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⑧
오병이어 기념교회(갈릴리)
오병이어 기념교회 내부의 모자이크. 빵의 숫자가 4개뿐이다.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마태복음 14:19)
크리스천이라면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 사건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마14:13-21:막6:45-52:눅9:10-17:요6:1-14). 그만큼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이 귀하고 크다는 반증이다. 오늘날 이 사건을 기념하는 교회가 갈릴리 북서쪽, 티베리아에서 가버나움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타브가’(Tabgha)라는 곳에 세워져 있다. 이곳을 헬라어로 일곱 개의 우물을 뜻하는 ‘헵타페곤(Heptapegon)’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병이어 기념교회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비잔틴 시대(주후 4~6세기)에 사용되었던 침례(세례)탕(Baptismal Basin)이다. 둥근 모양의 돌을 네 잎 클로버(십자가) 모양으로 파내고 그 안에 사람이 들어가 앉으면 무릎까지 물에 잠기게 되는데 이때 집례자가 머리에 물을 붓도록 고안되었다. 물속에 들어가는 침례에서 물을 뿌리는 세례로 변화되어 가는 비잔틴 시대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오병이어 기념교회 앞 뜰에 있는 침례(세례)탕. 비잔틴 시대에 사용된 것이다.
타브가를 오병이어 사건이 일어났던 현장이라고 믿은 것은 비잔틴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처음으로 주후 400년경 스페인 수녀 이게리아(Egeria)는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오병이어 사건이 있었던 장소는 가버나움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으로, 그곳에는 예수님이 섰던 바위 계단이 있으며, 주변에 종려나무와 풀밭이 있는데 근처에는 물이 풍부한 7개의 샘이 있다(타브가). 이곳이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기적을 행하신 장소다. 그리고 이곳에서 위쪽 언덕에 바위가 있는 곳이 예수님께서 팔복을 가르치신 장소이다.’
학자들이 이곳을 발굴한 결과 초기 비잔틴 시대에 세워졌던 교회가 지진으로 무너지자 주후 5세기 중엽에 초기교회 터 위에 다시 교회가 세워진 사실이 확인됐다. 이때 세워진 교회의 바닥 전체(약 495㎡,150평)가 모자이크로 장식됐다. 모자이크 가운데 3분의 2가 오늘날까지 보존돼 있다. 성경 사건을 주제로 한 오병이어 그림과 22가지 서로 다른 종류의 새들 그리고 식물들이 묘사돼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백미는 오병이어 모자이크다.
모자이크 바닥으로 장식됐던 5세기 기념교회는 614년 페르시아 군대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됐다. 그 후 방치되다시피 한 이곳에 관한 관심은 1887년에 와서야 비로소 독일계 역사고고학자들에 의해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1911년 폴 카르게 교수는 흙더미로 뒤덮여 있던 교회 터에서 비잔틴 시대 교회의 흔적들을 발견하게 된다. 그 후 20년이 지난 뒤 마더(A. E Mader)와 쉬나이더(A. Schneider)에 의해서 대대적인 발굴이 다시 시작됐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 앉으셨던 바위, 예수님께서 빵을 올려놓았던 바위 그리고 오병이어 모자이크가 발견됐다.
1970년 마지막으로 과학적인 발굴 작업을 마치고 비잔틴 시대(주후 4~6세기)의 오병이어 기념교회 유적 위에 1982년 새롭게 세워진 건물이 오늘날 이곳에서 우리가 만나는 오병이어 기념교회다.
오병이어 기념교회
이와 같은 초대교회 흔적과 전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은 우리에게 두 가지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를 던져준다. 우선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반드시 모자이크를 보고 물고기와 빵의 숫자를 세어본다. 그리고 왜 빵이 4개밖에 없느냐는 질문을 한다. 실제로 분명 물고기는 2마리인데 빵이 4개밖에 없다. 혹시 공사를 직접 했던 모자이크 장인이 착각한 게 아닐까,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게 아닐까…. 많은 고민을 해봤지만 아직도 뚜렷한 이유를 찾을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둘째로 오늘날 학자들은 타브가 지역을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난 현장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말할 수 있다. 먼저 벳새다 마을이 미국 발굴팀에 의해서 상부 요단강 동편에서 확인되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복음서에 기록된 오병이어 사건과 사건 이후 예수님과 제자들의 행적 때문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건너편으로 가도록 말씀하셨다(마14:22). 그리고 제자들이 도착한 곳이 게네사렛 땅이었다(마14:34). 게네사렛 땅이 갈릴리 호수 서편이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제자들이 출발한 곳은 호수 동편이며, 오병이어 사건 역시 호수 동편 벳새다 들녘에서 일어났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초대교회 때부터 오병이어 기념교회는 호수 북서쪽 타브가에 세워졌다. 성경의 기록과 정반대 편에 세워진 것이다. 누구도 그 이유에 대한 명쾌한 대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상부 요단강 동편 벳새다 들녘은 위험해서 순례객들이 갈 수 없게 되자 호수 북서쪽 타브가에 기념교회를 세웠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비잔틴 시대에 벳새다 들녘 근처에 거라사 기념교회가 세워졌기 때문에 이 주장은 궁색할 수밖에 없다.
오병이어 기념교회를 둘러싼 풀리지 않는 의문 때문에 오병이어 사건 자체가 가볍게 취급될 수는 없다. 이 기적을 목격하고 체험한 청중들과 제자들은 빵만 보다 사건의 본질적인 의미는 보지 못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두 가지 수수께끼는 아마도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만 보지 말고 사건의 본질적 의미를 곰곰이 풀어보라는 뜻인지 모른다.
이게리아(Egeria)
스페인 지방에 살고 있던 수녀로 381~384년경 성지를 순례하면서 보고 들은 것을 기록해 놓았다. 책은 이탈리아 아레조(Arezzo)의 수도원 도서관에서 1884년에 발견되었으나 아쉽게도 중간 부분만이 전해져 오고 있다. 내용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여정이 중심으로 이집트에서 성산 시나이를 거쳐 예루살렘을 지나 콘스탄티노플까지 순례하면서 성지와 순교자들의 무덤을 참배하거나 수도자나 은수자들을 방문한 기록이다. 그리고 후반부는 당시 예루살렘의 전례에 대한 기록으로 특별히 부활 시기의 전례와 행사를 생생하게 그려주고 있어 전례사 연구에 중요한 문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