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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지에 실린 60년대 광고입니다. 자세히 읽어보면 그 시대의 생활상을 한 눈에 볼 수가 있습니다.
5~60대 분들의 심금을 울렸던 유명한 영화라고 하네요 길거리 소리사(당시 전파상)에서 라듸오로 현재 시간을 알리면 모두가 잠시 서서 시간을 마추었지요 한시간에 10분 이상씩 시간이 빨라지거나 느려지는 시계도 많아서 자주 마춰줘야 했답니다 (밧데리가 아닌 태엽을 손으로 하루에 한번씩 감아서 움직이는 시계)
한 반에 한 두명 정도 신고 나머지는 모두가 검정색 고무신이였으니..... 왜 그리도 신고 싶었는지.. 너무도 가난했던 시절에 혜성같이 등장한 운동화 학생들에게는 선망의 대상이 였지요
신부의 혼수품 목록1호였답니다 당시에는 업자가 펜팔을 소개해주고 돈대신 우표를 여러장 받았었지요
씹다가 잘때는 벽에 붙여두고 먼저 일어 나는 사람이 때어서 하루종일 씹고 결국은 다 삮을때까지 씹었었지요 아주 귀한 친구나 아는분 만나면 껌을 선물하곤 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뒤이어 풍선껌이 나오면서 전국에 풍선껌 불고 다니는 바람이 휘몰아 첬답니다 어른도 아이도 아주머니도 모두가 푸우~펑. 입가에 쩌억 껌이 붙고 극장,기차,뻐스 길거리 할것 없이 따닥 따닥 껌씹는 소리가 시끄러웠지요 이때부터 누드집이 비공개 판매가 시작된것 같습니다
동네 부자집 대청마루에 저녁으로 틀어놓고 온 동네 사람들 다 모여서 시청하곤 했지요 한프로 보고 나면 주인이 꺼버리고 사람들 가고나면 틀고 그럼 또 모이고 주인에게 잘보인 사람은 마루에 올라가서 보고 나머지 사람들은 마당에서 발뒤꿈치 들고 조금이라도 더 볼려고 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특히 만화방에서 한프로 볼려고 하면 방송되는 연속극이나 레슬링 경기에 따라 10~20원 내고 보고 끝나고 다른 프로 볼려면 또 돈내야하는 시절이였답니다 가짜가 여러분을 속이고 있습니다란 문구가 이색 적입니다
바르고나면 바람에 머리결이 날리지도 않고 검게 빛이나며 기름기가 많아서 바람부는 날에는 머리에 먼지가 보얏게 앉고했답니다 영화 한편 볼 돈은 없고 하루종일 극장앞에 서서 구경하고 나오는 사람들 붙잡고 내용을 조금씩 들어가며 영화 한편을 다 본것 처럼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했었지요 추운 겨울이오면 몇날 며칠밤을 새면서 손으로 뜨게질하여 손수 웃도리랑 바지를 505 털실로 짜주셨지요 당시 현찰 만지는 사람들은 거의다 공무원들이었으니 아마도 공무원 우대 음식점 같습니다 전파가 약해서 빨래줄에 긴 철사를 연결하여 걸고(안테나) 듣던 때도 있었습니다 라듸오를 들을때면 치치치치치 잡음 없는곳 찾아 이방 저방 온집안을 다 헤집고 다녔지요 당시 보증인 두명 있으면 할부도 해줬답니다 내용이 꼭 소설 보는 느낌 들지요,,^^* 획기적인 개선이 되기 시작 했답니다.. (지금은 가스렌지) 길거리나 버스 기차안에 누군가 틀어 놓으면 모두가 대중가요를 속으로 흥얼거리며 따라 부르곤 했답니다... 타박상에도 바르고했답니다 ㅎㅎㅎㅎㅎㅎ 신혼부부 결혼하기전에 꼭 한번씩 읽고 했었지요 영양통닭집도 큰맘먹고 가족단위로 외식하던 곳입니다. 그거 모으려고 애주가들은 사이에 인기 짱이였지요 기억이 아직도 생생 합니다 이 삼륜차는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 많은 원동력이 되었던 차입니다 0.5톤 부터 4톤까지 생산되었는데 연탄배달 에서부터 목재소 나무 운반까지 척척~ 넘어지기도 잘 넘어지고 일으켜 세우기도 쉬웠지요,사람 여럿이서 일으켜 세우고 했어요 당시는 먹고 살기 바빠서 피임에는 별로 지식이 없는터라 아이가 생기고 난후 처방하는 일이 비일 비제 했답니다 ...약으로 부작용이 많았던걸로 기억 됩니다 무료 입장 많이들 했네요 당시에는 ㅇㅇ라사라고 불렀지요 입학금이 1원 50전 ^^* 시골에서는 당시에 만병 통치약으로 잘못 인식되어 조금만 아파도 마이신을 찾곤 했지요 이때에도 실제 계약 결혼이란게 있었다고 합니다 위 금액표기는 1톤당 각격을 표기 한것 같습니다 빵을 푸풀게 만든다는..... 미워도 다시한번 다음으로 힛트 첫던 사랑은 눈문의 씨앗 이네요 이 노래도 지끔껏 많이 불러 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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