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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콥터의 역사는 역사 이전의 선사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 옛부터 사용되어 온 부메랑은 지금도 오스트레일리아나 아프리카 원주민들 사이에 전해오고 있지만 이 도구는 사냥감을 향하여 공중을 날아 목표물을 타격,무사히 원래의 출발점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회전익과 오토로테이션의 원리와 다름없다. 또 중국에서는 기원전 4세기경 대나무를 이용해서 만든 "하늘은 나는 팽이"라는 완구도 있었다. (어린시절 손바닥으로 비벼서 하늘로 날리던 바람개비 같은 모양)
한편, 서양문명 중에 헬리콥터는 또 하나의 기원을 가지고 있다. 그것은 비행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니었지만 그리스의 뛰어난 수학자이며 물리학자, 발명가이기도 한 아르키메데스(기원전287 ~212년)가 발견한「회전하는 나사의 원리」이다.
그는 이 원리에 의거하여 펌프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침몰선 안의 물을 퍼 내기 위한 장치로 실린더 안에서 나선 모양의 나사가 연속적으로 회전, 물을 밀어 올리면서 수중을 움직여 가게 되어 있었다. 현재의 프로펠러나 로터는 나사의 원리가 공기에 응용된 것으로 과학적인 의미로의 헬리콥터의 역사는 아르키메데스로부터 시작된다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로부터 천년 이상이 지난 13세기, 영국의 위대한 자연과학자 로져 베이컨(1214 ~1294년)은 기계에 의한 비행의 가능성을 주장하며 어쩌면 사상최초의 인공의 기계를 사용하여 인간도 하늘을 날 수 있다는 생각을 굳혔다. 그의 저서 「기술과 자연의 비밀」에는「비행기구는……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날개를 가지고 하늘을 나는 새와 같이 공기를 두드릴 것이다……」라고 쓰여져 있다.
그후 2세기가 지난 이탈리아 르네상스기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1452 ~1519년)는 처음으로 헬리콥터 그 자체를 생각해 냈다. 레오나르도는 비행의 수수께끼에 임하여 날개지하는 기계, 글라이더, 낙하산, 에어스크류 등의 설계스케치와 메모를 남겼으나 이 안의 에어스크류는 바야흐로 헬리콥터의 원형이 되는 것이었다.
레오나르도는 물과 공기가 모두 유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강의 물과 바람의 움직임을 비교 검토하여 새의 비상은 물고기가 수중을 헤엄치 것과 비슷한 것을 알았다. 이것으로부터 레오나르도는 아르키메데스의 나사가 물의 흐름에 따라서 움직여 가듯이 공기중에서도 빠르게 회전하면 비행기계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 에어스크류에 대하여 그는「풀 먹인 옷감으로 나사형의 돛과 같은 형상을 만들어 둥근형태의 받침대 위에 세운 기둥에 설치, 이것을 고속으로 회전시킨다면 그것은 하늘높이 올라 갈 것다……」
헬리콥터의 모형이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은 레오나르도 다빈치로부터 3세기 후의 일이다. 그 첫번째는 1754년, 미하일 로모노소프(1711 ~1765년)의 손에 의해 용수철장치의 모형일 것이다.로모노소프는「러시아 과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며 물리학, 화학, 천문학, 지리학등의 다방면에서 활약한 항공 연구가이기도 했다. 그에게 있어서 하늘을 나는 것은 큰 꿈이며 헬리콥터는 반드시 현실화 될것이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리고 1754년 7월, 스스로 만든 모형을 러시아 과학 아카데에서 날려 보였던 것이다.
이 모형에 대하여 아카데미 회보는「명예 고문의 로모노소프씨는 에어로 다이나믹이라 부르는 그의 발명의 실연(實演)을 보여 주었다. 그것은 반전하는 2매의 날개를 기지고 있고 시계의 태엽으로 움직이기 시작여 공기를 하향으로 억누르고 윗쪽에 뛰어 올랐다……」라고 쓰고 있다.
한편, 서유럽에서도 1784년, 2명의 프랑스인이 헬리콥터의 모형을 만들었다. 로노이라고 하는 생물학자와 비엔브뉴라는 기계공이다. 그들은 각각의 재능을 취합하여 작은 용수철장치의 헬리콥터를 완성했으며 그 원리는 로모노소프의 것과 매우 비슷했다.
즉 2개의 로터를 하나의 축에 붙여 서로 반대 방향으로 돌게 되어 있어 이 반전식 로터에 의해서 기체를 회전시키는 토크가 발생하지 않는 것이었다. 로터블레이드는 칠면조의 날개. 파리의 만국 박람회나 프랑스 과학 아카데미에서 실연되어 자유 비행을 하고 상당한 높이까지 상승하였다. 이 실험은 세상의 흥미를 끌어 전유럽의 과학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결과가 되었다.
헬리콥터에 대해서는 항공 과학의 아버지로 유명한 영국의 과학자 조지 케일리경(1773 ~1857년)도 젊을때 부터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 항공 분야에 있어서의 업적은 공기의 저항에 힘을 더하면 1매의 평평한 판자로 일정한 중량을 지지할 수 있다」라는 비행의 원리에 대한 해명이라는 점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는1792년, 19세에 이미 쌍로터 헬리콥터의 모형을 만들기 시작하여 1796년의 작품은 시계의 태엽을 동력으로 하여 고도30m에 이르렀다. 1843년에는 4매의 로터와 2개의 추진용 프로펠러 장착의 헬리콥터 구상을 발표했다. 케일리경은 이 탈 것에「하늘을 나는 마차」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 로터는 폭이 넓은 8매의 블레이드가 종이접기로 만든 풍차와 같은 모양으로 부착, 게다가 전진 속도가 일정한 속도에 이르면 블레이드가 닫혀 원반형의 고정익으로 바뀌게 되어 있었다. 오늘의 전환형 VTOL기의 조상이라고 말해야 할지도모른다.
경의 생각은「똑바로 날아 올라 공중에 멈추고 좁은 장소에도 내릴수 있는 능력은 특히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중량에 비교해 출력의 큰 엔진이 필요하다」것도 간파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후19세기 후반에 들어 많은 헬리콥터 모형이 시작(試作)되어 실험되었다. 그 중에 프랑스인의 폰톤은 1863년 작은 증기기관 탑재의 모형 실험에 성공하여 프랑스와 영국에서 특허를 받았다.
이 헬리콥터는 2중반전식의 로터를 붙이고 있었으며 거기에 프랑스어로 Helicoptere 라는 이름을 붙였던 것도 폰톤이다. 희랍어의 나선을 의미하는 「헤릭스」(Helix )와 날개를 의미하는 「프테론」( Pteron )을 조합한 말로 영 미에 곧바로 퍼져 말미의 e를 없애 지금의 헬리콥터(Helicopter )라는 영어가 태어났던 것이다.
1878년에는 이탈리아인 엔리코 포라니니도 2중반전식 로터의 모형을 만들었다. 이 헬리콥터는 중량은 4kg. 4분의1마력의 증기 엔진을 탑재, 실패를 거듭하면서도 최종적으로는 9 m의 고도까지 상승, 불안정하기는 했지만 30초간의 공중정지에 성공했다. 그러나 증기기관으로는 아무리 진보해도 너무 무거워서 사람을 태울 수 있는 헬리콥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했다.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1847 ~1931년)도1880년대, 헬리콥터에 관심을 가졌다. 그래서 전기 모터를 동력으로 로터를 돌려 다수의 모형을 만들어 데이터를 뽑았지만 전기로는 충분한 파워가 나오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래서 이번에는 화약엔진의 개량에 착수했다. 그러나 어느 화약솜의 덩어리가 실험실에서 대폭발을 일으켜 그 시도는 포기해 버렸다.
그런데도 에디슨은 헬리콥터에 대한 관심을 단념하지 않고 후년 비행기가 날게 되고 나서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었다.「강력한 엔진이 있으면 아무리 비행기가 진보해도 언젠가는 헬리콥터가 실현될 것이다……」
이렇게 하여 헬리콥터의 역사는 동력부족을 해결하기 위하여 제자리 걸음을 계속해 왔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인력에서부터 시계의 태엽, 고래의 뼈, 활의 시위, 고무끈, 증기기관, 전기모터 등, 다양한 동력이 시도되었지만 모두 실패로 끝났다.
헬리콥터가 일찍부터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 원리적으로도 가능했으나 비행기의 발달에 추월 당한것은 훨씬 더 강력한 엔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같은 중량을 공중에 들어 올리는데에는「공기나사」를 돌려 오르는 것보다 고정익을 공기중에 미끄러지게 하여 날리는 것이 훨씬 간단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랜만에 들어와서 글말 쓰고 가내요^^ 다들 잘 게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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