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숙제로 한 건데 다행히도 큰 선생님께서 좋게 봐주셔서 이렇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스포일러가 있으니 영화를 안보신 분들은 뒤로가기 ㄱㄱ

그레이스라는 미모의 여자가 갱단을 피해 도그빌로 숨어 들어온다. 도망자를 숨겨준다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마을 주민들은 자신들을 진심으로 대하는 그녀에게 점차 마음을 열고, 나중에는 그레이스 덕분에 마을이 더 살기 좋아졌다며 그녀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여기까지 보면 이 영화가 인간의 따뜻한 휴머니티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장면들은 그것이 착각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마을에 경찰이 찾아오는 횟수가 늘어날수록 그레이스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태도는 바뀌어 간다. 마을 사람들은 그들에 대한 그녀의 헌신적인 노력을 숨겨주는 것에 대한 당연한 대가로 여긴다. 또 그레이스가 도망자라는 약점을 이용해 그녀를 강간하고 노예처럼 부리기 시작한다. 그레이스의 연인이자 마지막 희망이었던 톰마저도 등을 돌리고 오히려 그녀를 내쫓는데 앞장선다. 톰의 연락을 받고 마을로 찾아온 갱들의 보스는 그레이스의 아버지였다. 그레이스는 아버지와의 짤막한 대화를 통해 도그빌을 세상에서 없애버리기로 결정한다. 그레이스의 그러한 결단으로 마을은 갱들의 손에 불에 타고 사람들은 전부 사살 당한다. 그레이스가 ‘도그빌’을 세상에서 없애고 유유히 떠나는 장면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린다.
‘도그빌’은 첫 장면에서 아주 독특한 방법으로 관객들의 이목을 끌어들인다. 흰 선으로 그려져 있는 길과 구즈베리, 벽이 없는 집들…… 그 밖에 다른 배경들 모두 그것들이 무엇인지 식별 할 수 있게 최소한의 형태만 갖추고 있다. 그래서 영화라기보다는 연극무대를 스크린으로 옮긴 것만 같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의 이러한 설정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극 중 인물들과 상황을 심층적으로 볼 수 있게끔 하고, 이것이 현실이 아니라 허구임을 끊임없이 상기시키도록 하지만 영화의 내용은 인간의 추악함을 매우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그 어떤 영화보다 잔인하고 참혹하다.
영화를 보다보면 그레이스가 베라의 아이들에게 스토아학파의 금욕주의를 가르친다는 대목이 나온다. 스토아학파는 이성을 중시하고 감정은 옳고 그름의 판단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극 중, 스토아학파에서 추구하는 이성적인 인간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이 스토아학파의 이론을 회의적으로 바라보고 ‘이성은 감정의 노예’라는 흄의 말을 지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레이스를 강간한 척과 벤. 그들은 전혀 설득력 없는 괴상한 논리로 자신들의 야만적인 행동을 합리화 시킨다. 도그빌에서 스스로를 가장 이성적이라고 생각하는 톰 또한 섹스를 거부하는 그레이스에게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자신만큼은 끝까지 당신의 편을 들어줬는데 왜 그러냐며 화를 낸다. 그리고 영화 내내 가장 이성적이고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보였던 그레이스 역시 별반 다를 것이 없다. 한없이 자비로웠던 그녀가 마을을 없애고 사람들을 처단하기로 결정하면서 그것이 이 세상을 위한 일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복수심 없이 단지 그 이유 때문에 도그빌을 없앴다면 그레이스는 베라에게 그녀의 아이들이 눈앞에서 죽어가는 것을 강제로 보게 하지도 톰을 직접 사살하지도 않았을 것이며(그레이스는 마을 사람들 중, 가장 큰 배반감을 안겨준 톰만은 스스로 처단한다.) 굳이 차안에서 커튼을 걷어 사람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보려 하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들 자신의 욕망을 이성이라는 포장지로 감춘다. 하지만 모두 이성적인 척 할뿐 정말로 이성적인 사람들은 아니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이 영화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자신이 도그빌에 있다면 어떻게 행동 할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도록 유도하고, 당신도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추악해 질수 있다고 경고한다. 영화를 보고나면 한동안 마음이 불편하지만, ‘도그빌’이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보여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인간성의 본질에 대해 깊은 고찰을 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영화 ‘도그빌’. 3시간의 긴 러닝타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영화다.
첫댓글 나보다 잘 쓴다. 우와.
쿨럭쿨럭
맞아요! '도그빌'은 3시간이 아깝지 않은 영화였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