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비석과 '자유부인'
정비석은 1911년 평안북도 의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2년에 일본 니혼(日本)대학 문과를 중퇴하였고,
1935년 동아일보에 시 〈여인의 상〉, 〈저 언덕길〉 등을 발표하였으나 1936년 소설로 전향하여 단편 〈졸곡제〉가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고, 1937년 단편 〈성황당〉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어 데뷔하였다.
* 자유부인(自由夫人)
정비석이 1954년 1월 1일부터 그 해 8월 6일까지 215회에 걸쳐『서울신문』에 연재한 장편 소설이다.
대학의 국문과 교수인 장태연은 성실한 교수로 학문 연구에 몰두하는 소장학자이고, 그의 아내인 오선영은
선량한 가정주부이다. 어느 날 오선영은 동창인 최윤주의 권유로, 당대 유력자의 부인으로 있는 동창생들의 모임인
화교회에 참석하여, 그 자리에 모인 동창들의 화려한 모습에 접하자 자기 자신과의 비교 속에서 마음의 동요를
가져오기 시작한다. 그래서 오선영은 최윤주의 소개로 실업가 한태석의 부인인 이월선을 알게 되고,
이월선이 경영하는 서울 시내 복판에 있는 양품점 파리양행에 취직하게 된다. 화사한 바깥 세계에 짙게 물들어가기
시작한 오선영은 사교춤에 대한 선망의 감정을 느끼게 되고, 이웃에 사는 남편의 제자 신춘호와 춤바람이 나게 된다.
한편, 장태연은 미군 부대에 종사하고 있는 한국인 사무원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다가 알게 된 미모의 타이피스트
박은미에게 호감을 가지게 되지만, 박은미의 결혼으로 장 교수의 감정은 그저 미련만 남기게 된다.
오선영을 유혹하여 가정 파탄의 전야에까지 이르게 한 신춘호는 오선영의 조카인 명옥과 가까워져,
이 두 사람은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고, 질투와 울분에 불타던 오선영은 한태석과 깊은 관계에 빠져들려 하지만
이월선의 추적으로 중단하게 된다.
탈선된 행위와 좌절로 실의에 빠진 오선영은 생활의 의지를 거의 잃어 자포자기로 빠지게 되나 장태연의 무한한 아량과
이해로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가정으로 돌아가게 된다.
당시로는 파격적인 소재로 장안의 화제를 모았던 작품으로 주인공인 대학교수 부인이 욕구불만으로 가출하고,
불륜을 저지른다는 설정과 제자 여학생의 교수에 대한 사랑 등이 사회적인 이슈가 되었다.
당시 ‘사회의 도덕성’을 문제로 서울대 법대 황산덕 교수와 정비석 사이에 벌어진 논쟁은 이 작품을 더욱 유명하게 하는데
일조를 하였다. 소설의 인기로 1956년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되기도 하였는데 이 영화마저 큰 인기를 끌어 〈속 자유부인〉
까지 제작되기도 하였다.
특히나 재미있는 점은 오선영이 매번 탈선을 시도하긴 하지만 결정적으로 한 번도 바람을 피는데 성공하지 못했고,
실제로 한태석에게 몸 주고 마음까지 줬던 최윤주만이 몰락하는 모습을 보여 작가가 도덕적인 금기를 깨뜨리지 않으려
노력한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박종구 님이 주신 카톡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