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화, 그 이름 석자만 들어도 사람들은 얼굴에 미소를 떠올린다. 때로는 미소 정도가 아니라 폭소를 터뜨린다.
이제 그 이름은 온 국민을 즐겁게 해주고 웃음을 안겨 주는 대명사가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그녀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늘 조용하게 믿음대로 선행을 해온 탓이다.
미아리 산동네에서 어렵게 살던 어린 시절, 그녀의 옆집은 바로 교회였다.
그 당시만 해도 먹을 것이 없어 굶주리던 때였다.
교회에서 주일학교 어린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과자는 달고 오묘한 말씀 그 자체였다. 그녀도 그런 아이들 틈바구니에 끼여 교회에 빠지지 않고 나갔다. 그런 그녀에게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 때의 믿음이 지금까지 저를 버티게 해주는 힘인 것 같아요." 미션 스쿨인 신광중, 고등학교에 다니면서도 그녀의 믿음은 식지 않았다. 특히 고등학교 때는 늘 명랑하고 사회를 잘 보던 그녀에게 목사님은 종교부장 일꺼자 맡겼다. 그녀의 '끼'가 하나님으 달란트였음을 보여 주던 때였다.
"어렸을 때부터 노래를 잘한다고 동네 아주머니들이 이다음에 커서 가수가 되라고 했죠. 그래서 막연히 가수가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점점 자라면서 개그맨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요." 자신의 소망대로 꿈을 이루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하지만 그녀는 꿈을 이루었다.
1983년 개그맨 콘테스트에 합격해 개그맨으로 데뷔한 지 어느덧 18년이 다 되어간다.<유머 1번지><쇼 비디오 자키><웃으며 삽시다><코미디 세상만사>등 김미화 씨가 출연한 프로그램마다 대성공이었다. '백상예술대상 코미디언상','KBS코미디 대상','98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문화관광부)'등 거머쥔 상만도 부지기수다.
요즘은 인기절정에 있는<개그 콘서트>와 <체험 삶으 현장>(KBS)<뷰티풀 라이프>(SBS)에 출연하느라 눈코뜰새없이 바쁘다. 거의매일 새벽 2시에 집에 들어가 4시에 잠자리에 들고 오전 8시쯤 일어나는 그녀는 실컷 잠 한번 자 봤으면 하는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물론 한 달에 거의 한두번 아이들 얼굴을 볼 수 있을 정도로 바쁜 엄마이고 아내다. "정말 하나님께 감사드려요.
제가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능력을 주신 것에 대해서요. 아이들만 해도 그래요. 한 달에 한두번 얼굴 보는데도 오히려 아이들은 절 위해서 기도해 주지요. 그리고 신앙 속에서 바르게 자라주고요. '너는 어디서 왔니?'하고 물으면 '하나님이 엄마한테 주신 선물이야'하죠. 그런 유림(9세)이와 예림(6세)이의 머리맡에 손을 얹고 기도드려요. 착한 아이들로 자라게 해달라고요."
김 씨는 잠자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가장 행복감에 젖는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시는 이유 김미화 씨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축복해 주시는 것은 남을 위해 살도록 자신을 권면하시는 것이라고 느낀다. "어려움은 겪어본 사람들이 안다고 하잖아요. 저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기에 불쌍한 사람들만 보면 힘 닿는 데까지 도와드리려고 해요.
시간이 되면 교도소나 양로원, 고아원 등에 가서 인사도 해드리고 이야기 벗도 되어 드립니다. 하지만 도리어 그분들은 절 걱정해 주시고 절 위해 기도해 주신답니다. 그런 걸 보고 제가 도리어 많은 은혜를 받아요." 지난 4월에는 초범인 아이들이 재범을 하지 않도록 방지하기 위한 모임인 '청소년 사랑회' 주최로 천안교도소 내에서 탤런트 최불암 씨와 함께 뮤지컬을 공연하기도 했다. 아이들은 오랫동안 연습을 했다.
시간이 부족한 김미화 씨는 대본을 받아 차에 카세트 테이프를 꽂아 놓고 오며가며 틈나는대로 혼자 연습을 했다. 그렇게 연습을 마친 뒤, 호흡을 맞추어 4월에 막을 올린 뮤지컬 '방황하는 아이들'은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무려 2천여 명이나 되는 관객이 모여들었다. 그 아이들은 지금도 그녀에게 편지를 보내오고 있으며 자신들이 사회의 일원이라는 의식을 갖기 시작했다. 그런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더욱더 보람을 느낀다는 김미화 씨. 그녀에게도 어려움은 있었다.
첫아이를 잃은 슬픔 "한창 '쓰리랑 부부'가 인기를 얻고 있을 때였는데 아기를 갖게 되었어요. 하지만 누적된 고로로 아이를 유산하고 말았어요. 정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어요. 무척 기대했던 아이였는데...'왜 하나님은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실까'하는 원망이 터져나왔어요. '교회를 다녀서 무엇하나'하는 생각까지 들었죠.
그때 하나님은 저에게 작고하신 개그맨 김경태 장로님을 만나게 해 주셨어요. 그분과 또 믿는 개그맨들이 함께 모여 일을 시작하기 전 항상 기도했죠. 김 장로님은 제가 힘들어할 때마다
'대장장이가 쇠를 두드리는 것은 좋은 연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을 해주셨죠. 또 목사님들도 많은 도움을 주셨어요. 그러면서 기도하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어 기도했죠." 첫아이를 잃은 후 7년 동안이나 아이가 없었던 김미화 씨는 내심 초조하기도 했고, 아제 아이를 갖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모든 일은 순조롭게 풀리기 시작했고, 누구보다 사랑하는 두 딸을 얻게 되었다.
"아이들을 자연인으로 키우고 싶어요. 그래서 공부보다는 자기가 하고 싶다는 것을 하도록 해주죠." 창의적인 일을 하는 엄마다운 얘기다. 자신을 이해해 주고 도와 주는 어머니와 남편이 있기에 이 일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김미화 씨는 유니세프의 연예인 대표로 활동하며 유니세프 일도 앞장서서 하고 있다. 진정한 프로가 되기 위해 딸이 개그맨이 되겠다면 시키겠다고 거침없이 말하는 그녀는, 끊임없는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개그맨이라는 직업이 힘들긴 하지만 후회하지 않는다.
늘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으려고 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요즘 나오는 베스트셀러는 다 읽어요. 연극, 영화, 뮤지컬 등을 보며 끊임없이 아이디어를 짜내죠. 멈추어 있으면 발전이 없다고 봐요."
진정한 프로인 그녀는 내성적이며 약간 급한 성격이지만 상대편 때문에 화가 날 때는 4~5일 정도 깊이 생각한다. 그러고도 잘못됐다 싶으면 편지를 쓴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잘못된 점을 지적해 준다. 물론 때론 언성이 높아질 때도 있고 즉석에서 화를 낼 때도 있다.
그러나 마음이 편치 않아 곧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마는 마음 여린 구석이 있기도 하다. "앞으로 소망이 있다면 사회복지 공부를 해서 어려운 분들과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재단을 하나 운영하고 싶어요.
또 코미디 학교 같은 것도 세워서 후배양성동 하고 싶고요. 그래서 내년부터 사회복지를 공부할거예요." 힘들 때마다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는 말씀을 되새기며 힘을 얻는 그녀는 요즘같은 시대에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밖에 없다는 말을 강조했다.
"녹화를 할 때도 기도를 드리고 시작하면 확실히 달라요. 순조롭게 일이 진행되거든요. 물론 믿지 않는 개그맨들도 있지만 함께 모여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고 기도합니다. 그럴 때마다 녹화는 어려움 없이 끝나죠. 그러면 믿지 않는 개그맨들도 '기도 때문에 잘 된 것 같아요' 하죠" 아직도 기도하는 방법을 몰라 중언부언 할 때도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진심에서 우러나 하는 게 진정한 기도라고 생각한다는 김미화 씨.
"어머니가 기도를 많이 하면 자녀가 잘 된다고 하잖아요. 기도는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하는 기도가 되어야 한다고 봐요. 물론 아직 저도 잘 실천하지 못하지만요."라며 특유의 웃음을 웃어보인다. 그야말로 편안하면서도 부담없는 여자로 남고 싶다는 그녀에게는 프로다운 자신감과 크리스쳔으로서의 겸손함이 그대로 우러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