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록의 '海島眞人'이 트루먼? 趙甲濟
海島眞人 트루먼? 참혹한 6·25 전쟁 이후 황폐화된 한국 사회에선 정감록의 '海島眞人說'(해도진인설)이 퍼졌다. 바다섬에서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나타난 진인(眞人)이 '트루먼'이란 것이었다. 'Truman'을 'Trueman'으로 오해한 것인데 기댈 곳이 없는 민초들 사이에선 '해도', 즉 바다섬도 미국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오스트리아 출신인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인 줄 오해하고 하늘을 가르는 전투기를 '호주댁'이 부탁하여 보내준 '호주기'라고 부르던 시절이다. 이런 낭설(浪說)에는 그러나 사실적 근거가 작은 조각처럼 숨어 있는 경우가 있다. 해리 S. 트루먼 대통령은 이승만(李承晩) 초대 대통령과 함께 남북한에 걸쳐 사는 대한민국 8000만 국민의 생존과 삶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사람이다. 그는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원폭투하를 결단, 한민족을 해방시켰고 2년 뒤엔 소련의 팽창에 대응한 트루먼 독트린 선포로 반공노선을 분명히 했으며, 1948년 대한민국 건국에 유엔이 산파 역할을 하도록 했고, 그 2년 뒤 북한군 남침 때는 즉석에서 미군파병을 결단했으며, 그해 가을 중공군 남침으로 유엔군이 총퇴각할 때 한국사수(死守) 정책을 고수했고, 미국의 엄청난 경제력을 총동원한 본격적인 대소(對蘇) 봉쇄작전으로 그 40년 뒤 소련제국이 무너지는 길을 열었다. 적어도 세 번 한국인을 살린 셈인데 한국에선 푸대접을 받는다. 트루먼이 맥아더의 원폭 투하 요구를 거절, 북진통일이 좌절되었다고 오해하는 한국인들은 맥아더를 추켜세우기 위하여 트루먼을 깎아내린다. 그런 풍조의 반영이 인천 자유공원에 당당히 서 있는 맥아더 동상과 임진각 한 구석에 초라하게 버려진 트루먼 동상일 것이다. 자수성가한 기업인의 꿈 냉전에서 자유세계가 이기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고 하여 20세기 3대 전쟁 중 하나로 꼽히는 한국전쟁의 결전장 경북 칠곡군 다부동(多富洞)에, 휴전 70주년을 맞은 올해 이 전쟁의 두 최고사령관 이승만(李承晩) 트루먼 대통령의 동상이 세워져 7월27일 제막식을 가진다. 광화문 광장의 세종대왕 동상 등 한국 제1의 기념물 조각가로 꼽히는 김영원(金永元) 선생이 빚은 높이 420cm 대작이다. 민간이 주도하여 만든 동상을 기증받은 국가(경북도, 칠곡군)가 세운 점에서 순수한, 그래서 모범적인 기념물 건립 사례로 남을 것이다. 두 동상을 만든 '李承晩트루먼朴正熙동상건립추진모임'(동건추)은 앨트웰民草장학회 설립자 김박(金博) 앨트웰텍 회장의 발의(發議)로 2016년 5월2일 발족한 이후 오늘의 번영과 자유를 있게 한 세 위인의 동상을 세우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해왔다. 민간인의 정성을 모으는 데 주도적 역할을 한 김박 회장은 소년가장 출신의 자수성가한 기업인인데 "내가 먹고 살게 된 것은 이 세 분 덕분이다"면서 감사의 표시를 하려고 했다. 2017년 11월14일의 박정희(朴正熙) 대통령 탄생 100주년을 맞아 서울 상암동에 있는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에 박정희 동상을 기증, 세우려 했으나 반대세력에 휘둘린 당국의 비협조로 아직까지 성사되지 못하고 있다(그 해로 예정되었던 박정희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도 취소되었다). 동건추는, 2019년부터 이철우(李喆雨) 경북도지사와 접촉, 이승만 트루먼 대통령 동상을 다부동(多富洞) 전적지에 세우기로 합의, 주민 설득과 행정적 절차를 진행해왔다. 한국 현대사를 긍정하고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윤석열(尹錫悅) 정부가 들어서고, 마침 휴전 및 한미동맹 70주년을 맞는 2023년 7월27일에 두 영웅의 동상을 적지(適地)에 세우게 된 것은 역사적 의미를 더욱 깊게 한다. 자유는 공짜가 아니듯이 다부동에 선 두 동상도 투쟁의 결과물이다. 트루먼 푸대접 10여 년 전 필자는 임진각의 평화공원을 찾아가 관리인에게 "여기 트루먼 동상이 있다는데 어디죠?"라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그런 게 있다고요?"였다. 작년 이곳을 찾은 이하원 조선일보 논설위원도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임진각 주변 어느 곳에도 트루먼 동상 안내판이 없었다. 10여 분간 여기저기를 찾아 헤매다가 간신히 동상을 발견했다. 변색이 진행되고 칠이 벗겨지고 왕거미들이 집을 짓고 있었다.> 李 논설위원은, 강성학 고려대 명예교수가, '해리 S. 트루먼-평범한 인간의 비범한 리더십'에서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 중에서 한국인들의 운명에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 인물"이라고 평하면서 트루먼을 '대한민국의 대부(代父)'라고 불렀다는 점을 소개하면서 동상이 거미들의 놀이터가 되게 한 것을 언어도단(言語道斷)이라고 개탄했었다. 미국 미주리주 인디펜던스에 있는 트루먼 도서관 관장을 역임한 마이클 디바인 씨는 2015년 8월4일 코리아 타임스에 '트루먼 기념물을 세울 때이다'는 제목의 칼럼을 실었다. 그는 1945년과 1950년에 트루먼이 내린 결단이 없었더라면 오늘의 번영하는 한국은 존재할 수가 없는데 맥아더 동상만 있고 트루먼 동상은 없는 게 아쉽다고 했다. "트루먼과 그 행정부의 업적을 무시하는 것은 한국인들로부터 자신들의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박탈하는 것이다"고 칼럼을 마무리했다. 그런 점에서 다부동에 민관(民官) 협력으로 세워진 이승만 트루먼 동상은 한국인들이 배은망덕(背恩忘德)하다는 비판을 면하게 해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