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나에게 일러주었네
문희봉
사랑은 강물 같은 것이 아닌가? 흐르는 소리가 들리지 않아도 강물은 사랑을 안고 여전히 흘러간다. 나는 이웃들의 눈빛을 보면서 사랑과 감사를 느끼며 오늘도 행복을 느낀다.
오늘도 아들에게 말한다. ‘네가 눈물을 흘리면 나는 맑은 바람이 되어 너의 눈물을 씻어주고, 네가 삶에 지쳐 쓰러지면 네 등을 쓰다듬는 따스한 바람이 되어줄게. 그리고 너를 보살피는 모두의 힘겨운 걸음걸이마다 아빠는 함께 할 거야. 아들아, 착하고 건강하게 자라야 돼. 아빠는 별빛으로, 바람으로, 따스한 햇살로 영원히 너와 함께 있을 거야. 힘들어도 참고 견뎌야 해. 삶은 늘 평지만 걷는 건 아니니까. 굴곡진 곳, 어두운 곳, 경사진 곳도 오르고 내리는 게 삶이라는 걸 잊지 말아다오.’
너에게 없는 것을 욕심내기보다는 네가 갖고 있는 것을 소중히 하고 감사히 여기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란다. 갖고 있는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말기를, 그것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면 외려 평범한 것까지도 잃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네가 가질 수 있고 가질 수 없는 것은 또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지금까지 욕심만 무겁게 짊어지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하지만 역설 같지만 그 욕심을 잃을지라도 결행하는 것은 결코 욕심이 아니라고 내 마음이 너에게 이야기한다. 우리는 언젠가 때가 되면 육신마저 버리고 가야 하는 존재이기에 하는 말이다.
그런데 무엇이 그리 필요할까?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노력해야 할 것은 사실 얼마만큼 소유할 것인가가 아니라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해 얼마만큼 감사해야 할까가 아닐까 싶다. 내가 사람이어야 다른 사람이 사람으로 보이는 법이다.
우리의 삶은 유한하다. 반복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재방송이 안 된다. 집착도 미련도 버려야 할 것이라면 가지고 있는 것을 잃을까 봐 전전긍긍해야 할 것이 아니라 버려야 할 것은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것을 얻기 위해 희망찬 행진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새는 하늘을 날아도 발자취를 남기지 않고, 나무는 천 년을 살아도 흙을 더럽히지 않는다. 그런 삶이어야 하지 않겠니?
먼 길을 떠나온 저녁별 하나가 피곤한지 방안으로 해쓱한 얼굴을 내밀더니 내 가슴 가득 사랑을 쏟아놓는다. 그 별이 고맙다. 사람들은 세월을 닮아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가 살아온 세월을 닮아간다. 사랑은 발이 없이 사는 동물이다. 그래서 안아주지 않으면 혼자서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다.
오늘도 나는 자연 속에 하나의 점으로 있다. 침묵하는 법, 정지하는 법을 터득하는 법을 배운다.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특유의 멋과 예스러운 풍광을 만들어 강물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다. 무지개와 뭉게구름은 자연이 만들어 하늘에 걸어둔 가장 향기로운 희망이며 절정에 다다른 도덕이다. 자연과 함께 하다 보면 언제나 세월 흐르는 것 모르고 즐기던 나의 검게 탄 얼굴이 거기 자리하고 있었다는 걸 느낀다.
운명은 순응하는 자는 등에 태우고 가고, 반항하는 자는 끌고 간다고 하는 말이 있다. 가도 가도 황톳길이지만 그 길이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는다. 참고 견디면 좋은 길이 반드시 나타난다.
아주 오래 전의 일이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까지 긴 시간을 달린 일이 있었다. 그 공간과의 만남은 나에게 소리 없는 가르침을 주었다. 이 이상 더 무엇을 찾아 헤매고, 더 무엇도 가지려 하지 말라고 말이다.
나는 자신에게 묻는다. 내가 살아 있음을 무엇으로 느끼는가? 끊임없는 교통체증에 화를 내면서, 저녁 약속에 늦지 않으려고 계단을 뛰어오르면서, 작은 자존심 하나를 지키기 위해 무참하게 구겨버린 시간들을 생각하면서, 아직도 버리지 못한 채 부대끼며 살아가는 경쟁심, 그런 속에서 삶의 희열을 느끼는가 하고 말이다.
스패어 운전을 하다 정식 운전사가 되고, 개인택시 허가를 얻어 육십이 넘어서야 사 남매를 대학 졸업시키고, 마나님과 임대아파트에서 산다던 어느 고참 택시 운전사의 너털 웃음은 너무나 겸허하고 당당했다.
서산에 지는 해는 장엄하며 아름다운 노을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생각으로 노년을 살았으면 좋겠다. 욕심은 낮추고 욕망은 높여야 한다. 돈이란 가치 있게 쓰일 때만이 그 효력을 발휘한다. 돈은 소금물과 같아서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마르다. 누군가를 위해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다면 그게 바로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