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력 25명·시추기 3대 등 장비 지원 출동명령 받고 300㎞ 달려 새벽 도착 예상지점 세 곳 천공 작업·탐사 수행
체감온도 영하 4도 열악한 구조현장 누구도 힘든 내색 없이 임무에 몰두 “고립자 가족 보며 더 힘을 내 작전” 부대 지역민들 장병 격려 현수막도 “우리는 대체불가 …즉각 대응태세”
육군수도방위사령부 시추대대 장병들이 봉화광산 매몰사고 현장에서 시추기를 활용해 작전을 펼치고 있다.
육군수도방위사령부 시추대대 장병들이 봉화광산 매몰사고 현장에서 시추기를 활용해 작전을 펼치고 있다.
육군수도방위사령부 시추대대 인근에 주민들이 장병들을 위해 제작한 현수막이 걸려 있다.
지난 4일 경북 봉화 광산 매몰사고 현장에서 고립된 작업자들을 구조하는 데 크게 공헌한 육군수도방위사령부 시추대대 장병들이 국민을 위해 헌신할 것을 다짐하며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전청수 수공구담당관, 이상협 중대장, 정상일 시추대대장, 김라현 심정반장, 송병호 반장.
경북 봉화 아연 채굴광산에서 작업 중 매몰된 광부 2명이 지난 4일 221시간 만에 구조된 봉화 광산 매몰사고 기적의 생환 현장에는 우리 육군도 있었다.
바로 전군 유일의 심정작전 부대인 육군수도방위사령부 시추대대 장병들이다. 대대는 30년 넘게 임무 수행한 베테랑 동기 원사 4명(국방일보 11월 1일 자 보도)을 포함해 이 분야 최고의 기술과 노하우를 갖춘 전문 인원들로 구성돼 있다. 부대는 지난 2일부터 구조 당일까지 대대장을 포함한 부대 병력 25명과 시추기 3대 등 차량과 장비 15대를 지원했다.
봉화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끈 자랑스러운 시추대대 장병 5인을 10일 부대 주둔지에서 만났다. 작전에 참여한 정상일(중령) 시추대대장, 이상협(소령) 중대장, 김라현(원사) 심정반장, 송병호(상사) 반장, 그리고 작전을 지원한 전청수(하사) 수공구담당관.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 영웅들의 목소리를 국방일보가 직접 들어봤다.
글=조수연 기자/사진=부대 제공
2주 동안 진행되는 천공을 38시간 만에…
“구조작전은 시간 싸움이니까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천공 한 곳이라도 더 하려고 했죠. 정신 차려보니 38시간 동안 잠 한숨 안 자고 전 인원이 붙어서 임무에 몰두했더라고요. 보통 심정작전 나가면 천공 하나에 2주 정도 잡는데 이틀하고 반나절 정도에 판 거니까….” 작전에 참여한 김라현 심정반장의 말이다.
봉화 광산 매몰사고는 지난달 26일 오후 6시쯤 경북 봉화 재산면 아연 채굴광산 제1수직갱도에서 펄(토사) 약 900톤이 쏟아지며 발생했다. 현장에 구경 7.54㎝급 민간 시추기가 투입됐지만, 구조작업에 속도를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지난 1일 밤 9시 출동명령을 받은 대대원들은 곧장 300㎞를 달려 새벽 2시쯤 작전지역에 도착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대대 장병들이 지난 4월부터 8개월 동안 진행된 심정 개발 작전을 마치고 부대로 복귀한 날이었다.
이상협 중대장은 “모두 휴식이나 퇴근은 당연히 뒷전이었다. 누구 하나 힘든 내색 없었다”며 “대민지원에 여러 번 참여한 베테랑들이었어도 인명구조 작전은 처음이라 긴장됐지만 국민의 생명을 구하는 일에 직접 나설 수 있다는 생각에 마음을 다잡고 출동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광산 정상(534m)에 도착한 장병들은 곧장 구경 15㎝급 시추기 3대로 예상지점 세 곳에 지름 200㎜의 천공을 냈다. 이들은 시추뿐만 아니라 탐사 작업도 함께 진행했다.
시추기로 천공하고 랜턴이 달린 시추공카메라(적외선카메라)와 청음 장비를 투입해 생존자를 확인하면 소방이 구조작업을 하는 식이다.
정상일 대대장은 “시추공카메라를 투입해 갱도를 확인해보니 지하수가 흐르고 있어 매몰사고 고립자들의 생존확률이 높다는 희망이 생겼다”며 “음식물과 의약품을 넣고 고립자 이름을 부르며 ‘응답하시거나 기운이 없다면 돌을 던져달라’고 외쳤다”고 회고했다.
장병들의 탐사 작전을 지켜보던 매몰사고 고립자 가족들은 희망의 끈을 다시 한 번 움켜잡았다.
이 중대장은 “첫 탐사 후 생존확률이 높다는 평가가 나왔을 때 가족 중 한 분이 박수를 치면서 기뻐하시더라”며 “간절한 가족분들의 모습을 보고 더 힘을 내서 작전했다”고 털어놨다.
첫 민·군 동시 시추작업…기술 교류 기회도
단단한 땅을 뚫는 작업이다 보니 흙과 돌가루가 눈·코·입에 튀고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 대화가 어려운 현장이었다. 하지만 수십 년 동안 함께 작전을 해왔기에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송병호 반장은 “작업지점이 석회암이어서 방호복을 입었지만 돌가루와 흙이 계속 튀었다”며 “작전 인원들과 대화를 해야 하는데 목소리가 안 나왔지만, 장기간 함께 작전한 인원들이다 보니 행동만 봐도 상황 파악이 가능하더라”라고 했다.
이 중대장은 “장비 특성상 물을 사용하는데 작전지역이 산속이다 보니 체감온도가 영하 4도까지 내려갔었다. 물을 맞으면서 할 수밖에 없어 다들 눈이 새빨갛고 목소리도 상했다”면서 “체력이 많이 떨어졌을 텐데 누구 하나 쉬지 않고 일하더라. 부대원들은 대체불가 부사관이고 우리 부대는 대체불가 부대다. 장교로서 부대원들에게 다시 한 번 감동했다”고 말했다.
성공적인 작전 뒤에는 묵묵히 부대와 작전지를 오가며 필요한 물자를 옮겨준 든든한 지원자도 있었다.
“장비 정비에 필요한 수리 부속과 기름을 옮겼는데 저녁에 도착하니 어둡고 추워서 작업하기 좋은 환경이 아니었다”는 전청수(하사) 수공구담당관은 “나라 분위기가 어두웠는데 대민지원을 나가 좋은 소식을 가져온 시추부대의 일원인 게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민간 시추공과 함께 구조현장에 투입된 것이 기술 교류의 기회도 됐다고 한다.
김 심정반장은 “민·군이 동시에 시추 작업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며 “민간은 작업방식이 다른 장비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작전을 마치고 대화하며 느낀 점이 많았다”고 전했다.
위기의 순간 국민의 생명 지킨 ‘국민의 군대’
가뭄 현장 등 국내는 물론 해외파병부대의 심정개발 작전도 펼치는 시추대대는 또 한 번 위기의 순간에 국민의 생명을 지킨 ‘국민의 군대’의 모습을 구현했다.
“봉화광산 매몰사고 광부 극적 구조! 1113공병단 장병 여러분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부대가 위치한 지역에는 주민들이 손수 제작한 현수막이 내걸렸다. 매몰사고 고립자들이 구조되는 순간까지 한시도 쉬지 않고 임무에 매진한 장병들에게 전하는 격려다.
정 대대장은 “구조 다음 날부터 군 관계자분들과 지인들에게 연락을 많이 받았다”며 “한 일에 비해 너무 많은 격려를 받아 감사하고 부대원들의 사기가 크게 높아져서 기쁘다”고 했다.
이 중대장도 “이번 작전 성공을 계기로 군의 필요성을 평소에 체감하지 못하셨던 분들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군의 존재를 일깨워 드린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상급부대서도 그 부분을 좋게 봐주셔서 격려를 많이 해주셨다”고 했다.
송 심정반장은 마지막으로 자부심과 자신감을 내비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그는 “심정중대는 1㎞ 이상 고지에 올라가 작전을 많이 하기에 어떤 상황이라도 즉각 대응태세가 갖춰져 있다”며 “어떤 임무가 부여되더라도 우리 부대가 달려가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고 힘줘 말했다.