타성 이장무를 비롯하여 계대원의 면면을
눈감고도 달달 외울 정도였다.
'한 명이라도 놓쳐서는 안 된다. 그놈들은 개개인이 모두 일파
(一派)의 군사(軍師)로 손색이 없는 놈들이다.'
그러나 정대원은 단 한 명도 잡지 못했다.
각기 지시 받은 대로 계대를 들이쳤을 때, 계대는 마치 공동묘
지처럼 썰렁하게 비어 있었다.
"이럴 리가 없어."
소중분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분명히 저녁식사를 할 때까지만 해도 모습을 보였던 놈들이다.
그런 놈들이 일시에 사라지다니.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단
말인가.
"인대! 빨리 인대를 들이쳐라!"
불현듯 불안한 마음이 치밀어 내뱉은 소리였다.
역시... 인대도 마찬가지였다. 몇 시진 전만 해도 대황촉을 벗
삼아 서적을 뒤적이던 인간들이 하늘로 솟아 버린 양 행적이
묘연했다.
비대도 사정은 같았다. 무결군 유의를 비롯한 사십여 명이 일
시에 모습을 감춰 버렸다.
삼대주와 대원 백이십 명, 그리고 그들의 식솔까지 셈한다면
무려 천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흔적없이 증발한 것이다.
"이게...! 이게 ...!"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소중분은 망연자실(茫然自
失)하니 넋을 잃어 버렸다.
"아무래도 정보가 새나간 것 같습니다."
환영귀검 공가가 차분하게 말했다.
이럴 경우 정대원들은 목숨의 위협을 느낀다. 일이 어긋난 다
음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잔인한 반격이 뒤따랐으니
까.
공가도 심정은 착잡했다.
신계각을 정비해야겠다는 말에 장주는 기꺼이 동의했다.
"허허! 신계각이야 자네 소관 아닌가."
간단한 말 한마디로 모든 행위를 용납했다.
소중분은 곽가장의 모든 요로(要路)를 봉쇄했고, 치밀한 계획
아래 제압을 시도했다. 그런데..."
천여 명이 일시에 빠져 나간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
다.
계대, 인대, 비대는 마치 정대원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감쪽같
이 사라져 버렸다. 어디로...? 그들은 곽가장을 떠났다. 습격
에 동참한 사십삼 명을 제외한 삼백팔십사 명의 정대원도 그들
과 호흡을 같이 했으리라. 불문가지였다.
장주 곽모천에게 정식으로 반기를 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지닌 저력이라면 충분히 그럴만한 능력이 되었다. 문제는 구심
점이 누구냐 하는 것. 공가가 파악안 정보에는 곽요연을 가리
키고 있다.
"공가... 가봐라."
소중분은 차마 떨어지지 않는 말을 끄집어냈다.
잠시 후 공가는 붉은 글씨로 쓰여진 서신 한 장을 들고 들어섰
다.
'떠났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그까짓 야망이 무엇이
건대 아버지에게 검을 겨누고, 남편을 버린단 말인가.
소중분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서신을 받아들었다.
- 괴뢰(傀儡).
서신은 간단했다.
'꼭두각시라... 꼭두각시...'
너무도 눈에 익은 필체. 하지만 서신은 소중분을 질타하다 못
해 무시하고 있다. 누구의 꼭두각시라는 말인가. 아내가 꼭두
각시 취급을 해왔다는 말인가. 아니면 장인의 꼭두각시가 되었
다는 말인가.
힘없이 축 늘어진 손에서 서신이 빠져 나와 팔랑거렸다.
장주를 보면 마음이 답답해졌다.
전에는 이렇지 않았다. 장주는 투혼이라는 정신에 불을 지펴주
는 활력소였다. 모든 것이 뒤엉킨 후 마음속으로부터 싸울 상
대를 잃어버린 후 소중분은 장주를 뛰어넘고자 하는 마음이 일
지 않았다.
"요연이가 떠났다고?"
"...네."
한참 만에야 대답했다.
"허허허!"
장주는 모든 사실을 예견한 듯 태연하게 웃어제겼다. 눈을 지
그시 감고 차를 즐기는 모습에서는 어떤 흔들림도 읽을 수 없
었다.
'이해할 수 없는 부녀지간...'
정녕 이해할 수 없었다.
"언제 떠날 텐가?"
곽모천은 다탁에 차를 내려놓으며 지나가는 바람처럼 물었다.
"네?"
"허허! 차갑기가 북풍한설 같다던 쇄심파답지 않군. 그래. 요
연이가 떠났으니 부부간의 인연도 끝났다. 권모술수(權謀術數)
가 난무하는 무림도 지겹다. 떠나자. 이 생각 아닌가?"
장주는 고개도 돌리지 않고 냉정하게 말했다.
"... 바로 떠나겠습니다."
장주가 본론을 꺼내 주니 말하기가 편했다. 더 이상 곽가장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
야망이 꺾인 지는 오래다. 허울 좋은 신계각주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곽가장은 영원히 넘을 수 없는 철옹성(鐵
甕城)으로 다가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정대에 집착
한 것은 오로지 아내의 배신이 안겨 준 충격 때문이었다. 무엇
이 아내로 하여금 남편을 배신하게 만들었는지 그것이 알고 싶
었다.
장주가 자신의 수족을 자르고, 딸은 아버지의 가슴에 검을 겨
누고, 혈단이란 존재... 알면 알수록 번민(煩悶)이 쌓여갔다.
야망(野望).
쇄심파는 야망이란 말 이외에는 천륜에 어긋난 행동을 설명할
수 없었다.
아내는 일언반구(一言半句) 말 한 마디 없이 떠나갔다.
말을 남기기는 했다. 서신으로 '괴뢰'라고...
돌아갈 곳도 없었다.
자신 모르게 오랜 관계를 지속해온 사부와 아내. 그들 사이에
무슨 연관이 있는지는 몰라도 야망이란 글자를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사부에게도 갈 수 없다.
어디로 가나? 구름처럼, 바람처럼... 드넓은 중원에 육신 하나
뉠 곳이 없을까.
"떠나겠다? 일심각주처럼 말인가?"
"넷? 무슨 말씀이신지...?"
소중분은 머리털이 쭈뼛 서는 섬뜩함을 느꼈다.
장주는 고급스런 은회색의 무복을 입었다. 햇볕에 부서지는 바
닷물결처럼 부드럽고도 우아한 은회색 무., 평소에 잘 입지 않
던 무복이다. 그렇다. 옥순산 전투... 소문으로 들은 바로는
옥순산 전투를 치를 때도 은회색 무복을 입었다고 한다.
장주는 싸움을 생각하고 있다. 곽가장을 거스른 무리는 가차없
이 목을 벨 심산이다. 그렇기에 은회색 무복을 입었다. 곽가장
은 이단으로 낙인찍은 사람을 살려 준 적이 없지 않은가. 그래
도 이번에는 친자식이기에 조금 다르려니 싶었는데.
소중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차피 부부지연(夫婦之練)이 끝
났는데 무엇을 더 생각하랴.
"일심각주는 신창으로 돌아갔지. 자네는 어디로 갈 셈인가?"
'어디로... 어디로...?'
"저는... 돌아갈 곳이... 없습니다."
소중분은 특유의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대답했다.
육 개월 전, 윤명은 피골이 상접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그렇잖아도 조그마한 몸집을 가진 사람이라 자칫 알아보지 못
할 뻔했다.
곽가장 무인들은 패배한 자를 용서하지 않는다.
아무리 높은 지위에 있던 사람일지라도 싸움에 패하고 돌아온
사람은 옆집 강아지 쳐다보듯 멸시하는 풍조가 있다. 윤명도
예외가 아니었다. 일심각주라는 지위는 차치하고라도 장주의
사위라는 명분만으로도 뭇사람들의 흠모를 받을 처지지만, 그
는 차디찬 냉시(冷視)속에 살얼음판 딛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희한하게도 늘 삐걱거리던 곽무연과 윤명의 사이가 눈에 띄게
좋아졌다. 부부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원을 거닐거나 노을을
감상하는 모습은 흔한 광경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신창으로 가고 싶습니다."
윤명은 잔뜩 풀죽은 모습으로 간청했다.
곽가장에서 품었던 웅지(雄志)를 말끔히 접어 버리고 고향으로
낙향(落鄕)하려는 것이다.
놀라운 변화였다.
윤명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 살길은 찾는 사람이다. 모두들
그렇게 생각했다. 잠시 기죽은 모습으로 죽어지내다가 다시 본
색을 드러내겠지 하고... 낙향하겠다는 말을 할 줄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가식(假飾)이 아니었다. 얼굴 표정이 진지했다. 무엇이 그에게
서 야망을 빼앗아 갔는가. 곽가장 밖에서 겪은 좌절이 무엇이
기에 그로 하여금 절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게 하는가.
윤명과 곽무연은 그렇게 떠나갔다.
장주는 잡지 않았다. 떠나는 날에도 거처에서 나와 보지 않았
다.
"갔는가?"
단 한 마디뿐이었다.
"갈 곳이 없다... 재미있는 말이군."
곽모천은 차를 다 마셨는지 찻잔을 내려놓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천천히 봉창으로 걸어가 휘영청 늘어진 능수버들을 바
라보았다.
"자네... 요연이가 간 곳을 아나?"
"...?"
"한담거사. 자네 사부에게로 갔다면 어찌할 텐가?"
'사부님! 도대체 사부님과 요연이는 무슨 관계입니까?'
목구멍까지 치밀어오르는 말을 꾹 참아 넘겼다. 이제는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 모든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무명
소졸로 곽가장 여췌서가 되어 쇄심파란 작호를 얻었듯이, 정당
한 실력으로 장주의 후계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강서성뿐만
이 아니라 전 중원에 무명(武名)을 휘날리고 싶었다.
모든 게 어그러졌다.
곽가장의 머리라는 자부심이 무너졌고, 한 여인의 지아비라는
명분도 무너졌다. 그것은 애착이었다. 아내를 너무도 사랑했기
에 미움도 그만큼 컸고, 그래서 아내가 장악한 정대를 다시 쟁
취하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아내가 떠나간 지금 남은 것은 없다. 장주가 은회색 무복을 입
었든 평상복을 입었든지 상관할 문제가 아니다. 윤명처럼
떠... 그렇게 낙향하면 될 일이다. 그래도 조중처럼 쫓기는
신세는 아니지 않는가.
환영귀검 공가의 말이 떠올랐다.
'독고광은 미련했습니다. 그는 이공녀의 노리개에 불과했죠.
정대를 떠나 금산으로 출발하는 순간, 그의 운명은 죽음을 향
해 치달렸습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만약 독고광이 금산에
서 죽지 않았다면 장주에게 죽지 않았을까 하는.'
그는 또 다른 말도 했다.
'이공녀가 장주님에게 검을 들이대려 했다면 장주님이 모를 까
닭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장은 조용하기만 하군요. 이곳은 폭
풍의 핵이라서 그렇습니다. 본장 밖으로 나가면 엄청난 강풍에
휘말립니다. 일심각, 비수당, 비화당이 그래서 당했습니다. 이
싸움은... 승산이 없습니다. 혹, 물러나실 의향이 있으시다면
강서성을 벗어나야 합니다. 장강 너머가 좋겠죠.'
물러서자는 표현을 완곡하게 말했다. 목숨을 부지하려면 장강
을 넘어라 하고.
강북으로 간다고 장주의 손아귀를 벗어날 수 있을까? 혈단, 그
들은 전문적인 살수들이다. 그들이 생명을 노린다면 중원 어느
구석에 숨어도 안도의 숨을 불어낼 수 없다.
목숨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또한 장주가 자신을 죽이려 할 이
유도 없다. 허나 보기 싫은 것 안 보고 한 세상 살아가려면 강
을 건너가야 하리라.
"갈 곳이 있군요."
소중분은 눈을 반짝였다.
자신이 거뒀던 사십삼 명. 그들의 직업은 천차만별이었다. 점
소이에서부터 상인, 거지에 이르기까지 인간과 많이 접할 수
있는 직업이라면 일단 정대원인가 아닌가 의심해 봐야 할 지경
이었다.
그들과 어울려 그들의 직업이 지닌 세상에서 살아간다면 그 또
한 재미있지 않겠는가. 서민들의 생활 속에 야망이 어디 있으
며, 권모술수(權謀術數)가 어디 있으랴.
몇 명이나 따라나설지는 모른다. 단 한 명도 따라나서지 않을
지 모른다. 그러면 또 어떤가. 쇄심파를 버리고 민간 생활 속
에 뛰어드는데 굳이 같이 갈 필요도 없는 것을.
"강을 넘어갈 심산인가?"
장주는 마치 소중분의 뱃속을 환히 들여다보는 듯했다.
"그럴까 합니다."
"쇄심파를 버리겠군."
"네."
대답하지 못할 까닭이 없었다. 오히려 곽가장을 등지는 입장에
서 검을 버린다 하면 그 동안 받은 은혜에 조금은 보답이 되리
라. 그러나,
"내 장담하지. 신계각주, 자네는 쇄심파를 버리지 못해."
'장담을 너무 쉽게 하시는군요.'
"보내주지. 허허허! 곽가장에서 오 년을 지내야 한다고 말했는
데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아무도 없구먼. 오 년... 길다면 길
고 짧다면 짧은 세월인데... 그 사이 참 많이 변했군."
'아니죠. 오 년이란 세월은 본격적으로 싸우기 시작한 세월입
니다. 그 전부터 암투(暗鬪)가 시작되었죠. 곽가장 사위들. 후
훗! 허울좋은 사위들은 곽씨 가문에 이용당한 벌레들이죠.'
잠시 동안 더 앉아 있었지만 장주가 계속 침묵을 지키자 소중
분은 몸을 일으켰다.
"만수무강(萬壽無疆)하십시오."
등 뒤에다 포권지례를 올린 후 걸음을 옮겨 놓았다.
뚜벅! 뚜벅...!
나즈막하게 시작된 발걸음 소리가 갈수록 빨라지고 힘이 넘쳤
다.
한때는 모든 영광의 기점으로 알았던 곽가장. 하지만 지금은
썩은 오물통에 고개를 처박은 것보다도 더 구역질이 치밀었다.
한시라도 빨리 곽가장을 벗어나리라. 그때였다,
"장담 하나 더 할까? 신계각주, 자네는 조만간 다시 찾아올 거
야. 쇄심파를 들고서. 노리는 곳은 아마 내 심장이겠지."
소중분은 발걸음을 우뚝 멈춰 세웠다.
'빌어먹을! 마지막까지 뒤통수에다 말하다니.'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철그렁!
쇠붙이가 청석 바닥에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토해 냈다.
소중분이 쇄심파를 버리는 소리였다.
"허허허...!"
노인의 웃음소리. 그 속에는 힘이 가득 담겨 있었다. 자신감이
가득찬.
* * *
"갔나?"
"갔습니다."
"추종자(追從者)는?"
"정대원 여섯 명이 따라갔습니다."
"그런가? 신계각 오백오십 명 중에 서른일곱 명을 건졌군. 다
른쪽은 어떤가?"
"비목당에서 여든한 명, 비금당에서 서른네 명. 도합 백십오
명을 솎아 냈습니다."
"그럼 육백팔십오 명. 제조각까지 셈하면 팔백에서 딱 한 명이
모자라는군. 내가 선친으로부터 곽가장을 물려받을 때 수준이
야. 그 많은 세월을 헛살았나?"
"분타가 있습니다. 분타에 분산해 놓은 혈단이 공식적으로 모
습을 드러내지 못해서 그렇지 그들의 힘이라면 옛날의 곽가장
보다 두 배는 강합니다."
"그렇지. 그들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지. 허허허! 강남무림을
일통하려 했건만 겨우 장을 안정시키는 것에 족하다니. 혈단을
양성화(陽性化) 시켜야 해.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한치의 차질도 없습니다."
"그렇지. 그래야지."
"사공녀는 신창 윤가의 정예들을 수중에 장악한 모양입니다."
주렴을 사이에 두고 보고를 하는 무인은 화제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
"윤명을 요리하고 있으니 당연한 귀결이지."
"이공녀와 사공녀는 손을 잡을 겁니다."
"한시적이지. 그 아이들은 자신밖에 모르는 아이들이야. 목적
이 있어 손을 잡았지만... 물과 기름. 그럼 그 아이들만 들고
일어서면 다 끝난 건가?"
"그렇습니다."
"이번 일이 무림에 소문나지는 않았겠지?"
"신이 직접 주관해도 이보다 완벽하게 보완을 유지하지는 못할
겁니다. 강남무림에서는 약간 기미를 알아차린 것 같지만 워낙
힘이 빈약하니 나설 계제가 못 되고, 강북무림은 전혀 모르는
눈치입니다."
"궁금한 것이 있어."
"...?"
"총수가 실종되었는데 원방파가 가만 있단 말야. 조처를 취했
나?"
"간단합니다."
미지의 무인은 여전히 침착했다.
"감여가들은 후지(後紙)를 무엇보다 중히 여깁니다."
"후지?"
"감여를 하고 난 다음에 기록해 두는... 기록부 같은 것입니
다. 감여를 잘했는지 못했는지는 당대에서 판명되는 경우가 극
히 드물기에 후지를 기록해 두죠. 후인들이 후지를 보고 연구
하고... 감여가 발전하려면 후지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후지를 빼내왔습니다. 우마차(牛馬車)로 다섯 대 분량이죠.
이번 일이 끝나면 돌려준다 했으니..."
"허허허! 그런 방법이 있었군. 그렇다면 후지를 미끼로 원방파
를 흡수할 수는 없겠나?"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그것은 불가능합니다. 감여계와 무림계
는 각기 독특한 영역이 있습니다."
"음...! 사우맹 쪽은?"
"염려하실 일이 아닙니다."
"쯧쯧!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적에도 최선을 다하는 법일세.
사우맹은 간과할 집단이 아냐. 만에 하나 실수라도 있는 날에
는..."
"설혹 실수가 있어도 실패는 없습니다. 혈단과 사우맹은 싸움
이 안됩니다."
"사우맹이 먹이를 물었어. 독약이 든 것을 뻔히 알면서. 이유
를 알아봤나?"
"대공녀와 오공녀가 목적입니다. 따님을 손에 넣는다면 곽가장
절반은 무너뜨렸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쇄심파 소중분은 딱 한 가지 좋은 점이 있었어. 그놈은 '같습
니다'와 같은 말을 하지 않았지. 그리고 자기가 한 말에 책임
을 졌어. 요연이에게 흔들리기 전까지는. 자네는 딱 한 가지
결점이 있어. 불투명한 것. 나는 투명한 인간을 좋아한다네."
"명심하겠습니다."
"아니. 나는 투명하지 않은 인간은 믿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일세."
"그 말씀은?"
"..."
"장주!"
곽모천의 음성이 냉혹하게 변하자 주렴 밖에서 보고를 하던 무
인은 몸을 잘게 떨었다.
"육시타성 이장무. 너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먼저 해야겠지. 너
아니었으면 꼼짝없이 아이들에게 당했을 테니까. 하지만...
너는 끝까지 요연이에게 충성했어야 옳았어. 그게 오래 사는
방법이었지."
주렴 밖 무인, 그는 신계각 계대주 육시타성 이장무였다.
"저를 죽이시려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거야."
"...?"
"너에게는 충성심이 없어. 내가 죽이고자 하는데 이유가 필요
한건가? 응? 그런 거야? 허허허! 진정한 충성이란 어떠한 명이
라도 그대로 따라야 하는 거야. 그게 충성이지."
"그런 것이 충성이라면... 확실히 사람을 잘못 골랐군요."
"맞아. 너는 너무 많은 것을 알고 있어. 언젠가 말한 것 같은
데? 비밀이란 아는 사람이 적을수록 좋다고 말야."
이장무는 도망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대청 어딘가에는 삼정검사 중 일인인 이하극륜이 핏빛 눈동자
를 번뜩이고 있을 터였다. 피를 흘리는 고양이 혈류묘. 그가
던지는 륜(輪)에 격살당하면 육신이 갈가리 찢어져 오체분시
(五體分屍)되는 것보다 더욱 처참하다.
그는 조용히 손을 들어 머리 위에 올려 놓았다.
"재고하실 여지는...?"
"계획이 마무리 되었어. 나는 말일세. 똑똑한 자가 옆에 있으
면 불안해. 나보다 똑똑한 자가."
결정되었다.
재고의 여지는 없다.
"푸하하하핫...!"
이장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가대소(呵呵大笑)를 터트렸다.
'무서운 사람... 처음부터 상대가 안 될 줄 알았지. 그래서 이
공녀를 배신했거늘...'
퍼억!
힘껏 내리친 손에 천령개(天靈蓋)가 박살나며 피와 뇌수가 튀
어나왔다.
"이하극륜, 치워 주시겠나?"
곽모천은 이장무의 시신에 눈길도 주지 않았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즐감하고 감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
즐감하고 감니다
즐감합니다
즐독 입니다
잘 읽어습니다,,즐거운성탄절보내세요..
즐독 합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
감사합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즐독 햇습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즐독입니다
감사합니다.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