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적 삶을 떠받치는 기술과 사물의 향연, 그 예상치 못한 이면을 가로지르는 사회학의 시선 – 아무리 한쪽이 혁신적이라고, 그 반대편이 지옥이 되어서는 안 된다
피임약부터 수세식 변기, 아파트, 에어컨, 플랫폼 노동자, 비행기까지 혁신의 끝판왕이 펼치는 아찔한 사회사
이 책에서 다루는 것들은 인간 사회의 온갖 우연이 축적되면서 생겨났고 인류를 빠르게 나아가게 했다. 인류는 불편함을 줄이고 편리함을 늘리겠다는 자세로 길게는 몇백 년 전과는 너무 다른, 짧게는 불과 몇십 년 전에도 꿈꾸지 않았던 현실을 만들어 냈다.
우리처럼 혁신적인 생명체가 있겠는가. 우리처럼, 파괴적인 생명체도 없을 거다. 인간처럼, 차별에 예민하고 동시에 둔감한 동물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수백 년간 끙끙거렸던 고민을 해결하면서 수천 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을 고민거리를 만들어 낸다. 더 잘사는 시스템과 더 못하는 시스템을 동시에 구축한다. 편리해지면서 불편해졌는데, 편리해졌으니 불편하지 않다고 한다.
옛날엔 대체 어떻게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모든 게 편리한 세상이다. 뒤처리를 깔끔하게 도와주는 수세식 변기, 덜컥 임신하지 않도록 해 주는 피임약. 간편한 소비 생활에 필수적인 플라스틱 덕분에 우리의 어제와 오늘은 별 탈 없이 유지된다. 효율성과 편리함이 가져온 변화는 너무도 압도적이어서 삶의 모든 부분을 지배하고 있다. 냉장고 안에는 언제든 먹을 게 가득하고, 자기 전 배달앱으로 주문한 상품이 다음 날 새벽이면 현관 앞에 도착하며, 에어컨이 있기에 뜨거운 여름도 거뜬하다.
물질문명의 세례를 풍족하게 누리는 세상은 자유와 개성이 넘칠 것 같지만, 실상은 놀랍도록 균질하다. 우리는 하나같이 똑같은 구조의 아파트에서 잠을 자고, 전국 어디에나 있는 편의점을 방문하고, 똑똑하다는 스마트폰으로 남들 다 보는 것에만 접속한다. 무덤덤함을 넘어 어떤 두려움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거 없었으면 어찌했을까’ 하는 현대인의 불안이, 사회학자 오천호는 편리함에 중독된 세계의 이면을 뜯어보며, 혁신에 기댄 우리의 안락한 삶을 낯설게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