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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라
요엘서 2:12-17
2024년9월14일 주일낮 11시
인도,설교 선형수 목사
주은혜교회 진천
회개는 주님께 돌아서서 신실한 순종의 삶을 살아가기로 결심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회개는 성령님의 역사와 도우심을 통해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그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디.
요엘서는 주전 800년경 기록되었습니다..
소예언서 12권 중 이른 시기 저작 예언서입니다.
사도행전 오순절 베드로 설교에 요엘서 2장이 인용되었습니다.
베드로 설교를 통해 삼천명이 주님께 돌아왔습니다.
요엘서 1:1에 "브두엘 아들 요엘"이라 했습니다.
브두엘은 "하나님은 신실하시다"라는 의미입니다.
"에피파니우스"에 의하면, 요엘은 르우벤 지파 출신이고 벧호론에서 출생했습니다.
이곳은 예루살렘 북방 약 10마일 정도 되는데 그가 죽고 이곳에 매장되었다 합니다(이순한, 169).
그는 제사장이거나 레위 사람이라고 합니다(이순한, 169).
요엘은 "야웨는 하나님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그는 메뚜기 떼 습격을 하나님 심판이라 전했습니다(1:3~4,7).
메뚜기떼 재앙으로 인해, 포도, 밀, 보리, 무화과, 석류, 대추, 사과 등 밭과 나무 열매가 없고, 인간의 기쁨도 사라졌습니다(1:11~12).
열매가 없으니 하나님께 소제, 곡식제사, 전제, 포도주를 붓는 제사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전제는 부어드리는 제사인데, 주로 포도주를 썼고, 감람유나 짐승 피를 붓기도 했습니다(다음 카페, ybc.com).
땅의 소출이 나지 않아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하는 현실이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제사장들에게 굵은 베로 동이고 슬피 울라 했습니다.
또 단에 수종드는 자들은 곡을 하라 했습니다.
또 굵은 베를 입고 밤을 새워 누워있으라 했습니다.
소제와 전제 제사를 드리지 못하는 현실을 하나님 앞에 슬퍼하라는 것입니다(1:13).
요엘 선지자는 메뚜기 떼에 대해 자세히 관찰했습니다(2:4~10).
요엘 선지자는 자기 민족이 회개하길 간절한 마음으로 권했습니다(1:2).
자기 민족을 위해 간곡히 기도하길 제사장들에게 촉구했습니다(2:17).
물론 요엘 자신이 그렇게 기도했을것입니다
하나님은 죄의 심판을 자연재해, 질병, 전쟁 세 가지 방법을 통해 행하십니다.
요엘서는 자연재해를 통한 심판을 말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에서 회복되는 길은 회개하는 것임을 선포했습니다.
오늘날 전쟁, 자연재해, 질병의 문제에서 회복되는 것도 회개에 있습니다.
오늘날 전쟁은 총과 미사일 뿐만 아니라, 무역, 국가와 개인의 경쟁, 빈부격차, 노사 갈등 등 더욱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또 학교나 직장, 사회의 따돌림, 차별 등도 있습니다.
질병의 경우도 바이러스 뿐만 아니라, 각종 중독 즉, 게임, 마약, 알콜, 도박 등 다양합니다.
동성애, 소아성애, 가족간 성범죄, 등도 있습니다.
자연재해 역시 기후변화, 환경오염, 환경파괴, 공해, 오존층 파괴, 수질과 대기 오염 등 더욱 복잡하고 다양합니다.
자연재해, 전쟁, 질병의 문제 역시 인간의 탐욕과 죄악 때문입니다.
요엘서는 유다 나라 주위의 두로, 시돈, 블레셋(3:4), 애굽과 에돔(3:19)이 등장합니다.
그러나 앗수르, 바벨론, 파사는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엘서 기록 연대는 앗수르, 바벨론, 파사가 일어나기 전입니다.
혹은 포로기 이후 이웃 작은 나라들이 이스라엘을 괴롭혔으니, 포로시대 이후 기록일수도 있습니다(느 4:7).
"헬라"(3:6)라는 말이 나옵니다.
헬라는 주전 3세기 이후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포로기 이후 기록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포로기 전에도 상업차 거래가 있었으니 그 이전도 가능합니다.
요엘은 "회개하라"가 주제입니다.
그러나 구체적 죄를 나열하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아모스나 호세아는 우상숭배, 음란, 방탕, 도적질, 뇌물 등의 죄를 열거했습니다.
요엘서는 "야웨의 날"이 즉 심판의 날이 자주 등장합니다.
요엘서는 성전 중심 제사를 전제로 "회개하라" 외쳤습니다.
요엘 선지자는 예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이순한, 176-179).
형식적이고 의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공동체 "회개"가 전제된 예배를 말합니다.
회개의 이유는 유다 나라에 닥친 현실적 재난입니다(1:2-14).
유다 나라 공동체 회개가 있어야 현실의 재난이 해결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예언자적 관찰에 의해 회개를 촉구했습니다(1:15-2:17; 이순한, 182).
자연적 재난, 즉 메뚜기 재앙이 닥쳤으니 회개하라는 것입니다(1:2-4).
야웨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세 가지를 자손들에게 가르치고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신 6:6-19, 11:19), 은혜 받은 것(수 24:13), 그리고 이 본문의 무서운 재앙입니다(요엘 1:2-14; 이순한, 182).
요엘은 오경의 모세 언약에 근거하여, 국가적 불순종은 언약적 저주를 부른다고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징계 기간 이후에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회복시켜 주시고, 그들이 경험하지 못한 다양한 방식으로 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요엘서 1장과 2장은 신명기 32장과 그 구조나 주제가 유사합니다(Douglas Stuart, Joel, Word books, 1987, 228).
요엘은 땅위의 모든 민족들에 대한 야웨의 절대적 권위를 말합니다.
요엘서는 시온을 일곱번, 예루살렘 여섯번, 유다를 여섯번 언급합니다.
이것은 예루살렘의 언약적 중심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신명기 12).
예언에 있어서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와 권능은 구약의 전형적 주제입니다.
요엘서 3:1-5은 이 교리에서 더 나아갑니다.
구약에서 선택된 개인들, 선지자들 혹은 왕들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임재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그런 것은 아닙니다(Douglas Stuart, 229).
그러나 요엘서는 다가올 시대에 모든 하나님 백성이 성령의 지배를 받고 성령을 소유하고 성령에 따라 행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요엘에게 모든 사람들이 성령을 통해 살아계신 하나님과 직접 만나고 소통할 것을 미리 보았습니다.
요엘의 예언은 사도들의 오순절 체험(사도행전 2:1-41)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결과 회개하고 믿고 세례받는 신자들이 증가했습니다(사도행전 2:41-47).
이것은 하나님께 다가가는 보편성(행 2:44)과 영적 접근의 동등성(행 2:38-39)을 강조했습니다(Douglas Stuart, 230).
요엘은 세 가지 재앙을 말합니다.
하나는 메뚜기 재앙입니다.
메뚜기 재앙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은유적으로 볼것인가 입니다.
메뚜기 떼와 같이 실제로 군대가 쳐들어 왔을 수 있습니다.
또 하나는 가뭄(기근)입니다.
식물이 마르고, 열매가 없고, 물 공급이 부족했습니다(1:10,12,17-18,20).
다른 하나는 황폐화입니다.
황폐화는 가뭄 탓도 있지만 침략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문자 그대로 메뚜기 재앙이거나(1:11-12), 외세의 침입입니다.
메뚜기떼 혹은 외세 침입자들로 인하여 땅이 메마르고, 파괴되고, 불타버렸습니다(1:9,16,19-20;2:3,5).
저주, 침입, 가뭄, 그리고 황폐화는 모세 언약에 불충했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재난은 야웨께 대한 국가적 불순종 때문입니다(Douglas Stuart, 230).
"야웨의 날"은 요엘서에서 두드러집니다
"욤 아도나이" 즉 야웨의 날이 다섯번 등장합니다(1:15; 2:1,11; 3:4; 4:14; Douglas Stuart, 230).
야웨 날은 이스라엘 족속의 거룩한 전쟁에서 유래합니다(G. von Rad, "The origin of the concept of the day of Yahweh," JSS 4, 1959, 97-108, 재인용 Douglas Stuart, 231).
요엘서에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공격하는 야웨의 날(1:15; 2:1,11), 그 원수는 야웨 자신의 군대입니다(2:25; Douglas Stuart, 231).
이스라엘과 유다의 죄로 인해 그들을 심판하는 주체가 하나님이십니다.
또한 만국에 대한 심판의 최후 날이 야웨 날(4:14) 입니다.
그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보호하고, 원수들을 누르기 위해 개입하십니다(Douglas Stuart, 231).
유다와 예루살렘 침입자의 정체가 무엇인가 입니다.
실제 문자 그대로 메뚜기떼 재앙이 일어났을수 있습니다.
반면에 외세의 군대를 메뚜기떼로 은유 혹은 비유했을 수 있습니다(사사기 6:5; 7:12; 나훔 3:15-16; 렘 46:23; Douglas Stuart, 232).
레위기 26, 신명기 4, 신명기 28-32은 이스라엘이 불순종하는 경우, 전쟁에서 패해 포로가 된다 했습니다.
언약적 저주로 전쟁, 자연재해, 질병 등의 고난을 받게 되고, 언약적 회복의 복은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입니다(Douglas Stuart, 233).
하박국 3:16-17은 무화과, 포도, 올리브 열매가 거의 없고, 들판에서는 곡식과 채소가 나지 않습니다.
양떼와 소떼가 없습니다.
모든 원수의 침입 때문이었습니다.
요엘서 1:14-20역시 메뚜기가 아닌 외세 침입으로 황폐화 된것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51:27-33 역시 싸움의 소리, 메뚜기 떼 같은 침입자들, 지진, 땅이 흔들리고, 황폐화하고, 불길 등이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요엘서 1:1-2:17은 외세 군대의 침입을
메뚜기 떼 은유로 묘사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Douglas Stuart, 233).
필자 역시 이에 공감합니다.
회개는 진정성을 가져야 합니다.
적절하고 공식적인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금식, 공적인 슬픔, 합심 기도 등입니다.
또한 마음의 진정한 변화가 있어야 합니다(2:13).
마음을 찢으라 합니다(요엘 2:13).
단순한 의식, 외적인 경건에 그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그 능력이 나타날 수 있어야 합니다.
신실한 순종으로 이어지는 마음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Douglas Stuart, 252).
그러한 순종의 삶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신의 의지와 함께 성령의 도우심이 더해져야 합니다.
시편 51:17 KOERV에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물은 찢겨진 영이라 합니다.
하나님은 찢어지고 뉘우친 마음을 못 본 체하지 않으신다 합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원하십니다.
출애굽기 34:6-7 KOERV에서
주님은 모세 앞으로 지나가시면서 선포하셨습니다.
“야훼, 나 주는 자비롭고 은혜로운 하나님이다. 나는 성 내기는 더디하고 한결같은 사랑과 신실함이 풍성한 하나님이다.
수천 대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풀고 불의와 반역과 죄를 용서하는 하나님이다. 그러나 나는 죄 있는 사람을 벌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지 않는다. 부모가 죄를 지으면 나는 삼사 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벌을 내린다.”
하나님은 영원히 은혜를 베푸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죄악에 대해서는 삼사 대 까지 벌을 내리십니다.
불순종에서 야웨께 충성하는 마음과 자세로 돌아와야 합니다.
나라의 운명이 흔들리고 불확실하더라도 회개해야 합니다(2:14).
회개는 하나님의 자유와 주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회개는 하나님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백성이 하나님께 용서해달라고 강제할 수 없습니다.
인간은 단지 하나님께 마땅히 받아야 할 죄와 허물에 대한 징벌을 누그려뜨려 달라고 자비를 구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긍휼을 소망할 수 있지만, 하나님께 그것을 명령할 수 없습니다(스바냐 2:3; 애가 3:29; Douglas Stuart, 252).
회개는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누리기 위해 그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는 것입니다(호 3:5; Douglas Stuart, 252).
그 언약은 십계명과 성경 말씀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요엘서 2:15-17 KOERV
[15] 시온에서 나팔을 불어라. 거룩한 금식을 선포하여라. 사람들을 불러 모아 성스러운 집회를 가져라.
이 나팔은 전국민 긴급 소집 명령입니다.
회개와 금식 운동 동참 요구입니다.
하던 일을 멈추고 금식과 회개 기도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16] 백성을 불러 모아라. 모인 사람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여라. 장로들을 한 자리에 모으고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도 불러 모아라. 신랑도 신방에서 나오게 하고 신부도 침실에서 나오게 하여라.
"모든 것을 멈추라!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
이것을 하라!"
젖먹이들도, 장로들도 금식과 통회 자복 기도회에 참여하라는 것입니다.
여기 장로는 나이든 지도자와 노인들을 말합니다.
그날 새로 결혼한 새신랑, 새신부도 방에서 나와 금식과 회개 기도에 참여하라고 촉구합니다.
그만큼 개인과 공동체가 죽느냐 사느냐 다급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입니다.
2024년을 사는 저와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해야 사는 것
입니다.
유치원생, 초등학생, 80대 할머니도 모두 참여해서 말씀과 기도에 힘써야 사는 것입니다.
[17] 주 앞에서 섬기는 제사장들은 성전 현관과 제단 사이를 오가며 울며 빌게 하여라. “오, 주님. 당신의 백성을 살려 주십시오. 당신의 유산으로 삼으신 이 백성이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하여 주시고 뭇 민족 가운데서 놀림감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십시오. 뭇 백성이 ‘저들의 하나님이 어디 있는가?’라는 말을 하지 못하게 하여 주십시오.”
제사장들은 하나님과 백성 사이에 중재자 역할입니다.
젖먹이부터 새신랑 새신부와 나이든 어르신들까지 모두 성전 앞에 모여 서서 혹은 엎드려서 울부짖고 금식하고 애통과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사장들은 성전 입구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금식하고 통회하고 금식하며 회개 기도를 하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전국민 금식 통회 회개 집회입니다.
"주님의 백성을 살려 주십시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스라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비웃지 말게 해주십시오."
백성이 참되게 회개하면 하나님은 반드시 그 나라와 민족을 회복시켜 주십니다.
우리는 2024년을 살고 있습니다.
약 28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이 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 앞에 나를 쳐서 복종하며 은혜를 구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새언약의 관점에서 하나님은 세상 죄를 위하여 자기 독생자를 내주실 필요가 없었지만,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 못하시는 그리스도 예수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셨습니다(고린도후서 5:21).
만일 우리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은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십니다(요일 1:9).
우리가 빛 가운데 살면 그 아들 예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케 하십니다(요일 1:7; Douglas Stuart, 254).
날마다 주님 은혜 속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과 자녀들과 자손들 되길 주님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