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가 잠깐 신호등에 걸리다/이면우
큼직한 손바닥에 상추 펼치고 깻잎 겹쳐 그 위에 잘 익은 살코기
얹고 된장 쌈 싸 한입 가득 우물대는 사내 보는 일 그것 참 흐뭇
하오 맑은 술 한잔 약봉지 털 듯 툭 털어놓고 마주 앉은 이에게
잔 건네며 껄껄대는 사내 보는 일 역시 흐뭇하오 그 곁에 젊은
여자, 호 불어 넣어준 제 아이 오물대는 입을 그윽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었소.
유리벽 이쪽에서 나도 저리 해보리라 마음먹은 저녁은
신호등 떨어진 네거리처럼 무수히 흘러갔소.
<시 읽기> 버스가 잠깐 신호등에 걸리다/이면우
먹고사는 게 뭔지 잘 몰라도 오늘도 일반인은 바쁩니다. 왜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를 따져볼 새도 없이 하루가 그냥 지나갔다는 말도 더는 생경하지 않습니다. 단 네 문장으로 처리된 이면우의 시를 읽으면서 오늘 하루가 새삼스럽습니다.
신호등에 걸린 버스 속에서 바라본 식당 안의 풍경은 시인의 저녁을 돌아보게 합니다. 사람들은 정답게 마주앉아서 쌈장에 새우젓에 살코기를 찍으며 술 한 잔 먹고 있습니다. 자식 입이 오물오물 음식 먹는 것을 지켜보는 젊은 여자의 행위도 아름답지만, 술 한 잔을 약봉지 털 듯 톡 털어 놓는 사내의 행위는 시인의 눈가를 따뜻하게 적셔 줄 것 같습니다. 살가운 이들과 오순도순 저녁 한 끼를 먹고 싶었어도 “신호등 떨어진 네거리처럼 무수히 흘러”가 버린 날들이 이 저녁에, 아프게, 켜집니다.
모두들 왜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 그걸 거절하면 안 되는 것인지, 언제까지 뭣에 꿰인 듯 바쁘게 살 것이냐는, 신중하게 다져 볼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바쁘게 살도록 살을 가용하는 눈에 안 보이는 간악한 세력이 더 잘못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누구든 저 세력에 삶을 강요당할 이유는 없습니다.
깻잎과 살코기와 된장이 사람의 행위와 어울리는 저녁은 ‘나’의 시간이면서 ‘우리’의 시간입니다. 저녁 시간이 따뜻하든 코가 시리든 초저녁술에 취했든 어쨌든 이면우의 시를 읽는 지금은 마음이 촉촉하게 펴집니다.
―이병초, 『우연히 마주친 한 편의 시』, 형설, 2021.
첫댓글 이 시는 버스가 정지 신호등을 맞아 버스가 섰는데
차창 밖에 보이는 한컷의 징면이
따뜻하고 훈훈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바둥대는 것도 이런 잠깐의 시간을 가져보기 위함이 아닌지요.
우리가 사는 일이란 웅장하고 거대한 것만이 아니라
이렇게 작고 하찮아 보이는 사소한 곳에 있지 않나요?
삼결살 먹는 가족의 소소한 장면도 놓치지 않고 시로 만들어 내는 시인의 족집게 관찰력이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