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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시동네 원문보기 글쓴이: 시문학연구소
좋은 시를 쓰기 위한 자세
1.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해서 써야 한다.
2. 적어진 글을 소리 내어 읽으면서 문맥의 흐름을 다듬는다.
3. 우연한 기회에 스치는 영감을 메모해 두었다가 적당한 시어로 옷 입히기를 한다.
4. 메모하는 습관을 가진다.
5. 추상과 구상을 적당하게 배분한다.
6. 직유보다는 은유에 치중해서 글을 쓴다.
7. 일상화된 언어보다는 자기만의 독특한 언어를 만든다.
8. 독자의 몫을 배려한다.
9. 이미지 중복을 피한다.
10.즉흥적으로 시 쓰기 연습을 한다.
11.수식어는 극약이다-수식어를 비유법으로 정리함이 절대 필요하다.
12.감춤과 드러냄이 절묘하게 짜여져야 글이 산다.
13.글의 말미는 명사형이나 종결의미로 끝내라.
14.단정적, 확정적으로 끝내지 말라.
15.차라리 의문으로 끝내는 것이 더 효과를 가져온다.
16.호흡을 너무 길게 잡지 않도록 소리 내어 읽어보고, 단락이 너무 길어 무슨 소리인지 잘 모를 때에는 2-3행 어딘가서 끊어 줘야한다.
18. 가능하면 3행 정도에서 단락을 짓는 것이 호흡에 적당하다.
19. 좋은 시행은 적시 적소에 종결의미와 명사형으로 막아줘야 한다.
20. 글을 적을 때 비유를 앞세우지 말라. 글에서는 1차적 의미가 더 중요하다.
21. 1차적으로 현실을 묘사하고 2차적으로 비유법을 사용해 부연해야한다.
22. 비유법이 첫머리에 나오면 재미가 없다. 진실성이 결여되어 있다
23. 시작, 전환, 상승, 결구로 시를 전개해 나간다.
24. 단락의 종결의미를 모두 명사형으로 나열하면 변화의 맛이 없다.
25. 글을 적을 때 사실묘사에 의존할 경우 혼자만의 감동,
작가만이 감동하는 글이 되므로 다른 사람들이 동의하지 않는다.
즉 시적화자의 메시지가 없다.
26.한 단락 내에서 나열로 적어 나갈 때는 두 행이 이질적인 이미지를 주도록
적어나가야 이미지가 산다.
좋은 시의 조건
송 나라의 유명한 문장가 구양수는 글을 잘 쓰려면
"많이 읽고, 많이 쓰고, 많이 생각 하라"고 했다.
이것이 이른바 三多說이다. 좋은 글을 쓰는 데는 왕도가 없다는 것이다.
남이 쓴 글을 찾아서 널리 읽고, 폭 넓고 깊은 사색을 하면서 많이 써 보는 가운데
자연 히 훌륭한 글을 쓸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러한 견해는 글쓰기에 관한 고전적인 발언이므로,
오늘날 우리도 이를 진지하게 받아 들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좋은 글은 어떠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간단하지 않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말하여 내용이 진실하고 알차며,
읽기에 편하고 이해하기 쉬운 것이면 좋은 글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는 좋은 글의 요건으로 생각되는
12개의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하나 하나 자세히 살펴보기로 한다.
1. 충실성 글은 우선 내용이 충실해야 한다.
부질없이 길기만 하고 담긴 내용이 알차지 못하고 공허하거나
무의미한 것은 좋은 글이 아니다. 글의 내용이 알차서 밀도 있는 것을 충실성이라 한다. 말할 것이 없으면 하지 말라. 좋은 글에는 '어떻게'에 못 지 않게 "무엇"이 중요하다. 충실성에 대한 두 가지 충고이다. 내용과 기교가 하나가 되어 조화를 이룬 곳에서 좋은 글은 생겨난다. 그리고 내용이 빈약하면서 기교에 빠진 글보다는 기교는 서투르더라도 내용이 충실한 글이 더 나을 것이다.내용이 충실한 글은 기교가 다소 부족하여도 읽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러한 글은 필요하고 알맹이가 있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내용이 알차지 못 한 글은 읽는 이를 공허하게 한다.
2. 방법과 기교 기교에 치우쳐 내용이 부실한 글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적절한 기교나 방법은 좋은 글의 필요 조건이다. 예를 들어 설명의 방법 중 정의를 내려야 할 대목이 있고, 분 석이나 비교, 대조의 방법으로 설명, 논증해야 글의 효능이 높아질 경우가 있다. 비 유나 상징의 기교를 써서 생각의 깊이와 폭과 높이를 가늠하기도 하고, 열거와 예증, 반복, 인용의 방법으로 글을 더 구체화하기도 한다. 이런 여러 기교와 방법들을 글의 기법이라 한다.
3. 정확성 정확한 글이란 우선 정서법, 띄어쓰기, 구두점 찍기 등 문법, 맞춤법에 맞도록 쓴 것이야 한다. 글은 적합한 어휘로써 어법과 기타 부대 조건에 맞도록 써야 한다.이 경우에 요청되는 것이 정확성이다. 실제 언어의 사용에 있어 바름과 그름의 절대 적 기준은 없다. 사회에서 쓰이는 언어 현상 모두가 긍정적인 것으로 용납되는 것이 다. 표준어의 입장에서는 욕설이라고 여기는 말도 가까운 친구 사이에는 더없이 따뜻 한 정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그렇지만, 글쓰기의 초보자는 일정한 표준어법, 구문의 원리 등에 맞도록 쓰는 훈련 을 쌓아야 한다. 이것이 '모방에서 창조로' 나아가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일반적인 실수에는 단락을 구분 없이 나열하는 경우, 구두점을 바르게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4. 경제성 가장 적은 노력으로 가장 큰 효과를 얻고자 하는 경제의 원리는 글에도 적용된다.필요한 자리에서 필요한 만큼의 말만 쓰는 것이 글의 경제성이다.말이 많으면 화제를 장황하게 늘여 전달의 효과를 낮춘다. 물론, 말이 많다는 것이 꼭 길이의 장단을 가리키는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그것이 최소한의 필요한 말로 화제를 전개한 것인가에 있다.
5. 정직성 정직성이란 자기가 독창적으로 쓴 글인가, 남이 쓴 글의 일부를 따왔는가, 개념을 인용했는가를 쓰는 이가 분명히 밝히는 것을 뜻한다. 직접 따오는 명인뿐 아니라 개념을 취하거나 부분을 녹여 따오는 암인까지도 그 출처를 밝혀야 한다.글을 쓸 때 다음 세 경우에는 반드시 출처를 밝혀야 한다. 첫째, 다른 이가 실제로 사용한 어구를 따다 쓴 경우 둘째, 다른 이의 착상, 견해, 이론을 끌어다가 쓴 경우 셋째, 사실, 통계, 예증을 끌어 온 경우 그러나 표절과 보편적인 직관에 따른 유사한 표현은 구별되어야 한다.김소월의 '진달래꽃'과 브라우닝의 '사랑의 한 길'이나 예이츠의 '하늘나라의 장옷' 은 그 시상과 표현이 비슷하지만 표절이라고 하지는 않는다.실제 두 시를 본다면 우리는 창조적 직관의 우연한 조응임을 알 것이다.아무튼 글은 인격과 양심의 거울임을 명심하여 글쓰는 이는 정직하게 자기다운 글 을 써야겠다.
6. 성실성 성실성은 자기다운 글을 정성 들여 쓰는 것을 뜻한다. 글쓰기에 미숙하고 솔직하지 못한 사람은 글을 쓸 때 '일정한 과제에 대하여 자기가 실제로 생각하는 것'을 쓰기 보다는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고 보는 것'을 쓰려고 한다. 그 결과 마음에도 없는 글, 자신의 글이 아닌 설익은 문장으로 자기의 교양 있음, 유식함, 사려 깊음을 과시 하고 허세를 부리게 된다. 따라서, 성실하지 않은 글쓰는 태도를 고쳐져야 한다.
7. 명료성 좋은 글의 '선명한 뜻'을 명료성이라 한다. 무엇을 쓰고 있는가를 분명히 알 수 있 도록 쓴 글이라야 잘 쓴 글이라 할 수 있다. 명료성은 주로 설명문, 논증문 등 지 적인 글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명료성과 지나친 단순성을 구분 못 하여서는 안 된 다. 시인의 직관과 철학자의 깊고 원대한 사유의 세계가 늘 일반 독자에게만 이해 되도록 평이한 환담 정도에 국한되지는 않을 것이다.어느 글의 뜻이 불명료한 까닭은 크게 보아 다음의 두 가지다. 첫째, 서술의 특수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까닭이다. 둘째, 잘못된 구성에 그 까닭이 있다.
8. 일관성 일광성은 글의 시점, 난해도, 형식적 요건 - 어조, 문체, 내용 등이 일률적인 것을 뜻한다. 글의 중도에서 이를 변화시킬 필요가 있으면, 독자가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 을 여유를 얻도록 하는 등 글을 쓰는 이는 신중을 기하여야 한다. 글에서 이러한 일 관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문맥의 호응과 내용의 일관성이 지켜져야 한다.
9. 완결성 글은 본디 의도한 감정과 뜻을 온전하게 표현, 전달해야 한다. 주제 또는 중심 사상 을 담은 부분과 이를 뒷받침하는 부분으로 이루어져 한 편의 글은 완결된다. 글의 이러한 속성을 수사학에서는 완결성이라 한다. 글의 완결성은 작게는 문장에서, 나아 가서는 문단과 한 편의 글 전체에서 요청되는 특성이다.
10. 독창성 창조된 모든 것에 독창성이 있듯이, 새로 쓴 글에도 독창성이 있어야 한다. 글에 나타난 참신하고 독특하면서도 자연스러우며 창조적인 특성을 여기서는 독창성이라 한 다. 글은 특정한 개인이 쓰므로, 그 개인의 경험과 지식 및 상상력이 그의 인성에 작 용하여 표현되는 언어 능력의 창조적인 실현이 곧 글을 쓰는 행위다. 그래서 글의 독 창성이란 '개성적'이라는 말과도 통하며,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창작을 가리켜 '낯설 게 하기'라 하였다. 독창성, 곧 창의성은 사물을 새롭게 본다는 관점에서 시작되며, 참신성을 위한 노력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단지 표현의 참신성만이 아니라, 소재, 제재, 주제, 구성, 문체 가 모두 독창적이고 참신한 것이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소재나 제재가 평범하거나 진부하더라도 구성과 문체 및 주제가 참신하여 독창성을 얻은 글을 쓰는 일 또한 값 진 것이다.
11. 타당성 앞에서 우리는 정확성을 강조하였으나,
필경에는 독단적일 수도 있는 작문 교과서의 규칙보다 문맥상 타당성이 있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 글이 시점, 독자, 목적 등에 맞도록 씌어야 한다고 주장할 때, 이들 기준에 맞는 글의 성질을 타당성이라 한다. 타당성의 관용상 규준은 형식적인 글,
비형식적인 글, 통속 어법, 문체, 어조 등이 그 대표적인 것들이다.
12. 자연스러움 글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자연스러움은 글의 흐름이 순탄한 동시에 거슬리는 어구가 없어 이해하기에 순조로운 것을 뜻한다. 지나치게 기교를 부리거나 현학적인 냄새를 풍기려다가는 부자연스러운 글을 써내기 쉽다. 쉽게 말하여 '자연스러움'이란 '가식이 없음'이다. 억지로 꾸며 돋보이려 할 때, 그것은 부자연스럽고 또 사실이 아닌 가짜라는 것이 금방 드러난다. 글도 마찬가지다.
창작 초기에 나타나는, 고쳐야 할 표현들 (원칙적이고 통상적인)
*절대적인 진리는 아님, 아래를 초극한 습작도라면
때론 아래와 같은 현상을 다른 이치의 작품성으로 취약한 구성이 극복 되어져,
오히려, 우수한 시 창작품 일 수가 있다.....註
1. 사고의 유연성,피상적인 인식에서 벗어날 것아이들이
그림 그리는 모습을 살펴보면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때가 있다.
화폭에 산, 나무 들, 꽃, 하늘, 사람의 밑그림을 연필로 그려놓고, 나무는 고동색, 나뭇잎은 초록색, 하늘은 푸른색 이런 식으로 화폭에만 시선을 고정시킨 채 색칠을 해나간다. 아이들 머릿속에는 이미 선험적으로 얼굴은 살색, 머리는 까만 색 땅은 황토색으로 칠하면 된다는 생각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다. 앞에 있는 나뭇잎 색깔이나 하늘의 변화하는 빛깔을 잘 관찰하면서 그리는 아이는 별로 없다. 그렇게 그려놓은 그림들은 그래서 늘 그게 그것 같고 새롭지 않다. 나무둥치에 고동색을 가득 칠해 놓은 아이에게 고동색 크레용을 들고 가 나무에 직접 대보게 하며 "어때, 색깔이 같니?" 하고 가르치는 선생님을 본 적이 있다. 사물의 모습을 직접 보고 자세히 관찰하며 피상적인 인식에서 벗어나게 하는 일, 이것은 아마 예술 창작에 있어 가장 기본적인 것인지도 모른다. 추억을 실은 버스가 나의 마지막 종착역에 서자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귓전에 들렸다. 서쪽하늘 가까이에서 실려오는 바다 내음을 맡으며 황금벌판 풍요로움에 홀쭉한 고향길을 말없이 걷는다. 어린 시절이 벌판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속삭였던 숱한 언약들이 다시 귓전에 들려온다. 살아오면서 버려진 덧없는 것들이었지만 그때처럼 가슴 설레어 눈망울 적시었고 마음은 이미 바다와 들판 작은 마을 소박한 집들에 백지장처럼 깔려버렸다. 하얗게 깔린 백지장 위로 그리운 사연들이 써져 내려가고 낯설지 않은 이름들이 내 마음 호수에 돌을 던질 때마다 잔잔한 갈등을 일으킨다. 세월이 어느덧 흘러 밉던 얼굴마저 그리워져 모질게 내쫓았던 당신에게 다시 돌아온 것은 이곳이 나의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파랑새가 날개짓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 「애착」 이 시는 고향에 다시 돌아오면서 느낀 생각들을 쓴 시이다. 그런데 고향에 대한 그의 인식은 어떠한가. '황금벌판 풍요로움~.' 그는 고향 벌판을 바라보며 황금 벌판이라고 말한다. 대단히 피상적이다. 오늘날 농촌의 실제 모습이 어떤가 하는 구체적 인식이 결여되어 있고, 농촌의 모습을 이야기할 때면 으레 묘사하던 상투적인 관용어구를 그대로 따라 쓰고 있다. 이런 대상에 대한 피상적 인식의 흔적은 이 작품 여러 곳에서 발견된다. '작은 마을 소박한 집들~', 런 표현도 마찬가지이고, 고향을 '비둘기가 둥지를 틀고 파랑새가 날개짓하던 곳'이라고 묘사한 부분도 마찬가지이다.
2. 상투성에서 벗어나 내 안에서의 언어 창조
위의 시 '애착'에서 보는 것처럼, 삶 또는 대상에 대한 피상적 인식은 자연히 상투적인 표현으로 이어지게 된다. '내 마음 호수에 돌을 던질 때마다~', 이런 구절 역시 그렇다. 마음을 호수에 비유하는 표현, 그 호수에 돌을 던진다는 표현 등은 너무 흔하게 쓰여온 표현이며, 따라서 전혀 새로운 느낌을 주지 못한다. 눈부신 밤거리 달빛 한 가닥 들어설 틈도 없다. 휘황한 불빛 속엔 검은 하늘 향해 벌린 하얀 살뿐이다. 아무 것이든 빨아들이는 불가사리 식욕 붉은 웃음은 잿빛 거리를 휘돌아 하늘에 퍼지고 현란히 부서지는 물결 속에 검은 세계는 찬란히 부상한다. 달이 떨어져 나무에 걸려 있다. - 「밤거리」 이 시에 나오는 '붉은 웃음' '잿빛 거리' '검은 세계' '하얀 살' 등의 표현은 각각의 색깔이 갖고 있는 고정적인 이미지를 상투적으로 답습하면서 쓰고 있다. 밤거리의 풍경을 그리고 있지만, 어딘가 답답하다. 답답한 풍경을 통해 무엇인가를 이야기하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잘 잡히지 않는다. 키스를 하고 돌아서자 밤이 깊었다 지구 위의 모든 입술들은 잠이 들었다 적막한 나의 키스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정호승 시인의 「키스에 대한 책임」이라는 시이다. 입맞춤을 하고 돌아서는 깊은 밤, 너는 눈물을 흘리는데 나의 키스, 나의 사랑은 이제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적막해지는 심정을 '적막해지는 나의 키스'라고 표현했다. 신선하지 않는가. 첫 키스의 느낌을 각자 한 번 시로 표현해 보자.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첫 키스의 느낌을 수식하는 말을 만들어 보자고 하면 '황홀한' '달콤한' '갑작스런' '아련한' '부끄러운' '잊지 못 할' '지워버리고 싶은' '감미로운' '떨리던' 등등의 말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표현들 중에 참신한 표현은 무엇일까. 잘 찾아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한용운 시인은 어떻게 표현했는가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이라고 표현하지 않았는가. 지금부터 70여 년 전 그런 참신한 말로 표현했다. '날카로운'이란 형용사는 키스라는 말이 주는 느낌과는 잘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말이다. 광물질적인 속성, 금속성 이런 이미지를 주는 말이다. 그러나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이 말이 결합하면서 '갑작스런' '충격적인' '강하게 다가온' '찌르듯이 내게 온' 이 모든 느낌이 함께 들어 있는 다양한 의미 공간을 열어 놓은 것이다. 이런 신선한 언어의 만남을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낯설게 하기'라고 한다. 다음의 시를 보자 세상의 모든 아내들은 한 꽃에 꽃잎 같은 가족을 둘러 앉혀 놓고 지글지글 고깃근이라도 구울 때 소위 오르가슴이란 걸 느낀다는데 노릇노릇 구워지는 삼겹살 그것은 마치 중생대의 지층처럼 슬픔과 기쁨의 갖가지 화석을 층층히 켜켜로 머금고 낯뜨거운 오르가슴에 몸부림친다 그 환상적인 미각을 한 점 뜨겁게 음미할 새도 없이 식구들은 배불리 식사를 끝내고 삼겹살을 구워 먹은 뒤 폐허 같은 밥상은 .......... 헐거운 행주질 한 번으로도 절대 깨끗해지질 않는다 하얀 손등에 사막의 수맥 같은 파란 심줄을 세우고 힘주어 밥상을 닦는 아내의 마음속엔 수레국화 꽃다발 사방으로 흩어지고 - 「돼지」 중에서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의 모습을 무어라고 표현하고 있는가. '한 꽃에 꽃잎 같은 가족', 그렇게 표현했다. 비유가 신선하다. 돼지고기의 삼겹살을 보며 떠올린 '중생대의 지층' 그리고 '층층히 켜켜로 머금은 슬픔과 기쁨의 갖가지 화석', 이런 비유들은 이 시를 쓴 사람만이 본 독특하고 새로운 시적 발견이다. 지글지글 구워지는 돼지고기와 오르가슴을 연상시킨 비유에 이르기까지 이 시는 전혀 상투적인 데를 찾을 수 없다. 그래서 시가 새로운 느낌을 준다.
3.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한 강한 소신과 수사....퇴고시에 담담하게 정리할 것사람들은 돌아오고 흐느끼는 소리는 없었다 아무도 앓는 소리 듣지 못하고 나도 어딘가로부터 돌아왔다 피는 물 위를 기름처럼 흐르고 사람들은 원심분리기 속에서 제 무게 만큼의 속도로 흩어져 간다 새록새록 피어오르는 유방들이 다가올 봄을 대비해 욕망을 충족시키고 수많은 옷가지들이 거리를 휩쓸고 지나가면 어느새 나는 벌거벗은 병정이 되어 거리를 간다 속이지 말라고 사람들은 외치고 그래도 나는 속인다 나는 속이는 행위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으므로 내가 죄를 벗어나는 길은 죄를 잊는 길밖에 없다 나의 원죄는 이토록 망각 앞에 무력하다 또한 그것은 종이 위에서 다소간의 위안을 찾기도 하지만 여전히 노란색 가로등에 뿌리는 외로운 빗줄기 옆에 있다 하염없이 달리는 차창가에 정면으로 달려오는 운명 앞에 있다 - 「갑자기 그러나 천천히」 이 시속의 시적 화자는 지금 죄 때문에 괴로워한다. 죄를 짓고도 그것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하고 속이고 있어야 하는 괴로움에 마치 벌거벗은 병정이 되어 거리를 가고 있는 듯한 부끄러움에 싸여 있다. 시적 화자가 그토록 괴로워하는 것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물론 알 수 없다. 그러나 문제는 이 시를 쓴 사람이 이 시를 통해서 결국 무엇을 말하려 하고 있는지가 불명확한 데 있다. 1연 3행 '나도 어딘가로부터 돌아 왔다'는 것은 어디일까. 끝까지 읽어보아도 그곳이 어디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2연에 와서 죄 때문에 그토록 괴로워한다는 이야기가 길게 전개된다. 그런데 18~19행 '그것은 종이 위에서 다소간의 / 위안을 찾기도' 한다고 말한다. 무슨 위안을 찾는다는 것일까. 그리고 21행 '외로운 빗줄기 옆에 있다'와
23행 '정면으로 달려오는 운명 앞에 있다'고 했는데, 무엇이 그 앞에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죄에 관한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끝 구절이기도 한 18행부터 23행까지는 역시 모호한 채로 던져져 있다. 2연 1행부터 7행까지는 이 시 속의 시적 자아가 서 있는 공간적 배경을 나타내는 것들인데, 죄의식을 느끼게 된 원인과 어떤 연관을 갖는다든가 아니면 상징적인 구실을 한다든가 하지 못하고 산만하게 나열되어 있을 뿐이다. 전체적으로 주제를 향한 응집력도 부족할 뿐더러 '유방' '병정' '종이' '운명' 등의 시어들이 이해되지 않는 채 자꾸만 걸린다. 거기다 제목 「갑자기 그러나 천천히」는 시 전체 내용과 어떤 연관을 갖는 것인지 역시 알 수 없다. 또 다음과 같은 시를 한 편 더 보자. 이름보다 먼저 그대 귀를 찾았을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이 더한 부름으로 버거웠던지 유령처럼 스르르 가버렸다 - 「겨 드 랑 이 에 각 개 표 로 손 을 끼 워 넣 는 건 그 어 느 한 쪽 의 필 요 만 은 아 니 다」 이 시의 시적 자아는 죽도록 사랑한다는 말이 버거워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 버린 빈 공간에 서 있다.
이 시의 제목대로 '겨드랑이에 각개표로 손을 끼워 넣는' 것은 어느 한 쪽의 필요에서가 아니듯 서로 따뜻한 온기가 필요해 사랑했을 텐데 그냥 황망히 떠나 버린 것을 못내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심정이 나타나 있다. 그런데 제목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도 내용의 한 부분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고, 거기에다 원래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더해서 한 편의 시로 자기 감정을 제대로 형상화하려는 노력이 더 있어야 할 것 같다. '겨드랑이~'로 시작되는 긴 제목이 새롭다는 느낌을 주기보다는 제목도 내용도 다 미완성으로 끝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는 시를 쓰면서 내가 지금이 시를 통해 무슨 이야기를 표현하려고 하고 있는가 하고 되물어 보아야 한다. 다음 시는 어떤가 함께 읽어보자. 돌담은....., 아닙니다. 어릴 땐 가지런한 층층에 끄덕머리 하다가, 흔들고 다시, 여물게 손가락질 하나 둘 헤다가, 마침내 올라서서 이쪽과 저쪽 세상 가운데를 걸으며 조심스레 팔저울도 했지요. 하지만 이젠 아닙니다. 저는 이미 많이 자라서 한여름 놀던 그 그늘, 한 겨울 고인 볕뉘와 속살거림, 모두 까닭 없었어요. 때로 생각이야 나지요. 가을이었어요 누군가 싸리비 하나 꺽어들고선 저 산 너머로 가라며 저를 자꾸 내쫒았어요. 가라면 간다며 그 길로 돌담 등지는데, 때깔 곱게 물든 단풍 숲 사이 바알간 노을이 깃들더니 이내 두 눈 가뭇가뭇 멀게 했어요. 그 후론 여기 이 바깥 세상에 쭉 살았지요. 어떤 날은 취해 밤낮을 바꾸고 또 어떤 날엔 싸우다 승리, 패배, 승리 패배 패배했어요, 삭신 다 닳은 세월 속절 없지만 아파서 제겐 더 살뜰한 기억이지요. 다만 잊을 수 없는 건 그 낮은 돌담. 웃자란 키로 들여다봅니다. 안팎으로 그늘과 속살거림 거느린 것이며, 자라지 못하는 속엣 것들 고즈넉이 품은 모양이며, 누군가 또 싸리비 꺾어 괜찮다고, 가라고, 사는 건 그렇게 등지는 거라며 저를 쫓아내는 것까지도 두고 올 적 그대로지만, 삶이란, 예전에 그랬듯, 홱 떠나는 것은 아니더군요. ....안됐거든요. 저물 무렵 그 모든 게 노을 함께 지면 참 안돼 보이거든요. 이제 와서 저는 슬퍼할 밖에요. - 「돌담」 많은 쉼표와 현실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현실로 들락거리는 구성은 자칫 혼란스럽게 비쳐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그 속에도 정연한 내적 질서가 있다. 돌담이라는 소재를 통해서 유년기와 성장기, 세월의 이쪽과 저쪽을 넘나들면서 아름답고 아프던 어린 시절을 추억한다. 떠나기 싫던 우리들 근원적 삶의 터전과 그 터전을 떠나와 끊임없는 싸움을 되풀이하며 성장 해야하는 현실의 경계에 돌담이 있다. '괜찮다고, 가라고, 사는 건 그렇게 등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주제를 내포한 구절도 자연스럽게 시 속에 녹아 있고 우리 모두가 체험한 통과의례의 상징으로 '돌담'이 제 구실을 한다. 그러면서도 자꾸 되돌아 보여지는 유년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성장시'로 손색이 없다. 전통적인 기법으로 표현하든 새로운 기법으로 그려내든, 문제는 한 편의 시를 통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제대로 나타나 있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있는 것이다.
4. 관념성과 불 필요한 난해성에서 벗어나, 쉽고 공유하는 작문태도
(공감성). 나는 간다 무한한 공간 속으로 닫혀 있는 창을 열고 雨의 장막을 넘어 나는 간다 영원한 침묵 속으로 저자 거리의 소음을 뒤로 하고 검은 숲 오솔길을 걸어 나는 간다 절대의 고독 속으로 닫혀 있는 창 너머로 누구와도 아닌 홀로서 순수 이전으로 돌아간다. -
「순수 이전으로」
a--a'--a" 형식으로 씌어진 이 시는 '나는 간다, 어디 어디로.' 의 기본 골격을 갖고 있다. 그리고 시적 화자인 내가 가는 곳은 '무한한 공간' '영원한 침묵' '절대의 고독' 속이다. 그곳을 작자는 순수 이전의 곳이라고 한다. 순수 이전의 곳, 그러니까 지금 순수한 곳보다 훨씬 더 깨끗하고 때묻지 않은 그 어떤 곳으로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러나 그 순수 이전의 곳이라는 무한한 공간, 영원한 침묵, 절대의 고독 등은 대단히 관념적이다. 雨의 장막도 마찬가지다. '닫혀 있는 창을 열고' '저자 거리의 소음을 뒤로 하고' '누구와도 아닌 홀로서' 가는 길이라면 죽음의 세계가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죽음의 세계는 절대 순수의 세계일까. 문제는 이 시의 시어들이 육화되지 않은 관념성에 빠져 있다는데 있다. 미지에의 두려움에 망설이며 되돌아갈 수 있는 줄 알았던 이 길이 그러나 길은 앞으로만 뚫려 있고 등 뒤엔 이미 수렁 나의 사색은 병약했으며 암흑에 가두었고 고통일 뿐이던 젊음 삶과의 치열한 투쟁 그러나 자신의 밀실을 벗어나지 못한 채 묶여 있던 감각 굳어 있는 뼈마디 나는 그것이 어둠인 줄도 몰랐었다. - 「봄」 중에서 나약하던 자기의 밀실을 깨치고 나오는 어느 봄날의 기억에 대해 쓴 시이다. 이런 자각과 깨달음을 통해 역사를 알게 되었고 쓰러짐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이 시의 뒷부분에 이어진다. 그러나 어딘지 미더웁지 못한 데가 있다. 바로 지금 이 시에서 보는 것과 같은 육화되지 않은 언어들 때문이다. '사색' '병약' '암흑' '투쟁' '밀실' '감각' 등의 관념적인 시어들은 삶으로 한 덩어리가 되어 있다는 느낌보다는 삶과 언어가 따로따로 겉돌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한다. 5. 어둡고 나약한 감상의 회피, 시는 밝음과 창조와 인내와 가르키는 진리의 소산
(시인의 사명과 일맥함..시인의 역할에 선지자의 측면도 있다)시를 쓰는데 가장 중요하게 작용하는 요소로 정서를 빼놓을 수 없다. 정서란 어떤 사물을 대하면서 일어나는 감정의 변화를 말한다. 러스킨은 사랑, 존경, 찬탄, 기쁨의 네 가지와 미움, 분노, 공포, 슬픔의 네 가지를 합쳐 '8대 정서'라 했다. 사람의 감정 중에 희, 로, 애, 락, 애, 오, 욕이 모두 시가 될 수 있고, 근본적으로는 지, 정, 의(知情)가 모두 시심의 밑바탕이 된다. 그 중에서 '정'이 정서가 되겠는데, 문제는 이런 감정 중 사랑 또는 이별 슬픔 외로움 등의 감정만이 시의 중요한 정서인 것처럼 편협하게 생각하는 태도이다. 문득 헤어져야 할 때를 생각해 보면 오늘의 이 기쁨이 영원할 것 같지만은 않다. 헤어짐을 전제로 하지 않은 만남이란 없고 만남 자체도 헤어짐이 있음으로써 의미 있는 것이 아닐까 너의 그림자가 사라져가는 버스 뒤꽁지의 창문을 쳐다보면 또 다시 쓸쓸해지는 어깨를 움찔하며 내일의 만남을 기약해 간다 어쩌다 이대로 헤어진다고 해도 다시 만날 것을 믿으며 어색하지만 반가운 너의 얼굴을 원 없이 쳐다볼 수는 있겠지 - 「사랑 그리고 그만큼의 아픔」 중에서 오늘은 갑자기 내가 너를 그리워한다는 사실 자체가 우울한 슬픔으로 다가온다 서글픔은 고동색 절망으로 흐르고 나란 존재는 정말 무엇일까 하는 생각만 그곳에 가득하다 네게 사랑한다고 말한 적은 없다 그리고 좋아한다고 고백한 적도 없다 그저 내 곁에만 있어 주면 좋았는데 오늘은 네가 곁에 있어도 허전하기만 하다 - 「서정시가 흐르는 화폭」 위의 시 '사랑 그리고~'는 만남의 기쁨과 헤어짐에 대한 불안함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을 원 없이 쳐다보고픈 마음을 담은 시다. 두 번째 시 '서정시가~'는 그리워하는 마음의 복잡함, 그 심리적 고통에 대해 쓰고 있다. 그런데 그리움을 우울한 슬픔으로 표현한 곳이라든지 서글픔을 고동색 절망이라고 표현한 부분 등은 앞에서 이야기한 삶 또는 사랑에 대한 피상적 인식의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고동색 절망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것은 고동색과 관련이 있는 주관적 경험의 표현일 뿐 객관적인 공감을 얻지 못한다. 이렇게 되니까 5행의 '나란 존재는 정말 무엇일까' 하는 철학적 질문도 전혀 철학적으로 들리지 않는다. 감상적인 자문으로 들릴 뿐이다. 게다가 '오늘은 / 네가 곁에 있어도 허전하기만 하다'라든가 '헤어짐을 전제로 하지 않은 만남이란 없고' '다시 만날 것을 믿으며' 등은 류시화, 서정윤, 한용운의 시에서 많이 접했던 구절 같은 느낌이 든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문제는 서정 또는 정서에 대한 심적 반응이 나약한 감상으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이다. 윈체스터는 문학의 정서적 효과에 대한 영원한 가치 평가의 항목으로 다음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정서의 공정 혹은 타당, 둘째 정서의 활기 혹은 힘, 셋째 정서의 계속 혹은 안정, 넷째 정서의 범위 혹은 변화, 정서의 등급 혹은 성질이 그것이다. 쉽게 말하면 그럴 만한 이유가 느껴지느냐, 생생한 생동감으로 살아 있느냐, 믿을 만한 힘이 느껴지느냐, 얼마만한 변화를 줄 수 있는 정서이냐, 정서다운 고상함이 있느냐 하는 기준으로 평가한다는 것이다. 그대 휘어지게 선 겨울 언 땅 서릿발로 동동거립니다 손을 내밀면 차가운 대기 속에서도 따스하게 전해오는 당신의 맥박 늘 푸른 서향나무로 차 오릅니다. 가늘게 실눈을 뜬 겨울햇살로 당신을 보면 당신은 언제나 쓸쓸한 쪽으로 눈을 주며 내게로 가만히 건너오십니다. 가슴 속 그윽한 강물들 거느리고 강물 위에 드리운 산그늘로 내 온몸을 담고 계신 당신 눈동자 속 엷게 비치는 눈물로 흔들립니다. 그대가 담고 있는 당신은 어느 적 당신의 사람이었기에 오늘은 이토록 당신의 말들을 잃게 합니까 당신의 그대에게 건너가야 할 처녀의 말들 저 눈발로 떠돌고 있는 산천 당신 금이 간 서릿발로 서러웁습니다. - 「갈대 3」 작품 후반부의 그대와 당신의 혼용으로 인한 약간의 혼란스러움은 있지만, 자아 속의 초자아 또는 사랑하는 대상의 내부에 자리하고 있는 그가 사랑하는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이 얼마든지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대체로 이 시의 정서는 잔잔하면서도 믿을만하게 느껴진다. 쓸쓸함과 서러움의 정조를 과장하거나 엄살 떨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가고 있는 잔잔한 서정의 울림이 있다.
6. 추상적인 표현은 삼가고, 구체적인 수사로 이어갈 것이런 놈끼리 저런 놈끼리 요런 놈끼리 끼리끼리 모여 사는 세상 작은 괄호로 묶고 큰 괄호로 묶고 묶고 묶다 보면 결국은 하나 하나라는 것을 이런 놈도 저런 놈도 요런 놈도 알고 있을까? - 「하나로 살기」 시는 내가 느끼고 생각한 것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으로 형상화할 때 더 생동감이 있다. 이른바 객관적 상관물을 빌어 생생하게 그려갈 때 느낌이 더 살아난다. 이 시는 끼리끼리 집단 이기주의로 모여 살지 말고 하나되어 살아야 한다는 심정을 표현하려 한 시다. 만약에 다음과 같이 고친다면 어떤 느낌이 들까 비교해 보자 모래알은 모래알끼리 조약돌은 조약돌끼리 버려진 돌들은 버려진 돌끼리 끼리끼리 모여 사는 세상 개울가에서 만나고 여울로 가다가 만나고 골짝을 넘는 구비구비에서 만나는 결국은 하나라는 것을 모래알도 조약돌도 버려진 돌들도 알고 있을까 조금은 더 생동감이 있을 것이다. 막연하거나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인 내용을 가질 때 시는 더 살아 있는 느낌이 든다. '들에는 이름 없는 숱한 꽃들이 피어 있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나무들이 빽빽히 숲을 이루었다'라는 식의 표현보다는, 꽃 이름 나무 이름 새 이름이 적재 적소에 살아 있도록 표현한다면 시의 내용은 그만큼 더 풍부해질 것이다. 다만 진부한 느낌이 들거나 설명적이지 않도록 하는 세심한 주의도 있어야 한다. 자칫하면 상상력의 공간이 그만큼 줄어 들 수도 있고, 시의 중요한 장점 중의 하나인 다의적 해석의 공간이 그만큼 좁아 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7. 반드시 개연성(사실에 맞게, 그럴듯한)에 근거한 수식과 표현시를 쓰다 보면 욕심이 나게 마련이다. 더 잘 표현하고 싶고, 더 적절한 비유를 만들어 보고 싶고, 새롭고 신선한 느낌이 들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많은 부분을 상상에 의존하게 된다. 그런데 그렇게 새로운 것을 찾아가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전혀 사실과 다르게 표현해 놓는 경우가 있다. 성장이라는 단어의 배를 갈라 내장을 뒤져볼까 그 속 어딘 가엔 분명 숱한 만남과 헤어짐을 주선하는 장기라도 있을까 만남 우혈관과 헤어짐의 좌혈관의 혈액이 감미로운 리듬에 따라 춤을 추다가 혹 장애라도 일으켜 좌충우돌로 뒤범벅되진 않을까 - 「자라기 위한 수술 준비」 이 시는 우리가 성장하면서 겪는 고통의 원인이 우리 내부에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데서 착안하여 성장 과정과 관련한 정신적인 개념들을 육체의 일부분과 결합해보는 기발한 착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 몸에 좌심방 우심실 이런 이름은 있어도 좌혈관 우혈관은 없다. 상상력의 자유로운 전개는 얼마든지 좋지만, 부정확하거나 논리적 모순에 빠지는 일이 없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런 한 부분의 오류가 시 전체의 결정적인 결함이 될 수 있기 대문이다. 앞에서 살펴 본 시 중에 이런 부분도 마찬가지다 피는 물 위를 기름처럼 흐르고 사람들은 원심분리기 속에서 제 무게만큼의 속도로 흩어져 간다 피는 물 위를 정말 기름처럼 흐를까? 물과 기름은 서로 겉돌지만, 피와 물은 그렇지 않다
얼마든지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시이지만
[강의 2006-1229] 가벼운 시의 접근 셋-詩습작에서 기초상식
1.시의 진행이 무거우면 안된다
2.설명문과 시를 구분할 것
내가 시라고 써놓은 시의 모습이
주제에 대한 단순한 설명문인가, 아니면 주제에 대한 이 이야기 저 이야기 식의 산문인가
아니면 시 인가 한 번 본다.산문이면 산문으로 수필이면 수필로..
시인가는 무엇인가..
[유명 인사의 詩.등단 인사의 詩중에도 설명문/수필 산문적인 것이 너무나 많다.
설명문, 산문, 수필이 나쁘단 것이 아님, 그러나 시일 수 없는 이유는 "시맛"이 없기 때문이다]
문학상 수상/유명 시를 보고 판단해볼것
시는 언어와 문장의 창작이나 ,
글은 이미 있었던 말이 기억한 나열이고 현상의 그대로 모습이다.
시는 너와 나, 1 차원과 3 차원,
생과 무생, 간극과 여유등 모든 것들과 전부 화합하나
글은 단순한 종從[행간의 진술에 대한 복종]과 어울린 진솔한 모습 그대로다.
글은 문자와 언어로 이루어진 그대로의 사전적인 의미의 진술이나
시는 문자와 언어로 이루어지되 그대로의 진술이면서도
많는 의미를 포함한 시적화자의 이야기이다.
3. 단어도 일종의 시적묘사"이다.
즉 일종의 "진술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단어의 사전적 의미도 중요하고
이 단어가 앞 뒤의 서술과 앞 뒤 행으로부터 갖는 이미지를 검토해보거나
아니면 앞뒤 행에 미치는 이미지를 고려해야 한다
단순히 단어를 문장을 서술하는 사전적인 의미로만 고려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시문장에서는 단어가 사전적 의미를 뛰어 넘는 "시어" 즉
"이미지어"가 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전혀 사전적인 의미만을 고려시에는 사용될 수 없는 단어임에도
사용 되어진 이유도 또한 여기에 있다.
4.
시의 맛,뒷맛,행간의 여운,"여운"이란 무엇인가
행을 가르기 한다거나
압축형식의 글 배치라든가, 단시 형식의 묘사도 여운을 돕는 것[더디게 읽히기]이지만
시에서 여운돕기로 가장 나쁜 버릇이다. 무작정 한자어를 병용하며,
행가르기.압축의 글이 좋은 시로 평가받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래서
시에서 여운(맛 이란=독자 위임의 감상 장치)란
문장 진술에서 나타난 여운을 말한다
이민영
습작을 위한 기초 조언
시적 화자의 입장에서 검토
*먼저 이어지기가 매우 유연하고 부드러운
아주 잘 된 시입니다
먼저 번의 답은 단순히 독자의 감각에서 나온 느낌입니다
따라서 독자들의 이런 류의 비평에 크게 개의하지 아니해도 될 것입니다
시란 다른 것은 몰라도 시는 개인의 사상적인 감상을 토대로한
운문 형태의 내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것이 좋다
그르다
이렇게 저렇게라고
할 수가 없답니다..
그래서 모든 이들이
이 詩에 대한 평가나 비평을 하지 않으려하며
굳이 할 필요가 없답니다
詩의 경지는 일 년에 300편 하여 3년 1000편정도 짓다보면
詩의 눈이 보여져서 원만한 詩人들이 보아도 詩답다는 평가를 얻게 됩니다..
누구든지 자라 온 학문의 배후가 있고
생각해온 날 동안[살아 온 생]=[학문적인 생]=[언어학적인 배경]이 이미 굳어진,
언어의 수사가 각기 독특해지므로,
이의 장점을 살려서,
글을 이어가기 하면 좋은 詩가 될 것이며
내 詩가 근대 시인들 중에서 어느 분 詩하고 가장 많이 닮았가를 생각해서
그 분의 詩를 많이 읽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내格과 유명시인들의 詩에서 가르키는 기술을 닮아서
고운 詩로 탄생이 됩니다..
누구든지 마찬가지 입니다.
------------------........................................
시는 구조가 탄탄하고 치밀하여야 합니다
그래야 일간지나 유명한 시문학상 수상자가 됩니다
누구든지 운사=노래할 수 있는 문장이란 것은 수도 없이 많습니다
각종 소설책, 극본, 대본, 연속극 대화, 노랫말. 철학서.수상집.등등
온라인에서 수없이 나돌아 다닌
달콤한 물같은 詩나 글들..전부 이미 나온 詩語文이거나 문장들 입니다
00江에서 아침마다 보낸다는 그 사람의 아침편지,
00에서 보낸 시편지나,
00의 러브레타 그리고 좋은글이라고,
나돌아 다니는 글들 전부
이미 발표된 안병욱 수상집이나 피천득의 산문집.고당.만해.김주홍님 기타 철학인
사상가,
소설책 等等에 이미 나온 것의 재탕 들입니다. 인터넷에 數없이 범람하는
자기정신=시인정신=작자정신=작자 혼이 없는
2행-3행의 글들, 시들, 전부 복사판들이랍니다.
그것은 작자의 문학을 감당할 수 있는 대갈통 속의 지력[앎}과 수사력이
심사위원들이나 他를 넘어서지 못한다는 결론이죠
그래서 글이 탄탄하지 못하고
창작성이 없고
치열하지 못한 시에 대해서는
신춘문예로 당선되지 못한 이유가 그것입니다
통상 심사위원들은 하나같이 시력20-40년 된 사람들이죠
이미 [남아수독오거서]는 아니여도 책/시집등 오만권을 섭렵한 자 들입니다
또한 문학적으로도 기본소양을 지닌자 들입니다
그런데 올라온 시를 보면 하나같이 이미 경험된 작문, 듣던 이야기, 듣던 노래, 듣던 설법,
듣던 비유, 이미 통상적인 사람 들의 언어가 된 비유와 수사,
亞流로 되기에 선정이 되지 못한 이유입니다.
그래서 난해시가 선정된 이유가
(사실 난해라기보다 수사의 극치가 범인의 눈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시인의 산뜻한 착상 이렇게 표현을 해야 맞습니다)
시가 갈수록 난해하다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글은 진중한 무게가 있어야 합니다
한 단어 한 문장을 이어가기 할 때마다
의미가 깊어야 하고 독자의 감흥이 새로워야 =독자의 감동,
감성의 감동을 자극하는 것 이여야 합니다.
감히 제가 거명하기엔 너무 높고 훌륭한 분이시나
개인적인 소견으로는 김지향 교수님이나 김수영님의 시 읽기를 권장합니다.
김교수 님의 시는 어느 것 하나 밋밋한 것이 없는
여러 번 생각케 하는 내용이고
시 한 편에 수 없이 수많은 숙고의 세계에서
인간 본래적인 내재와 대화를 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습니다.
난해한 것도 있어서 공부하기도 좋을 것입니다.
아무튼 현대시에서 주지 주의적인 난해시는 한 번 접해보시는 것이
시 읽기에 도움이 되실것입니다
...
훌륭한 시인이라는 것은
세상의 이치와 진리를 궤적 할 수 있는
수 많는 수학修學의 항해 속에서
길러진 지적인 앎과
나이가 차고,
이르고,
맑은 이슬 방울 아래서
생의 진리를 터득해가는
인자함과 사랑함의 여유 속의 人格,
이 두가지 가
갖추어진 도량의 샘 한가운데서 퍼낸 글 만이
좋은 문학이 될 것이며
훌륭한 시인님이 될 것 입니다
시말을 진행하다 막히게 될 때/민영
어떻게 하는가.........,
시상을 잡고, 이미, 메모된 시상으로 그 다음에,
시말을 진행하면서, 시를 지으려고하는데, 갑자기,행 다음의 행이,행간에서
어느 구절이 막히게된다 종종 있는 일이다.
그런 경우에는
이야기 하고자하는,
표현 하고자하는, 작자의 표현 내용을 시어사용에 너무 얽매이지말고
설명을 하는 듯, 아는 단어나 수식의 범위내에서 써 간다.
그리고 나서, 다음의 행을 진행시킨 다음에, 그 다음에
일단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시적 산문이든 산문적인 시든,
수필이든,나중에 축약을 하고, 행 연 기타 전체 입장에서,
다시 퇴고하면 된다.
즉 글은 습작글이든 수필이든
일단 문장이 되는 완성된 글로 보관하고,
추후 다시 꺼내어 보면 된다. 언제나 구상된 시상이나
떠오른 시어나 모두 내가 알아 묵도록? 써놓은 것이 중요하다.
시로 완성 시키지 아니하면 나중에
메모를 보아도 무슨 메모인지 잊어 버린다.
그래서 일단은 긴 설명문으로도 적어 놓는다..이것이 나중에 퇴고와 퇴고를
거듭하면, 유명한 작품이 되는 것이다.명시란 아무것도 아니다.
수 많은 시인들이 시 한 수를 100번 고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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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중간의 행간에 넣을 시어는 어떻게하는가.
일단 수식관계를 따져서 묵상한다.
그리고 전체의 글을 읽어보고 난 뒤에 전체의 이미지를 읽어본다.
그 다음에
이미지 내에서 작은 행간의 이어가기를
부사구나 형용사구나 조사로 이을 것인가,
문장으로 채울것인가하고 문장을 만든다.
앞행을 수식할 것이면 뒤의 문장은 자연히 수식하는 단어로 채워야하고,
뒤를 수식하는 것이면 당연히 단초를 여는 시어가 와야한다.
이어진 문장이라면 물론 [조사나 와] [과]로 하지만 시에서
[와나 과는 이거나 아니면]은 가능한 억제해야하기에,
말을 찾아 본다 정히 생각나지 아니하면
좋은 단편 소설이나 수필을 읽으면 금방 생각난다.
습작에서의 조언 2가지/이민영
시에서 되도록이면 사용하지 말아야 할 단어나 수식
추상적인 수식과 추상적인 비유,
감상적인 단어와 이의 진행,그리고 형용사구나 부사구의 사용,
본래의 의미를 더한다거나, 强하게 化 한다거나, 語感을 세게하는 단어의 추가
이런 문구나 수식은 삼가하고
이런 문구나 수식의 말은
시말과 비유에서 스스로 오도록 담백한 말로 진행할 것
그 다음, 내 시는 내가 가장 잘 아는데
이는 내가 그것이나 이것을,
그것의 진행을, 그 깊이와 그 넓이와 그 높이에 이르러서
나의 심상을 이어가고 나의 의지를 이어 가는데,
난 알지만 독자가 작자의 깊은 뜻을 알 수 가 없는 것이 허다하다
이는 시말의 수식이나 진행에서
"작자의 높고 깊은 뜻을 알게하는 단초나 이미지"가 없기때문이다,
시인은 오로지 시로만 이야기한다고 하면
독자는 오로지 시인이 쓴 글만 보고 감상하고 해석하고 가늠하는 것이기에,
표현된 글이 그 깊이와 그 넓이와 그 높이와 그 깊이대로
가는가
갔는가 하고
반드시 제 3자 입장에서 검토해보아야할 것이다.
어느 날 어느 시에 대하여
"이렇게 고치면 안될까"하고 하는데
고치거나 대안적인 다른 수사를 제시하지도 아니하고
"아니요, 그것은 이것이요, 그 말은 이 의미요" 한다면
그것은 작자의 마음만 아는 것이지, 아직 밖으로 나오지아니한 이야기 아닌가,
그래서,
글을 완성 후에는 반드시,
3자 입장에서 검토를 해야할 것이다.
旻影
시의 구조와 연행에 대하여, 이민영
사
이민영의 시사랑사람들 문대 습작실 http://cafe.daum.net/lovesisarang
예문
눈내린 날의 퇴근-새를 찾아서
톨록콜록
경을 읽는 저녁 불이다
잔기침을 하고 있는 폐차장 모퉁이 노승의 염주통
가엽기도 하여라, 부처가 된 중장비가 눈내린 하늘을 처다보며 중얼거린다
세월을 보낸 죄로 그 세월을 새겨놓은 다라니경 한 불
장기마져 기증해버린 마지막 기침으로
죽음 이후에도 떨리려는 저 몸 좀 봐
쿨럭쿨럭
연소 불량인 생애다
첨가제를 넣는 위장약이 시동을 건다 온통 탈속의 바다는 山寺에서 눕는다
더부룩한 삶의 인자가 회색배기가되어 앓아온다
영양기마다 피돌림의 핏줄이 허파를 향하여 달음박질한다
체내의 밖 재생하려는 맥동의 위로가 겔포스처럼 입안을 끈적거린다
삶과 재생의 간극에서 경계는 그아픔을 인내해야한다
금을 자극하는 서늘한 눈 냄새가 반긴다
갈아 끼워서라도 텅텅 굴러야 한다
오, 녹색 신호등으로 메워진
부타의 네팔,산사로 가는길
헛 바퀴가 금을 지운다
바다는 돌았고 금은 넘어간다
*위의 시는 조금만 "촐기"한다면 매우 좋을 시임........................
.......................
詩
행의 포옹에 대하여--이민영
시는 어울림의 미학이다. 어울림은 짓으로 한다.
말은 문장이란 틀에서 그 힘을 발휘한다 기본의진행이다.
진행은 무엇인가, 노래의 곡이다. 곡은 듣는것 귀가 보는 것의 탐미적 주술이다
그래서 보고듣기가 좋다고 한 것이다.
보기 좋고 친근한 것은 무엇인가, 사랑이다.
사랑은 무엇인가, 모두 한 곳을 향하여 움직이는 눈의 이동이다.
눈의 이동은 무엇인가, 보는 눈이 읽어준 글자다.
글자의 어울림, 이가 서로 상충하지 아니하고 잡아 당긴다는 동행이다.
모든 것들이 그 짧은 문장에서 필요한 몸짓의 모양인 것이다..
하여
시가 이야기하는 모습은 행간의 미소다 .
행이 행하고 서로 안고 보듬어 가면서
동행하는 여유, 그래야 좋은 시가 나온다
旻影
=====
눈 내리는 날의
제목은 잘 바꿈 안 바꾸었으면
난리날텐데 ^^*^^
난리 난 제목이 뭔가 참 궁금 합니다
새를 찾
비밀이야요^^ 이민영
선생님...ㅎㅎㅎ
감성/ 형태/후각/ 이런 언어들이
걸립니다 문학적 수사로는 좀....후각보다는 코끝이라든지 형태 보다는 모양이나 모습이라든지 감성보다는 정이라든지 뭔가 있을 법 한데 내용은
접어두고서라도...
새를
찾아서
그게 잘 안 되더라구요.^^
혼자서 습작하던 때에 밴 나쁜 습관인데... 관념어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감사합니다.지적한 부분 고쳐보았습니다.도움이 많이 필요하니 계속 조언
부탁드립니다.
동의함 (맞아요 새님의 글에서
그런 단어가 종종 띄더군요...) 새님은 다른시들을 많이 읽어보십시요 그러면 시에사용 될 많은 단어들이 금방 들어옵니다..단어야 수없이 많습니다
국어사전에..그러나..가능하면 순수 우리말이 좋고 시적인 단어가 좋습니다
慧淨 정영
여러분들의 글을보노라면 요즘 난
계속절망중입니다
정영희시인님 시를 보면 심상이
정돈된 모습이 보입니다.그러니 지속 시인님들의 시를 수없이 읽어 보시다 보면 이해 하든 못 이해 하든간에.스스로 알아지고 글이 배어서 시가
나옵니다..많이 읽으시고 쓰십시요..
정 시인님 절망은 희망의 다른 이름
입니다 지서가 김광자 이듯이...블루노트 넘 좋았습니다
[타이맛선생님]
1.시 쓰는 모든 이들에게 단어
선택은 매우 어려우면서도 필수적인 것이죠. 한 가지 제안을 해 드리면 좋은 시들을 읽으실 때 그냥 눈으로만 보시지 말고 그 중에 마음에 드는
단어들을 따로 적어놓으셨다가 자신의 시를 쓰실 때 한번 그 단어들을 살펴보시고 혹 자신의 시에도 어울릴 단어가 있는지 골라보세요. 남의 표현을
따오는 게 아니고 단지 단어를 풍족하게 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또 한가지는 정말 맘에 드는 시가 있으면 몇 번을 읽으며 그 시의 분위기를
느끼지만 말고 그 속에 빠져 보세요. 마지막으로 좋은 시는 눈으로만 읽는 것 보다 한자 한자 베끼면서 적어보면 훨씬 시의 표현들을 깊이 있게
이해하게 됩니다.
2.
더불어 그렇게 천천히 적는
과정에서 조사 하나하나 쉼표 마침표까지 여기서는 이렇게 쓰는구나 여기서는 이렇게 줄을 바꾸고 이럴 땐 이렇게 연을 바꾸는구나 하는 구체적인 것을
배우게 됩니다. 시를 잘 쓰는 제일 첫 조건은 항상 시사랑님이 말씀하시듯이 일단 많이 공부하는 것입니다. 공부가 있어야 그 다음 쓸 수도 있게
되니까요.
시사랑사람들
타이맛 박사님의 좋은 조언
감사 드립니다. 단어 하나 진술 하나 하나 음미 한다는 것 단어하나 유심히 관찰하신다는 것 저도 배웁니다
시사랑사람들
이방을 타이맛 박사님이 오셔서
같이 호흡을 해주니 그동안 고립 무원 혼자 꾸려나간 제게 많는 힘이 됩니다 감사드립니다 박사님
새를
찾아서
타이맛 박사님의 말씀
감사합니다.타인의 작품을 많이 읽어야하고
필사도 해보면서 배워 나가겠습니다.
전에도 이런 충고를 들은 적이 있어서 요즘 독서량도 늘리고 필사도
해보고 좀 바쁩니다.^^
시사랑사람
정밀히 읽어보니
시맛이 특질이
습니다 앞의 다이알시도 그런 면에서 좋았습니다
이시도 특질을지니고있습니다 그런데 다이알시도 그렇지만 오히려고친것이 더 자꾸 독자에게 멀어져간
느낌이였습니다.이시도 주문하면 오히려처음받은 시상하고 멀어질까 두렵습니다. ...다이알은 수식하는 불필요한 말이많고 홍성은님이 강조한 이야기처럼
유한 여백이 없다는것입니다. 여백과 주제와 가까운 서술이 필요한 시였고//이글은 **의 퇴근모습인데 좀더 속시원하게 화자의 이야기를 뱉어 주세요
감추지말고요
새를 찾아
초보 티를 못 벗어남이 저
스스로도 부끄러울 따름입니다.초보들의 특질....무지하게 수식이 많아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관념적인 것과 시적인 단어의 혼동 무거우면 좋은
시상인 줄 아는 어리석음... 이만하면 제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잇다고 생각하는데도 잘 고쳐지지 않으니 그러니 고질병을 앓을 수 밖에요.^^ 이
민영 선생님 감사합니다.
시사랑사람
사실 이런 현실의 아픔이라든가
문제의 시는 진솔한 수식이 필요합니다. ..시는 "깨댕이를 홀딱벗고
대낮 시청광장 앞에서 노래를 부른 용기"라고 하잖아요 남 이야기하듯
해보세요, 속 마음을 비추자.
새를 찾아서
포착 된 시상에 매달리는
이미지 연상, 그리고 그것들의 나열... 그것이 제 시의 특질이라고 어떤 분이 말씀해 주신적이 있고, 이민영 선생님께서도 비슷한 말씀을 해주시는
것을 보면 다분히 객관성이 있는 말씀들인 것 같습니다. 진솔과 일차원적인 것을 가려내기 위해 이곳에서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감사합니다.^^
시사랑사람들
진술의 특질은 장점만 살리세요
원래 詩도 품성이므로 바꾸지는 못한답니다.
자기만의 특질을지닌다는 것, 좋은 현상입니다.
대부분 수사모습도../님은 지금보니 최금진의
스타일이에요...버릇을 버리긴 힘들지만
언어 진행의 유연성을 [황순원의 소나기]처럼 유유하게 맛을 보탠다면
좋을거에요, 이유는
문학이기에그렇습니다.
그것은 이른바 대중성의 확보란 측면입니다.
대중성이란 .읽기의 편안함이란 의미이고,
대중성을 지녀야 좋은 詩가 된답니다.
좋은 시란 결국 읽혀진 詩 이니까요..이민영
>지서
짝짝 짝짝짝 짝짝짝짝 짝짝짝
삼삼칠 박수 보냅니다
지서</FONT>
여기서 나가 찌그러진 차 일진데
장기기증을 하고 사후 즉 죽은후에 기침을 한다기에
아하 죽고서도 남을 위해 장기 기증을 했고
그 아름다운 삶의 여운이 잔기침으로 표현 된 거구나
햇는데 자세 훑어보니 부속을 갈아끼워서라도 굴러가야 한다면
죽은 나가 산 나 즉 자아가 현세에게 하는 것인데
연결 연결 이해 하기 참으로
난감함을 어찌하나
나만 그럴 것인가
문장안에서 왜 이미지끼리 충돌하는가. 이의 해소는/민영
이미지는 내연의 확장이고 시의 제목은 외연의 제한적인
의미의 한정이다
의미의 한정이란 시의 제목이 주는 일종의 시사이다
시사란 즉 시를 유추려는 시님의 작용이다
시어와 시는 이렇게 여러가지 시말을 가지고 와서는
문장마다 단어마다 이미지를 풍긴다
그런데 우리가 시의 주제를 시님이이야기 하고자하는 바를 확충하거나
강하게 하기위해
여러가지 단어를 가져 오는데
[개방언어든 뭐든지간에]
우리가 한 문장 안에서 사용되는 각종 단어나 시어가 지닌 이미지가
때로는 서로 상충되거나 중복되거나 충돌되거나 변이되거나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아무리 좋은 신경림, 정현종, 김춘수 윤강로님의 시라할지라도
그래서 곰곰히
찬찬히
읽어보면 좋은 글'임에도 불구하고
작게 얕으막하게 미풍이 부는 것처럼 이리 저리 부대끼고
중복이 되고 시어가 지닌 심상이 서로 안아가기도 하고
때로는 서로 물리치기도하여
그 좋은 시들이
형편없는 시로 전락되는 경우를 본다.
왜그런가
우선 다른 것은 몰라도 시에서만 보자
시는
연과 연
행과 행가르기를 통하여
문장의 구조와 문장부호를 대신하고 전퉁의 음수율과 음보로 이해를 하기에
연과 행 가르기, 시어 사용, 띄어쓰기, 용언과 체언의 사용,
문장과 비문장을 구별하는 안목이 매우 중요하다
문장이란 글로서 독자가 이해가 되는 주어와 서술어로 통상 이루어진다
시에서는 주어가 생략되기도 하고 詩 속에 품고 있기 도하고 나중에 나타나기도하고 ...
그런데 우리가 주의할 것은 주어를 수식하는 단어
서술어를 수식하는 단어, 수식되어지는 단어와 보조용언 부사 형용사.. 사용등을
맞춤법에 준하여
어어가기를 해야한다.
연,행의 구조는 통상 문장부호나 문장의 구성, 그자체이므로
연행구조의 공부도 중요하다.
그래서 통상 현대시나 근자 시인들이 연행가르기를 사용하지아니하고
통상 문장처럼 이어가기'를 한 것은
연행구조나 문장부호 사용에서 오는 충돌을 방지하고자한 시인의 의도도 있고
그 다음에 독자의 해석을 위해서다.
시는
종이 한 장이란 공간을 사용하여 글자를 먹이고, 먹이지아니하고,
가르고,
이어가기'를 하면서 그 자체로도 詩님'이 말을 하는[하얀 종이 부분]도 詩라는 이야기다.
詩는
연행가르기 문장부호,
시어 충돌을 막는 문장구조, 단어=시어의 선택도 중요하다
첫댓글 "수 많은 시인들이 시 한 수를 100번 고친다" 유명한 수상시인들 역시 발표 후에도 고치고 또 고칩니다. 어떤 시는 한 번에 쓴 듯하지만 몇 년씩 묵혀서 나오는 글들이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