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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
반여량 일행은 늘 어깨를 당당히 펴고 다니던 대작로(大爵路)
를 숨어숨어 이동했다. 대저택들이 즐비한 곳이라 숨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길게 이어진 담벼락에 찰싹 붙어 조심스럽게
나아갈 뿐이다.
혹여 지나가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면서.
일행은 회갈색 담벼락에 이르자 잠시 숨을돌렸다.
사위를 돌아보았다.
순라군(巡邏軍)의 딱딱이 소리가 멀리서 들리더니 점점 가까워
진다.
대작로는 권문세가(權門勢家)들이 밀집해 있는 곳이라 일각(一
刻)마다 순라군이 순시를 돌았다. 다른 때 같으면 무심히 지나
칠 일이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았다. 남창부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을 적으로 간주해야 된다.
산귀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창부를 들어서기 전에 미리 목표로 점찍어 두었던 집에 도착
한 것이다.
조중이 산귀의 허리에 팔을 두르는가 싶더니 회갈색 담장을 날
다람쥐처럼 날아 넘었다. 그것이 시발(始發), 일행은 모두 담
장을 넘어 대장원 안으로 들어섰다.
"휴우!"
산귀가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소매로 문질러 닦으며 긴 한숨
을 불어 쉬었다.
"음...! 이 집이라니..."
조중이 기가 막힌 듯 장원을 둘러보았다.
곽가장 하고는 삼십 장도 떨어지지 않은 저택이다. 중간에는
남창부에서도 이름 석 자만 대면 모르는 이가 없는 토호(土豪)
문광극(文廣隙)의 장원이 사이에 있을 뿐이다.
정말 등하불명이었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천지유불이 이십 년이나 검을 갈아왔다
니.
그것은 천지유불의 공이 아니라 원방파의 능력에 찬사를 보내
야 한다. 삼십 명 넘는 사람들이 무공을 닦으면서도 아예 그런
사람은 있지조차 않은 것처럼 종적을 지워 버렸으니 대단한 능
력 아닌가.
"들어가세."
산귀는 비로소 어깨를 쪽 펴고 걸어갔다.
반여량 일행이 남창부에서 유일하게 안심할 수 있는 장소였다.
지나오는 길에 원방파 총단을 지나왔다. 그곳은 들어갈 수 없
었다. 곽모천이 도발할 수 있는 동기를 줘서는 안 된다. 어떠
한 트집거리도 줘서는 안 된다.
"암습이군요. 살을 저미는 살기... 대단합니다. 방심하다가는
당하겠군요."
담담히 흘러나온 말이었다.
학구는 의아한 눈길로 반여량을 쳐다보았다. 그러나 곧 사태를
직감했는지 혀를 내밀어 입술을 찾았다.
일행은 침착했다.
그들은 혈단인들의 무공이나 공격 습성을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아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이미 백전노장(百戰老將)이었다.
'비수당은 혈육로에 관문 한 개를 추가해야 해. 끝없이 죽이는
민전(悶戰). 혈단... 이들은 참으로 지겨운 공격 방식을 택했
어. 동귀어진에다가 죽여도 죽여도 끊없이 나오는 인간들. 이
제는 죽이기도 지겹다. 사람을 지치게 만들어.'
어느 한 사람의 생각이 아니었다. 일행 모두가 한 번쯤은 떠올
렸던 생각이었다.
"아니군요. 기가 틀리군요. 아하! 천지유불이 남겼다는 후인들
그들입니다. 산귀 어르신, 자칫하면 우리끼리 피를 부르겠군
요."
"뭣!"
산귀의 경악성을 들었음인가. 반여량은 살기가 급속하게 감소
되는 것을 느꼈다.
잠시 조용한 정적이 흘렀다.
일행은 상대가 누구라는 것을 알았지만 긴장을 풀지 못했다.
살수들의 공격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환경에서 감탄이 절로
터지는 부위를 공격해 온다. 그리고 그런 공격은 대체로 치명
적이다.
귀뚜라미 우는 소리가 맑게 들려왔다.
'이동하고 있군... 멈췄다. 산귀를 확인하고 있군. 치밀한 사
람들이야.'
반여량이 읽은 기감은 정확했다.
산귀의 음성을 듣고는 가까이 다가와 용모를 확인한 무인들은
어둠 속에서 한 명씩 모습을 드러냈다.
"허허허! 정말이군. 자칫했다가는 우리끼리 살상할 뻔했어."
일행은 다시 한 번 강한 자신감을 가졌다.
반여량의 동기감응, 그리고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리(地理)가
합쳐진다면 인질 두 명을 구출해 오는 것은 시간 문제로 비춰
졌다. 거기에 사우맹과 곽가장 간에 싸움이 벌어지는 시기까지
적합하다면...
천애사시 동목은 분장하기가 쉽지 않았다. 파계승처럼 거칠어
보이는 용모여서 더욱 그랬다. 머리털 하나 없는 민대머리는
짐승털로 가발(假髮)을 만든다 해도, 굵은 붓으로 칠해 놓은
듯한 눈썹과 두툼한 입술을 가리기는 힘들어 보였다.
반여량은 얇은 면도로 눈썹을 다듬고 얼굴색과 흡사한 분으로
흔적을 말끔히 제거했다. 대야호에서 노기로 분장한 원방 살수
를 본 다음부터 그의 분장술은 더욱 경지를 높였다.
석수는 정말 곤란했다.
행동이 자유롭다지만 쇠로 만든 의수와 의족은 도무지 가릴 방
도가 생각나지 않았다. 그뿐인가, 절룩거리는 걸음걸이는 어찌
할 텐가.
"꼭 나가야 하겠습니까? 원방파에서 웬만한 소식은 전해올 덴
데."
"동목은 내보내면서 나는 왜 안 내보내려고 그러나?"
"괜한 수고를 하실까봐."
"하하! 말 안 해도 잘 알지. 이런 몸으로 나가봤자 무얼 알아
오겠냐는 뜻이겠지. 안 그런가? 나가야 돼. 동목 저놈이 탐지
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거든. 그렇지 않아도 이목이 어두운데
하나라도 더 긁어모아야지."
석수를 걸인으로 분장시켰다.
목발을 들게 해서 절름발이라는 것을 확연히 드러냈고, 그 대
신 왼손은 돼지 껍질을 덧씌워 의수라는 사실을 숨겼다.
이른 새벽, 두 사람이 인색하기로 유명한 주일(周一)의 질고
(質庫:전당포)를 빠져 나갔다.
한사람은 상인이었고, 또 한사람은 걸인이었다.
그 누구도 두 사람에게 신경쓰는 사람은 없었다. 불쌍한 두 사
람이 또 껍질째 홀랑 벗겨지겠군 하는 생각에 혀를 끌끌 찼을
따름이다.
주일, 그는 남창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얼굴을 마주
한 적이 있고, 감사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고, 마지막으로는
욕설을 내뱉게 한 자린고비( 吝考 )였다.
주일의 질고는 신분의 높고 낮음에 관계없이 돈이 필요한 사람
들로 북적거렸다. 고리돈이지만 언제라도 필요한 은자를 빌릴
수 있으니까.
원방파는 곽가장의 이목을 피하기 위하여 은폐 대신 개방(開
放)을 선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드나드는 질고 안쪽에서 살
수들이 독아(毒牙)를 싹틔우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으리
라.
* * *
동목은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쇄심파 소중분이 장악한 사십삼 명의 무인들 중에 동목이 관리
하던 무인은 다섯 명이었다. 그들은 소중분이 곽가장을 떠날
때도 따라나서지 않았고, 아직도 곽가장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싸리문이 눈에 띄었다.
안마당에는 아무도 없었다. 빨래가 널려 있고, 암탉 몇 마리가
먹이를 주워먹는다.
남창부에서 일 리만 벗어나도 이처럼 가난한 서민들을 쉽게 접
할수 있는 것을.
곽요연이 무슨 수로 정대원의 식솔을 위협했는지는 모르지만
그녀에게 전향(轉向)한 정대원은 믿을 수 없었다.
'곽평(郭枰)...'
동목은 쉽게 들어가지 못했다.
전 같으면, 이만한 분장이면 스스럼없이 문을 밀치고 들어설
수 있으련만 지금은 그렇지 못했다. 누구의 수하인가? 자신?
곽요연, 소중분, 곽모천? 그것조차도 혼미했다.
동목은 어슬렁거린다는 것이 마을을 두 바퀴째나 돌고 있었다.
이것은 위험했다.
조그만 마을에 낯선 사람이 빙빙 돈다는 것은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다시 돌아서는 안 된다. 싸리문을 밀치고 들어서던
지, 아니면 마을을 빠져 나가야 한다.
'제길! 누구 한사람이라도 나와 있으면 어떻게 해볼 텐데.'
곽평의 집은 무덤 속처럼 조용했다.
'모험은 안된다. 다된 밥에 재를 빠뜨릴 수는 없는 일.'
결국 동목은 돌아서기로 작정했다.
두 번째로 그가 찾아간 곳은 남창부 외곽에 있는 대저택이었
다.
이곳은 접근하기가 일면 쉬웠고, 또 한편으로는 어려웠다.
겉으로는 조용해 보이는 장원. 하지만 그 속에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온갖 추잡한 행위가 버젓이 행해졌다. 술, 도박 여
자... 사내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모든 것이 저택 안에 있었
다.
손님의 신분은 철저히 감춰 주었다.
저택을 들어서면 즉시 하인의 안내에 따라 방으로 안내되었다.
거기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하면 된다. 사람들에게 지탄을
받을 만한 행위도 상관없었다. 원하면 살인하는 재미도 맛볼
수 있는 곳이라니 말해 무엇하랴.
남창부 고관대작들은 이 대저택을 홍방(紅房)이라고 불렀다.
최소한 은자 닷 냥은 있어야 문지방이라도 넘을 수 있는 곳.
그만한 은자는 있다. 그러나 안에 들어가서 무슨 수로 정대원
을 만난단 말인가. 설혹 만난다 할지라도 그가 무슨 생각을 하
고 있는지 모르는데 섣불리 본색을 드러낼 수 없지 않은가.
그는 대저택 앞에 서서 망설였다.
손님의 신분을 은폐시키기 위해서는 주의력도 필요하지만 우선
힘이 갖춰져야 한다. 손님 중에는 무인도 있으리라. 그런 사람
이 난동을 부릴 경우도 대비해야 한다.
홍방에서는 무인 한 명을 고용했다.
강근도(姜槿禱).
한때는 조양검법으로 강서성을 짜릿하게 울렸던 강가검문의 후
손이었다. 지금도 강근도의 무공은 녹슬지 않아서 상대하기 극
히 곤란한 강자를 거론할 때면 이름이 거론되었다.
세상의 모든 명예와 안락을 뒤로 한 체 오직 검 한 자루에 목
숨을 걸던 승부사.
그를 만나야 한다.
동목은 문지기 두 명이 힐끔거리며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고 있
는 것을 알아차렸다.
'아차!'
생각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
이런 곳에 오는 위인들은 대체로 얼굴을 가리려고 안간힘을 쓴
다. 그들에게 망설일 시간 따위는 애당초 없었다. 위엄을 갖춘
다고 거드름을 피지만 걸음걸이는 무엇에 쫓기는 듯 바쁘기 마
련이다. 그런데 자신은...
동목은 생각을 접고 대문을 향해 걸음을 떼어 놓았다.
"어떻게 오셨는지?"
"허허! 그것은 나중에 말함세. 우선 안으로 안내해 주게."
"안으로라니요? 저희 장원에 아시는 분이라도 계십니까?"
동목은 난감했다. 이들은 자신을 의심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기미가 이상하면 출입을 금한다는 것이야 익히 알고 있는 사실
이 아니던가.
"사총(司總:총지배인)을 불러 주시게."
동목은 직접 부딪쳐 보기로 작정했다.
이렇게 망설이다가는 어느 세월에 정보를 입수할지 알 수 없는
일, 난관을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사총이라뇨?"
"강근도 말일세."
동목의 눈이 날카롭게 빛났다.
동목이 안내된 곳은 조그만 방이었다.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동목은 숨막히는 답답함을 느꼈다. 사
지(死地)라는 느낌이 숨을 답답하게 만들었다.
봉창은 단단한 쇠창틀이었다. 방 안에 있는 집기들도 바닥에
고정되어 움직일 수 없었다. 아무리 신경이 둔한 사람이라도
이런 방으로 안내되면 죽을 수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리라.
"나를 찾았다고?"
등뒤에서 쇳바람처럼 강팍함 음성이 들려왔다.
'내 목숨을 던진다.'
동목은 봉창을 통해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시원해 보이는 인공 연못은 둘러싸고 짙푸른 나무들이 녹음(綠
陰)을 자랑한다. 새들이 날아다니는 것도 보이고, 하늘은 무척
청명하다.
"곽가장... 근황을 알고 싶다."
"국... 주?"
오랜만에 들어 본 소리다. 국주라...! 일 년 전에 들어 보고는
들어 보지 못한 소리 같은데.
"천애사시 동목 국주님 맞습니까?"
이미 화살은 날아갔다. 만약 강근도가 곽모천의 편에 서 있다
면 돌아오는 것은 죽음뿐이다.
동목은 강근도의 얼굴을 바라보며 씩 웃었다.
* * *
석수는 친구와 아내를 찾으려는 목적으로 곽가장에 투신했다.
국주의 지위에 오르고 정대원을 관할할 입장에 서자 그는 남창
부에서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을 휘하에 두었다. 친구와 아내를
찾기 위해서는 대원들이 고루 퍼져 있는 게 효과적이었다. 남
창부는 신경쓰지 않았다.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지금
그가 찾아갈 곳이라고는 한 군데밖에 없었다.
"멀쩡한 마누라를 두고 계집질을 하고 있군. 맞아, 틀려?"
"마, 맞습니다."
"끊어."
"네?"
"그 계집하고 붙어 있다가는 제 명에 못 죽는단 말야."
쩌렁 하는 고함소리가 바깥에까지 들려 나왔다.
"아! 네, 네."
"가만있자... 죽일 놈! 여편네 몰래 돈깨나 썼군."
"네. 저 그게..."
"썩 물러가랏!"
"네? 지금 무슨 말씀을?"
"고얀 놈! 여편네를 죽이려고 작심했구나! 원귀가 보인다. 눈
에 피를 철철 흘리며 서럽게 우는구나! 네 이놈! 이 요살할
놈!"
"아, 아직 죽인 것은..."
"살심이 원귀를 부르는지 몰라서 하는 소리냐! 뉘 앞이라고 구
구한 변명을 늘어놓느냐!"
방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석수는 피식 웃었다.
그로부터 한참을 더 면박당하던 사내는 주머니에 있던 은자를
모두 꺼내 준 다음 아내에게 잘하라는 통상적인 말을 듣고 물
러나왔다. 사내의 얼굴이 단단히 경직된 것으로 보아 혼줄이
되게 난 모양이었다.
'아무렴 어때요? 마음에 기둥만 되어 주면 되지. 점(占)이라는
것이 원래 마음을 의지하고 싶어서 찾아오는 것이거든요.'
그렇게 엉터리 점을 쳐주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느냐는 말에
설산선녀(雪山仙女)가 한 말이었다.
"다음 들어와!"
방 안에 귀롤 멍멍하게 만드는 일갈이 터져 나왔다.
"국... 주?"
"하하! 이렇게 반병신이 됐지. 보기 흉한가?"
"살아 계실 줄 알았어요."
"아직 멀었구나. 정대원이 그런 말을 하다니. 정대원은 '어느
경로로 정보를 입수해 본 바 살아 계시다는 것을 확신했죠.'
이렇게 말하는 거야."
"호호호...!"
설산선녀는 하얀 이를 드러내며 밝게 웃었다.
서른 중반에 이른 나이, 그러나 눈이 요요롭게 빛나 신시(神
氣)가 들렸다고 생각하기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었다.
"의수와 의족을 끼운 다음 부지런히 무공을 연마했다만 예전
실력에 비하면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지."
"정대원의 능력은 무공으로 가늠되는 것이 아니다. 호호호! 누
가 말했죠? 저는 분명히 들은 기억이 있는데."
"네가 마음만 먹는다면... 나를 죽일 수 있다는 말이다."
화기애애(和氣靄靄)하던 분위기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석수와 설산선녀는 서로 경직된 얼굴로 바라보았다.
"곽가장 반도로 낙인찍힌 사실은 알아요."
"반도는 반도지. 곽가장을 치려고 생각하니까."
다시 정적이 내려앉았다.
"곽선연, 삼공녀를 구하려고 하는군요.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아요. 조중 당주가 옆에 있으니까. 조 당주가 소문난 애처가
라는 사실은 남창부 사람 모두가 알고 있는 걸요."
"곽모천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겠지?"
"들어가면 죽어요."
"그렇겠지."
"들어갈 생각이군요."
"교교라는 여인도 있는 것으로 아는데?"
"교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요."
"정보를 원한다면... 줄 텐가?"
어느 정도 말이 통한다 싶자 석수는 용기를 내서 본론을 꺼냈
다. 적어도 설산선녀는 곽모천의 편은 아니다. 그렇다고 방심
하기도 일렀다. 설산선녀는 환영귀검 공가와 뜻이 맞는 여자,
환영귀검은 왕중분의 오른팔 역할을 하지 않았는가.
애당초 이런 고민은 하지 않아도 좋았다. 정대원은 서로간에도
정대원이라는 사실을 모를 만큼 완벽하게 은폐했다. 그러던 것
을 왕중분이 백일하에 드러내고 말았다.
사십삼 명.
다른 정대원들은 몰라도 그들은 서로간에 끈끈한 정(情)을 간
직했다. 전임 정대주 동종관을 배신하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
으로.
"한 가지 소원을 들어 주신다면."
설산선녀가 입가에 묘한 미소를 띄웠다.
"하하! 이런 몸으로도 할 일이 있나? 말해 보게."
"국주님의 아이를 갖고 싶어요."
"뭣!"
석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호호! 몰랐나요? 제가 국주님을 얼마나 연모하고 있는지?"
"농담은 그만하게."
설산선녀는 조용히 일어섰다. 그리고 입고 있던 옷을 한 까풀
씩 벗기 시작했다.
"이, 이보게!"
"전에... 가홍이란 자와 춘혜라는 여자를 찾으라고 하신 명
령... 기억하세요?"
"..."
"그들의 뿌리는 복건성 경산도라고 했죠?"
"그들을... 찾았나?"
"아뇨. 하지만 알아낸 게 있어요. 국주님의 과거."
설산선녀는 전라(全裸)가 되어 갔다.
"처음에는 연민을, 그리고 관심을... 지금은 사랑이 되었죠."
석수는 흠잡을 곳 하나 없는 아름다운 나신을 바라보았다.
'다시는 여자를 취하지 않으려 했는데...'
* * *
신창윤가와 사우맹이 멸문했다는 소리는 그야말로 청천벽력이
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곽요연이 몸을 뺐다는 것. 그것으로 정대
는 무사한 셈이다. 원방파 감여가들은 현장을 목도한 듯이 당
시 상황을 생생하게 파악해왔다.
"언니! 언니...!"
곽소연은 통곡을 터뜨렸다.
아무리 씨가 다르다 해도 많은 세월 쌓아온 자매간의 정은 가
슴을 도려내는 아픔을 가져다 주었다.
정대... 무사하지만은 않았다. 알게 모르게 한 명씩 죽어간 정
대원들은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급살로 죽은 사람, 우마차에 깔려 죽은 사람, 물에 빠져 죽은
사람, 산을 타다 벼랑에서 실족한 사람...
동목과 석수가 알아온 정보였다.
그들은 또 다른 것을 알아왔다.
신계각주 왕중분이 사십삼 명을 규합하면서 사용했던 통로.
캄캄한 어둠 속에 스며든 한 줄기 서광이었다.
통로가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옆집 문광극의 장원을 가
로질러 곽가장으로 스며들 생각이었다. 얼마나 위험한 생각인
가. 곽가장의 경계는 삼엄하기로 소문나서 소림 방장도 기척
없이 잠입할 수는 없을거라지 않던가.
일행은 곽요연이 암습해 줄 시기만 기다리던 중이었다.
공격이 있다면 경계가 치우칠 것이고, 그러면 잠입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한 가닥 기대 때문에.
더욱 반가운 소식은 살아남은 정대원들이 움직인다는 소리였
다.
그들은 소리없이 모여들었고, 사우맹도들처럼 어설프게 당하지
않았다. 정보수집과 추적, 생존이라면 아무도 따를 자 없다고
자부하던 그들이었다.
"공격 날짜는 언제랍니까?"
"오늘 저녁일세. 정대원은 혈단에 손을 쓰지도 않았어. 이공녀
는 두 가지를 동시에 노렸다네. 곽가장 분타가 멍청하게 가만
히 있어주면 손쓰지 않고 코 푸는 격이고, 만약 중도에서 친다
면... 이공녀는 그 상황을 더욱 바랐네. 사우맹, 신창윤가, 혈
단의 공멸. 그러면 남은 것은 순수한 곽가장 분타와 비목당과
비금당뿐인데 그 정도는 정대원들로 충분하다, 그렇게 생각했
던 것 같네."
"음...!"
"이번 공격으로 혈단의 피해가 컸어. 거의 전멸이지 않을까 하
는 것이 정대의 판단이네."
"피가 넘쳐 강을 이루었군요."
"휴우! 무림에서 그런 일이야 다반사지."
"이공녀는 어느 통로를 이용한다고 합니까?"
"그것까지는 알아내지 못했네. 내 생각에는 같은 통로 아닐까
싶네만. 소중분... 아니지, 이제는 왕중분이지. 입에 붙어
서... 왕중분 각주가 곽모천을 상대한다 해도 정대원으로 비목
당, 비금당을 치는 것은 무리지."
"우리도 오늘 저녁에 들어간다."
조중이 단언했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곽선연을 구출하고 싶었다. 특히 모든 사
실을 알고 난 다음에는 마음이 조급해져 한시도 가만히 앉아
있지 못했다. 반란을 주도했던 여자, 거기에 피 한 방울 섞이
지 않은 여자라면 죽이는 것은 시간문제이지 않은가.
"잠시만 기다리시지요. 제 수하가 곽가장으로 들어갔습니다.
삼공녀와 교교 소저가 어디에 갇혀 있는지 알아올 겁니다."
동목은 자신있게 말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독 입니다
즐~~~감!
즐독 합니다! 감사 합니다!
즐감합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고운밤 되세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즐감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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