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9.17. 창조절 셋째 주일
예배 시편 / 시편 12편 1-8절
찬송 / 307장 · 공중 나는 새를 보라
성서 / 요엘 2장 18-27절, 마가복음 4장 26-29절
말씀 / 저절로 자라는 씨알
그 때에 주님께서 땅이 당한 일로 마음 아파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셨다.(요엘 2장 18절)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하나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고, 밤낮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지만, 그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 못한다. (마가복음 4장 26-27절)
김윤식 목사
“우산지목”(牛山之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맹자에 나오는 말이지요. “우산”이란 중국에 있는 산의 이름이고 목은 “나무 목(木)”자이니까, 우산에 있는 나무라는 뜻을 지닌 사자성어입니다. 그런데 이 “우산”이라는 산은 나무는커녕 풀 한 포기조차 나지 않는 벌거숭이산입니다. 그렇지만 이 산이 원래부터 벌거숭이산은 아니었답니다. 처음에는 나무가 울창하고 아름다운 산이었는데, 이 산이 아주 큰 도시 가까이에 있어서 사람들이 너 나 할 것 없이 몰려가서 도끼질했습니다. 그러니 남아나는 나무가 없게 되었지요. 시간이 지나자, 싹이 돋았는데 또다시 사람들이 몰려가 소와 양을 풀어놓고는, 풀들이 자라는 족족 먹였답니다. 점차 산이 황폐해졌고, 결국에는 식물의 흔적조차 찾기 힘든 사막과도 같은 산이 되고 만 것이지요. 사람들은 그 산을 보면서 원래부터 나무가 없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답니다.
맹자는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자연만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도 어진 마음이나 올바른 마음을 버리고, 양심을 버리는 일을 도끼질하듯 쉼 없이 하다가는 사람다움을 완전히 잃어버릴 수 있다는 경고입니다. 마음을 잘 지키지 않고, 분주함과 탐심만을 쫓다 보면, 저 사람도 사람다운 때가 있었을까 의심하게 하는 짐승과 같은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가르침이지요. 오늘 우리는 오래전 맹자의 경고가 현실이 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이제 사람의 탐심 때문에 산뿐만이 아니라 바다도, 사람들까지도 황폐하게 된 두려운 현실을 살게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구약 말씀으로 요엘서를 받아 읽었습니다. 요엘의 시대도 황폐한 시대였습니다. 극심한 기근과 메뚜기 떼까지 몰려들어 이제까지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재앙의 시대가 되었지요. 상황이 이렇지만, 여전히 생각 없이 취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로, 지도자들입니다.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시대, 땅이 메마르고, 자연이 신음하는 어두운 시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요엘은 이 재앙을 극복하기 위해서 모이자고 외칩니다. 사람들의 탐심과 죄악으로 자연마저 신음하는 때, 함께 모여 하나님께 부르짖자고 합니다. 요엘 한 사람의 외침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사제들도 백성들도 요엘에서 별 반응을 보이질 않았지만, 요엘은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하나님께 돌이키자고, 하나님께 울면서 도움을 구하고 다만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간구하기를 호소합니다.
오늘 우리가 받아 읽은 요엘서 2장 18절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요엘서 2장 18절은 요엘서의 중심이고, 전환점입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땅이 당한 일로 마음 아파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셨다.”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생명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을 보고 계셨습니다. 요엘은 땅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시고, 당신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에게서 희망을 찾습니다. 새로운 희망이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사람들의 끝없는 탐심은 땅을 황폐하게 했지만, 창조주이신 하나님의 긍휼한 사랑은 무너진 생명들을 일으킵니다. 지도자들의 부패와 타락은 하나님을 분노하게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애통하며 돌이키는 사람들 때문에, 그들을 향한 더 큰 긍휼과 사랑 때문에 그 분노를 돌이키십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땅과 그 안의 생명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위로하시고, 이제 풀이 무성하고, 나무마다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변함없이 가을비와 봄비를 내려주실 것을 말씀해 주십니다. 이제 하나님은 온 마음으로 그를 찾는 이스라엘을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며 자연의 회복으로 응답하실 것을 약속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야훼 하나님에게서 시작되는 희망, 기쁨과 즐거움이 그들에게서 두려움을 몰아내고 하나님을 부를 수 있게 합니다. 하나님께 돌이킨다는 것은 인간의 탐심으로부터 벗어나서, 하나님께서 지으신 생명을 존중하고 생명을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순명하는 것입니다. 탐심과 우상을 따르던 마음을 찢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타락이 자연까지도 황폐하게 했지만, 이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사람들, 하나님께 온전히 돌이키는 사람들의 온전한 회복을 통해서 땅과 모든 피조물도 회복하실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의 말씀으로 저절로 자라나는 씨에 대한 비유를 읽었습니다. 이 비유는 마가복음에만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어떤 사람이 땅에 씨를 뿌려 놓고, 밤낮 자고 일어나고 하는 사이에 싹이 자라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시지요. 그런데 그 씨를 뿌리는 사람은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를 알지는 못합니다. 다만, 땅이 저절로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이지요. 처음에는 싹을 내고, 그다음에는 이삭을 내고, 그다음에는 이삭에 알찬 낟알이 나옵니다.
이 비유는 독특하게도 농부에 대한 이해가 별로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비유는 농부가 씨를 뿌리기 전에 땅을 갈거나, 거름을 주거나, 풀을 뽑거나 작물을 관리하는 일에 대한 묘사가 전혀 없지요. 씨앗이 자라나는 데 필요한 햇빛이나 비에 대한 언급도 없고, 우박이나 해충 같은 부정적인 묘사도 없습니다. 이 비유는 그저 뿌려진 씨가 성장하는 것과 열매가 익어서 낫을 대는 것, 단 두 가지만을 언급합니다. 농부는 그저 씨를 뿌릴 뿐이고, 씨는 그 농부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저절로 자랐습니다. 다만, 씨를 뿌리고 열매가 익었을 때, 농부는 그 익은 열매를 보고 낫을 대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인간의 역할이 없으니 수수방관하며 살아가라는 것은 아니겠지요. 예수께서는 자연의 신비, 한 알의 씨알이 자라는 그 섭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나라를 보여주는 것이지요. 작은 씨알 하나가 싹을 틔워 열매를 맺는 것처럼, 그렇게 스스로 자라나는 것처럼,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나라는 그렇게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 가운데 역사한다는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바로, 인간의 탐심은 황무지를 만들지만,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나라는 우리 가운데 생명을 키워간다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 우리의 생명을 지키시는 분, 우리의 생명이 자라도록 하시는 분, 그것을 그리고 거두어들이는 분도 모두 하나님입니다. 그렇게 생명을 생명답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 봄에 싹을 틔우고, 싹이 자라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 이 모든 것은 자연의 섭리이고, 모든 자연과 그 섭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나라가 자라도록 하는 것도,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사랑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그렇게 우리 안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뜻과 나라가 자라나도록 힘을 주시고 용기를 주십니다.
이렇게 이 비유를 이해한다면, 우리가 스스로 물어야 할 중요한 물음은 하나만이 남을 것입니다. 바로, “우리에게 씨앗이 있는가?”입니다. 씨가 뿌려져 있어야 자랄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그분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있는지가 중요합니다. 씨앗이 뿌려져 있다면, 그 씨알이 자라게 하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우리 안에 일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씨는 저절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라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자라납니다.
하나님의 뜻과 나라는 우리의 노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노력해서 소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땅과 바다와 온 생명을 지으시고, 순리대로 새롭게 하시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뜻과 나라가 그렇게 자연스럽게 자라나도록 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하나님께서 은총으로 허락하신 하나님의 소중한 말씀의 씨알과,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씨알을 소중히 품고 지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인간의 끝없는 경쟁과 탐심으로 인해 무너져 가는 세상을 봅니다. 그 안에 있는 모든 피조물이 신음하고 있습니다. 사람과 자연이 모두 황무지가 되어가는 것만 같습니다. 이 모든 것은 자연이 그렇게 스스로 된 것이 아니라, 대부분 인간의 탐심이 만들어 낸 결과입니다. 그렇지만, 인간의 뜻이 만들어 낸 것이 황무지이지만, 하나님은 긍휼과 사랑으로 우리 가운데 씨알을 뿌리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답게 씨알을 소중히 품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기다리는 피조물의 탄식에 응답하며 살아가도록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 안에서, 말씀 안에서 살아갈 때,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나라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자라도록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긍휼과 은총 안에서 살아갈 때, 황무지와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씨앗을 소중히 품고, 싹을 틔우고,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우리를 날마다 새롭게 하시고, 힘과 용기를 주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