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 고속버스 터미널에 2층에는 서점이 있다. 반년동안 왔다 갔다를 반복 했지만 서점이 있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 정도로 존재감 없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나는 시험이 끝나는 주 금요일 집에 가기 위해 진주 고속버스 터미널에 표를 예매하기 위해 갔다. 그날은 시험 결과에 대한 두려움과 평소에 노력을 하지 않은 게으름, 부모님께 향한 죄송함과 미래에 대한 걱정 등에 의해서 참 심란하고 우울한 날 이였다. 표를 예매하고 시간이 40~50분 정도 남았던 것 같다. 나는 적당히 시간을 때울 곳을 찾고 있었고 내 눈에 처음으로 2층 서점으로 가는 계단이 보였다. 나는 시간을 때우기 위해 2층으로 향했고 서점에 들어서자 보이는 것은 서점 안에 발 들일 곳도 없이 빼곡히 놓여진 책들과 헌책방을 방불케 하는 헌책들 이였다. 살짝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옆에서 나이를 지긋이 드신 할아버지가 “어서와”라고 하셨다. 그제서야 나는 할아버지께 살짝 인사를 드리고 책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서점 벽 쪽에는 삼국지며 소설이며 여러 가지 종류의 책들이 두서없이 놓여져 있었다. 사람이 지나가는 통로에는 무협 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이 바닥에 뒹굴고 있고 시리즈 책들은 여기 저기 섞여서 정리되어 있었다. 낡고 오래되고 주인도 할아버지인 이 서점은 나에게 동화(할아버지의 책방)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를 미니모이들이 사는 세계로 보내줄 장치가 있을 것만 같아 이리 저리 둘러보다가 할아버지께서 성치 않은 몸으로 식탁 다리의 나사를 풀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서 있으시기도 불편해 보여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할아버지 제가 해드릴게요”라고 말씀 드렸더니 할아버지께서는 한 번의 거절도 없이 나에게 드라이버를 건네셨다. 나는 식탁 다리의 조여진 나사를 풀었고 할아버지는 내게 하라는 듯 내 눈앞에서 나무판자에 박힌 못을 빼고 계셨다. 그러니 안 할 수도 없고 다시 나는 할아버지께 “할아버지 그것도 해드릴게요”라고 한 뒤 나무판자에 박힌 못을 뺐다. 이렇게 한 가지에 집중하는 동안 나는 시험 결과에 대한 두려움이라든지 죄송함이라든지 불안함이 조금씩 줄어드는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고 모든 일이 끝나고 할아버지는 나에게 얼굴에 스트레스가 너무 많아 보인다며 지난 일 걱정해봐야 소용없으니 지금부터라도 잘 하라는 등 이런 저런 좋은 말씀을 해주셨고 할아버지가 잠깐 쓰는 원룸이 하나 있는데 그 곳을 청소해주고 할아버지 일을 몇 개 도와주면 그 곳을 쓰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셨다. 누가봐도 나에게 일을 시키실려고 하시는 말씀임이 뻔했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일을 도와주면서 걱정이 덜어졌고 좋으신 말씀도 해주셔서 은혜라 생각하고 할아버지께 제 번호를 드리면서 “할아버지 나중에 필요하시면 여기에 연락을 주시면 시간 나는대로 찾아 뵐께요.”라고 말했다.
버스시간이 됐다고 하자 할아버지는 나에게 맘에 드는 책 한권을 집어 가라고 하셨지만 이미 둘러본 결과 내가 맘에 드는 책이 없어 할아버지께 “할아버지께서 좋으신 말씀 해주신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라고 뻥을 쳤고 할아버지는 그냥보내기 그랬는지 자신이 직접 쓰신 시집을 나에게 주시면서 읽어보시라고 하셨다.
나는 버스에 탑승해 자리를 잡고 시집을 보았다. ‘어떤 추억’ 글귀가 세로로 적혀져있었고 그 옆에는 이무웅 시집이라고 써져있었다. 나는 책을 펴 첫 시를 읽어보았다.
‘무지개 타고’
시름시름 앓든
구십 노모가 일흔 되는
~(중간 생략)
은하수 건너, 별이 되어
날아갈 게야.
이 시 한편을 읽고 나는 다음 시로 넘어가지 못했다.
그날 나는 집으로 가는 2시간 동안 참 잘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