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 십자성(十字星)을 바라보며~>/구연식
천문학이 발달하기 이전 인류는 밤하늘에 고정된 제자리에서 빛나고 있는 별자리를 기억하여, 인간의 운세나 사회 동향을 알아보는 점성술의 점괘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특히 어부들은 항해할 때 유일한 나침판으로 삼기도 했다. 북반구의 중심적 별자리는 북극성이 있고, 남반구에는 남십자성이 대표적인 별이다. 이국땅에 나가 있는 사람들에게는 애틋한 고국의 그리움을 때로는 별들을 보면서 달래기도 한다.
손자가 어린 나이에 남반구의 끝 뉴질랜드에 유학을 떠났다. 사방팔방이 망망대해로 둘러싸인 섬나라이다. 며느리도 휴직을 내고 뒷바라지를 위해 같이 갔다. 가끔 아내가 카톡 국제 전화할 때 옆에서 듣고 보고 있으나, 하루가 멀다고 그리움이 떠나질 않았다. 저녁 식사 후에는 아파트 주변 산책길을 1시간 정도 건강 걷기를 한다. 그때마다 남쪽 하늘에는 마름모형 십자성이 유난히 밝게 빛나며 나를 반겨 준다. 남반구에 있는 형제국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는 국기에 유독 십자성을 표시한 국가이다. 어쩌면 십자성을 자기 나라의 수호신으로 믿는 것 같다. 그래서 밤마다 나는 십자성에게 손자 안부를 전하면 그때마다 십자성은 염려 없이 잘 있다고 위로해 준다.
그렇게 유학을 떠난 손자가 몸도 마음도 훌쩍 자라서 귀국했다. 이제는 세상만사가 편안하여 두 다리 쭉 펴고 잠을 잘 수 있다. 아들 내·외가 겨울방학을 맞이하여 예약한 <전북 교직원 수련원>에 손자와 더불어 오붓한 가족끼리 가고 있다. 가는 도중에 그의 출생과 성장 과정을 통해서 청정하고 애수가 담긴 주옥같은 시들을 음미할 수 있는, 목가적 서정시인으로 유명한 신석정 문학관을 관람했다. 손자는 어렸을 때 나의 서재에 들어오면 나의 글 쓰는 흉내를 많이도 내었다. 그날 신석정 기념관에서도 수필은 어떻게 쓸 수 있느냐는 등 호기심 적 질문도 했다. 그럴 때마다 우선 공부를 열심히 하고 좋은 직장에서 근무하면서 여유 있을 때마다 글을 쓰면 좋겠다고 훈수했다.
다시 부안 읍내로 돌아와서 생선탕으로 저녁 식사를 마치고 변산 해수욕장에 있는 전북교직원 수련원에 도착했다. 남쪽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여니, 손자를 보내고 그렇게 밤마다 우러러보며 속삭였던 십자성 4형제가 영롱한 빛을 발하며 윙크한다. 너무 반가워서 손자를 발코니에 불러내어 십자성과 어깨동무하면서 인증샷을 하니 만감이 교차하여 눈시울이 붉어지며 목젖이 울컥해진다. 수억 만리타국에 있는 손자를 밤하늘 별에 의존하면서 위안을 가졌던 그 시절이 너무 아슬아슬하여, 쉽게 잠 못 이루고 뒤척거리며 선잠으로 날이 밝았다.
연수원에서 제공한 아침 식사를 마치고 변산 해수욕장을 걸었다. 이곳은 1969년 7월 21일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 기념으로 임시 공휴일 이어서 대학 다닐 때 처음 와본 곳이다. 간밤에 파도가 큰 싸리비로 깨끗이 쓸고 간 해변에는 어느 어부의 발자국인지 달에 남긴 닐 암스트롱의 발자국처럼 움푹움푹 패어놓고 지나갔다. 아침이 조금 지난 시간이다. 함박눈이 해수욕장 일대를 잠재우고 외출을 걱정스럽게 한다. 그래도 마을버스는 흰 눈을 괴물처럼 뚫고 나타나더니 이것쯤이야 하는 듯이 사라진다. 오늘 주 목적지는 곰소항 부근 젊은이들의 유명장소가 되어있는 <슬지 제빵소>와 곰소 염전 방문이다. 제빵소 부근에 도착하니 빵 찌는 뽀얀 김이 지붕 위에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더 가까이 들어가니 발효제 누룩 냄새가 식탐을 자극한다. 빵과 차를 주문하여 곰소 앞바다가 보이는 카페에서 온 식구가 빙 둘러앉아 곰소항의 바닷바람에 휘청거리는 갈대 파도에 시름을 날려 보내며 망중한을 보내고 있었다.
눈을 들어 북쪽을 보니 곰소 염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밖에는 갑자기 싸라기눈이 팝콘 부스러기처럼 내리고 있다. 이런 때는 동일현상이 상상된다고 그 옛날 곰소 염전 소금꽃이 하늘에서 쏟아지는 느낌이다. 지금은 염전 제철이 아니어서 아무것도 없는 개펄같이 보이지만, 불볕더위 아래 한 줌의 소금을 만들기 위해 삶을 이어갔던, 소금 꾼들의 소금 젓국에 눅눅해진 옷자락이 애환처럼 아른거린다.
일제 강점기에도 땅을 지키며 민족의 식량을 부담했던 동진강 주변의 부안평야의 벼 그루터기들의 배웅을 뒤로하고, 전주로 돌아와 전주 명물 콩나물국밥으로 개운하게 여행의 입가심을 마쳤다.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초저녁 십자성을 보며 걷고 있다. 그런데 변덕스러운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라고, 그 옛날 십자성에 매달리던 아쉬움은 어디로 가고, 이제는 무사안일 심정으로 바라보는 속내를 십자성은 알아챘는지, 구름 속에 살짝 숨고 얼굴을 보여주질 않는다. 모든 것은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십자성의 꾸짖음을 반성해 본다.(2025.1.15.)
<전북교직원 수련원에서 십자성을 뒤로하고~> <십자성 별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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