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늘, 말로 다 할 수 없는 참담하고 서글픈 마음으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불법과 위선, 불의와 오만이 상식 수준의 진리마저도 발붙이기 힘든 우리나라의 현실 때문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기도로 인내하며, 최소한 자기의 말을 지키고 금도를 지키는 상식이 다시 세워지기를 간절히 바랐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우리의 희망은 또 다른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이 미사와 우리의 외침을 통해 우리 국민에게 자행된 불의와 불법이 낱낱이 드러나기를 바랍니다. 하느님께서 국민의 아픔을 대변하는 우리의 외침과 기도를 듣고, 진리와 평화가 우리를 통해 이 땅에 가득하게 되기를 마음 모아 기도합시다.” (남상헌 신부, 살레시오회, 한국 남자 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회장)
26일 오후 5시 서울 신수동 예수회센터 성당에 600여 명의 남녀 수도자들이 모여, 국정원 대선 불법 개입 규탄 및 국가공권력 회개를 위한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수도권은 물론 대구와 전주 등 전국에서 모여든 수도자와 신자들은 성당을 빼곡하게 채웠고, 스크린이 마련된 강당에서도 미사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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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의가 세상을 덮쳐도, 불신이 만연해도 우리는 당신만을 믿고서 살렵니다.” ⓒ정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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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일 수도자와 신자 600여 명이 서울 신수동 예수회센터에서 국정원 대선 불법개입 규탄 및 국가공권력 회개를 위한 시국미사를 봉헌했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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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를 주례한 남상헌 신부는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상식이 내던져지고, 그것이 언론을 통해 세상의 이치인양, 의기양양하게 우리 가운데 떠돌고 있다며 참담한 심정을 드러내면서, 상식의 회복, 진리와 평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자고 청했다.
“현 정권과 기득권자들은 우리의 이런 단호한 행위에 대해서 두려워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우리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당신들의 사악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끝내 이 모든 진실을 당장은 숨길 수 있을지 몰라도 나중에 자라나는 세대에게 왜 그랬는지 어떻게 설명할 지 걱정하십시오.”
이어 김정대 신부(예수회, 한국 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 정의평화환경위원장)는 강론을 통해, 통치자를 위한 권력, 권위가 아닌 권위주의는 피해자들이 침묵함으로써 일조하기에 가능한 것이라면서, “병자와 죄인을 위했던 예수의 삶과 그 권위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용기 있게 이 시대의 문제에 응답하자”고 독려했다.
김정대 신부는 “오늘 우리가 분노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국민이 부여한 권력을 사유화하고, 의(義)를 거부하는 이들 때문”이라면서, “감시와 통제로 훈육된 국민으로 살던 시절로 퇴행하는 듯한 이 시점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물었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라는 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르 10,42-43)
김 신부는 “어떤 이들은 수도자들이 시국선언에 나서는 것을 불순한 정치행위라고 하지만, 이것은 매우 복음적인 행위”라고 단언하면서 “하느님 나라의 시민으로서 이 세상에 살며 민주주의적 가치가 파괴되는 현상을 무시하는 것은,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담을 쌓고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 교회를 ‘세상 위의 교회가 아니라 세상 안에서, 세상을 위하는 교회’라고 이른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들어 “교회가 시대의 징표를 읽고 공동선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은 교회의 사회적 사명이며, 신학적 정당성과 근거가 부여된 것”임을 분명히 했다.
끝으로 김정대 신부는 “권위가 존중되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권위적인 사회를 만들 것인가는 우리의 응답에 달려있다”며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이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도록 함께 격려하고, 반민주적, 권위적 제도와 권력가와 정치인들에게 항의하자. 용기를 내자. 우리가 ‘갑’이다”라고 격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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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대 신부는 강론에서 “감시와 통제로 훈육된 국민으로 살던 시절로 퇴행하는 듯한 이 시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고 물으면서,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이 세상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도록 함께 격려하고, 반민주적, 권위적 제도와 권력가와 정치인들에게 항의하자. 용기를 내자, 우리가 ‘갑’이다”라고 격려했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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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상헌 신부는 사람이 함께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상식이 내던져지고, 그것이 언론을 통해 세상 사는 이치인양, 의기양양하게 우리 가운데 떠돌고 있다며, 상식의 회복, 진리와 평화를 위해 간절히 기도하자고 청했다. ⓒ정현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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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를 마친 후, 남상헌 신부는 “한국 교회 역사상 남녀 수도자가 시국미사를 거행하고 시국선언을 한 것은 처음일 것”이라면서 “그만큼 우리가 지금의 상황을 엄중하게 여기고, 아파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말했다. 남 신부는 26일 오전,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원 사태에 대해 “민생과 거리가 먼 정치와 금도를 넘어서는 것은 정치를 파행으로 몰게 될 것”이라고 언급한 것에 대해 “우리도 요구한다. 제발 국민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금도를 지켜 달라”고 호소했다.
남 신부는 “이 시국미사를 통해 우리는 마음을 모으고 결기를 다졌으며, 소리치기로 약속했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과 우리의 나갈 길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지켜볼 것이고, 외칠 것이며, 앞으로의 길을 함께 고민할 것”이라면서 “모든 정보를 관심 없는 이들과도 나누며, 우리와 금도를 넘어선 이들의 회개를 이끌어 낼 것”이라고 선언했다.
이날 미사에 참여한 수도자들은 한결같이 국민의 알 권리가 무시당하고, 진실이 훼손된 현실에 대해 토로했다. 임형택 수사(작은형제회)는 “국민들이 알아야 할 정보가 통제되고 있다는 것이 무척 답답하다. 이렇게 진실을 숨기다가는 더 큰 위기를 맞게 될 것”이라며, 언론이 알려야 할 사실을 알리고, 이 사태의 책임자들이 잘못에 대해 하루빨리 사죄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영미 수녀(한국 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생명평화분과장)는 “교회에서조차 이렇게 목소리가 나온다는 것은, 이것이 엄청나게 잘못된 일임을 모두가 알고 있다는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한 항의”라면서 “민생 현안이 우선이라면 더더욱 국민의 목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살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세일 신부(예수회)는 “작금의 사태를 지켜보며, 슬픔을 넘어 마음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이라면서, “모쪼록 대통령이 ‘내 무덤에 침을 뱉으라’면서 권력을 휘둘렀던 그 아버지의 전철을 절대 밟지 않는 자랑스러운 딸,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미사 중에는 천주교 수도자 4,502명이 서명한 시국선언문이 발표됐다. 약 일주일간 진행된 서명에는 65개 수도회가 참여했다. 이들은 선언문에서 “우리는 교회 가르침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며, 사회의 구조를 변화시키고, 모든 비참함의 주변부로 나갈 사명을 지녔다”고 밝히면서, “하느님 나라의 시민임과 동시에 민주 시민인 우리는, 민주와 자유의 가치가 위기에 빠진 이 시대에 기도와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을 통해 복음의 소명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응답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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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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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천주교 수도자 시국선언
“이들이 잠자코 있으면 돌들이 소리 지를 것이다”(루카 19,40) |
우리 가톨릭 수도자들은 최근 더욱 더 심해지는 경제적 불평등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무시되고 국가 권력에 의해 민주시민의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가 공공연하게 침해 받는 현실을 마음 깊이 아파하고 있습니다. 또한 이런 현실에 대해 비판적으로, 아니면 최소한 중립적으로 보도하고 논평해야 할 거대 언론들이 자본과 권력의 입장에 서서 우리 사회의 긴급하고 중요한 현안들을 왜곡하는 것에 대해서도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지난 해 대선 기간 동안 국가정보원이 경찰과 공모하여 민주 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절차인 선거에 불법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이 검찰의 수사 결과로 드러나면서 우리들의 우려가 단지 우려로만 그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게다가 국가정보원과 새누리당은 이런 불법선거 개입의 잘못을 숨기기 위해 2007년 남북정상 회담의 기록까지 또다시 불법적으로 공개하며 민주 국가의 법체계 자체를 무력하게 만들면서 국민들을 속이고 있으니, 우리는 더 이상 국가정보원과 새누리당이 국민을 위한 정부기관이며 정당이라고 여길 수 없게 되었습니다.
민주주의가 단지 선거와 투표로만 완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민주주의는 국민으로부터 나오는 권력을 국민 스스로 행사하는 제도인 만큼, 국민들은 공평하고 동등한 배려와 존중을 받으면서,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의 정신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공정한 선거가 필수적입니다. 이것을 침해하고 위협하는 그 어떠힌 행위도 자유 민주주의의 정신과 실천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공동의 선은 소수 권력자들의 특권과 지배와 불법을 용인하는 순간 아주 쉽게 무너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고쳐지지 않으면 우리 사회는 그 어떤 공동의 가치도 기꺼이 나누려 하지 않는 이기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사회가 되고 말 것입니다. 우리들은 권력의 그 어떤 불법과 특권에도 결단코 반대하며, 민주사회에서의 건강한 삶이 온전하게 회복되기를 간절히 희망합니다.
우리는 예수의 삶을 따라가는 가톨릭 수도자로서 신앙에의 봉사가 정의의 증진 및 평화의 실천과 뗄 수 없게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교회 가르침에 따라 가난한 사람들과 연대하며 “사회의 구조”를 변화 시키고 “모든 비참함의 주변부”로 나아갈 사명을 지니고 있습니다. 우리는 공동의 선을 지향하며 하느님의 선하고 정의로운 통치를 갈망하는 하느님 나라의 시민임과 동시에 사회에서 각자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하는 민주 시민이기도 합니다. 이에 우리는 민주와 자유의 가치가 위기에 빠진 이 시대에 기도와 구체적인 사회적 실천을 통해 복음의 소명에 진지하고 성실하게 응답하며 살아가고자 합니다.
따라서 우리 가톨릭 수도자들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강력하게 요구합니다. : 국가정보원, 경찰, 새누리당의 불법 행위에 대해 대한민국 정부의 대표자로서 대통령이 먼저 책임져야 합니다. 대통령은 국민들에게 마음을 다하여 사죄하고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균현 잡인 민주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대선 불법 개입 관련자 처벌, 국가정보원 개혁 등 대통령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즉시 실행해야 합니다.
2013년 8월 26일 한국 천주교 수도자 4502인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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