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주택시장을 보고 있으면 한편으로 답답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재미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치, 한편의 원맨쇼를
관람하다는 느낌입니다. 원맨쇼 아시죠?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고,,,
그럼, 누가 원맨쇼를 하느냐구요? 다름아닌 정부입니다. 그런데, 이 원맨쇼가
1부와 2부로 나눠 장기 상영되고 있습니다.(흥행성적은 글쎄...)
상영시작일을 굳이 거슬러 올라가자면 지난 2003년 10월29일입니다.
당시 정부는 뛰는 집값을 잡기 위해 '부동산 투기 종합처방전'이란 타이틀로
'10.29대책'을 발표했습니다.
이 대책은 정부가 과거,현재,미래에 해 왔고, 할 수 있을 법한
모든 투기대책을 총 망라한 것이었습니다.
이 때부터 주택 시장에서 정부의 원맨쇼가 시작됐습니다.
<10.29대책이후 썰렁했던 아파트 모델하우스(2004년7월,부산)>
이전까지 급등했던 집값은 10.29대책으로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고,
지난해에는 2000년이후 4년만에 전국 집값이 마이너스를 기록했습니다.
이 기간 중 정부는 그야말로 집값을 잡기 위한 무차별 파상 공세에 나섰습니다.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종합부동산세,개발이익환수제,주택거래신고제,
1가구3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정책이 동원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러고도 집값이 안 잡혔다면 글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이후에는 그야말로 정부가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며 집값을 쥐락펴락 하는
상황이 지금까지 전개되고 있습니다.
실질적인 주택의 수요자와 공급자는 정부의 원맨쇼가 어떻게 진행될 지
부터 살피는 게 먼저가 됐습니다.
시장의 근본원리인 수요와 공급의 결정요인에 정부 정책이 가장
먼저 거론됐던 것입니다.(물론, 이게 정상적이냐, 아니냐에 대한
가치 판단은 따로 논할 필요가 있겠지만요) 가장 단적인 예로,
집을 사고 팔때에도 정부의 정책이 어떻게 바뀔 것인가를 먼저 생각하고
거래하는 사람들이 10명중 8~9명은 된다는 게 일선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전언입니다. 정작 가격 및 투자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수급 여건,
경기 회복, 금리 인상 여부 등은 부차적인 문제로 전락한 것입니다.
일단 여기까지 1부가 끝났습니다.
올 들어서는 재건축 아파트와 판교라는 테마를 갖고 정부가 원맨쇼 2부를
시작한 느낌입니다. 정부는 우선 판교가 연일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투기 우려감이 높아지자,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작년 하반기 전용면적 25.7평 이하 아파트의 분양가 상한제를
실시한다고 발표한 이후, 아파트 우선 공급 대상을 기존 만 35세이상,
5년이상 무주택자에서 만40세이상,10년이상 무주택자로 변경했습니다.
또, 과거 당첨경력에 따른 1순위 제한을 기존 5년에서 10년으로 늘렸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자, 최근에 다시 5~10년으로 이상하게(?) 바꿨습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판교의 건축비 추산 자료가 공표되면서 시작됐습니다.
언론에서는 연일 건축비 추산자료를 바탕으로 판교 분양가격이
25.7평 이하는 평당 900만~1000만원,
25.7평 이상 중대형은 평당 2000만원까지 갈 것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이에 따라 당첨되는 즉시 프리미엄만 최고 2억~3억원을 호가할
것이라는 소식이 나오면서 판교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은 더욱
커지면서 청약통장 불법 거래마저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때문에 당황한 정부는 이헌재 부총리와 이해찬 총리가 잇따라 무대에 올라,
"판교 불법을 그냥 보고 있지는 않겠다"고 말했고,
이어 건교부 관계자도 "판교 분양가를 평당 1500만원이 넘지 않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투기 심리 진화에 나섰습니다.
하지만, 한번 불붙은 투기심리는 더욱 확산되는 양상입니다.
이미 분당과 용인지역 집값까지 들먹거리고 있습니다.
재건축 아파트와 관련한 정부의 움직임도 재미있습니다.
지난해까지 규제일변도이던 정부가 연초부터 경제 올인을 주창하면서
부동산 규제 완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
투기지역을 일부 해제하고, 이헌재 부총리는
"앞으로 부동산 규제도 선별적으로 완화할 뜻이 있다"고 말하는 등
해빙 무드를 조성한 것입니다.
여기에 재건축 개발이익환수제가 여당측 반발로 시행시기가 연기되면서
일시적으로 재건축 투자심리가 살아나면서 매매가격이 올라간 것입니다.
<출처:부동산114>
그러자, 정부는 다시 재건축을 위시한 집값 급등을 가만두지
않겠다며 부랴부랴 진화에 나서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 부총리가 지난 6일 "생각보다 강남 재건축 상승세가 너무 빠르다"고
언급한 데 이어, 10일에는 재경부 차관보 주재로 긴급 관계부처
간부회의가 열려 "재건축 아파트값과 판교신도시 불법 투기사례를 점검,
대책을 세우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이 때문에 주택시장엔
또다시 냉기류가 흐를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실, 이번 집값 상승은 강남 일부 재건축 단지와 분당 등 일부 지역에
국한된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입니다.
더욱이 항상 매년 1월 중순~3월초까지는 계절적인 집값 상승이 연
례적으로 반복돼 왔습니다.(호황,불황의 여부를 떠나서 말입니다.)
따라서 올해 집값 전망을 이번 1개월 여동안의 추이만으로 상승,
하락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또 집값 안정을 주장하며 시장개입을 선언하고 나선 것입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정부가 집값의 상승,하락을 좌지우지하는 게
과연 경제,사회적으로 얼마나 올바른 것인지는 쉽게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문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에서 주택가격에 대해 정부가 왈가왈부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염려스러운 점은 정부가 지나치게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 섣부른 정책을 내놓을 경우 정상적인 시장기능마저
왜곡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모든 무주택자들의 희망은 집값이 오르지 않는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주택은 공공재이기도 하지만, 사유재산이다.
따라서, 사유재산의 가격까지 통제하려는 접근은 위험한 일이다.
있는 사람들의 머니게임을 통제하려고 하지 말고,
무주택 서민들의 내집마련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는 정책적 접근
(예컨대, 임대주택과 모기지론의 확대, 공공택지 공급 확대 등)이
더욱 필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